제237화. 강자의 권리 (1)
동영을 둘러싼 여러 이해 집단들이 하나둘 자신의 패를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승도는 이 한판 도박에서 행상의 이익이 판가름 날 것이라는 것을 가늠하고 신중하게 자신의 패를 골랐다.
그가 선택한 카드는 노련한 행상으로 하여금 장군과 막부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합왕국과의 결속을 막는 것이 첫째였다.
하지만 그가 믿는 것은 단지 그 하나의 패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동영 무역으로부터 차지할 높은 점유율이 두 번째 패였다.
동영산 상품의 태반이 행상으로부터 나오게 된다면 동방 무역에 참가하고 있던 여러 참가자들은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행상의 주요한 방해자 중 하나로 지목된 리브 남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이번에 나올 은과 구리, 유황을 풀지 않으면 그도 곤란해질 테니까.
바꾸어 말하면 일시적이나마 리브 남작을 비롯한 주요 적대자들이 행상에 목줄을 잡힌다는 뜻이었다. 승도는 이 전략적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우선은 리브 남작의 코를 꿰어 자유 상인들의 움직임을 막아둔다.’
호랑이 한 마리보다 늑대 여러 마리가 더 성가시고 짜증나는 법. 경쟁자들은 줄일 수 있을 때 줄여야 했다. 이 점에서 그는 윈스턴과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그리고 채찍에 이은 당근을 제시한다.’
무역을 하지 못하는 자유 상인들은 갑갑할 수밖에 없다. 이익을 얻지 못하면 동방까지 온 보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약점을 찌르는 것이 승도의 다음 수였다.
이익을 얻지 못해 갑갑하게 여길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강주 양행의 주주로 참가할 기회를 주는 것이 그의 다음 수였다.
이들을 자연스레 행상의 우군으로 끌어들이며 양행이 보유한 선박과 선원 수를 끌어 올리는 것. 그렇게 하면 전쟁이 끝나는 즉시 윈스턴의 지분을 무서운 속도로 흡수해내갈 수 있었다.
나아가 다수의 연합왕국 시민권자와 자본가들을 방패로 삼아 왕국의 다음 수를 견제할 수도 있었다. 최근에 가시화된 왕국의 움직임을 보고 승도가 계획한 반격의 수였다.
승도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앞에 앉아 있던 동방 무역 회사의 대반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번 전쟁에 대해 대인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브라운 경의 말에 승도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오늘 동방 무역 회사와 동영 전쟁 건으로 회동을 갖고 있었다. 행상은 동방 무역의 당사자로서, 회사는 이 전쟁과 관련해 동영 무기 중개와 관련해 한 발 걸친 자로서 전쟁에 관심이 많았다.
“전쟁에 대한 생각이라면 원론적이지 않겠습니까? 적당한 선에서 전쟁이 종결되기를 희망합니다.”
“가령?”
“조마가 적당한 수준의 전쟁 배상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면 왕국과 막부, 그리고 전쟁의 조기 종결을 바라는 우리 상인들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승도의 말에 브라운 경이 손을 모았다.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입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마 북경의 공사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사가 살해당한 것치고는 가벼운 수위의 대응이군요.”
“국익에 따라 얼마든지 태도를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장점 아니겠습니까?”
대반은 희미하게 웃었다.
전생에서도 연합왕국은 차갑고 냉철한 모습만 내비쳐 왔다. 자국의 주도하에 로망스 제국을 패망시켰음에도, 가장 많은 전비를 썼음에도 그들은 종전 협상에서 그 지분을 주장하지 않았다.
감정적인 논리대로라면 그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냈어야 할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동해서 전후 수습이라는 짐을 뒤집어써 봐야 장기적으로 왕국의 국익에 손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승리의 지분을 기꺼이 동맹국들에게 넘기고 자신들은 세계 경영에 집중했다. 피해를 보았더라도 이익이 나지 않으면 딱 잘라 선을 긋는다. 그것이 연합왕국 외교의 무서움이었다.
“왕국에서 입장을 그렇게 정리해 준다면 우리 행상으로서는 감사할 일입니다. 전쟁 종결에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기꺼이 한 팔을 거들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면 조만간 행상 측에 우리 쪽의 요구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장군을 움직이는 데는 우리보다 행상 쪽이 부드럽고 모양새도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건은 그렇고 이번 동방 무역은 꽤 재미를 보실 것 같다던데, 이익이 제법 쏠쏠하시겠습니다.”
“일시적인 이익이지요. 윈스턴 상회가 이빨 빠진 호랑이도 아니고 언제까지 제 밥상을 내어 놓겠습니까?”
대반이 화제를 돌려 동방 무역 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승도는 가볍게 대꾸하며 찻잔을 들었다.
하지만 둘 모두 윈스턴 상회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라는 것은 잘 알았다. 윈스턴은 동방인들을 이용한 사보타주로 말미암아 상회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요. 요즘도 아문에서 자유 상인들의 움직임을 막는 걸 보면 윈스턴이 아주 힘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더군요.”
“그럴 겁니다.”
승도는 동감의 뜻을 보였다. 리브 남작이 움직여 자유 상인들을 막았지만 윈스턴의 부탁으로 움직인 것이니 윈스턴의 힘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무역에서 윈스턴이 동영 상품을 거의 가져오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인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윈스턴이 거래에 실패할 가능성이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 아성이 허물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윈스턴이 무너진다면 그 자리는 누가 차지하겠습니까?”
“경험 많은 귀국의 상인들 말고 다른 사람이 있겠는지요.”
승도는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동방 무역 회사에서 궁극적으로 자국의 자유 상인들을 동방 무역의 주역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점은 그가 찌르고 들어갈 약점일 수 있었다.
연합왕국과 동방 무역 회사 양자를 겨냥한 족쇄로서.
그들 자유 상인을 승도 자신의 날개 아래에 거두어들인다면 이익을 공유하는 입장이 된 왕국은 그가 어지간히 칼날을 세운다고 해도 적대시할 마음을 품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장차 비상하기 위해 왕국의 눈 밖에 날 짓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승도로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안전판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대인이 주역이 되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 그렇게 여기십니까?”
“아딘 상회가 자신들이 부리던 방의 노동자들에 의해 무너졌다면, 윈스턴 상회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윈스턴과 아딘은 고용 비율이 다르지 않습니까? 여송과 동영인들도 고용하고 있고.”
“그야 그렇습니다만, 비중이 높다는 점은 다르지 않겠지요.”
물론 암살 등을 시도하는 것은 이전처럼 쉽지 않았다. 감시자들이 곳곳에 배치되고 무기 소지도 엄격하게 감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손을 쓸 여지가 없진 않았다. 왕국의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이 사내라면.
“하면 노동자들이 윈스턴을 치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럴 리야 없겠지만 사고는 어디서든 일어나게 마련이니까요.”
“수십 년의 노하우를 가진 윈스턴이 그리 바보같이 굴진 않겠지만 그리된다면 그들은 왕좌에 있을 자격이 없단 것이겠지요.”
승도는 우유를 섞은 홍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시며 답했다.
“딴은 그렇군요. 노무 관리도 되지 않는 자들이라면.”
대반은 느긋하게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도는 대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찻잔을 홀짝였다.
대반은 서가로 다가가 책을 한 권 꺼냈다.
“대인께서 견문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국부론’이라는 책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연합왕국 정치가들이 신봉하는 저서로군요. 들어는 보았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가 말하길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나갈 거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은 믿지 않지만 이번 동방 무역 건에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
“제 예감에는 이번 게임의 승자가 대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대인의 편을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상인으로서 재운을 타고났다는 말씀이군요.”
승도는 너스레로 받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손이 국부론의 그것이 아님은 둘 모두 알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 셈이 아니겠습니까?”
대반이 책을 승도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것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법입니다. 이번에는 대인을 위해 그 손이 움직였지만 다음에는 대인을 위해 움직여 주리란 보장은 없겠지요.”
“맞습니다. 장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일이니까요.”
승도는 대반의 말에 답하면서 생각을 이어갔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을 다음에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강자에 맞서는 약자란 언제나 자신의 편을 늘려서 대항하는 것이 왕도였으니까.
***
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시게마루는 항구를 지키는 세 개의 보루가 차례로 완파되는 광경을 보며 침을 삼켰다. 두 배 이상 긴 사거리를 자랑하는 적을 감당하기에 조마의 요새들은 너무나 무력했다.
왕립 해군은 그들이 상대하기에 너무 강한 적이었다. 맞설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번의 무인으로 태어난 그에게 그런 연약한 감상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내 시게마루는 표정을 굳히고 칼을 뽑아 들었다.
“현 위치를 고수한다.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 자리를 이탈하는 자는 내 손으로 목을 칠 것이다.”
그의 엄명에 주변에 서 있던 무사들이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를 가르고 죽을지라도 적에게 등을 보여선 안 되는 무사도에 충실한 얼굴들이다. 미련하지만 하는 수 없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긴장한 수병들의 표정이 역력히 보였지만 그는 애써 그 사실을 외면했다. 조마 해군은 항구를 죽음으로써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조마의 해군 사령관으로서 그 명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각하, 곧 적 함대가 진입해올지 모릅니다. 함교로 올라가시지요.”
전투 지휘를 하자면 역시 함교가 제격이었다. 수하의 권유에 시게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함교로 걸음을 옮겼다.
함교로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포탄은 쉬지 않고 쏟아졌다. 급기야 요새 쪽에서 굉음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났다. 천지를 울리는 폭음과 불꽃으로 보건데 탄약고가 유폭된 듯했다.
“벌써 마지막 요새까지 완전히 침묵시켰군. 실로 대단한 양이들이다.”
“요새가 무너졌다면 양이들이 곧 들이칠 겁니다.”
시게마루는 뒷짐을 진 채 항의 지세를 눈에 담았다. 세 개의 요새는 항구로 들어오는 수로를 이중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진입로 자체가 탄탄히 보호된 탓에 그간 막부 해군이 감히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지막 요새가 무너진 이상 항구로 통하는 수로는 활짝 열렸다. 남은 것은 적 해군의 무자비한 진입뿐이었다.
“전열 전투를 준비해. 후방의 전투 지원 상태도 재확인하고.”
“알겠습니다, 각하.”
시게마루는 연합왕국 해군을 상대로 고정된 진지에서 전투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복잡한 수로를 따라 들어오는 적에게 먼저 나가 싸움을 건다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다가 침묵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얕은 만에서 싸우면 상대의 공격에 배에 물이 들어온다고 해도 좌초에 그칠 뿐이다. 그렇다면 꾸준히 승조원을 보충하는 것만으로도 싸울 만했다. 무엇보다 수로에서 들어오는 위치를 포격 권에 넣고 있어 조마의 경험 적은 수병들로도 싸움이 된다는 것이 강점이었다.
“적 함대 출현!”
장루에 있던 수병이 큰 소리로 외쳤다. 시게마루는 그 말을 듣고 표정을 굳혔다.
곧 수로 저편에서 큼직한 거함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만큼 끔찍한 괴물이었다. 왕국 해군이 자랑하는 2급 전열함의 실루엣이 드러나자 항내는 공포에 잠겨들었다.
전장 백 미터를 가볍게 넘기는 괴물의 우현에는 수도 없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백 문에 육박하는 대포를 실은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시게마루는 괴물을 보다 칼을 앞으로 힘차게 그으며 소리쳤다.
“사격!”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항내에 정박한 조마 해군의 군함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대부분은 서역 열강에서 사들인 상선을 개조한 것들이었지만 일부는 서역에서 갓 도입한 전열함도 있었다. 함정에 실린 대포는 서역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떨어졌지만 그래도 배의 규모나 전체 배수량은 왕립 해군에 그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공할 포성과 함께 군함들의 좌현이 오렌지 빛 화염으로 밝게 적셔졌다. 수십 발의 포탄이 우박처럼 전열함을 향해 날아갔다. 상대를 저지하기 위한 필사의 의지가 포탄에 실렸다. 그들은 이내 적 함정 주위에 물기둥을 일으켰다.
곧, 전열함 역시 인사라도 하듯 포탄을 쏘았다. 상대 쪽의 포격 역시 무자비했다. 단함임에도 함대 전체와 맞먹는 위용이 느껴졌다. 쌍방은 무자비한 포격을 주고받았다.
기이한 점은 동영 해군 쪽에서는 아이언 볼을 쏘고 있는데 연합왕국 전열함은 사슬 탄을 쏘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시게마루는 그 점을 몰랐지만 마스트가 하나씩 부서지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우리 기동력을 먼저 분질러 놓고 확실히 죽이겠단 뜻이구나.’
상대의 공격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발만 묶어두면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포탄에서부터 느껴졌다. 사실 포격만 봐도 이쪽의 공격은 무시할 만했다.
‘명중률이 너무 낮아.’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조마군함들은 상대 함정에 거의 명중탄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명중하는 포탄도 몇 발 되지 않았다. 수선 하갑판을 조준하고 쏠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는 탓이다.
왕립 해군처럼 역량이 뛰어난 자들은 마스트가 아니라 하갑판을 조준하고 인명 살상 위주의 공격을 가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풍향을 읽으며 시야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적함을 정확히 조준하여 쏠 수 있는 포술이 필요했다. 조마의 수병들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조마 수병들은 적의 마스트를 조준한 채 아이언 볼을 날렸기에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 싸움은 시작부터 불길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예상된 일이지.’
시게마루는 입술을 깨문 채 수로 쪽을 보았다. 곧 적의 두 번째 전투함이 나타났다. 역시 이번 놈도 묵직한 거함이었다. 놈들은 풍향을 미리 읽은 듯 조금의 오차도 없이 좁은 만 안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함정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여 아군 함정들의 꼬리 부분에 도착한 다음, 뒤쪽부터 절단을 내겠다는 생각이 훤히 보였다.
문제는 저들이 움직이면서 아군 배들의 마스트부터 사슬 탄으로 망가트린 탓에 알면서도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응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고정된 전열에서 벗어나 전진하려 한다면 적은 우선 그 배부터 집중 타격을 할 것이다. 아군 함정들은 그런 강력한 타격을 견딜 능력이 없었다.
상대와 이쪽의 차이는 명확했다. 앉아서 두드려 맞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실력의 차이 말이다.
“세 번째 적함입니다.”
적 전투함들은 일정한 간격, 일정한 공간을 두고 계속해서 진입했다. 육지도 아닌 바다에서 거대한 전투함을 가지고 저토록 정밀한 함대 진형을 좁은 수로에서 유지하며 들어온다는 자체만 놓고 보면 적은 진정 대단한 놈들이었다.
“포격을 자제시켜. 이미 진입에서 저지하는 것은 틀렸다.”
적 전열함이 세 척 들어온 단계에서 이미 수로 봉쇄는 빗나갔다. 세 척만으로도 항내의 모든 아군 함선을 파괴하고도 남을 화력이 있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가능한 포탄을 아꼈다가 적이 가까이 왔을 때 최대한의 공격을 퍼붓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적함이 수로로 진입하는 동안 항구 안을 유유히 돈 적 전열함의 선두가 조마 해군의 고정된 전열 꼬리 부분에 도착했다.
전열함 라이온이 옆으로 다가서자 조마 해군의 거함 ‘운요’가 포문을 열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도 잠시, 양쪽이 일제히 포문을 개방했다. 프리깃 급 전투함과 2급 전열함의 정면 승부였다. 30문도 싣지 않는 전투함에게 90문이 넘는 괴물과 일대일로 겨루라는 것은 가혹했지만 이건 전쟁이었다.
라이온은 금세 흉악한 이를 드러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잽처럼 날려 온 사슬 탄 대신 상대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아이언 볼을 장착하고 있었다. 굉장한 포성과 함께 양쪽 배에서 목재 파편이 튀었다.
콰쾅!
굉음과 동시에 운요의 목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배의 측면을 뚫고 들어간 48발의 강철구가 수만 개의 파편을 만들며 수십 명의 인간을 단번에 고기조각으로 찢어 놓았다. 단 일격이었다. 잘 훈련된 왕립 해군 수병들은 근거리에서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불과 두 번의 일제 사격에 운요가 침묵했다. 라이온은 순식간에 상대를 침묵시키고 앞으로 유유히 움직였다.
다음 상대는 조마 해군이 새로 구입한 전열함이었다. 선원은 모두 신참이었지만 그래도 체급이 있다 보니 조마 측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카드였다.
하지만 그 믿음도 별 소용이 없었다. 라이온은 믿을 수 없이 정확한 조함술로 조마 전열함의 바로 옆에 배를 세우고는 압도적인 펀치로 상대를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일격, 이격, 삼격.
십 분도 되지 않아 전열함의 측면을 걸레처럼 찢어 놓는 동안 조마의 선원들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파편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 최강 왕립 해군과 다른 자들의 격차이기도 했다. 파편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낼 수 있는 자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전열 전투를 치른다?
‘무모한 생각이었군.’
시게마루는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