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강자의 권리 (4)
행상 노진승은 향항에 도착하고서야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연합왕국 해군이 향항 앞 바다를 지나 조마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판단을 달리했다.
“연합왕국과 막부가 손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
그는 그렇게 단언했다. 판단을 내린 이유도 있었다. 연합왕국이 느리게 움직였다면 막부와 그들의 결속도 고려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왕국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그 모든 예상은 수정되어야 했다.
왕립 해군이 빠른 시간에 출동한 시점에서 이 전쟁에 낀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모두 변할 수밖에 없었다. 막부가 충분한 위기에 몰리기 전에 숨통이 트이게 되었으니 그들이 구태여 불리한 입장에서 왕국에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국이 조마와 절대 손을 잡지 못할 거란 사실을 막부에서 파악했다면 더 그렇다.
이번 전쟁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끝날 뿐만 아니라 행상의 이익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노진승은 이 상황을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연합왕국이 정말 그 정도도 계산하지 못하고 함대를 조기에 출동시켰는지는 의문이었다. 조마가 막부를 대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함대를 급히 보냈을 수도 있지만 다른 노림수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것까진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나쁘진 않아.’
노진승은 그리 생각하며 상념을 접었다.
“향항 부교께서 오셨습니다.”
동영의 향항 관리 최고 책임자인 부교가 왔다는 말에 행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곧 뜰 너머로 무사들의 호위를 받는 작달막한 동영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너무 왜소하여 꼭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자였지만 그 얼굴에는 세월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노진승은 그를 향해 읍을 하며 인사를 했다.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다카하시 각하.”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노대인.”
향항 부교가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천하제일 거부로 알려진 행상들 중의 하나요, 총상을 맡을 정도로 그 위세가 드높은 노진승의 이름은 이 변방 향항의 부교도 알고 있었다. 노진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카하시를 안으로 안내했다.
행상이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라 방은 그리 넓지 않았다. 다카하시는 수행원들을 방 밖에 두고 혼자만 들어왔다. 노진승은 자신이 강주에서 가져온 특등품 차를 그에게 대접했다.
고급 찻잔에 담긴 차로 목을 축이며 두 사내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영 전쟁에 대한 부분이 주제였다. 하지만 이 주제는 그들의 관심사로 넘어가기 위한 도움닫기에 지나지 않았다.
몇 분의 영양가 없는 대화 끝에 다카하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양이들이 개입하여 동영이 곧 안정될 겁니다. 그리되면 행상에서 상선을 다시 보내지 않겠습니까?”
“그리할 생각입니다.”
다카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상에서 배를 보내줘야 그의 입장에서도 이익이 되었다. 호상의 보고에 따르면 윈스턴은 상품의 질도 관리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오랜 신뢰가 흔들리는 거래 상대였다.
그들의 상품을 가져다 동영에 유통하는 것은 막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곳 향항의 세입을 줄이는 길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천하제일의 상인들로 이름이 높은, 품질 관리의 달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행상의 상품을 들이고 싶었다.
적어도 행상은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 까다로운 서역 상인들의 입맛에 맞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무역 규모를 좀 더 늘려 주셨으면 합니다.”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일전에 윈스턴의 양이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저급품을 가져와 거래를 청했습니다. 장군을 얕잡아본 거래였지요. 우리 향항에서 그런 거래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윈스턴이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보냈다. 허참.”
노진승은 수염을 매만졌다. 행상에서 윈스턴의 상품에 손을 썼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역시 오 대인이 손을 쓴 것이 먹힌 모양이군.’
더러운 수법이긴 하지만 상계에서 공명정대한 승부는 없다. 진정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려면 똑같은 자본으로 싸워야 하는데 그런 장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또한 냉혹한 상계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윈스턴은 자신에게 비수가 날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머저리일 뿐이었다. 수백 년간 경험을 쌓아온 행상이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겠지만.
“해서 우리는 행상과의 무역이 커지길 바랍니다. 물론 호상 쪽에도 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전쟁이 끝나는 대로 기존 일정보다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요컨대 윈스턴이 가져오던 상품까지 맡아달란 거군요.”
“정확합니다.”
윈스턴은 동영에 면직물과 모직물을 주로 가져왔다. 모두 왕국의 제품들이다. 이 제품들이라면 행상 역시 수입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 강주에 방적 공장 등이 차례로 가동될 예정이다.
존슨 씨와 적절한 조율만 하면 수입할 이유는 없다. 물론 모직물은 그래도 왕국에서 가져와야겠지만.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면 충분히 반가운 이야기군요. 그럼 윈스턴의 상선은.”
“그래도 당분간은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쪽에서 윈스턴을 단시간에 대체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노진승은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승도가 자유 상인들과 손을 잡은 것을 알았더라도 그는 이 같은 수를 냈을 것이다. 무리하게 목표를 높였다가 그 기대를 맞추지 못하면 그만큼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신뢰를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기는 행상으로서는 이를 놓고 모험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좋습니다.”
향항 부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영에 주재할 우리 상인들 문제 말입니다.”
노진승은 자신이 이곳에 방문한 주요 이유 중 하나를 입에 올렸다.
“말씀하십시오.”
“동경과 경도, 대판 쪽에 우리 측 상인들이 주재할 수 있도록 각하께서 손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막부와 이야기된 부분이긴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아직 진행이 되지 않아서.”
“협조해드리겠습니다.”
향항 부교의 대답에 노진승은 사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물을 것이 있습니다.”
“물으실 것이라면.”
“영관 말입니다.”
그 말에 다카하시가 알겠다는 얼굴을 했다. 영관은 동영과 려 양국이 부족한 물목을 교환하기 위해 세운 창구였다. 이 좁은 창구를 통해 양국은 각자의 특산품과 문물을 교환하고 외교적인 사안에 대한 정보를 미리 흘렸다.
따라서 양국의 교역은 이 영관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막부는 이 영관 무역의 지분을 행상에 나누어 주기로 했다.
막부 입장에서는 영관 무역에 낀 여러 번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행상에게 내줄 이권을 단시간에 정리해서 내주기가 쉽지 않아 여기에 대한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았다.
노진승의 물음은 이 영관 무역에 행상이 언제 참가할 수 있느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 부분이라면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번 전쟁 덕분에 막부도 운신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승리자는 막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 막부가 승전한다는 가정 하에 장군은 영관 무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조마의 세를 급속하게 불려준 ‘존왕양이’에 있었다.
존왕양이의 구호에 동참한 무사들의 출신 번들을 상대로 막부가 공갈을 칠 수 있게 되어서다. 보기에 따라 번들이 무사들을 보내 막부에 간접적으로 역심을 보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막부는 조마뿐만 아니라 그 외에 그들에게 무사를 보태준 서부와 중부 지역 제번들의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되었다. 승리만 한다면 영관 무역을 통째로 행상에 넘겨도 번들이 뭐라고 반발할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행상으로서는 일이 아주 잘 풀린 셈이었다.
다카하시의 이야기를 들은 노진승의 눈이 포근한 빛을 품었다.
“각하의 말씀을 들으니 적잖이 마음이 놓입니다. 하면 영관 무역은 우리가 사람을 보내는 즉시 가능하다고 해석해도 좋겠군요.”
“그렇습니다. 장군께서도 적극 협조하라는 말씀을 하셨으니 사람만 보내신다면 영관에서 향항까지 물목의 운송은 우리 동영에서 책임질 겁니다.”
다카하시는 전쟁이 끝나는 대로 영관 무역도 가능한 빨리 시작되길 희망했다. 이번 전쟁으로 막부가 쓴 막대한 전비는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었다. 조마 번을 처벌한다고 해도 그에 소모된 재정과 군비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이를 보충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을 다른 승냥이들에게 반역의 때를 제공할 뿐이었다. 막부로서는 가능한 빨리 돈줄을 돌려 군비를 준비해야 했다.
“향항에서 그리 도와주신다면 기꺼이 따라야지요. 영관으로 갈 상인은 이곳에 있으니 막부에서 소식이 오는 즉시 영관으로 배편만 마련해 주시면 우리는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좋습니다. 행상과 막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한 잔 드시지요.”
다카하시가 웃으며 찻잔을 들자 노진승도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이번 전쟁에서 조마와 막부가 막대한 피를 흘렸지만 이익을 챙기는 자는 없을 거다. 있다면 우리뿐. 승자는 우리 행상이다.’
***
조마군대가 가산 전투에서 패하고 이틀이 지났다. 승기를 잡은 막부는 대판에 입성하여 승리자의 기분을 냈다. 하지만 그 승리감도 오래가지 않았다. 대판 앞바다에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막부의 수석 노중 안도는 그 앞바다에 뜬 장대한 서역 군함들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양이들이.’
이번 전쟁에서 조마의 뒤를 쳐 막부에게 승기를 안겨준 자들이긴 했지만 저들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애초 저들이 무기를 대량으로 팔지 않았다면 조마와 같은 외양 대번들이 막부에 감히 반기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타난 것도 썩 좋은 의도로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양이 군함들은 대판 앞바다에서 닻을 내린 채 정박했다. 군함의 수는 겨우 일곱이었지만 수만 막부군과 비교해도 그 위세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고 해야 정확했다.
안도는 닻을 내린 서역 군함들을 지켜보며 저들의 출현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안도 공, 양선에서 배가 내려옵니다. 백기를 건 배입니다.”
“뭐?”
안도가 급히 천리경을 꺼내 바다를 보았다. 과연 양선 앞으로 작은 종선 하나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서역 군인으로 보이는 자들 여럿이 종선 위에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쪽으로 올 모양이었다.
백기는 예로부터 항복 외에 협상의 뜻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되어온 터라 안도는 양이들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상을 썼다.
이 상황에서 양이들이 와서 할 말이 있다면 전후 협상에 젓가락을 얹겠다는 소리다. 놈들이 아무리 조마와 전쟁을 치렀다고 해도 어림도 없는 일이다. 수만 대군을 동원해 피를 흘린 막부의 일에 끼겠다니.
안도는 짜증스런 상황이란 것을 알면서도 상대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저들이 구태여 군함들을 끌고 와 닻을 내린 이유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만일 저들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막부 입장에서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었다. 그리되면 전쟁을 단시간에 잡음 없이 마무리하고 싶은 막부가 난처해진다.
‘봐서 좋을 것이 없는 놈들인데.’
안도는 주위에 명해 해안가로 나가 저들을 맞으라고 명했다. 이내 해안가에 와 닿은 보트에서 양이 몇이 내렸다. 붉은 코트를 입은 양이들은 크고 사나워 보였다.
그들은 주변에 온 동영인들을 향해 뭐라고 말하더니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자기들을 맞지 않아 불만인 듯했다.
아주 오만한 놈들이었다.
곧 양이들이 그 앞에 도착했다. 양이들의 대표처럼 보이는 자는 어깨에 견장을 단 고위 장교였다. 해군의 정모를 쓴 장교는 안도의 주변을 쓱 훑다 옷차림이 다른 사람을 발견하고 시선을 두었다.
“귀하가 이곳의 막부군 수장입니까?”
귀하? 거슬리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양이들에게 그런 호칭 하나를 가지고 싸워봐야 실익이 없다는 것을 안도는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맞소이다.”
안도가 답하자 장교가 웃으며 모자를 벗었다.
“왕립 해군의 볼트 대령이요.”
“만나서 반갑소이다. 볼트 대령.”
통역이 전해주는 말로 양자는 시차를 두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처음 주고받은 말은 간단한 인사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인사나 주고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둘 모두 알고 있었다. 몇 마디의 인사와 의례적인 말이 오간 후 볼트가 본론을 꺼냈다.
“우리가 파악한 정보로는 막부에서 승기를 잡은 것 같은데 맞습니까?”
부정할 일도 아니었다. 조마군이 후퇴하는 것만 봐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에 안도는 쉬이 답해주었다.
“그렇소이다.”
“승기를 잡았다면 전후 처리도 생각하고 계실 터. 조마에 대한 개역(영지 몰수)도 생각하고 계신지요?”
“당연한 일 아니요? 반역자에 대한 처벌은 어느 나라든 다르지 않소이다.”
동방에서 반역자에 대한 처벌은 거의 공통된 부분이 있었다. 가문은 멸문시키고 그 가족들은 노예로 만들며, 그 가산은 몰수한다. 이를 영지에 대입하면 가산에 해당되는 영지 몰수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는 부분을 막부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볼트가 왕국의 입장을 꺼냈다. 그는 이번 전쟁과 조마에 대한 처리 과정에서 동영 서부의 민심이 흉흉해질 것을 우려했다. 도적과 해적이 창궐하고 왕국의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을 입에 올렸다. 물론 그건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안도는 그의 주장을 듣다 그 결론에 이르러 냉소를 지었다. 역시 이자들은 막부에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왕국에서는 조마의 개역에 반대하고 있다 이거요?”
“그렇습니다. 우리 왕국 역시 조마와 교전 중인 당사자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참전국의 자격으로 우리 입장을 주장할 명분이 있음을 공도 아실 겁니다.”
“엄연히 이번 문제는 동영의 내정 문제요.”
“하지만 우리 영사가 죽은 시점에서 이 문제는 왕국과도 얽힌 사안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볼트는 넉살좋게 대꾸했다. 동영이 강국이라면 이렇게 나오기도 어려웠지만 힘의 우위는 동영이 아니라 연합왕국에 있었다.
“막부의 체면이 달린 문제요. 이 사안은 양보하기 어렵소이다. 차라리 이권을 달라면 주겠소.”
안도는 그편이 낫다 싶었다. 그 정도라면 차후 장군의 재가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마를 살려두는 문제는 장군이 결코 재가할 리도 없거니와 장군가 내에서도 반론이 아주 심할 사안이었다. 동영에서의 위신까지 생각하면 이건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왕국도 입장이란 것이 있습니다.”
볼트는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한 표현이었다.
“어쩔 수 없소이다. 왕국에서 반대를 해도 우리는 조마의 개역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요.”
“그리 나오신다면 우리는 왕국의 체면을 깔아뭉갠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공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이 체면에 아주 민감합니다. 국기를 모욕해도 전쟁을 하고 우리 배를 검문해도 전쟁을 합니다. 그런 우리가 영사 살해 사건을 겪고도 어렵게 ‘동영 민중’을 걱정하여 대승적인 차원에서 조마의 존속을 결정하기로 했는데, 그 권고를 막부에서 깡그리 무시한다면 우리 쪽에서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국기에 대한 모욕보다 더 크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볼트의 말에 안도가 표정을 굳혔다.
“그건 협박이요?”
“협박처럼 들리셨다면 오해입니다. 어디까지나 불행한 일을 피하기 위한 권고일 뿐입니다.”
눈앞에 있는 서역인의 느물거리는 태도에 안도가 주먹을 쥐었다. 빌어먹을 양이는 패망을 목적에 둔 반역자를 살려두라고 말하고 있었다. 막부의 체면 따위는 무시하고.
분명 살려놓은 조마를 이용해 막부를 적절히 견제하기 위한 술책일 것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이 서역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바로 그들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저 사내의 말을 깔아뭉갰을 때의 대가가 너무 비쌌다.
‘이번은 참아야 하나? 하지만 장군께 뭐라고 고한단 말인가?’
안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