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준비된 무대 (2)
강주의 부상과 대조적으로 침체기를 맞는 곳이 있었다. 아문의 윈스턴 상회였다.
고풍스런 떡갈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낸 장본인은 책상 위에 있던 책을 모두 밀어내 떨어트리고는 짜증을 폭발시켰다.
“그러니까 전번 상행에 완전히 실패한 것도 모자라 견직물 거래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여기까진 나도 이해를 하겠어. 놈들이 손을 쓴 것을 알지 못한 것은 불가항력이었으니까. 하지만 놈들이 자유 상인들과 손을 잡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지 않나!”
회장의 일그러진 얼굴이 차가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앞에 불려온 회사 간부들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들 있나? 우리 입지를 행상이 위협할 수 있단 말이야. 가뜩이나 지난 무역에서 호상에 밉보인 것도 큰 마당에 강력한 경쟁자까지 들어서면 얼마나 힘들어질지 생각들이 없나?”
“송구합니다.”
“지금 선원들이 동요하는 문제, 그 건도 빨리 손을 써야 한다는 것. 알고들 있나 모르나? 그 친구들이 한 번에 빠지면 우리 상선대가 마비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당장 손을 써야지. 잡지 못하면 동영이건 여송이건 배를 굴릴 인원을 추가로 잡아오고. 이런 것도 내가 다 챙겨야 하나?”
“아닙니다, 회장님. 손은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성과가 없나?”
“강주 행상에서 손댄 것 같습니다.”
간부의 보고에 윈스턴의 차가운 눈빛이 그를 향했다. 정확히는 간부가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상기된 행상을 향한 것이었지만, 시선을 받은 자는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행상이 우리 선원들에게 손을 댄다.”
웃기는 일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동방 무역의 왕자로 군림해온 윈스턴의 선원을 뽑아가려 들다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 어이없는 일이 현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행상이 정말 우리 선원들에게 손을 대면 그건 큰 문제다. 그다음은 철저한 몰락으로 가는 여정이 되고 말 거다.’
윈스턴은 차가운 눈 속에 계산을 감추었다. 화를 내고 있었지만 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행상이 어느 틈엔가 윈스턴의 아성을 조금씩 허물며 그 지위를 뱀처럼 삼키려 들고 있어서였다.
수백 년간 잔뼈가 굵은 노회한 상인 집단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 그의 실수였다. 처음 대양을 건너와 청운의 꿈을 펼칠 때만 해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그였건만.
윈스턴은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간부들에게 그만 물러가라고 말했다. 간부들이 모두 물러가자 그의 시선이 창가로 옮아갔다. 창 너머에는 푸른 바다가, 그의 영광이 녹아 있는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만을 위해 존재했던 그 위대한 무대가 이제 남의 손에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어떤 대가를 내놓더라도 지켜야 할 전부였다.
하지만 행상의 마수로부터 그의 기업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경제력으로 따져도 행상은 그를 능가했고, 정치적 입지로 보면 정부의 후원이 없는 그는 답이 나오지 않는 처지였다. 군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방법이 있다면 유일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바로 연합왕국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다.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이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의 부모와 혈육들을 대기근 속에 죽게 만들고 혈혈단신으로 신대륙으로 이주하게 한 원수의 보호 외에는.
윈스턴은 궐련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흘러나오는 회백색 구름이 창가에 희미한 자국을 그렸다. 그 옅은 흔적 속에 윈스턴은 죽어간 가족들을 되새겼다. 그의 후견인인 백부가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더러운 섬나라 놈들에게 한 푼의 세금도 아깝다고 말한 기억이 선명했다.
공식적으로 신대륙은 독립전쟁 이후로 왕국 본토에 한 푼의 세금도 기여하고 있지 않았다(물론 식민지 자체에서 소비하는 재정에 대해서는 신대륙 주민들의 세금이 들어감).
그래서 왕국 정부에서는 신대륙을 자국 영토로 취급하면서도 그에 적을 둔 사람들을 자국민으로 여기지 않았다. 윈스턴 역시 왕국에 반감을 갖긴 마찬가지라 지금까진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고 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결정의 순간이 왔다. 왕국의 보호가 없다면 그의 기업은 무너질 것이다. 반대로 살고자 한다면 그의 원수들을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적을 왕국 본토로 옮겨야 할 테니까.
윈스턴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창을 응시했다.
‘역시 그리할 수밖에 없겠지.’
희미한 옛 분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꿈이었다. 그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가 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해리.”
“예, 회장님.”
비서가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비쳤다. 윈스턴은 회의를 소집하기 전에 미리 작성해 두었던 본토 시민권 신청 서류를 꺼냈다.
“이 서류를 총독부에 제출하고 본사의 등기 이전을 밟도록 하게.”
“어디로 말씀입니까.”
해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윈스턴은 실질적으로 아문에 본사 기능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본사는 서류상으로는 신대륙에 자리하고 있었다. 연합왕국은 이 본사의 위치를 기준으로 세금을 낼 곳을 정한 까닭에 윈스턴 상회는 지금껏 신대륙으로 세금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본사가 서류상으로 이전을 하게 되면 그 세금을 낼 곳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가령, 이곳 아문으로 옮긴다고 하면 왕국 직할령 아문 총독부에 세금을 내게 되는 것이다.
“아문.”
지금껏 왕국 본국에 세금을 주기 싫어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하며 신대륙에 본사를 두고 있던 윈스턴이었다.
“아문이라면 왕국 본국에 납세를 하게 됩니다.”
“나도 알고 있네.”
윈스턴은 간단히 답했다. 사실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리브 남작도 한 번 만나 상의를 했었다. 그 자리에서 리브 남작은 그에게 왕국 본국에 세금을 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최선임을 조언해 주었다.
리브 남작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찮은 동방인에게 동방 무역의 지분이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왕국 국적을 가진 윈스턴이 지분을 지키는 편이 나았다.
“정말 그렇게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해리가 인사를 하고 서류를 챙겨 방을 나섰다. 윈스턴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코를 매만졌다.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못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까지 자본가의 입장에서 행동하지 않은 유일한 부분이었는데, 그걸 버리고 나니 마음 한쪽이 씁쓸했다.
이제야말로 철저한 돈벌레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도 원한도 생각지 않고 이익에만 충실하게 움직이는 인간이 되었으니까.
‘할 수 없는 일이지.’
윈스턴은 궐련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
“내년도 월비 토벌 계획에 대한 계획이옵니다. 저희 계획을 듣고 용단을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넓디넓은 대전에 무릎을 꿇은 장수가 고했다.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처럼 조회에 참석한 어린 황제가 흥미를 보였다. 태후가 발 너머에서 손짓을 하자 환관이 입을 열었다.
“고하시오.”
“예, 저희 강북 대영에서는 지난 몇 개월 간 조정에서 내려준 양이의 무기와 사람들을 부려 강건한 신식 군대를 조련하였습니다. 강북을 통괄하는 흠차대신은 이 군대를 창두로 삼아 대하를 도하, 월비의 심장을 칠 계책을 세웠습니다.”
월비 토벌에 대한 숱한 이야기가 오간 것이 벌써 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토벌 시도는 많았지만 계획이 성공리에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성과를 낸 것은 강남 대영의 오승도 하나. 그가 나서지 않는 계획은 듣지 않아도 실패할 거란 생각이 대신들의 머릿속을 스쳤다.
장수는 주변의 의심스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 말을 이어갔다. 주변에 무감각한 무장의 전형다웠다.
“먼저 강의 하류로 대규모 서로군(西路軍)을 도강시킨 다음, 현지의 단련들을 규합하여 적당들의 소굴을 위협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일을 꾸미면 역당들은 마음이 조급해져 그들의 병마를 갈라 대하 하류로 보낼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양동 계책을 말하는 듯싶었다. 병법에 어두운 대신들도 한 갈래 병력으로 적을 흔드는 계책은 그리 놀랍게 여기지 않았다. 병력의 우세를 살리는 전형적인 정공법이라 기발할 것도 없었다.
“이어 강의 상류로 신식 군대, 회군을 주축으로 편성된 동로군(東路軍)을 도강시켜 좌우에서 협공의 태세를 갖춥니다. 하면 역도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남은 병력을 갈라 이를 받아칠 태세를 갖출 것입니다. 우리가 노릴 수는 바로 그다음입니다.”
“정공법에도 기책이 있단 건가?”
호부대신으로 자리를 옮긴 기영이 물었다. 탐관이긴 하지만 그래도 군기대신에 재직한 경험이 있다 보니 그의 물음은 병법의 허를 짚는 면이 조금은 있었다.
“맞습니다. 적을 끌어들인 후, 아군 전력의 핵인 회군만을 배에 다시 태워 적도들의 소굴로 급속 남하하여 그 수괴들을 치는 것이 이번 전략의 핵심입니다.”
간단히 말해 강북 대영은 좌우에서 적의 병력을 끌어들인 다음, 핵심 전력을 배에 실어 적을 우회 그 머리를 침으로써 전쟁을 마무리 짓겠다는 기만 전략에 힘을 실으려 하고 있었다.
장수의 설명에 태후가 끼어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그 전략이라면 과거 월비들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패할 위험이 크지 않나 염려되오.”
천국 명장 서익의 수륙 병진 작전에서 강을 이용한 작전은 오승도의 한 수에 철저한 실패로 끝난 바 있었다. 병법에 문외한인 태후도 그 생생한(?) 사례를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배를 통한 기동에 위험성이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마마의 염려는 지극히 온당하십니다. 하오나 그들과 우리는 두 가지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말해보시오.”
“첫째, 우리 군은 상류에서 하류로 이동하는 것이므로 침뢰의 공격을 염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천국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둘째, 당시 천국의 작전이 실패했을 때는 그 의도가 강주 관리사에게 간파 당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그 의도를 철저히 숨기고 있어 적도들이 우리 생각을 쉬이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장수가 자신을 보이자 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대충 납득한 빛을 보이자 이번에는 총리대신이 나섰다.
“하나, 적을 기만했다는 점은 과신할 수 없는 부분이요. 적이 그 의도를 간파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 않소?”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 경우에도 만일을 대비하여 적이 매복할 수 있는 요로에 미리 척후를 보낼 예정입니다. 만에 하나 작전이 실패하더라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라 보셔도 좋습니다.”
양국번이 세운 전략은 단순하면서도 안전했다. 돌다리를 두드려가는 심정으로 만든 수라 천국이 찌르고 들어갈 구석은 별로 없었다.
“듣고 보니 이야기는 그럴듯하오.”
좌측 줄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신 하나가 말문을 열었다. 그를 본 관료들이 얼른 자리를 내주었다.
관계에 명망이 높은 거인, 임경문이다. 군 관계로도 두루 활약을 한 인물이다 보니 그 발언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런 거인이 인정해주자 장수는 한쪽 손으로 가슴을 탁탁 쳤다.
“대인께서 인정해 주시니 흠차대신께서도 크게 기꺼워하실 겁니다.”
임경문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다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시겠소?”
“말씀해 주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이 계획은 봄에 시작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요?”
“맞습니다.”
“그럼 춘궁기에 군대를 움직이는 일이 걸린다는 것을 이해하실 거요.”
그의 말에 대신들이 수염을 매만지며 ‘그렇다’는 반응을 보였다. 계절의 영향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강남은 몰라도 강북 지역은 계절이 사시사철 바뀌는 곳이었다. 봄이면 양곡이 떨어져 사람을 잡아먹는 참상도 가끔 나타나곤 했다. 물산이 풍요로운 강남에서 작전을 편다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최소한의 보급은 강북에서 보내야 할 터였다.
그 보급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풀죽도 먹지 못하는 백성들의 손에서 뺏어 와야 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당연히 백성들도 살기 위해 반기를 드는 수밖에 없었다.
임경문은 이 부분을 지적했다.
“하오나 대인, 흠차대신께서도 그 부분을 모르고 전략을 세우신 것이 아니옵니다. 이 전략에서 최적의 효과를 내기 위한 시점을 고르신 것입니다.”
“물론 나도 잘 알고 있소이다. 봄철의 대하는 겨울이 끝난 천산으로부터 내려온 물이 있어 수륙 병진을 하기에도 좋고, 강 위로 안개가 자주 끼어 그 의도를 가리기도 좋다는 것을. 흠차대신은 그곳 출신이니 누구보다 그 이점을 잘 알거요. 하지만 대국을 바라볼 때 반군을 잡자고 새로운 반군을 만들자는 생각에 대해서는 찬성하기 어렵소. 내가 봄에 군대를 움직이는 것에 우려를 보인 이유가 거기에 있소이다.”
“대인께서 무얼 염려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흠차대신께서도 그 같은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 그리 일어나는 도적은 작은 도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장 나라를 위해 큰 도적을 우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지요?”
“큰 도적과 작은 도적이라. 이 월비들도 본디 작은 도적에 지나지 않았소이다.”
임경문이 나서며 이 전략의 시기가 적절치 않음을 논하자 다른 대신들도 하나둘 나섰다.
“춘궁기에 전쟁에 나서는 것은 역시 꺼려지는 일입니다.”
“전란에 지친 백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여름에 전쟁을 한다고 이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은 연합왕국의 뇌물을 받고 나선 자들이었다. 순전히 오승도와 윈스턴의 균형추를 조절하기 위해 천국의 수명을 붙여두라는 왕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마마, 여러 대인들의 우려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오나, 나라의 존망이 걸린 사안입니다. 월비를 오래 두고 불안한 국정 운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강남을 회복해야 천하가 안정됨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강북 대영의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아까 한마디를 했던 총리대신이 다시 끼었다. 그는 혹시나 패전(?)을 할까 염려하여 계획에 신중한 입장을 내긴 했지만 천국을 조기에 멸망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갖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오승도가 비대해져 다루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권력자는 생리적으로 경쟁자를 가장 싫어하는 법. 총리대신은 제국 내에서 독자적인 정치, 경제, 군사력을 구축해가고 있는 오승도의 성장을 더는 묵과할 수 없었다.
“대신도 출정해야 한다 생각하시는 거요?”
일단 조정의 파벌 절반 이상은 총리대신의 것이다. 그 동의를 구하지 않으면 태후도 면이 상할 일이 많았다. 태후는 일단 그 의중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렇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총리대신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하나, 도적을 토벌함에 있어 시기는 빠를수록 좋은 법입니다. 도적의 토벌을 늦출수록 존엄한 황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제국의 위엄을 의심하는 무리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황실의 종친으로서 도적 토벌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예로부터 전장의 장수에게 황제는 전권을 주었습니다. 그에 병권을 맡긴 이상 판단을 일임해야 일의 실수가 적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옛 명군들도 그럴진대 실수가 많은 우리야 오죽하겠습니까? 전례를 따라 흠차대신의 판단과 전략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역시 기본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론적인 이야기라 반론을 할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입을 열지 못했다.
“셋, 강남을 장시간 방기할 경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군벌의 발호를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라도 조속히 강남을 평정하고 제국의 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 군벌이 누구를 이야기하는지는 모두가 알았다. 하지만 공연히 그것을 입 밖에 내어 문제를 만들려는 이는 없었다. 총리대신의 장광설이 끝나자 태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총리대신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황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태후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긴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그들 양자는 이해를 함께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지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권력을 분점하며 공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태후는 생각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 손을 들어준다고 해서 총리대신의 권력이 새삼 올라갈 것도 아니었다. 황실의 이익을 위한다면 그 주장은 들어줄 만했다.
“총리대신의 고견을 받아들여 강북 대영의 토벌 계획을 승낙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강북 대영의 장수가 고개를 조아렸다. 이것으로 제국의 천국 토벌 계획은 완전히 확정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천국이라는 먹이를 노리는 오승도와 강북 대영 양자의 치열한 경쟁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