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화. 암도진창 (5)
“전군 돌격!”
기수의 신호와 함께 회군의 깃발이 휘날렸고, 수천 명의 병사들이 함성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잘 조련된 서역식 군대의 전진에는 만인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고함과 함께 사람으로 이루어진 물결이 쏟아져 내려오자 천국의 진영에서 잠시 당황한 빛을 보였다.
하지만 적이 승부수를 걸었다는 것을 알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대응을 주도한 것은 포병이었다. 천국 포병들은 미리 정해진 위치로 포탄을 쏘았다.
“발사!”
장약이 폭발하며 만든 압력이 아이언 볼을 무서운 속도로 가속시켰다. 포구를 떠난 강철 구는 이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제 몸을 부딪쳤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포탄은 멈추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운동 에너지의 힘이 그 자리에 멈출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다.
강철 구는 바닥을 튕겨 오르며 앞으로 쭉 나아갔다. 포탄이 날아오는 것도 모르고 달려오던 회군 병사들 사이로 그 묵직한 쇳덩이가 파고들었다.
과거 둔기를 들고 중장 보병들을 타격하던 중무장 기병의 공격의 열 배가 넘는 위력을 가진 강철 덩어리가 병사 하나의 머리와 충돌했다.
충돌의 순간 병사의 눈이 터졌다. 이어 그 두개골이 함몰되더니 살과 뇌수가 뒤로 터져나갔다. 그 무지막지한 운동 에너지를 견뎌내기에 인간의 머리는 너무 약했다. 피분수가 터진 다음에야 병사들은 강철 구가 자신들을 노렸음을 알았지만 피할 시간은 없었다.
병사의 머리를 지나친 강철 구는 그 뒤에 있던 병사의 팔을 쳤다. 사람의 팔은 일순간에 휘어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운동 에너지를 가진 강철 구는 우주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인간의 신체가 가진 한계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움직였다.
단번에 팔이 으스러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병사의 입에서 비명이 나오기도 전에 강철 구는 다음 희생자를 찾아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재차 바닥을 튕긴 다음 세 번째 희생자의 다리를 쳤다. 다리 역시 강철 구를 견디기엔 너무 약했다.
사람의 다리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강철 구는 병사의 다리를 부수고도 한참을 더 나아가 경사진 흙더미에 처박혔다. 강철 덩어리가 지나간 자리는 곧 비명 소리와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천국 포병의 일제 공격에 회군의 대열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회군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강철 구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안 포병이 탄 종을 바꾸었다.
그들이 꺼내든 포탄은 연합왕국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사들인 백린이었다. 백린은 주로 연막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인간에게 사용할 때는 끔찍한 참상을 연출하곤 했다. 회군은 이 백린으로 돌입 시점에 입을 피해를 줄이려 했다.
곧 회군의 포병이 포탄을 발사했다. 악마의 병기 백린이 하늘을 갈랐다. 그사이에도 천국의 포병들은 회군의 대열을 파괴하는 데 집중했다.
“저들이 어디서 승산을 보고 공격을 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마 이쪽의 포탄이 계속 두드릴 경우에 전열이 무너질 걸 염려한 모양이겠지.”
익왕은 적의 의도를 대충 가늠했다. 하지만 적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승부수를 던졌는지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전술적 측면에서 적이 던질 패는 뻔했기에 더 예상하기 어려웠다.
익왕이 전장을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제국군의 포탄이 항마군의 대열 앞으로 쏟아졌다. 둔탁한 폭발음이 이는 것을 지켜보던 장수 하나가 입을 열었다.
“돌입 전에 포탄을 떨어트려 겁을 주는 것이 유일하게 믿는 패라면 멍청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익왕도 동감했다. 포탄을 떨어트려 겁을 주는 것이라면 항마군을 조금은 놀라게 할 수 있었다. 서역식으로 제대로 조련되지는 않은 군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이언 볼을 두드려 맞으며 다가온 저들의 상태로 보건데 승리를 장담할 입장은 아니었다.
“적이 믿는 것이 그게 다라면 승리는 우리 것이나 다름없겠지.”
익왕은 망원경을 들어 전장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했다. 항마군이 지나치게 동요했다면 적으로부터 병력을 조금 물리는 선택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생각을 하며 망원경 안의 풍경을 살폈다.
“응?”
익왕의 눈이 살짝 커졌다.
눈앞의 풍경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생소한 것이었다. 새하얀 연기가 모든 것을 가리고 있었다.
바람은 적 쪽에서 이곳을 향해 불고 있었는데 그 연기가 날아올 때마다 항마군 병사들이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문제가 있으십니까?”
“자네가 한 번 보게.”
익왕이 망원경을 넘겨주자 장수가 얼른 멀리 보이는 풍경을 살폈다. 곧 그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설마, 이런 종류의 포탄도 있으리라고는.”
장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열이 흐트러진다면 아이언 볼을 두드려 맞고 전열이 무뎌진 적과 입장이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더 나빴다.
공격자는 앞만 보고 움직이지만 방어자는 뒤로 보기 때문이다. 전열이 같이 흐트러졌을 때 불리한 쪽은 방어자였다.
“병사들을 뒤로 물려야겠군.”
“하오나, 전하.”
“군을 물리면 놈들이 재편성을 하는 동안에 우리 측면을 뚫고 나갈 것을 걱정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익왕 역시 그런 우려를 갖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물러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력의 핵인 항마군이 크게 상하면 오승도와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그로서는 이 한 번의 싸움 이상을 보고 움직여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적의 대부분은 탈출할 시간을 갖기 어려워. 저들을 놓친다고 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지.”
“섬멸이 아니라도 좋다는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것은 저들이 다시 덤비지 못할 만큼 만드는 것 아닌가? 나머지만 잡아도 그 목적은 달성할 수 있지.”
익왕은 마음을 굳혔다. 그는 항마군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승리를 획득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장수는 그 지시가 조금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사령관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명을 받듭니다.”
익왕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망원경을 들었다.
기수들이 깃발을 흔들자 고통스런 표정을 하고 있던 항마군 병사들이 반색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움직임은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얼마나 병사들이 물러서고 싶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항마군이 뒤로 물러서자 회군은 그들이 있던 자리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그 측면에 있던 천국 군대를 공격했다. 천경에서 나와 반포위에 합류하고 있던 병사들은 그 맹공을 견디지 못했다.
요란한 총성이 몇 번 울릴 것도 없이 천국 병사들이 황급히 패주했다. 그들이 물러나자 회군은 그 진지를 점한 채 나머지 병력의 탈출구를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익왕은 바보가 아니었다. 뒤로 물러났던 항마군은 전열을 수습하여 곧장 회군이 점한 진지 쪽으로 공격해왔다. 이 공격을 제국군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회군과 그들 사이에 포탄도 퍼부었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인식한 제국군 수뇌부는 즉시 반응을 보였다. 단련을 주축으로, 한 무리의 군대가 포탄이 떨어지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포격 거리에 들어오자 포병의 공격은 자연스레 그들을 향했다.
그 시간을 이용해 말을 탄 제국 지휘관들의 행렬이 좁은 안전 구역을 지나 회군이 확보한 진지로 움직였다.
전술적 견지에서 보면 지휘부의 안전을 도모한 현명한 판단이었지만, 도의적 차원에서 보면 나머지 병사들을 버리는 비정한 행위였다. 수뇌부가 빠져나가자 제국군 본진이 이내 동요하기 시작했다.
회군과 수뇌들은 그런 본진을 방기하고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항마군을 피해 유일한 생로인 대하 쪽으로 후퇴했다. 적의 핵심 전력이 빠져나가자 익왕의 시선은 자연히 나머지 적을 향했다.
포탄이 쏟아지는 와중에 지휘부까지 떠나버리자 남은 병력은 그야말로 공황에 빠져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우왕좌왕하는 적을 보던 익왕이 손을 들었다.
“보병을 전진시켜 적을 적당히 밟은 다음 항복을 권유하게.”
“요마들에게 항복을 말입니까?”
익왕은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 병력을 항복시켜 천국 군대의 전력에 흡수라도 시켜야 다가올 오승도와의 대결에서 발버둥이라도 쳐볼 수 있었다.
유리했던 진지와 시간을 모두 잃은 데다 거듭된 장시간의 행군과 교전으로 피로가 한계에 이를 만큼 쌓인 천국으로서는 머릿수라도 늘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난날 십만 대군도 간단히 박살낸 괴물이 그때보다 더 많은, 더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올 상황이었다. 승리를 장담하기엔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익왕은 구심점을 잃고 궁지에 내몰린 제국의 잔존 병력들에서 천국의 모습을 투영해 보았다.
***
북방에서 황사가 이는 계절 봄은 전란의 기운을 물씬 풍겼다. 천국과 제국이 다시 한 번 아귀다툼을 벌이는 동안, 강주 관리사 오승도가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그가 소집한 군대는 모두 일만. 꾸준히 신병을 증원하여 상승군의 규모를 늘린 덕분이었다.
많은 수가 신병으로 채워져 전력이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전원에게 후장식 총기가 지급되어 있었고, 막강한 포병의 지원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막강한 전투 집단을 지원하는 병참 조직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일만의 군대를 지탱하기 위해 강주 관리사는 약 일만의 비전투 병력을 준비했다. 상인과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이 지원 부대는 모두 오만 두가 넘는 동물과 함께 상승군의 움직임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상승군은 그 전투 병력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긴 행렬을 늘어트린 채 강주를 출발하게 되었다. 대열의 출발에는 모두 만 하루가 소요되었다.
도로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승군의 참모들이 이동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웠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주파한 길인만큼 작전의 세부적인 부분 하나하나까지 상승군의 준비는 부족함이 없었다. 각 부대는 강주를 출발한 지 이틀 후부터 분군 행군(나누어서 기동)을 시작했다.
상승군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적게 주려는 의도와 더불어 주공 방향을 오판하게 만들려는 술수였다. 주공을 맡은 제1여단(용병 여단)은 비교적 험지인 북방의 협로를 타고 움직였다.
그들은 산행에 능한 자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 움직임은 대단히 신속했다. 반대로 나머지 여단들은 오승도의 지시에 따라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각 부대가 정밀 기계처럼 정확한 시점에 한 지점으로 집결하도록 사전 조율을 했기 때문이다.
일시에 전 병력을 집중해 타격력을 극대화한다. 오승도가 구사하는 전략의 기본인 만큼 각 지휘관들은 시간 엄수에 신경을 썼다. 그렇다고 오승도가 굉장히 빡빡한 일정을 준 것은 아니었다.
시간 여유를 두지 않은 계획은 언제나 한계에 봉착할 수 있음을 노련한 강주 관리사는 잘 알고 있었다.
여유를 두고 움직이긴 했지만 상승군의 진격은 전광석화와 같았다. 강주를 나선 지 닷새 만에 상승군의 제2여단이 천국의 지배 영역에 들이닥쳤다. 천국은 서쪽에 잔류시킨 약간의 잔존 병력으로 2여단의 정면을 막는 것으로 응수하려 했다.
“이곳 범곡을 막으면 강주 관리사라고 해도 더는 밀고 들어오진 못하겠지.”
범곡은 호리병 모양을 한 골짜기로 그 입구의 경사가 가팔랐다. 그 안으로는 개울까지 흘러 대군이 움직이기에 상당히 불편한 면이 있었다.
천하의 오승도가 거느린 군대라 하더라도 이곳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았다. 적어도 천국 병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강주 관리사가 아니라 그 할아비라도 못 할 일이지. 여기가 범 아가리인데 누가 머리를 들이밀겠나?”
범곡은 예로부터 범의 아가리에 비유되었다. 천하를 얻을 기세로 달렸던 제후와 맹장들도 이곳에서 여럿 뼈를 묻었으니 그 별칭은 과한 것이 아니었다. 지형이 방어자에 터무니없이 유리하여 일당천이라는 말이 이곳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을 정도였다.
천국 장졸들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았지만, 공격자인 상승군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들은 범곡을 틀어막은 적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월비들이 앞을 막고 있는데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포병이 두드리고 이어 보병으로 끝장을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색에 나섰던 장교가 보고했다. 연합왕국 출신의 여단장 알롱은 그 보고에 공감의 뜻을 보였다. 그도 적진을 망원경으로 한 번 살핀 터라 크게 위험할 것이라 보지는 않았다.
사실상 서역의 최신 장비와 군제를 갖춘 근대 군대와 구식 장비에 뒤떨어진 편제를 갖춘 전근대 군대의 정면 승부이다 보니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가 되는 지형조차 압도적인 장비의 성능 덕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최강을 자랑하는 개인 화기, 후장식 소총만 가지고도 지형의 이점을 간단히 무너트릴 정도였다.
하지만 알롱은 구태여 보병을 내보내 피를 볼 생각이 없었다. 보병만으로도 간단히 이길 수 있겠지만 하찮은 적에게 사상자를 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알롱의 지시가 내려지자 여단의 포병대가 방열했다. 본디 포병 여단의 직속에 배치되어 움직여야 할 대포들이었지만 원정군이 셋으로 갈라져 움직인 까닭에 포병도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포병대가 사격 준비를 마치자 알롱이 신호를 보냈다. 곧 첫 번째 포격이 시작되었다. 초탄은 인사 격으로 날리는 아이언 볼이었다.
콰쾅!
천둥 같은 포성과 함께 스무 발이 넘는 포탄이 범곡 입구의 천국 군 진영으로 날아갔다. 경사가 진 지형으로 날아간 것이라 포탄들은 바닥을 튕기는 대신 그대로 박혀버렸다. 포격은 짧은 시간 내에 한 번 더 이루어졌다. 그 공격만으로도 천국 병사들의 간담은 서늘하기에 충분했다.
포탄이 자그마치 2킬로미터를 날아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기존의 천곡 대포들도 킬로미터 단위의 포격은 가능했다. 신형으로 들여온 서역 대포들이라면 장약만 충분하다면 그에 버금갈 정도로 사거리를 낼 수 있었다.
진정 그들을 두렵게 한 것은 연속으로 쏘아진 후장식 대포의 압도적인 속사 능력 때문이었다. 3인치 후장식 대포는 그 초탄만으로도 천국의 전의를 꺾었다.
“세 발부터는 유산탄으로.”
포병 지휘관이 탄 종을 결정했다. 아이언 볼은 쏘아봐야 경사면에서 튕겨날 뿐이었고 산탄은 비용 대 효과 면에서 지금 쓰기에 부적합했다. 적당한 타격을 줌에 있어 유산탄이 제격이었다.
탄 종이 결정되자 포병들은 장갑을 낀 손으로 폐쇄기를 풀고 벤트피스를 떼어냈다. 이어 폐쇄기 중앙의 구멍으로 장약과 포탄을 장입했다. 몇 번의 훈련을 거친 터라 포탄은 정확하게 약실에 들어갔다.
새로운 후장식 대포인 까닭에 기존 전장식 대포와는 포탄을 장전하는 방법부터 차이가 컸다.
하지만 대포를 수입하기 전부터 모형을 만들어 이론적으로 교육시킨 덕분에 포병들은 큰 실수 없이 두 번째 사격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사격!”
포병 지휘관의 손이 내려가자 귀마개를 한 포병들이 줄을 당겨 대포를 격발시켰다. 굉장한 포성과 함께 수십 발의 유산탄이 천국 군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
천국 병사들은 그 묵직한 포성과 동시에 고개를 움츠렸다. 곧 악마가 보낸 선물이 그들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폭발음과 함께 흙기둥이 피어올랐다. 피와 살점이 분수처럼 뿌려지고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뒤늦게 천국 쪽 대포가 응사를 준비했지만 상대의 사거리가 훨씬 길었다. 천국이 보유한 것이 연합왕국의 최신 전장식 대포였다면 이 후장식 대포와 자웅을 겨루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후장식 대포를 감당할 물건은 천국의 손에 존재하지 않았다. 상승군의 포병들은 적의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다음 포탄을 준비했다.
불과 몇 분 되지도 않아 이백 발이 넘는 포탄이 천국 진지로 떨어졌다. 유산탄이 떨어진 곳은 그슬리고 땅이 움푹 파였다. 전열을 지켜야 할 천국 병사들은 그 와중에 벌어진 참상으로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알롱은 망원경을 들고 적정을 살피다 다시 신호를 보냈다. 적 보병이야 큰 피해 없이 제거할 분위기가 마련되었지만, 적 대포가 있는 한 피해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표적을 바꾸어 포병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내려오자 포병대는 다시 입사각을 바꾸었다.
이내 상승군의 포병들은 천국 포병 쪽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천국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나름대로 적의 포격을 방해하기 위해 유산탄을 쏘았다. 먼지를 일으키고 상대에게 겁을 주려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사거리 안에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형의 이점이 무색하게도 적은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천국의 포병은 수백 발의 포탄을 얻어맞고 완전히 침묵했다. 상승군의 포병들과 그들의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난 탓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 즉 무기의 성능차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 컸다.
포병이 침묵하자 알롱은 망원경을 내렸다. 여단장은 주변을 둘러본 다음 휘하 보병 대대장에게 공격을 해도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 허락이 떨어지자 검은 군복(상승군의 제복은 후장식 소총 채용 이후 바뀜)을 입은 상승군 보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적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자세를 낮춘 채 엄폐 효과를 누리며 총구를 들이밀었다. 노출을 하며 싸워야 하는 한 세대 이전의 병기와는 차원이 다른 이점을 그들은 누리고 있었다.
이미 포격을 두드려 맞아 공황에 빠진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적의 총격까지 일방적으로 맞게 된 천국 병사들이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느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천국 병사들은 깃발을 내던지고 자신들의 진지를 방기한 채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천혜의 요새에 나름대로 준비된 방어군이 버티고 있었지만 상승군의 적수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알롱은 검은 군복들이 천국 진지에 도달한 순간 회중시계를 꺼냈다. 적을 격파하는데 걸린 시간은 딱 45분도 되지 않았다. 전쟁은 시작부터 일방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