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50화 (250/425)

제250화. 암도진창 (6)

상승군은 천국의 자잘한 저항을 가볍게 물리치고 예정대로 각 부대를 이동시켰다. 승도는 수시로 전령을 보내 각 부대의 이동 상황을 확인하며 작전 계획을 면밀하게 재검토했다. 혹시나 모를 변화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는 그의 태도는 철저하다 못해 집착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하나 챙기는 것은 지난 전역에서 천국군의 움직임을 한 번 오판하며 생긴 위기를 잊지 않아서였다. 하나의 변수도 치명적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 만큼 그는 신중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승군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상승군은 천국이 예상하는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각 여단은 천국이 남긴 최소한도의 방어군을 돌파한 다음, 방어선이 준비될 시간도 주지 않고 파도처럼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각 부대의 움직임을 검토하던 승도가 입맛을 다셨다. 일정은 정확하게 지키고 있었지만 적의 저항이 생각 이상으로 약했다. 약간의 병력을 남기고 나머지 전력은 모두 동쪽으로 갖고 철수한 모양이었다.

쉽게 내리기 어려운 과감한 결정이었다. 승도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전개는 적이 남긴 절반 정도의 병력을 몰살시킨 후, 천경으로 진격하여 제국군과 싸워 만신창이가 된 적의 나머지를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개는 이제 기대하기 어려웠다. 적은 핵심 전력을 모두 가지고 철수해버려 잡을 수 있는 적은 잔챙이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면 적은 그 전에 병력을 몰고 가 제국군을 완전히 무너트렸을 수도 있었다.

‘적장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병력의 집중 면에서 처음 가정보단 꽤 귀찮은 싸움을 해야겠지.’

승도는 그렇다고 해도 이익을 충분히 누리고 있음을 알았다.

“대인.”

승도가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그를 찾았다. 참모장 격으로 종군하고 있는 하비였다. 키 큰 서역인의 부름에 시선이 옮아갔다.

“이야기할 것이라도?”

그가 묻자 하비가 답했다.

“예, 점령지도 확보했으니 슬슬 이쪽의 다음 작전을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 하여 찾아뵈었습니다.”

“시기가 좀 이른 것 같긴 하군요.”

승도는 조금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다음 작전이란 풍겸을 내세워 천국 내에서 상승군에 붙을 세력을 모으는 것을 말했다. 적지에서 우군을 만드는 것인 만큼 시기를 잘 고를 필요가 있었다.

확실한 승기를 타고 있을 때 우군을 만들면 좋긴 하지만, 병참 부담도 생각해 보아야 했다. 일단 이 편에 붙으면 그들에게 필요한 보급품도 모두 제공해 주어야 해서다.

“하지만 지금 정도에 시작해야 적을 충분히 흔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의 주력과 대치하는 시점에서 수천 단위의 동조자들을 모으려면 약간의 무리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딴은 그렇군요. 좋습니다. 그 제안대로 하지요.”

승도는 약간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조금은 부담이 가긴 해도 작전에 큰 지장이 가는 일은 아니었기에 결정을 크게 주저할 것은 아니었다.

상승군의 수뇌부가 동조 세력을 모을 걸 지시하자 풍겸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풍겸은 전날 함께 투항했던 부하들을 동원해 천국에 대한 비방전을 본격화했다. 그러면서 ‘부패하지 않은’ 자신이 받드는 지도자 오승도의 이미지를 띄우는데 주력했다.

제국의 대안은 천국이 아니라 강주다. 그는 그렇게 주장하며 천국 지배 영역의 주민들의 민심을 움직였다. 단순히 그와 그 부하들의 선전 공작만 이루어졌다면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침공 이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선전 활동이 뒷받침된 덕분에 사람들은 천국 지도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다. 이런 무형의 자산을 등에 업고 펼친 공작은 대성공을 이루었다.

풍겸은 이 활동을 통해 무려 오천이 넘는 병사를 모았다. 이 숫자는 상승군의 점령지가 늘어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승도는 이 풍겸의 군대에 정의군(正義軍)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이 정의군의 조직은 당연히 천국을 격동시켰다.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흔들고, 그 세력을 노골적으로 흡수하려는 의도를 보였으니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천국 스스로가 그 신선한 인상을 많이 잃어버린 탓도 있거니와 제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으로서의 무게추도 강주로 옮겨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승도는 상황의 진전을 지켜보며 상승군의 전진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하루에도 천국의 영토를 수십 리씩 잠식해 들어가며 점령지를 넓혔다. 그만큼 정의군의 세도 커졌다.

덕분에 천국을 침공한 지 만 열흘이 된 시점에서 오승도의 군대는 도합 사만을 넘어섰다. 상승군과 전투 지원부대를 합쳐봐야 이만 남짓에 지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그 군의 팽창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승도는 이 같은 급격한 팽창이 보급에 주는 부담을 우려하면서도 이를 인위적으로 억제하지는 않았다. 최전방에서 고속으로 진격하는 상승군을 위한 보급을 현지에 어느 정도 준비하게 한 조처가 효과를 보고 있었던 덕분이다.

그는 이 흐름을 타고 나아가 필요하면 오만 이상의 군대를 보유할 생각도 있었다. 조정의 권력자들에게 강주의 힘을 인식시키는 데 있어 머릿수만큼 좋은 수단도 없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군세를 불려 강남을 평정한 후 ‘적당한 위협’을 통해 독립된 지위를 가지고자 했다. 천국을 때려눕히고 그 잔존 세력을 모두 흡수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열강이 쉽게 손을 쓰지 못하도록 안전판도 마련해 두었다. 자유 상인들과 이익을 공유한 덕분에 그들은 승도의 강력한 우방이 되어 그의 정치적 안정을 지지했다. 거기에 동영에서 확보한 영향력과 강주가 차지한 대륙의 입지를 고려하면 열강도 그를 쉽게 건드리기 어려웠다.

이상의 보호막을 가졌기에 제국 정부가 요구한다고 해도 열강이 승도의 일에 당장 개입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흐름은 순조롭다. 이대로 천경까지 나아가 천국을 쓰러트리면 남은 수순은 흠차대신의 겸직이다.’

흠차 겸직은 별반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강북 대영이 반신불수가 된 상태에서 천국 토벌의 공을 독식한 이상 그는 영전을 요구할 명분이 있었다.

그 명분대로 공을 요구한다면 조정이 거절할 수 있을까?

승도는 조정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일 거라고 보았다. 힘을 가진 자를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노회한 정치가들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흠차대신 자리를 겸하면 강남에서 그의 적수가 될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의 눈과 귀라는 명분이 있어서다. 지방관들은 그 앞에서 더는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고, 같은 흠차대신들은 현실적인 군사력과 입지를 배경으로 가진 그에게 간섭할 능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실상 강남은 오승도 자신의 독립 왕국이나 다를 바 없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정도만 해도 승도는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이 계단을 밟고 실력을 더 키운다면 제국을 통째로 삼키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그는 그리할 자신이 있었다. 강주에서 웅크리고 앉아 천하를 바라보고 있던 순간부터 그는 원대한 야망을 펼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우려가 되는 점이 있다면 이번 전란으로 제국이 피폐해졌단 것이지.’

이번 전쟁을 위해 제국은 엄청난 부담을 백성들에게 지게 했다. 그것도 겨울과 봄에 연거푸 군사 작전을 펼치면서. 풍요로운 강남이야 전란 한두 번도 견딜 수 있다지만 북방은 사정이 달랐다. 상상할 수 없는 대기근이, 혹은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된다면 대륙의 정세가 다시 바뀌게 될 터, 열강이 정책을 바꾸어 적극 간섭 쪽으로 생각을 고칠 수도 있었다.

승도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그것이었다.

‘하니 이번 전역은 가급적 빨리 끝내어 제국의 전비 부담을 줄여주는 수밖에.’

강북 대영이 대하에 머물 이유를 없애준다면 백성들의 부담도 가벼워질 터였다. 승도는 생각을 하다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간 무주공산으로 지나쳐온 여타 지역과 다른 방어 세력이 그 앞에 버티고 있었다. 세 개의 별을 휘날리며 기치창검을 세운 군대가 있었다. 승도는 손을 들어 행군을 멈추게 했다.

***

“제국군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천리경을 들고 있던 장수가 고했다. 익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을 굳혔다. 그의 가장 강력한 적, 오승도가 드디어 천국의 영역을 깊숙이 파고들어 운명을 건 마지막 일전을 걸어오고 있었다. 오래전 승도에게 패해 존망의 위기에 내몰렸던 그로서는 두 번 다시 패하고 싶지 않았다.

“적의 규모는?”

“전방에 약 일만 정도입니다.”

익왕은 천리경을 넘겨받았다. 그의 시야에 잡힌 것은 기강이 잘 잡힌 것처럼 보이는 삼천여 명의 군대와 그 좌우로 보이는 수천의 잡병(?)들이었다. 적의 전력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적었다.

그는 그 점에 대해 조금 의아하게 여겼다. 양군이 마주한 장소는 대규모 면화 밭이었다. 땅은 습하지 않고 평평한 평지였던 까닭에 병력의 수적 우세를 살리기 좋은 곳이었다. 중간 중간에 객가들이 지은 토루가 성채처럼 버티고 있다는 점이 변수가 되긴 했지만, 이 이점을 누리는 쪽은 전장을 먼저 점한 천국이었다.

이점도 누리기 어려운 전장에 오승도가 부족한 병력을 가지고 들어온다?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적에게 노림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선공을 가하시겠습니까?”

장수가 공격을 가할지에 대해 물었지만 익왕은 선뜻 공격을 결심하지 못했다. 적은 천국 군대의 규모를 보고도 가까이 다가오기로 마음을 먹은 상대였다. 공연히 방자의 이점을 버리고 선공을 취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토루가 있었다.

토루는 약 백여 명의 씨족 집단이 거주하는 공동 주택으로, 그 외벽은 흡사 요새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적당히 손질만 하면 하나하나가 튼튼한 보루의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천국은 이런 토루 약 네 개를 점하고 있었다. 이 토루들은 천국 군대의 진을 따라 V자 꼴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모두 좌익과 우익에 치우쳐 있었다. 이들이 천연의 방어벽 역할을 해주는 동안에 양 날개가 꺾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지.”

익왕은 일단 방어자로서 적의 공격을 흡수하기로 결심했다.

익왕이 천리경을 들고 적진을 살피는데 적군이 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강주군은 좌익을 아예 포기하고 우익 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한쪽 축에 공격을 집중하겠다는 의도처럼 보였는데, 이 계산으로 보아 적의 생각을 알 만했다.

‘다른 쪽에서 나머지 부대가 합류할 예정인가?’

그렇게 해석하면 앞뒤가 맞았다. 익왕은 일부러 허점을 보여 이쪽 군대를 끌어낸 다음 보이지 않는 좌익 방향에서 적이 치고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실제 오승도의 군사 계획도 익왕의 생각과 비슷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눈에 보이는 한 수 외에도 비수 하나를 더 숨기고 있다는 것이 차이였다. 좌익으로 다가오는 오승도의 군대는 2여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익에 배치된 것이 3여단과 정의군의 일부.

남은 1여단(용병 여단)은 천국의 척후가 닿지 않는 간격을 두고 비교적 먼 거리를 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능했던 것은 사전에 척후로 천국 군대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그 배치와 규모를 정확히 판단하고 부대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정찰 역량에서 천국은 승도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

“하면 현 위치에서 방어하는 쪽으로 생각하십니까?”

“일단은 그 편이 용이하겠지.”

익왕의 결정에 따라 천국 군대는 선형진을 폈다. 항복한 제국군과 천경에서 몰고 나온 군대를 포함해 전체 병력 규모는 도합 육만 오천. 규모로 본다면 천국이 꿀릴 것도 없었다.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선형진을 펴자 병사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병력이 하도 많다 보니 지휘관들은 토루에도 병사를 오백씩 집어넣었다.

천국은 이렇게 토루를 중심으로 세 겹의 방어선을 펼쳤다. 각 대열과 대열 사이에는 십 장이 넘는 간격을 두었다. 나름대로 상승군의 화력에 대비한 안배였다.

천국 군대가 나름 분주하게 대열을 갖추는 동안에도 상승군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의도가 있는 듯 여유롭게 천국의 포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익왕은 적이 병력의 합류를 기다리든지 혹은 대포의 배치를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빗나갔다.

익왕은 천리경으로 적진을 살피다 적 사이에서 불쑥 솟아오른 기이한 물체를 발견했다. 무슨 가죽 같은 것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연을 연상시켰지만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연에는 사람이 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초대형 연을 만들면 사람이 탈 수 있긴 했지만 그런 종류의 연은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익왕은 그 이상한 물체를 지켜보다 좌우에 물었다.

“적이 이상한 것을 띄웠는데 무엇인지 아시는 분 계시오?”

“저도 모르겠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혹 반역자 풍겸이 사용했다는 연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풍겸이 신호 수단으로 연을 자주 사용했음을 안 장수 하나가 나섰다.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저 이상한 물체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연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좋은 의도로 띄운 물건은 아닌 듯싶습니다.”

익왕은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천리경에 눈을 가져갔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낯빛을 찌푸렸다.

“저길 보시오. 저 이상한 연에 있는 자들이 천리경을 들고 있는 것 같은데.”

“천리경을 말입니까?”

그 말에 장수들도 시선을 연(?)쪽으로 가져갔다. 과연 연(?)에 타고 있는 자들이 천리경을 들고 있었다.

“저 연에 천리경을 가지고 탔다면 무얼 할 수 있겠소?”

“위치가 높다 보니 우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겁니다. 아.”

누군가가 자연스레 꺼낸 대답에 장수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평평한 곳에서는 서로의 군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전방에 나와 있는 병사들 때문에 후미에 있는 예비대와 포진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처럼 높은 위치에서 관측할 수 있다면 그 같은 부분은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그 이점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컸다.

포병 간의 대결이라면 이쪽의 숨겨진 포병을 먼저 발견하고 때릴 수 있을 것이고, 예비대의 투입에서도 훨씬 유리한 시점을 고르고 있었다.

도박에 빗대어 말하자면 상대의 패를 보고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상대의 움직임을 전부 읽지 못하는데 저쪽은 모두 읽는, 반칙 같은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싸움이 길어지면 불리해질 수밖에 없겠군요.”

“전하, 지금 당장 공격을 해야 합니다. 모든 패를 읽히고 싸우게 되면 끝장입니다.”

익왕도 동감의 뜻을 보였다. 패를 보여주고 싸웠다간 어디까지 농락당할지는 천부도 모를 일이었다.

그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간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지난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바 있었다.

“방어가 아니라 공격으로 전환을 해야겠군.”

“결정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하면 두 방법을 써보도록 하지.”

익왕은 자신의 공격 전술을 설명했다.

먼저, 천국의 핵심인 항마군을 전진시켜 적의 주목을 끈다. 완전 서역식으로 무장한 군대인 만큼 오승도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항마군이 주먹이 되지는 않았다. 적이 예상하는 패로 일격을 가하는 것은 전술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주먹은 항마군이 아니라 포병이었다. 이미 선형으로 부대가 퍼져 있어 포병을 전진시킴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항마군을 보내고 이어 주력을 움직인다. 단, 이들 병력 자체는 바로 공격을 가하지 않고 적을 반포위한 상태에서 정지한다.

약점을 물어뜯길 수 있다면 강군이라고 해도 신중해지게 마련. 적장 오승도의 신중함을 끌어내어 그의 발을 묶는 것이 첫 번째 수였다.

그다음 수는 포위된 적에게 포병을 전진시켜 포탄을 때려 부어 격멸하는 수순이었다. 이 공격에서 중요한 점은 측면에서 혹시나 적이 나타날까 하는 부분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수로 항마군이 위치를 바꾸어 예비대로 물러나는 것이 익왕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전술적으로 보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큰 틀에서 항마군이 일정한 시간만 버텨주면 포병이 적의 전열을 파괴하고 대군을 밀어 넣어 오승도의 한쪽 축을 무너트릴 수 있었다.

계획대로만 돌아간다면 승부는 해볼 만했다. 방어자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공격자로서 승부를 건다고 해도.

익왕이 설명을 마치자 장수들의 눈빛에 힘이 실렸다. 그들도 여기까지 듣고 보자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승산이 보이는 전투에서는 모두가 힘이 나게 마련이었다.

“모두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오. 천부와 천형과 천제의 이름으로.”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수들이 손을 가슴에 가져가는 것으로 예를 표시하자 익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국과 제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승부가 그 막을 올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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