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4화. 천국패망 (1)
전투는 막바지로 치달았다.
검은 군복들이 전진해와 무자비한 총격을 가할 때마다 후위를 맡은 천국 보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그 콩 볶는 소리에 포병마저 박자를 맞추어 천둥 같은 포성을 냈다.
언제나 전투는 최종 국면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게 마련이었다. 승부가 난 순간 대부분의 전과가 발생한다는 것은 전장의 냉혹한 생리였다. 승자가 제 전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이상 피가 뿌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익왕은 후위를 맡은 병사들의 희생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지휘관으로서 가진 일말의 양심이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게 했지만 이곳에 더 남아 있는 것은 위험했다.
그와 수행원들이 막 말 머리를 돌려 먼저 출발한 병사들을 따르려 한 순간이었다.
“전하!”
갑자기 대열의 선두를 지휘해 앞으로 나아갔던 장수 하나가 급히 그를 향해 달려오며 부르짖었다.
“무슨 일이요?”
“적이 후방에도 나타났습니다.”
“후방에도 적이?”
익왕은 그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 보병이 자신들의 이목을 피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설마.’
작금의 대하는 안개로 흐려져 강상을 감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난 제국군의 천경 급습도 대하 변의 감시가 불가능했던 영향이 컸다. 상승군이 이를 이용하고자 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다.
실제 상승군의 작전은 익왕의 예상대로 이루어졌다. 승도는 제국군의 지난 동계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덕분에 강 상류에서 남게 된 배들을 상인들을 통해 인수받았다.
제국 정부에서는 오승도가 꾸미는 작전이 실행된다고 해도 자신들이 먼저 천경을 점령하리라 생각했기에 기꺼이 그에게 배를 내어주었다.
이 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상승군의 천경 진격이 더 늦어지기를 기대한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상승군의 제1여단은 바로 이 배들을 타고 대하를 따라 내려왔다. 그들은 불과 이틀 만에 천경의 서쪽 오십 리 지점에 상륙했다.
천경 자체는 빈껍데기나 다름없어 그들이 마음만 먹어도 간단히 함락시킬 수 있었지만, 그들은 명령받은 대로 진로를 서쪽으로 잡았다.
그리고 한나절의 강행군을 거쳐 천국 군대의 배후를 점하러 도착했다. 제국군도, 천국군도 모두 실패한 수륙 병진 작전의 화려한 완성이었다. 그 한 수로 상승군은 천국의 마지막 숨통을 막아버렸다.
익왕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오승도의 작전 계획은 실로 교묘했다. 지난 전역과 달리 이번 전역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승도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던 까닭에 그는 상대의 수를 전혀 읽지 못했다.
그 결과가 눈앞에 닥친 파국이었다.
“전하, 어찌 대응해야 하겠습니까?”
“후방의 적은 포병이 없을 거요. 아니 그렇소?”
“그렇습니다.”
익왕은 일단 그의 명민한 머리로 상황을 분석했다. 시간적으로 적의 부대가 후방으로 오려면 포병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포를 싣는 만큼 선단의 이동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후의 적은 포병이 없는 순수한 보병 세력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전방에 있는 보병과 포병이 조합된 무지막지한 적보다는 할 만한 상대라 할 수 있었다.
“그 수는 얼마나 되오?”
“대략 삼천 남짓한 수입니다.”
“삼천.”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는 수였다. 하지만 부대가 만신창이가 되고 대열이 흐트러진 천국 군대로 상대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후위를 공격 중인 적이 돌파하기 전의 제한된 시간 만에 뚫고 나가기엔 더욱 그랬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장수의 물음에 익왕이 입술을 깨물었다 말문을 열었다.
“내가 직접 가서 판단하겠소.”
그는 말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애마가 힘찬 투레질을 하며 미끈한 다리를 움직였다.
익왕 일행은 움직이는 병사들의 대열을 앞질러 움직였다. 그들은 길게 늘어진 대열을 한참이나 지나간 후에야 문제의 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천국 군대가 후퇴할 길을 먼저 점하고 있었다. 세 개의 전열로 벽을 만든 그들의 방어 태세는 꽤 견고하게 보였다. 하나 약점이 있다면 관도 주변의 평지가 꽤 넓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체를 틀어막기에는 병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 지형이 익왕이 퇴로를 걱정하지 않고 뒤에 병력을 남기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 오승도의 군대가 뒤를 밞아올 경우에 대비하여 전장을 골랐던 신중함이 일말의 가능성을 주었다.
하지만 가능성도 눈앞의 적을 격파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익왕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좌우에 명하자 기수들이 몇 남지 않은 깃발을 흔들었다.
빈약하나마 대오를 갖추고 있던 소수의 부대가 급히 그 명에 응하여 앞으로 움직였다. 그 뒤에서 군관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고 있던 병졸들을 긁어모아 임시변통의 전열을 만드는데 애를 썼다.
“전진!”
장수의 목소리와 함께 천국 보병들이 발을 맞추어 앞으로 움직였다. 상승군에 대패하여 만신창이가 된 군대였지만 수가 있다 보니 아직 그 위세는 약하지 않았다.
들녘을 가득 메운 보병들의 진군에 반쯤 잘린 풀들이 수도 없이 몸을 뉘이며 길을 만들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세 개의 별이 펄럭이며 마지막 진군에 응원의 빛을 보냈다. 천국의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진군이었다. 익왕은 그 진군을 지켜보며 이를 악물었다.
“사격 준비!”
그런 적을 지켜보던 상승군 장교들이 명령을 내렸다. 용병들은 근접전의 전문가들이었지만 근대화기도 다룰 줄 알았다.
용병들은 장교의 명령에 따라 총구를 앞으로 향하게 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대군에 위협을 느낄 만도 하건만 그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려움이 거세된 전사들이라 그런 것은 물론 아니었다.
범이 양 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서다.
“조준!”
장교의 음성에 맞추어 용병들은 적의 하체를 겨냥했다. 얼치기들은 상반신을 겨냥했다가 헛발을 내기 일쑤였지만 경험 많은 용병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전열 보병을 가진 왕립 육군과도 맞싸운 그들이었다.
세상에 그들만큼 실전 경험이 풍부한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격!”
명령과 동시에 오렌지 빛 섬광과 굉음이 터졌다. 콩 볶는 총성이 일시에 터져 나오자 그 소리는 흡사 뇌성벽력을 연상케 했다. 그 가공할 화력에 천국의 전열에 큰 구멍이 생겼다.
용병들은 적이 당황한 틈을 이용해 신속하게 다음 총탄을 장전했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열 전투의 최강자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총탄이 준비되자 다시 총격이 가해졌다.
사격과 사격 사이의 간격은 짧았다. 용병들은 후장식 소총의 이점을 무자비할 정도로 잘 살렸다. 접근하던 천국 보병들의 제1열의 절반이 시체가 되거나 바닥을 굴러다녔다. 나머지는 공포에 사로잡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장교들이 명령했다.
“부대 전진!”
용병들은 소총을 든 채로 전진했다. 그리고 2열과 뒤엉킨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천국 보병들에게 재차 무자비한 사격을 가했다.
그나마 총기를 다루는 항마군이었다면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천국 군대의 문제는 속사 능력을 가진 적을 맞상대할 만한 보병 세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부 병사들이 전장식 소총으로 저항을 시도해 보았지만 일개 무리의 화력은 후장식 소총의 속사를 감당하지 못했다. 용병들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을 밀어붙이며 전열을 완전히 으깨어 놓았다.
천국의 지휘관들은 이 광경을 무거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새롭게 나타난 적 역시 끔찍할 정도로 강력했다. 수는 적지만 화력에서 차원이 다른 적이었다.
적의 전열이 충분히 무너지자 장교가 외쳤다.
“돌격!”
용병들은 그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총을 어깨에 걸어 메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쿠크리를 뽑아들고 천국 군대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근접전에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이 괴물들의 돌격에 익왕은 언젠가 보았던 악몽을 다시 떠올렸다.
지금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자들은 오승도로부터 승리를 따내려던 순간을 망쳐놓았던 그 괴물들이었다.
‘끝장인가.’
익왕은 두 눈을 감았다.
***
천국 군대는 죽음의 궁지에 내몰렸다. 앞은 수만 대군을 박살낸 악몽의 용병들이고, 뒤는 최신예 무기로 무장한 오승도의 상승군이 버티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그들은 완전히 포위당하고 말았다.
오승도의 포병대가 전진해와 그들을 조준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자비한 탄막에 이은 도륙뿐이었다.
익왕 이하 장수들이 비장한 분위기 속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상대 쪽에서 백기를 든 장수 하나가 나타났다.
그가 점점 가까워지자 천국 병사들 사이에서 동요의 빛이 감돌았다. 그 사내는 천국 지도자들도 잘 아는 자였다. 천국에 남아 있었다면 능히 왕작을 받았을 개국 공신, 풍겸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오승도의 혀가 되어 천국을 흔들어 놓은 더러운 배반자일 뿐이다. 하지만 백기를 들고 온 자를 공격하면 오승도의 보복이 뒤따를 터, 익왕은 그가 진영으로 올 수 있도록 길을 터주라고 명했다.
곧 천국의 반역자 풍겸이 적의 어린 시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인 공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풍겸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오자 장수들 중 몇이 익왕에게 말했다.
“놈의 목을 잘라버리라 명하십시오. 이리된 마당에 저 반역자라도 저승길 동무로 삼고자 합니다.”
“그리하면.”
익왕은 말했다. 장수들은 그 단어에 실린 강한 힘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저들은 바로 공격을 시작할 거요. 우리에게는 마지막 결정을 내릴 시간이 필요하오.”
장수들이 입을 다물었다. 풍겸은 그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을 증오 어린 눈으로 보는 이들을 무시하고 익왕에게 다가섰다.
“오랜만에 만나는구려. 대장군.”
풍겸은 지난날 북벌에 나서던 당시 서익이 가졌던 지위를 입에 올렸다. 그 호칭은 서로의 상하 관계가 없던 시절의 관계로 대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런 것 같소.”
익왕은 그 호칭에 화답했다. 지금에 와서 그 호칭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왕이면 어떻고 원수면 어떻고 대장군이면 어떻단 말인가?
모든 것이 허울조차 남지 않게 된 작금에 와서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풍겸은 그런 서익의 가슴속을 읽었는지 말을 이었다.
“앞과 뒤가 막혔고 천국의 이상과 대의는 여기서 부러질 것 같은데, 대장군께서는 그 꿈을 지키기 위해 병사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요?”
“사람은 한 번 죽게 마련이요. 풍 장군도 기억하겠지만 대의는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법. 누군가의 희생이 밀알이 되어 훗날의 역사를 바꾼다면 개죽음은 아니요. 장군은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오?”
“그 말도 일리는 있으나 그 결정은 누가 내리는 거요? 병사들이 스스로 죽겠다고 자원이라도 했다는 거요?”
“우리 천국의 동지들은 거병한 순간부터 죽음을 각오했소. 그 사실은 장군도 잘 아실 거요.”
“압니다. 잘 알기에 강주 관리사가 나를 이 자리에 보낸 겁니다.”
“강주 관리사가?”
익왕이 뜻밖이라는 눈을 했다. 천국의 병졸들을 수도 없이 저승으로 보낸 저승사자가 이제 와서 자비를 베풀겠다고 풍겸을 보냈다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소. 강주 관리사는 천국 병사들을 모두 죽이길 원치 않는다오.”
“우리를 모두 죽이길 원치 않는다. 그렇게 하면 조정의 눈 밖에 날 것인데.”
“그거야 관리사가 알아서 할 일이요. 그는 항복을 제안했고, 병사들의 생명도 보장해 주기로 했소. 상승군과 함께 온 우리 병사들이 그 증거요.”
익왕은 그 말을 듣고 상승군과 함께 움직이던 병사들의 정체를 알았다. 그 정체 모를 병사들은 천국 출신의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풍겸의 이름으로 모인.
그 의미는 작지 않았다. 모반에 가담한 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십 족을 멸하는 것이 제국의 관습. 그 형벌로부터 오승도의 이름으로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항복을 하면 살 수 있다. 적어도 병사들만큼은. 풍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병사들을 살려준다. 그게 풍 장군이 우리에게 전하러 온 말이요?”
“그렇소이다. 다른 이라면 그런 제안을 하는 게 의미가 없었겠지만, 대장군이었기에 이야기를 꺼낸 것이요.”
“나이기에 이야기를 했다. 나라면 항복을 받아들일 거란 뜻이요?”
“병사들을 아끼는 대장군이라면 자신의 목숨 보장을 조건으로 걸고 항복을 막을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요.”
익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자신 하나를 위해 수십만의 병사를 죽음의 길로 내몰았던 그가 무슨 성인군자나 되겠는가? 그는 스스로에게 조소를 보냈다.
“하나 묻겠소.”
“말씀하시오.”
“장군은 무엇을 보고 오승도의 수족이 된 거요?”
“그가 약속을 했소. 천국을 대신할 새로운 이상을 보여 주겠다고. 그는 그 증거로 강주를 보여주었소. 우리 천국이 강주보다 나았다면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을 거요. 하지만 강주는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었소. 그게 내가 그의 수족이 된 이유요. 그라면 실패한 우리의 이상을 현실로 가져올 힘이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오승도가 진정 우리의 대안이 될 거라고 확신하는 거요?”
“확신하진 않소. 그저 미래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을 뿐이요.”
풍겸의 대답에 익왕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에게 시간을 조금 주시겠소?”
“얼마나 말이요?”
“반 시진.”
이미 무언가를 꾸미려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천국이다. 풍겸은 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오승도가 그에게 약간의 시간 유예를 주어도 좋다고 언질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풍겸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제 진영으로 돌아갔다. 익왕은 장수들을 모아놓고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천국은 이것으로 확실히 망했소. 군은 적의 함정에 빠져 재기불능이요. 천경은 빈껍데기만 남았고, 나머지 왕들에게는 대세를 바꿀 힘이 없소. 남은 것은 오승도의 군마가 닥치는 대로 쓸려나갈 깃발뿐이요.”
“전하.”
“으흐흑.”
장수들이 서글픈 음성을 냈다. 일부는 이마를 바닥에 찧은 채 흐느끼기도 했다. 천국의 마지막은, 대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은 비통한 분위기로 젖어 있었다.
“남은 것은 병사들을 역사의 밀알로 만드느냐 마느냐. 그 선택뿐이요. 병사들의 희생을 택한다면 적어도 천하가 우리의 뜻을 기억할 것이오. 뿌린 피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저항이 끈질기면 끈질길수록 그리될 거요. 하나 그리하면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병사들은 모두 죽소. 대의를 위해 죽는 것, 나는 목숨이 아깝지 않으나 병사들이 그리 생각할지는 확신할 수 없소. 어제까지, 풍겸이 흔들기 이전의 천국이었다면 병사들도 기꺼이 목숨을 바쳤을 거요. 하지만 지금은 모를 일이오.”
“전하.”
“이상과 꿈을 위해 목을 내놓는 것은 기꺼이 죽겠다고 각오한 자들로 충분하오. 병사들에게 천국의 패망을 알리고 길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은 보내주시오. 강주 관리사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자가 아니라면 우리 병사들의 항복을 받아줄 거요.”
익왕은 끝내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항복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장수들의 흐느낌이 더 커졌다.
그러나 천국의 멸망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들은 슬픈 얼굴로 익왕이 내린 마지막 명을 받아들였다. 천국의 잔병 사만 가운데 삼만 팔천여 명이 투항을 해도 좋다는 말을 들은 후 백기를 들고 상승군 앞으로 나갔다.
나머지 천여 명의 병사들은 천국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익왕과 같이했다. 그들은 투항자들이 빠져나가고 오 분 후에 상승군에 응전의 뜻을 보이고는 북을 치며 전진했다.
천국의 마지막 불꽃을 보여주려는 듯 그들의 전진은 비장한 공기를 담고 있었다. 그 비장한 공격에 승도는 상승군이 자랑하는 포병대로 응대하게 했다.
수백 발의 산탄이 비처럼 쏟아졌고, 그 당당한 대열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피와 고기 조각으로 변해 들판에 흩뿌려졌다. 승도는 그 장렬한 최후에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다.
이로써 대륙을 양분하며 천하를 진동시켰던 천국의 운은 다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