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57화 (257/425)

제257화. 독약처방 (2)

아편 수매 제도는 북경의 주요한 화제로 떠올랐다. 아편을 정부가 취급하는 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지식인들은 연일 이 문제를 입에 올렸다. 백성을 죽여 돈을 얻겠다는 발상이니 어지간한 사안에는 침묵하던 자들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조정에서 열리는 조회에서도 여기에 대한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대립했다. 총리대신과 그의 파당, 그리고 황실 보수파의 주도하에 찬성 쪽으로 흐르는 기류가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적지 않은 관료들은 이런 흐름에 대해 은근히 불만을 내비치고 있었다.

“아편 수매는 제국을 좀먹게 될 것입니다. 백성을 병들게 하여 국가의 창고를 채우는 것은 아랫돌을 빼어 윗돌을 채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국가의 도덕성 문제입니다. 천자께서 백성들에게 마약을 권하다니요. 오랑캐도 웃을 일입니다.”

관료들의 은근한 반발 속에 고관들은 아편 수매에 대한 안건을 통과시켰다. 섭정인 황태후가 한 팔을 거들고 총리대신이 지원하는 일이니 통과는 처음부터 정해진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 안건의 통과는 관료 사회에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이 안건에 반대했던 관리들은 제국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가다가 제국이 파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하나둘 현재의 집권 세력에 대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의 내각을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권위와 힘을 가진 세력을 말이다. 그만한 후보는 사실 몇 없었다. 전쟁으로 위상이 실추되긴 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군사력을 예하에 둔 양국번이 첫 번째 후보였다.

그는 제국 정계에 단단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고 명망도 높았다. 그라면 작금의 무능한 내각을 대신할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후보는 조정 내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관철하고 있는 거인, 임경문이었다. 흠차를 수차례 역임하여 행정과 군사 관계에 경험이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인망도 두터웠다. 지지기반이 다소 부족하긴 했지만 그 장점은 결점을 만회하고 남을 만큼 탄탄했다.

세 번째 후보는 지금까지 조정 내에 입지를 전혀 갖지 않았던 자, 오승도였다. 일개 상인이 제국의 실력자로 부상한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세 후보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자는 바로 그였다. 힘이라면 차고 넘칠 만큼 있었고, 그 인지도도 다른 자들을 압도할 만큼 강력했다.

관료들이 나름의 대안을 찾아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강주 관리사 오승도의 사람이 북경을 방문하였다. 그는 승도의 수족으로 움직이는 자, 건문이었다.

그를 태운 마차는 북경 외곽에 있는 어느 화려한 장원 앞에 멈추었다. 그 장원은 평범한 이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아름다웠다. 장원을 감싼 벽을 한눈에 다 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 벽 위로 얼핏 보이는 그림 같은 정원수가 밋밋해 보이기 쉬운 풍경에 운치를 더했다.

건문이 마차에서 내리자 장원의 문지기가 신분을 물었다. 장원의 주인은 평범한 신분의 사람이 아니었다. 한때는 정1품의 품계와 아문 해관의 감독 자리를 가졌던 사람이니, 일개 평민은 감히 눈을 들고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였다.

건문은 자신의 신분 패를 보여주었다.

“강주 관리사의 서기이십니까?”

신분 패를 본 문지기가 잠시 흠칫하며 되물었다. 서기는 대충 비서 정도에 불과한 자리로 그다지 대단한 지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 주인의 신분에 따라 서기의 입지도 천차만별로 달랐다.

강주 관리사는 작금의 천하에서 제국 조정이 손을 댈 수 없는 막강한 권력자였다.

그런 거인의 서기라면 어지간한 관료 정도는 눈 아래로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문지기가 공손해진 것도 당연했다. 건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분 패를 돌려받았다.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었다. 건문은 마중을 나온 시녀와 하인들의 응대를 받으며 별채로 안내되었다. 별채는 신의 상류 계급들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방은 넓었지만 퇴폐적인 느낌을 주었다. 여기저기 늘어진 비단 천과 은은한 향을 내는 향로가 그런 인상을 강화시켜 주었다.

건문은 자리에 앉아 시녀가 내어온 차를 마셨다. 이곳 주인과 만나자면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주인이 장원 안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지위’에 따른 위엄을 보이기 위해 방문자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는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관리사 대인이 북경에 포석을 두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위해충과 같은 관료들을 다수 포섭하여 그 발언권을 높이고 영향력을 키우는 수순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보는 오승도가 그간 보여 온 움직임에 비해 다소 느렸다.

그렇기에 영향력을 키우는 정도에서 멈출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언제나 강주 관리사는 그 결과가 눈에 잡힐 듯 보이는 시점에서 그 내용을 이야기했다. 하니 이번에도 뭔가 숨긴 밑그림이 있을 것이다.

‘영향력 이상의 것을 노린다면 제국 정계에 진출하실 생각이신가.’

그 가정도 무리는 아니었다. 충분한 세력 기반만 갖추어진다면 그렇게 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신중한 오승도가 구태여 북경에 행차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강주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존재. 그런 그가 북경에 나타난다면 제국 조정에서 손을 쓸 위험이 있었다.

건문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승도의 의도를 추측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가 찻주전자에 든 차를 다 비울 즈음, 인기척이 들렸다.

“안에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강주 관리사의 서기입니다.”

누군가의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곧, 탐욕스런 인상의 중년인이 모습을 보였다. 건문은 그 얼굴을 쉽게 알아보았다.

기름기가 많은 얼굴에 메기수염, 그리고 비대하고 풍만한 체형까지. 피둥피둥 살이 찐 돼지 같은 느낌을 주는 사내는 지난날 강주에 군림했던 탐관이었다.

건문은 소매를 모아 예를 표시했다.

“강주 관리사 서기 건문이 위 대인을 뵙습니다.”

“만나서 반갑네. 앉으시오.”

위해충이 소매를 털며 먼저 자리로 향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건문도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았다.

“강주 관리사의 서기가 여긴 어쩐 일이요?”

“예, 저희 관리사 대인께서 위 대인께 올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 전언을 전하러 찾아뵈었습니다.”

“강주 관리사의 전언이라. 천하를 떨어 울리는 영웅이 이 사람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니, 조금은 궁금하군. 말해보시오.”

“저희 강주 관리사 대인께서는 위 대인과 손을 잡고 싶어 하십니다.”

“그가 나와 손을?”

위해충의 눈이 묘한 빛을 띠었다. 뜻하지 않은 제안에 조금 놀란 듯했다. 나름 백성의 인망을 등에 업고 세를 불리고 있는 관리사가 구태여 탐관의 표상과 같은 자신과 손을 잡겠다고 나서다니. 의외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예, 대인. 저희 대인께서는 대인과 더불어 제국의 장래를 논의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국의 장래를 논하자.”

가벼운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녹록지 않았다. 제국의 장래를 운운하는 것은 제국의 최고 권력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떠십니까?”

“듣기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요.”

“결코 나쁜 제안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 내가 강주의 입이 되고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일 텐데.”

탐관이지만 노회한 정치가인 위해충은 그 제안에 담겨 있는 위험을 간과하지 않았다. 강주의 방패가 된다는 것은 북경에서 몰아칠 비바람을 그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위험이 큰 만큼 이문도 크지 않겠습니까?”

“위험을 감수한 만큼 이문을 크게 준다. 이를테면?”

“총리대신의 자리 정도 되겠지요.”

“제국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내게 준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자리다. 당금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자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쉽게 믿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대인께 결코 적은 보상은 아닐 것입니다.”

“가능만 하다면 그럴 테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가능합니다, 대인. 우리에게는 이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문은 조금 회의적인 빛을 보이는 탐관 앞으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 주머니의 입구가 풀리더니 흰 어음들이 우수수 모습을 보였다.

그 어음에는 하나하나에 은자 수만 냥의 액면가가 쓰여 있었다.

“바로 돈 말입니다.”

건문이 주머니를 보이며 띤 미소에 위해충의 입가가 흐릿한 선을 그렸다.

***

“월비에 대한 승리를 경하 드립니다, 대인.”

“과찬의 말씀을.”

상경(천경)의 총독 관저에 주재한 승도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실상 강남의 최고 권력자나 다름없는 그에게 눈도장을 찍고자 하는 상인과 관료들이었다.

그들은 시류를 읽고 먼 제국 조정보다 누구에게 머리를 숙여야 자신들의 이익과 지위가 보전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승도 역시 그런 그들의 불안을 아는 터라 기꺼이 그들을 만나주었다.

이 만남을 통해 관리와 상인들은 그와 안면을 텄다고 생각할 것이고, 강주를 뒷배로 만들 고리를 잡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반대로 승도는 그런 이들의 인식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강주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일종의 충성 경쟁을 유발하여 강주가 가진 실력 이상을 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제왕으로서 대륙에 군림한 적이 있던 승도에게 이런 일은 숨 쉬는 것보다 쉽고 간단했다. 개개인은 나약한 속성이 있어 ‘시류’라는 것을 형성하면 간단히 다룰 수 있었다. 물론 예외가 없진 않았다.

바로 외국인이다. 신의 사회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그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관료들이 나간 후,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 방문자들은 특별한 허가를 받고 상경으로 올라온 외국 관료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로망스 출신이었다.

“오 대인을 뵙습니다. 로망스 남작의 작위를 가진 샤를입니다. 이번에 대인의 승전을 축하드릴 겸 찾아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망스 남작 샤를은 승도도 아는 이였다. 그는 이번에 강주에 새로 들어온 동방 무역의 책임자(대반)로 승도의 새로운 사업 파트너로 선택된 자였다.

“이번에 대인께서 서역식 무기의 위력을 충분히 과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연합왕국제 대포의 힘이 결정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소문이 사실인지요?”

그의 물음에서 승도는 이 남작이 찾아온 이유를 감지했다. 남작은 연합왕국의 물목으로 승리를 거둔 승도가 지나치게 왕국 무기에 의존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가진 모양이었다. 자국의 국익에 민감한 대반으로서는 꺼낼 만한 이야기였다.

“결정적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왕국 대포가 우수하긴 했지만 만능은 아니어서 말입니다. 결점 없는 무기는 없게 마련이니까요.”

대반은 승도의 대답에 흡족한 빛을 보였다.

“잘 보셨습니다. 연합왕국의 무기에도 단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왕국 무기는 가격 대비 성능으로 보면 그리 경제적인 무기는 아닙니다.”

“그 부분은 인식하고 있습니다.”

“해서 앞으로는 상대적으로 단가가 싼 우리 무기를 구매해 주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승도는 대반의 이야기에 가벼운 미소를 보였다. 로망스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다. 지난 전쟁에서 천국과 제국, 강주 모두 연합왕국의 무기를 거의 이용하였다.

타국의 무기를 사용한 예는 별로 없었다. 그만큼 로망스는 이 전쟁 특수에서 소외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큰 이익이 보이는 시장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로망스는 후발주자로서 이 불쾌한 입장을 빨리 타개해야 했다. 그러자면 대륙에서 가장 앞선 군대를 가진 강주에 자신들의 무기를 넣을 필요가 있었다.

강주가 하면 제국 전체로도 그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로망스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로망스의 무기를 채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일전에 도입을 하려고 했으니까요. 문제는 연합왕국과의 관계 악화에 한몫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금의 우리 입장에서는 현상유지가 더 중요해진 만큼 그 부분은 간과할 수 없는 단점입니다. 이를 만회할 이점이 없다면 우리가 생각을 재고하긴 어렵습니다.”

승도의 이야기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어 좀 더 확실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대반은 그 미끼를 문 고기의 흉내를 냈다.

“싼 가격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셈입니다.”

승도의 대답에 로망스 대반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그는 로망스 본국으로부터 상당한 재량권을 받고 온 사람이었던 만큼 무기 판매에 있어 제한이 별로 없었다. 그 점을 살리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렇다면 우리 왕국의 최신 무기까지 공급한다는 조건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최신 무기라면.”

“미트라예즈(기관포: 기관총으로 분류할 수 있는 무기로 포병대의 장비로 취급된 초기 기관총 중 하나. 분당 200발의 총탄을 발사하는 병기로 전열 전투의 종식에 한몫했다.)와 장갑함입니다, 대인.”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승도는 세력이 커가면서 더욱 강력한 무기를 도입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만큼 상대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다. 최신 무기 체계는 어느 정도의 위험성(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군 전략가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열기구와 최신 소총, 대포의 이점을 톡톡히 누렸던 만큼 새로운 무기라는 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미트라예즈는 여러 개의 총열을 하나로 묶어 운영하는 기관포입니다. 보병 소대 하나의 화력을 이 장비 하나가 낸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무기인 셈입니다.”

“포병 장비 하나가 보병 소대 하나의 위력을?”

승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무기의 가치를 깨달았다. 일개 지원 화기 하나가 보병 소대 하나의 위력을 낸다면 단위 면적당 화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간다.

즉, 후장식 소총 앞에서라면 그나마 가능했을지 모를 ‘대군의 돌격’도 이 장비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잘 훈련된 전열 보병도 마찬가지.

소대급 화력을 혼자 내는 장비라면 보병의 머릿수를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장비도 팔 생각이 있습니다. 대인이 우리 무기만 사주신다면 말입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반은 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장갑함은 배의 겉을 강철로 두른 군함입니다. 그 내부는 압축 목재로 채워 기존의 모든 대포를 무시하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새로운 시대의 왕자라고 할 만한 배입니다.”

“강철로 배를 둘렀다면 건조 단가가 만만치 않겠군요.”

“결코 싼 배는 아닙니다. 우리 해군도 그리 많은 척수를 건조하고 있진 않습니다.”

“그 배도 우리에게 팔 수 있단 겁니까?”

“그렇습니다. 연합왕국이라면 이런 무기를 팔 수 없겠지만 우리는 가능합니다.”

선발주자로서 시장을 독점한 연합왕국은 자신들의 구식 무기를 처분하는 데 집중했다. 그만큼 신식 무기를 빨리 풀면 기존의 구식 무기 처분에 방해가 되게 마련. 그들이 신식 무기를 팔 가능성은 그만큼 적었다.

일전의 대포는 ‘왕국의 최신 병기(대포 계열에서 최신에 속하는 것이나 왕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대구경 대포는 아님)’ 수준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도 했고, 그만큼 비싼 값을 지불해서 들어온 것이었다.

반면 로망스는 후발주자로서 어떻게든 시장을 뚫어야 하는 입장이니 자국에서 채용하지 못한 신형 장비라도 수출을 할 수 있었다. 급한 만큼 가격도 낮출 수 있는 것이 그들이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물론 이유는 그것만 있진 않았다. 강주에 무기를 팔아 연합왕국과의 간격을 벌리고 그들의 눈을 에우로페에서 돌리려는 계산도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정치에서 한 가지만 보고 움직이는 자들은 없었다.

승도는 상대의 속셈을 읽었지만 로망스가 내민 패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들이 약속한 무기를 판다면 강주의 무력은 대륙에 대한 외부 세계의 간섭을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수준에 이를지 몰랐다.

그것은 자신만의 울타리를 구축하려는 승도에게 매우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승도는 로망스 대반을 향해 미소 지으며 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조건을 상세하게 검토해 보도록 할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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