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청림당 (1)
아편은 예로부터 제국을 좀먹어 온 병폐였고 희망이었다. 제국의 그늘에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를 때면 수많은 남성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죽어갔으며, 그 가정은 파멸했다. 동시에 그들의 희생을 통해 보호자를 잃은 여성들이 돈을 벌어 재기에 성공했다.
그 모순된 아편의 속성처럼 아편 수매는 제국에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터였다. 제국의 국고 확충과 아편 중독자의 증가라는 상반된 모습을 말이다.
결과가 어떻든 이 제도의 실시를 통해 제국 정부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오승도의 대리인으로서 북경에 온 서기 건문은 이 사실을 재빠르게 감지했다. 그는 강주에서 대외 무역에 종사하는 행상의 일원으로 지내온 시간만큼 아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아편을 접촉하기 쉬운 강주 사람들이 아편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제국 정부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잃었다. 통치자가 잃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도덕성이지.’
도덕은 통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유자로서 학문을 배운 적이 있던 건문은 그 사실을 신봉하고 있었다. 물론 통치에 있어 도덕성을 저버리는 경우는 종종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엄연히 넘어선 안 될 선이란 것이 있었다.
제국 정부는 대륙 통치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시적으로 재정과 무력을 회복하여 세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들이 바보라서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배울 만큼 배운 제국 권력자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그 위험조차 감수할 만큼의 이유는 있으리라. 하지만 그 결정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건문은 제국 정부에서 내린 아편 수매에 대한 공문을 옆으로 접어두었다. 이 건과 관련해 유자 출신의 관료들, 더 나아가 실무에서 부패한 제국 정부에 실망하고 있는 하급 관료들을 포섭할 여지가 크게 엿보였다.
적당히 손을 더 써나간다면 강주의 입장을 대변할 자들을 더 늘려볼 수 있을 듯싶었다.
강주와 손을 잡기로 한 위해충과 같은 관리 외에도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관리가 늘어난다면 향후 조정에서 오승도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을 터였다.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 거기에 이어 그를 받쳐줄 정치 세력까지 갖춘다면.
‘이 제국의 실세는 바로 오 대인이 되겠지.’
건문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묵고 있는 기루를 나섰다. 기루 안에서도 매우 비싼 별원의 방에 머물고 있는 귀한 손님이라 기루 지배인이 그를 위해 경호원 몇을 붙여주려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데리고 있는 호위가 있어 호의를 거절했다.
이곳 북경은 복잡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어수선한 곳이었다. 잠깐 방심하면 소매치기가 주머니에 든 돈을 훔쳐가기도 했고, 으슥한 길에서 강도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가 치안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아편굴과 매음굴이 사라지지 않듯 강도 행위를 근절할 수는 없었다.
본질적으로 범죄 행위를 막으려면 민중의 생활을 안정시켜야 했는데 제국 정부는 그럴 만한 역량이 없었다.
건문은 깨끗하게 관리되는 대로를 따라 걷다 그 사이로 난 좁은 길로 걸음을 바꾸었다. 그가 북경에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어서였다. 관료 포섭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강주의 눈과 귀를 깔아두는 일이었다. 그가 모시는 오승도의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자면 누구보다 빠르게 북경의 정보를 입수할 필요가 있었다. 정보의 중요성은 오승도의 옆에서 누차 배운 바 있던 그였기에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았다.
건문은 북경에 미리 파견되어 있던 행상의 상인으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라 아편굴을 찾아갔다. 이 아편굴에는 북경의 삼대 흑방(암흑가의 조직) 중 하나인 청운방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훤칠한 사내가 아편굴 앞에 이르자 긴 방죽을 물고 있던 사내 셋이 일어섰다. 그들은 매우 험상궂은 얼굴에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아편에 절은 중독자의 눈이었다.
노란빛이 도는 눈을 가진 자들.
이들이 경비로 선 이유는 간단했다. 아편에 취한 자는 두려움도 없고 생각도 없었다. 아픔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건문은 그들에게 주머니를 건넸다. 주머니 안에는 ‘소개장’이 들어 있었다. 소개장은 아편굴에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배부되는 것으로 ‘수상한 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종의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사내들은 소개장을 확인하고는 들어가도 좋다는 시늉을 했다. 대신 호위들은 그 뒤를 따를 수 없었다. 건문은 그들에게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명한 다음 아편굴로 들어섰다.
아편굴은 그 이름과 달리 진짜 ‘동굴’ 같은 곳은 아니었다. 그곳은 아편을 취급하는 거리를 칭하는 것으로 이에 관련된 자들(예컨대 창녀나 아편 중개업자, 상인, 중독자 등)이 있는 곳의 범칭이기도 했다.
아편굴에 들어서자 불쾌한 냄새가 났다.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자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었고, 역할 정도로 분칠을 한 여자들이 좌우에서 손을 움직이며 자신에게 오라는 시늉을 했다. 건문은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똑바로 걸었다.
불쾌한 공간을 가로지르자 조금은 깨끗한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아까 전의 무질서한 느낌과는 다른, 팽팽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조직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주는 자들이 여럿 보였다. 그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무슨 용무라도?”
“소개장을 가지고 왔소이다.”
건문은 자신의 품에서 소개장을 꺼냈다. 그 소개장은 좀 전의 아편 중독자들에게 보여준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아편굴을 지배하는 청운방에 대한 소개장이었다. 사내들은 서로의 눈을 보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시늉을 했다.
건문은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그 앞에서 기다렸다. 아편굴의 규모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이 거리 안에만 족히 천은 넘는 인간이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좌우로 거리가 늘어서 있는 것을 미루어 보면 그 규모는 건문이 본 것보다 더 클 여지가 있었다.
이만한 규모의 아편굴을 지배하는 세력이라면 북경 내에서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을 듯싶었다. 이곳 북경에 파견된 상인이 제대로 된 자와 접선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건문이 아편굴로 청운방의 힘을 미루어 짐작하고 있는데 아까 소개장을 건네받았던 사내가 돌아와 말했다.
“방에서 손님을 모시라고 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소.”
건문은 사내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은 낡고 오래된 인상을 풍겼다. 복도 여기저기에는 험상궂은 사내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건문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가로질러 계단을 오르자 몇 개의 방이 나타났다. 사내가 그 방들 중 끝에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방주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알겠소.”
건문은 사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삐거덕거리는 나무 마루 특유의 불쾌한 소리가 그를 뒤따랐다. 아마 이 복도는 혹시 모를 습격자에 대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한다면 청운방은 생각보다 전문적인 조직일 수 있었다.
그가 부방주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역시 복도에서 들린 소리로 사람이 다가온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건문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햇빛 한 점 비치지 않는 특이한 공간이었다. 보랏빛 차양을 내려 빛을 차단한 어두컴컴한 공간에 반백의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흑의를 입은 노인은 곰방대를 문 채 문간에 선 건문을 관찰하듯 훑었다.
그러곤 이내 그 시선을 거두고 곰방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오.”
건문은 그의 말대로 따랐다. 노인이 권한 자리에는 역한 아편 향이 맴돌았다. 건문은 내색하지 않고 앉은 채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
노인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소개장을 가지고 오셨던데. 우리 청운방이 무얼 하는 곳인지는 알고 오신 거요?”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북경의 밤을 지배하는 흑방 중 한곳 아닙니까?”
“그런 곳을 유자가 찾다니.”
노인은 평범한 문사처럼 보이는 그가 찾아왔다는 데에 약간의 의구심을 느낀다는 뜻을 내비쳤다.
“조정 관료들의 심부름꾼도 종종 찾아오는 곳이라 하는데 유자라고 해서 찾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긴 맞는 말이요. 유자면 어떻고 관리면 어떻겠소. 돈만 준다면 귀한 손님인 것을. 그래, 우리 청운방에 무슨 용건이 있으신 거요?”
노인이 묻자 건문이 자신의 일을 입에 담았다.
“조정 관료들의 뒷조사가 필요합니다.”
“권력자들의 뒷조사라. 그거 상당히 위험한 이야기라는 것 알고 있소?”
“물론 알고 있습니다.”
“과연, 강주에서 온 손님은 뭔가 배포가 다른 듯하오.”
노인은 건문이 어디서 왔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에게 들어온 소개장이 누구에게 전해진 것이고, 그의 인맥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짧은 시간에 파악했다는 것은 그만큼 청운방의 정보 분석이 빠르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아셨다면 이야기가 좀 더 편해지겠군요. 정확히 말해 이 의뢰는 강주 관리사를 위한 것입니다.”
“강주 관리사를 위한 의뢰라.”
노인이 수염을 매만졌다. 제국의 신성이 넣은 의뢰라면 간단하게 유보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건을 입에 올렸다면 묵살했겠지만 말이다.
“그분께서는 상벌이 확실하십니다. 청운방이 이 일을 잘 해주신다면 훗날 강주에서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물론 의뢰비는 선금으로 충분한 액수를 드리겠습니다.”
건문은 상대가 강주 관리사를 의식하고 있음을 알고 제안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노인이 곰방대를 물었다. 그렇다 해도 쉽게 받을 제안은 아니었다. 청운방의 권력자는 짧은 시간 동안 강주와 제국을 저울질하며 판단을 망설였다.
정보가 가장 빠른 암흑가의 지배자가 강주와 제국 사이에서 망설인다. 그것은 강주의 위상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건문은 상대가 내놓을 대답을 짐작했다.
***
강남에서 오승도의 영향력은 나날이 커졌다. 조정은 이러한 그의 성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를 적당한 수준에서 달래는 방편으로 그 권력을 일정 부분 용인해 주기로 했다.
바로 흠차대신의 지위가 그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정1품의 품계가 더해졌다. 과거 그 어떤 상인도 도달하지 못했던 지고한 위치에 오른 것이다.
어지간한 야심가라면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승도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권력의 정점을 향한 갈망이 남아 있기도 했거니와 중간 계단에서 멈춘 야심가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는지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재 시점에선 만족할 만한 결과야.’
승도는 조정에서 내려준 흠차대신의 지위에 만족했다. 내주지 않을 것 같은 눈치였지만 그가 보여준 상상 이상의 군사력에 결국 겁을 먹고 내주기로 한 듯했다.
덕분에 강남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공고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로서는 남는 장사였다. 경제적으로 지금과 다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강남의 동쪽에는 염상의 주요 소금 산지들이 있었다.
이곳이 그의 영향력 하에 들어온다는 것은 달리 말해 염상도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염상으로부터 돈을 빌려 쓰고 있던 행상이 유리한 고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었다.
필요하다면 염상에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그의 군사력과 정치력을 키우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강남을 장악하고 진정으로 키우고 싶은 것은 강주의 자립 능력이었다.
그간 오승도와 강주는 필요한 물자를 서역으로부터 대량으로 들여오고 있었는데, 이로 인한 지출이 상당했다. 가능하면 자국에서 자급할 수 있는 것은 자급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았다.
그런 이유에서 승도는 서역의 기술을 빌려 강주 주변에 대규모 제철소와 제강소의 확충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기존에 건설하고 있던 것들도 규모를 배가하기로 했다. 무기 역시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자급이 가능한 것은 모두 자급할 수 있도록 제조총국 등을 세우도록 배려했다.
탄약 역시 외국과의 관계 악화로 공급이 끊어질 것에 대비해 탄약 보급창을 건설하도록 했다. 최소한의 전쟁 수행 능력이 유지될 분량은 비축하도록 한 것이다. 탄약 생산 능력이 없더라도 일정한 비축분만 있다면 전쟁 수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늘 승도가 보고 있는 것은 새롭게 건설하고 있는 탄약 보급창이었다. 맑은 날씨에 강안에 나와 수도 없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던 승도가 말문을 열었다.
“동원된 인력이 제법 되는군요. 이번 공사에는 모두 얼마나 동원했습니까?”
그의 물음에 곁에 서 있던 사내가 공손히 답했다. 사내는 한때 천국의 오대 장수로 명성을 떨친 바 있던 항장 풍겸이었다.
“삼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대단한 숫자였다. 한 번의 공사에 동원하는 인력으로는 치수 작업 정도가 아니고는 보기 어려운 규모였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둑부터 호안까지 손으로 선을 그었다.
“여기서 저기까지 지반을 다지고 보급창을 세운다면 못 해도 일억 발 이상의 총포탄 비축이 가능하겠군요.”
“그 이상 될 겁니다.”
풍겸의 대답은 과장이 아니었다. 족히 백만 제곱미터가 넘을 부지이다. 그 안에 건물을 올린다면 그 몇 배라도 보관할 수 있었다.
“지반을 파는 것은 굴에다 탄약을 보관하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굴을 파는 것은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풍겸은 이번 공사를 진행하며 일부 건축가들의 설명을 들어둔 터라 승도에게 이유를 말할 수 있었다.
“습기 제거와 굴이 무슨 연관이라도.”
“전문적인 이야기라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굴을 파서 차가운 지하수를 흐르게 하면 공기 중의 수증기를 흡수하여(결로 현상을 말함) 탄약이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습기가 많은 강안에 보급창을 세우자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해했습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탄약 보급창은 습기가 없는 마른땅을 골라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나 군사적인 분야에 밝은 승도는 그런 원칙을 따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겼다.
전시에는 무엇보다 신속성이 요구되었다. 애써 비축한 탄약을 제때 불출하지 못하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강주 군대가 쓸 수 있도록 접근성이 유리한 곳에 보급창을 설치한다. 이것이 그가 이 입지를 선택한 주된 이유였다.
“보급창 공사는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지하 공사를 생각하면 적게 잡아도 한 해는 소요될 겁니다. 근처에 별도로 포대와 방어시설을 갖추려면 시간은 더 걸릴 거란 점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두른다고 쌀이 밥이 되는 것은 아니니 넉넉하게 여유를 가지고 진행해 주세요.”
“분부하신 대로 처결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하명하시지요.”
“정의군 병사(풍겸 휘하의 천국 출신 혹은 항병)들 중에서 쓸 만한 이들을 가려서 뽑아두도록 하세요.”
“쓸 만한 이들이라면.”
“체격이 크고 훈련을 받을 만한 자들 말입니다. 필요하면 우리 상승군에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승도는 강남을 평정한 시점에서 상승군의 규모를 더 불릴 필요를 느꼈다. 만으로는 단일 전역은 치를 만해도 전쟁을 치르기엔 부족했다. 장차 대륙을 도모하거나 열강과 다툼을 벌이자면 그의 주된 군사력인 상승군의 강화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가능한 많은 수를 추려 보겠습니다.”
“그들을 추리고 나면 충성 서약도 받아두도록 하세요.”
“충성 서약을 말입니까?”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성 서약은 최근 상승군에서 시작한 그의 기반 다지기의 일환이었다. 고대 루미 제국의 황제들이 1월 1일에 병사들에게 급여를 제공하며 ‘충성 서약’을 받고 군의 충성을 확인했듯 그도 그러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 절차는 상승군의 완전한 사병 화와 더불어 승도 자신을 구심점으로 결속한 집단의 완성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어느 집단이든 확실한 구심점이 구축될 때에야 비로소 그 성장이 용이해지게 마련이었다.
승도는 군의 성장에 앞서 그 성격을 분명하게 규정지으려 했다. 상승군이 제국의 군대가 아니라 그 자신의 군대임을 만인에게 확실히 못을 박아두려 한 것이다.
그런 전통을 분명히 하려면 기존 병사들만이 아니라 새롭게 들어오는 이들에게도 충성 서약을 받아야 했다.
풍겸은 그의 요구에 수긍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었다. 오승도가 약속했던 이상은 제국이 아니라 그의 이름 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제국이 아니라 그에 대한 충성을 말해도 그릇된 것은 아니었다.
“충성 서약도 받아 두겠습니다.”
“좋습니다.”
승도는 풍겸의 대답에 만족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바로 단 한 사람, 오승도의 명령에 의해서였다.
그것은 그가 가진 힘을, 권력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 강남의 황제나 다름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