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60화 (260/425)

제260화. 대국 (1)

제국의 수도 북경으로부터 장성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제국 내지와 외지를 나누는 옥문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관문의 밖은 오랑캐들의 땅으로 인식된다. 관문의 안은 전통적인 왕조들의 땅, 중원이다.

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문 지리적 경계가 구분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문 하나를 넘으면 종족과 사회상이 달라지는 정도는 아니다. 기후와 식생의 영향으로 관문의 좌우는 생활상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이 관문의 밖은 주장대신이 다스리는 관외의 지역이었다. 관외는 유목민들이 주로 거주하여 통치 행정은 전적으로 점과 점을 통해 이루어졌다. 정부는 오아시스와 도시를 기점으로 통치를 행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으로는 국경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물론 정부가 이런 문제를 아주 간과하지는 않았다. 루시와 체결한 국경 조약을 통해 서로의 국경 안의 유목민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여 지난 백오십 년의 평화와 안정을 얻은 바 있었다. 하지만 약속은 시일이 지나면 빛이 바래기 마련이었다.

루시는 제국과 나눈 약속을 깨트렸다. 신은 이 도전에 대해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유목민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지난 백오십 년의 고립에서 벗어나 독립에 필요한 무장을 획득했다. 그들은 수시로 도시와 오아시스를 순찰하는 제국의 기병을 습격하여 점과 선으로 이루어지는 통치 행정에 위협을 가했다.

휘이잉.

건조한 초원에 보기 드문 바람이 불었다. 얕게 자란 풀들이 모로 몸을 뉘였다. 그 위를 한 무리의 기마가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이 일행의 머리 위에는 제국의 황룡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일행은 주장대신의 명을 받고 오아시스를 순찰하는 제국 기병이었다. 기마 순찰대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지역을 돌며 제국의 지배력을 확인하였는데, 이번 순찰도 그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막 말을 달려가던 일행의 선두에 선 기마병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의 행동에 나머지 기마병들이 모두 멈추었다. 곧 대장처럼 보이는 이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앞에 유목민들이 있습니다.”

대장은 수하 기병의 이야기에 약간의 경각심을 가지고 천리경을 꺼냈다. 평시에는 외진 곳에서 유목민들과 조우하는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유목민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며 제국 기병들을 습격하다 보니 언제, 어디서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만큼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대장은 천리경에 눈을 가져갔다. 서역의 신비한 기물은 이내 먼 곳의 풍경을 눈에 잡힐 것 같은 거리로 가져왔다. 그 풍경 속에는 양과 소를 끌고 이동하는 유목민들이 있었다.

‘가축을 데리고 이동하는 평범한 유목민들인가?’

대장은 그것을 확인하고는 천리경을 내렸다.

“풀을 먹이러 이동하는 자들인 것 같다.”

그의 말에 병사들도 안도했다. 풀을 먹이기 위해 이동하는 자들이라면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가축을 데리고 습격하는 자들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았다. 유목민들이 제일 귀하게 여기는 양과 소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대가 위험하지 않다 판단하고 다시 말을 몰았다. 곧 육안으로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가축과 사람들이 나타났다. 양과 소들에게 풀을 먹이는 자들인 듯싶었다.

건조한 초원지대에서는 풀이 많은 초지를 찾아 떠도는 유목민들을 만나보기 쉬웠다. 물론 이 초지에도 주인은 있었다. 각 부족마다 엄격하게 정해진 경계가 있어 이를 넘을 때는 심각한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축과 마찬가지로 초지도 귀한 재산이었다.

기병들이 가까워지자 유목민들이 손을 들었다. 초원에서는 이렇게 우연히 조우하는 이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손을 들어 무기가 없음을 표시하고 적의가 없다는 것을 인식시킨 후,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이 초원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기병들도 그 풍습에 익숙했다.

그들은 유목민들 근처에서 말을 세웠다. 대장이 먼저 말에서 내리자 씨족의 장처럼 보이는 중늙은이가 이가 닳아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요?”

“오로목제(주장대신이 거하는 관외 통치의 치소)로 가는 길이요.”

기병대장의 대답에 중늙은이는 푸근한 미소를 보이며 주위에 마실 것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마침 건조한 초원을 가로지르느라 목이 컬컬했던 기병들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자네들도 이만 내리지.”

대장이 내리라고 말하자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자들도 모두 말에서 내렸다. 기병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중늙은이의 지시를 받은 유목민 사내들이 가죽 주머니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말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마유주가 들어 있었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이 하얀 액체는 초원의 삶에 익숙한 자가 아니면 입에 대기를 꺼려하는 역한 음료였다. 기병대장은 이 음료에 익숙했기에 그 냄새에 도리어 군침이 도는 것을 느꼈다.

기병들이 주머니에 차례로 입을 가져갔다. 그들이 벌컥벌컥 술을 마시자 유목민 몇이 마른 고기 몇 점을 내주었다. 대장은 그들에게 사의를 표하며 그 고기를 받아들었다.

“고맙소이다.”

마른 고기를 씹자 담백한 식감이 느껴졌다. 기병들은 마른 말고기를 질겅이며 유목민 사내들에게 이런저런 초원의 사정을 물었다. 근자에 제국 기병을 습격하고 다닌다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없는지, 초원을 넘어오는 백인은 없는지 등의 물음이었다.

유목민들은 그 물음에 비교적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제국 기병을 습격하고 다니는 이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지만, 백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해주었다. 백인들은 종종 국경을 넘어와 유목민들과 접촉한다고 했다.

대장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가 눈짓을 하자 기병 하나가 은화가 든 주머니를 꺼내 중늙은이에게 휙 던져주었다. 정보에 대한 값을 후하게 치러야 다음에도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머니를 살짝 열어 은화를 확인한 중늙은이가 만족스런 빛을 보였다. 기병들은 유목민들로부터 약간의 식수와 고기를 얻은 다음 다시 말에 올랐다. 먼 길을 가자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봅시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유목민 족장의 인사를 받은 기병대장이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이고 말을 몰았다. 그 뒤를 이어 기병들이 말발굽 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기병들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가자 조금 전까지 순박한 미소를 보이던 중늙은이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사람 좋은 유목민의 것에서 교활한 전사의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멍청한 제국 놈들.”

족장은 제국 기병들을 향해 냉소를 지었다. 저런 우둔한 것들은 초원을 지배할 자격이 없었다. 이 땅을 지배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신앙의 자손, 그들 민족으로 족했다.

족장이 멀어져가는 제국 기병들을 보고 있는데, 전사 하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슬슬 저들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족장이 고개를 저었다.

“초원은 넓고 시간은 많아. 저들이 먹은 고기와 술에 들어간 독이면 얼마 못 가서 힘이 빠질 게야. 그때부터 천천히 뒤를 밟아가서 한 놈씩 죽여도 늦진 않아.”

족장은 서둘러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독을 먹인 자들이었다. 체력이 강하고 면역력이 좋은 자들이라도 독사의 독을 섭취한 이상 체력이 떨어지고 방향 감각을 잃게 마련이었다.

그런 자들을 추격해 사냥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공연히 서둘러 추격했다가 상대의 체력이 멀쩡할 때 싸움을 하면 어려운 전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일이 돌아가면 좋지 않았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전사는 족장에게 머리를 숙였다.

“부족함을 알면 그것으로 되었다. 우리 초원의 전사들은 그 부족한 부분을 용맹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리 생각했기에 우리는 제국의 적수가 되지 못한 게야. 한 줌도 안 되는 머릿수를 가지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제국과 정면에서 싸웠으니까. 그런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지.”

족장은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옮겼다. 유목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맹이 아니라 상대보다 교활한 두뇌와 술수였다. 그 방법만이 무너져가는 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의 토지와 삶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전사는 고개를 끄덕여 그의 생각이 옳다는 뜻을 비쳤다.

“가서 전사들에게 충분히 쉬라고 전해라. 사냥은 태양이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시간에 시작할 것이라고.”

“예.”

전사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족장은 그런 젊은 사내를 향해 믿음직스럽다는 눈빛을 던졌다.

곧 유목민들은 제국 기병 사냥에 앞서 짧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

북경에서는 가끔 행사가 있었다. 고대 루미 제국에서 황제들이 백성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여 시민들의 환심을 샀듯, 신에서도 축제를 통해 제도 백성들의 민심을 공고히 하곤 했다.

역대 왕조들이 수도 내의 민심 문제에는 언제나 민감하게 반응한 터라,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이번 행사는 태후의 탄신을 축하하는 일환으로 벌인 것으로 불꽃놀이와 경극 등이 포함된 볼거리를 제공했다. 백성들은 이런 행사를 꽤 즐겁게 받아들였다. 수도에 흔한 아편쟁이들이나 창녀, 빈민들은 하루 벌어 먹고살기도 어려워 이런 것을 보러 나올 일도 없었다.

사람들이 북경 내에 조성된 경하 운하 변에서 열리는 이 화려한 볼거리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는 조정 관료들도 여럿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요식적인 행위이지만 이렇게 민중과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불만을 억누르는 효과도 상당했다.

관리들을 태운 가마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자 관병들의 경계도 조금은 삼엄해졌다. 그래도 즐거운 볼거리를 보이는 행사 자리라 관병들도 다소 느슨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 사이사이에 관병들이 있긴 했지만 주의 깊게 백성들을 살피는 이는 거의 없었다. 관리들도 별반 불안감을 보이지 않고 준비된 자리에 하나둘 앉았다.

관리들이 자리에 앉자 총리대신이 앞으로 나서며 태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말을 꺼냈다. 의례적인 이야기가 끝나고 총리대신이 자리에 앉자 금군의 장졸 몇이 나와 불꽃놀이를 준비하라는 명을 내렸다.

경극은 수준 낮은 이류 배우들이 공연을 할 예정이라 관리들이 보고 갈 불꽃놀이가 먼저 이루어질 참이었다. 명이 떨어지자 금군의 병졸들이 화약 기술자들을 독려했다. 그 독려를 받은 화약 기술자 몇이 미리 준비한 폭죽을 꺼냈다.

심지에 불이 붙음과 동시에 요란한 폭발음이 터졌다. 환한 불꽃을 내며 하늘에서 산화하는 화약은 순식간에 막대한 돈을 탕진했다. 하지만 이는 대륙의 오래된 풍습이자 신이 제도의 민심을 달래는 좋은 수단이었다.

눈부신 섬광이 하늘에서 연이어 번뜩였다. 폭발이 일 때마다 군중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졌다. 다양한 크기의 폭죽이 터질 때마다 각양각색의 불꽃이 터지며 장관을 이루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내 불꽃놀이에 쏠렸다. 대신들도 오랜만에 귀한 볼거리를 보며 즐거운 얼굴을 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하늘로 향한 사이, 군중들 사이에 있던 한 사내가 긴 대롱 같은 것을 꺼냈다.

그가 대롱을 꺼내자 그 옆에 있던 자가 넓적한 것을 꺼냈다. 몇몇이 그런 물건을 꺼냈다. 환한 불꽃이 펑하고 터짐과 동시에 그것들의 모습이 밝혀졌다. 검게 칠해진 이 물건들은 총의 일부였다.

그들은 능숙하게 사제 총을 조립했다. 제국 병기고에서 조달해온 부속으로 만든 총이라 조립은 비교적 간편했다. 일반적인 민간 사제 총처럼 구조가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선 자세로 불꽃놀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그늘 아래에서 총의 조립을 마쳤다. 장포로 벽을 만든 채 진행하는 일이라 그들의 일을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총의 조립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을 쥔 사내는 장포 아래에 그것을 감춘 채 ‘탄환은?’이라고 낮게 물었다.

그의 말에 다른 사내가 주머니에 있던 총탄 몇 발을 꺼냈다.

총탄은 신속하게 사내의 손으로 넘어갔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총탄을 능숙하게 사제 총 안으로 밀어 넣었다.

준비가 끝나자 그들은 천천히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움직였다. 시선을 끌지 않도록 주의하며 그들이 향한 곳은 관리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일행은 관리들이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도착한 다음 소맷자락에서 시계를 꺼냈다. 집 한 채 가격에 맞먹는 시계를 가졌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시간을 확인한 사내가 ‘기다리자’는 눈짓을 보냈다. 이번 일을 맡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모두 네 개의 조가 일을 맡았다.

이 조들의 임무는 총리대신과 호부대신 기영의 저격이었다.

제국의 권력자들을 저격하는 일이니만큼 실수가 있어선 안 되었다. ‘맡은 바’ 정확하게 임무를 다해야 했다.

사내들은 눈빛을 교환하고는 제 위치에 섰다. 저격을 맡을 사내가 알맞은 자리를 점하고 나머지는 총구가 대신들을 저격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았다.

숨 막히는 시간이 흘렀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사내의 품속에서 연신 들렸다. 사내가 다시 시계를 꺼냈을 때 지시받은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준비해.”

사내가 눈짓을 하자 그 앞에 서 있던 자들이 군중들을 밀치며 공간을 만들었다. 사내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자연스레 총구를 내밀었다. 그의 표적은 호부대신 기영이었다.

총리대신은 그 옆으로 총을 쏘고 호부대신은 그 머리와 가슴을 맞추어 즉사시키는 것이 이번 임무의 요체였다.

초침이 ‘딱’ 소리를 낸 순간 사내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때마침 천둥 같은 불꽃소리가 울린 바람에 총성이 덮였다. 총탄은 긴 막대를 따라 나아가며 일정한 방향성을 획득한 다음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방향으로 쭉 나아갔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 모두가 머리 위를 보고 있을 때 총탄이 호부대신 기영의 인중을 뚫고 들어가 그의 두뇌를 헤집었다.

이어 다른 조에서 쏜 총탄이 기영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연이은 총격에 기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자신의 자리에 축 늘어졌다.

다른 조들도 제 역할을 다했다. 그들이 쏜 총탄은 정확히 총리대신의 좌석 주변에 떨어졌다. 대신이 다치지 않으면서도, 그를 노렸음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위치에.

그들은 사격을 마치고 재빨리 총을 거두어 물러났다. 미리 체포되기로 약속된 자들이 그 자리에 남고, 나머지는 신속하게 뒤로 빠졌다. 체포되기로 한 자들도 감옥에서 바꿔치기될 예정이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들이 물러서고 몇 초 후에야 사람들 중 누군가가 기영의 이상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암살자다!”

그 외침은 파문이 되어 번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관료들이 앉아 있던 자리로 옮겨갔다. 그제야 병사들이 급히 관료들의 앞을 가렸다. 대신들은 급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인의 장막 속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당혹스런 빛을 감추지 못했다. 제국의 내정이 좋지 않다지만 제도 안에서 만큼은 달랐다. 제도 안의 주민들은 빈민들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유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제국의 통치에 불만을 품을 이유는 없었다. 한데 암살의 위협을 받다니?

역대 왕조들의 예만 봐도 이 일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제국의 내부가 곪아 백만 반란군이 일어났던 순 왕조만 해도 제도 안에서는 황제가 호위 없이 기루를 마음 편히 드나들 정도로 민심이 나쁘지 않았다. 다른 모든 곳이 반란으로 들끓어도 수도에서 만큼은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

관리들은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이 암살은 평범한 불순분자가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제도 안에서 무기를 들고 대신을 공격할 정도라면 이는 배후 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정치적인 사건인 셈이다.

그들은 축 늘어진 기영의 시체를 보고 침을 삼켰다.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볼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그 용의 선상에 오를 자들은 눈에 보였다. 바로 청림당이었다. 그들이 관련이 있건 없건 ‘명분’상으로 청림당을 몰아붙일 빌미 정도는 되었다.

정국의 주도권을 황실 보수파와 총리대신의 파당에서 확실히 장악할 기회인 것이다.

관리들은 암살이라는 표면상의 사건에서 권력의 향배를 읽었다. 향후 불어닥칠 폭풍은 단순한 암살의 차원을 넘어선 정쟁이 될 것을 그들은 예감하고 있었다. 이 폭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살아남을 것인지 그들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곧 관병들이 운하 변을 봉쇄하고 모여 있던 군중들을 하나하나 수색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두건을 쓰고 있던 자들 몇이 총기와 함께 잡혀 나왔다.

‘용의자’들이 체포되어 나오자 황실 보수파의 일원이자 이 행사장의 경호 책임을 맡은 귀족 사내가 몹시 불쾌한 얼굴로 명령했다.

“그놈들을 당장 감옥으로 압송하라. 내일 국문이 열릴 때 조정에서 심문할 수 있도록 실수 없이 이송해야 할 것이다. 알겠나?”

그의 명령에 병사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곧 병사들이 용의자들을 데리고 지나쳐갔다. 그들이 자신의 앞을 지나쳐간 순간 총리대신의 입가에 잠시간 싸늘한 미소가 맴돌았다.

정쟁은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주도권을 장악하는 자가 권좌를 차지하는 법이었다. 총리대신은 ‘풋내기’ 오승도의 세 확장을 이 기회에 확실히 꺾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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