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대국 (2)
경하 운하 변에 일어난 암살 사건으로 정국은 얼어붙었다. 암살의 배후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정 내에 매섭게 몰아쳤다.
암살자가 잡힌 관계로 배후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암살자들의 입에서 배후가 밝혀지리라 확신했다.
태후는 배후를 철저히 색출하기 위해 국문하기로 하고 죄인들을 궁성 안에 특별히 마련된 국문장으로 데려오게 했다. 이 자리에는 여러 조정 관료들을 모두 참석하게 했다.
만인이 인정할 수 있는 무대 위에서 각본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것이 황실 보수파의 생각이었다.
관료들이 국문장에 들어오자 형부의 관리가 죄인들을 데려오게 했다. 감옥에서 이송되어 온 죄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초췌한 얼굴에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을 잘 수 없도록 밤새 매질을 하고 괴롭힌 다음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을 먹여 그들은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비틀거리는 죄수들이 들어서자 형부의 관리가 눈짓을 해 그들을 매틀에 묶게 했다.
관료들은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죄수들이 모두 묶이자 형부의 관리가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의 신분을 말해라.”
“…….”
영문을 모른 채 끌려온 자들이 제대로 대답할 턱이 없다. 당장 여기에 왜 왔는지도 모르는 이들은 형부 관리의 물음에 멍청한 시선을 던졌다.
“이놈들이 실토를 할 생각이 없구나. 태형을 가하라!”
“예, 대인.”
형부 관리의 명을 받은 기술자가 나무 회초리를 들고 나왔다. 태형은 몇 대만 맞아도 사람의 살 껍질이 벗겨지는 무시무시한 형벌이었다.
오십 대를 맞으면 목숨이 위험하고 백 대를 넘기면 장사도 골골거리다 죽게 마련이었다.
형부 관리가 눈짓을 하자 기술자가 굵은 나무 회초리를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단 한 번의 짝 소리가 울렸음에도 살갗이 벗겨지며 끔찍한 상흔이 패였다.
“악!”
짤막한 비명이 그 뒤를 따랐다. 기술자는 연이어 넉 대를 더 후려쳤다. 태형을 맞은 사내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관리가 손을 들었다.
“네놈의 신분을 토설해라.”
“담미공 어른을 모시는 매현이라 합니다.”
사내가 신분을 밝혔다. 형부 관리는 그 대답에 만족스런 빛을 보이며 다른 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다음 놈도 다섯 대만 쳐라.”
기술자는 시킨 대로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형장에 묶여 왔던 죄인들 모두의 신분이 밝혀졌다. 그들은 청림당 관료들의 집에서 일하는 가솔들이었다. 죄인들의 신분이 밝혀지자 관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청림당이 암살을 꾸몄다고?”
“보이는 증좌는 확실하오. 사실이든 아니든 타격을 면하긴 어려울 거요.”
“일단 지켜봅시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이번 사안으로 청림당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인들의 생각처럼 분위기는 청림당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청림당 계열 관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거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고 있소.”
“정말 우리 쪽에서 꾸민 일이 아닌 건 확실하오?”
“황실과 고관대작들이 명분만 기다리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판에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잖소.”
관료들의 어수선한 목소리 속에 형부 관리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너희에게 이번 암살을 사주한 자들이 너희 주인들이 틀림없더냐?”
“암살이라니요.”
죄인들이 반문하자 형부 관리가 다시 눈짓을 했다. 기술자가 큼직한 나무 회초리를 들고 다가섰다. 없는 죄도 만드는 야만적인 재판이었다.
짝짝 소리와 함께 인간의 비명이 형장을 메아리쳤다. 기술자는 지시받은 대로 태형을 가할 때마다 도움닫기를 하며 체중을 실어 전력으로 불쌍한 희생자의 등을 내리쳤다.
처음 매를 맞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끔찍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 희생자의 등은 피부가 벗겨져 핏물이 줄줄 흘렀다.
형부 관리가 다시 손을 들어 까딱이자 다른 기술자 몇이 들어왔다. 그들은 사람 머리만한 통에 소금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미리 명령을 받은 대로 기절한 자의 등에 소금을 뿌린 다음 거칠거칠한 돼지가죽으로 사정없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크악!”
기절한 줄만 알았던 사내의 입에서 다시 비명이 터졌다. 기절한 인간의 정신도 되돌리는 것이 소금 찜질이었다. 상처에 들어간 소금은 쓰라린 수준을 넘어 불로 지지는 것 이상의 고통을 주었는데, 사람의 인성을 마비시킬 만큼의 통증을 준다고 알려져 있었다.
사내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던 형부 관리가 손을 들었다. 그제야 기술자들이 뒤로 물러섰다.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다.
형부 관리는 그런 죄인의 심중을 읽은 듯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물었다.
“다시 묻겠다. 암살을 사주한 것이 네 주인이냐? 그것만 토설하면 편하게 해주겠다.”
편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끔찍한 고통으로 무뎌진 사내의 입에서 자동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는 그 대답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도 몰랐다. 그저 이 고통만 면하고 싶었다.
“예,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죄인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자복한 것이다. 형부 관리는 그 대답을 들었냐는 듯 조정 관료들을 쓱 훑었다. 이것으로 청림당 인사의 암살 개입은 확인되었다.
하나가 자복하자 나머지의 자복도 쉬웠다. 그들은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철인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 평범한 인간들에 불과했다.
죄인들의 자복을 받아내자 형부 관리는 혐의(?)가 확인된 청림당 관리들에 대한 부분을 정리해 두었다.
차후 이들도 차례로 소환하여 심문을 가할 예정이었다. 혐의가 입증되고 자복도 끝났다. 암살자들은 현장에서 체포된 자들이었기에 더 심문할 것도 없었다.
형부 관리는 죄인들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로 했다. 국문장에서 죄인들에 대한 치죄까지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나 태후가 일의 처결을 맡긴 터라, 전례 없는 일이 가능해졌다.
“먼저 죄인 매현은 요참(허리를 작두로 잘라 죽이는 형벌로 그나마 관대한 처분에 해당) 형에 처한다.”
수도에서 내리는 형벌인 만큼 지나치게 과한 형을 내리기는 곤란했다. 이곳 북경에는 외국인들의 눈이 있었다. 신의 형벌에 대해 ‘야만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그들의 입을 적당한 수준에서 막으려면 ‘합리적인’ 수준의 형벌을 내리는 것이 좋았다.
형부 관리는 이어 나머지 죄인들에게 각각 활매(산 채로 땅에 묻는 형벌), 침하(물에 빠트려 죽임) 형을 내렸다. 이 형벌들 역시 기존의 대역 죄인들에게 적용하는 형벌과는 비교할 수 없이 관대했다.
일반적으로 대역 죄인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팽형(삶아 죽이는 형벌)이나 박피(산 채로 살가죽을 벗겨 죽이는 형벌), 능지(1,000번 이상의 칼질을 가해 죽이는 형벌), 오마분시(말을 달려 사람을 다섯 토막을 내는 형벌)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판결이 내려지자 죄인들이 국문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이 잘 짜인 연극을 감상한 관료들은 이번 사건으로 청림당이 확실히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명분상으로 주도권을 쥐게 될 황실 고위 관료들이 이 호재를 그냥 넘길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 생각은 정확했다. 국문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조정에는 숙청의 피 보라가 몰아쳤다.
이번 역모에 연루된 청림당 인사 몇은 물론이고 그들과 교류가 있는 이들까지 무더기로 걸려들었다.
황실 보수파는 이들의 관직을 모두 날려버리고 유배형을 내렸다. 그들에게 걸려든 인사들이 청림당의 중진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사건으로 청림당이 입은 손실은 상상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청림당의 성장세는 한풀 꺾이고 말았다. 오승도의 정치 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하려 한 황실 보수파의 공작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들은 이 선제공격으로 오승도가 제국 조정 내에 세를 갖추려는 시도를 잠시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시간 동안 강주의 위협을 억제할 군사력을 길러내면 강주라는 맹견에게 다시 목줄을 채울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애송이 관리사는 정치력 대결에서 아직 그들의 적수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잠시간의 승리를 만끽하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
제국 정부는 대내적으로는 역모 사건을 조작해 청림당의 도전을 물리치고, 대외적으로는 제국군을 재정비하여 서북 변경을 안정시킴으로써 떨어진 위신을 회복하고 통치 기강을 회복하려 했다. 강주와 같은 지방 세력들에게 제국의 힘을 과시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전략의 틀은 어느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북경에서 선공을 당한 오승도가 서북 변경에서는 제국을 앞질러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서찰을 보낸 사람이 누구요?”
국경 요새 사령관의 눈이 두건을 두른 사내를 향했다. 그를 찾아온 이 이방인은 실로 놀랄 만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그 정보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단단한 군인의 얼굴에서 표정을 끌어낼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여러분도 이름은 들어보신 분입니다. 강주 관리사 대인이십니다.”
“제국의 신성!”
군인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이 자리에서 들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던 이름이었다. 군인은 이방인이 신의 조정 관료 중 누군가의 심부름으로 온 것으로 여겼었다. 경쟁자의 실패를 바라는 누군가가 정보를 흘리는 것 정도로 추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정보를 건넨 자는 제국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풍, 강주 관리사다. 사령관은 정보의 무게를 새삼 무겁게 받아들이며 다시 물었다.
“그가 우리에게 정보를 준 이유는 알 수 있겠소?”
“그 답은 드린 서신의 뒷면에 쓰여 있습니다.”
이방인의 말에 사령관이 서신의 뒷면을 살폈다. 그곳에도 글자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그 대답’을 읽어 나갔다.
“루시 제국 요새 사령관 각하께.
귀하께서는 본인이 정보를 제공한 이유에 대해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쪽에서 거짓된 정보를 준 것이 아닌지 혹은 무슨 의도에서 정보를 준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 때문에 본관의 신분을 밝힌 것입니다.”
편지에서는 강주 관리사의 신분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없었다. 혹시나 이를 강주 관리사의 정치적 약점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조처로 보였다. 사령관은 이 동방 정치가가 매우 신중하다는 것을 스스로에 대한 호칭 하나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령관은 계속 시선을 내려갔다.
“물론 서찰로 밝힌 신분으로 신뢰를 확실히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직접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은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분 이야기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정보를 제공한 진의에 관해서입니다. 나는 제국이 이번 서북 변경 전역에서 고전하거나 혹은 패퇴하기를 바랍니다.”
사령관은 그 말에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국의 권력자란 사람이 자국의 패배를 원한다는 것.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신의 정세에 무지하다면.
다행히 사령관은 신의 동향에 대해 약간의 정보는 가지고 있었다. 강주의 권력자가 제국 조정에 적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정도는 말이다.
강주가 제국의 패배를 원하는 것도 무리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입장에서 나올 법한 말이었다.
“이를 통해 제국군이 가급적 오래 붙들려 있거나 혹은 세가 약화되는 것을 바랍니다. 루시의 입장에서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제국이 약화되는 만큼 광대한 중앙 초원 지대에 대해 영향력을 강화하고 제국 내륙으로의 진출이 용이해질 테니 말입니다.”
좀 더 많은 영토, 보다 많은 판도를 원하는 제국 차르의 욕망을 생각하면 대번에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였다. 물론 그 제안은 받아도 좋지만 여기까지는 루시가 얻을 것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언급한 것들은 루시가 자원을 투자했을 때 당연히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전부였다.
“루시 입장에서는 이 이익이야 지금이 아니라도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할 겁니다. 나 역시 그 입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리라 봅니다. 따라서 이쪽에서 좀 더 확실한 당근을 제시하겠습니다. 대신 제안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겠습니다. 제국군을 확실히 붙들어주고 그 목을 잡아 주십시오. 그리하면 초원지대는 귀국의 영역으로 넘기겠습니다. 그에 대한 보장은 이걸로 대신하겠습니다.”
사령관이 거기까지 읽자 이방인이 품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그가 주머니를 풀자 그 안에서 액수가 기입된 어음이 모습을 흐릿하게 보였다. 그 액수는 사령관이 평생을 일해도 벌 수 없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사령관은 그 돈을 보고 침을 삼켰다. 침이 넘어가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돈 없는 하급 귀족 출신의 사내가 언제 이만한 거금을 보았을까.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론디니움 은행에서 발행한 어음을 확인했다.
어음을 확인한 사령관은 승도의 이야기가 매력 있다고 느꼈다. 그는 이 놀라운 이야기로 생긴 땀을 이마에서 닦아내며 서찰을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이 제안은 정치적으로 사령관 각하 개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제국의 변경에서 영토의 확장에 성공한다. 그 위업이면 귀국의 차르께서 보시는 눈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더불어 본관 역시 귀하의 일을 도와드릴 겁니다. 그간 제한되어 온 국경 무역의 확대까지 말입니다. 그만한 공이라면 각하께서도 중앙 정계에 진출하실 만하지 않겠습니까?”
사령관은 거기까지 읽고 이 제안이 자신에게도 매우 이롭다는 것을 확신했다. 잃을 것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초원 부족에 대한 개입은 정치적으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사령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승도로부터 받은 정보를 초원 부족들에게 건네어 다가올 제국 군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좀 더 많은 지원을 초원 부족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포함되겠지만 말이다. 앉아서 몇 가지 일만 해주고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보나 다름없었다.
사령관이 득의만면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이방인 사내는 이 양코배기가 강주 관리사의 미끼에 걸렸음을 눈치챘다. 그는 오승도의 밀명을 받고 수천 리 길을 온 사촌 오경석이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릴 모양이군. 모든 것이 오 대인의 뜻 대로다.’
오경석은 이 한 수로 오승도가 유리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제국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정확했다.
오승도는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오경석이라는 장기짝을 움직였다. 그는 제국 정부가 회군을 재정비하여 초원 부족들을 제압하고 힘을 과시하는 한편, 연합왕국의 지지도 확고히 하려는 의도를 눈치챈 순간 이를 역이용하는 계획을 세웠다.
오승도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루시에 정보를 흘려 제국 군대를 서북 변경에 묶는 것이 첫 수순이었다. 이를 통해 제국이 루시의 남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열강에게 다시 한 번 인식시키는 것이 그 노림수였다.
연합왕국은 언제나 동방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루시의 남하 저지를 두고 있었기에 제국의 무력함을 안다면 그에 대한 대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오승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루시의 남하를 막을 유일한 대안이 된다면 그를 밀어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더불어 루시가 오승도와의 밀약에 따라 서북 변경까지 장악해주면 분위기는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남하하는 꼴을 보면 연합왕국에서 오승도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승도는 이 같은 심중의 계산을 가지고 루시에 제안을 걸었다. 이 제안을 통해 열강의 지지를 확실히 하고 외부 세계의 변수를 제거한다. 이것이 그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이었다.
두 번째로 외국에 영토를 빼앗기는 제국의 무능함을 보여주고 이 나라 정부에 희망이 없음을 인식시키는 것이 다음에 얻을 이익이었다.
정부가 대륙을 통치할 힘과 권위가 없음을 인식하면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나라를 지킬 새로운 구심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것이 제국을 통치할 정당성이요, 명분이 되어줄 것이다. 승도는 이것을 두 번째 이익으로 여겼다.
세 번째로 제국 군사력을 파멸시킴으로써 얻는 이익이다. 겨우 재건시킨 회군이 출병했다가 파멸하면 제국은 그야말로 끝장이다. 그 군사력의 공백은 강북을 무주공산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을 억눌린 민중이 보고 있을 턱이 없었다. 제국의 폭압에 지친 자들은 다시 반란의 깃발을 들 것이고, 자연히 오승도가 강북으로 진출할 명분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되면 자연스레 북경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돌 하나를 던져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것. 이것이 오승도가 오경석을 통해 얻으려는 이익이었다.
오경석은 그런 승도의 생각을 모두 통찰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큰 그림을 그리고 이런 수를 두었다는 것은 이해했다.
오경석이 답을 기다리고 있음을 안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좋소. 귀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사령관께서도 만족하실 만한 거래가 되실 겁니다.”
오경석은 미소를 지으며 양코배기가 내민 손을 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