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62화 (262/425)

제262화. 회군 출병 (1)

총리대신과 황실 보수파는 내부의 위협 세력인 청림당의 성장을 억제한 다음, 회군의 정비에 박차를 가했다. 청림당을 억누른 것은 일시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이 일로 이익을 제대로 누리려면 벌어 놓은 시간 동안 군비를 확실히 다져 제국 내의 질서를 확고히 하고 대내외에 통치 역량을 과시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그 희망을 새롭게 정비하는 회군에 걸었다. 회군은 천국 멸망 이후 제국 내에 단둘만 남은 신식 군대(하나는 상승군)로 제국군의 꽃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집단이었다. 이들이 할 수 없는 일은 제국의 다른 부대도 할 수 없었다(상승군은 빼고).

총리대신은 이 부대가 준비를 마치는 대로 제국 중부와 서북부의 도적(제국에서는 질서에 도전하는 정치 집단들도 통칭해 도적으로 칭했다. 천국을 월비로 호칭한 것이 그 예이다)들을 소탕하는 작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분명 여유만 충분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고 한 수 앞서 나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대는 그리 호락호락한 인간이 아니었다. 큰 그림을 그리며 대륙 전체를 바라보기는 마찬가지인 자였다.

그의 적은 제국 조정의 원대한 구상을 이해하자마자 그 밑그림에 자신의 붓으로 덧칠을 했다. 그 붓질이 더해지자 그림은 제국 정부를 파멸시킬 각본으로 바뀌었다. 그 파멸의 전주곡을 담은 전령이 북경으로 들어왔다.

그는 먼 서토, 초원으로부터 온 자였다. 그곳을 통치하는 제국 통치 권력의 정점, 주장대신이 보낸 서찰이 그의 품속에 있었다.

전령이 대전에 막 들어섰을 때 여러 고위 관료들은 회군의 준비 작업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옛말처럼 좋은 일과 불행한 일은 언제나 한 번에 찾아오는 법이었다. 그들이 승리의 마지막 순간을 내다보려던 찰나에 이미 불행의 씨앗이 불쑥 그 고개를 내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전령이 대전에 들자 환관이 큰 소리로 고했다. 조정 관료들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 전령이 무릎을 꿇고 서찰을 바쳤다. 환관은 그 서찰을 받아들고 태감에게 전했다.

독살의 위협을 고려하여 조정 대신이 직접 읽어보는 경우는 없었다. 서찰의 낭독은 언제나 태감의 입을 통해 이루어졌다.

태감이 서찰을 낭독했다.

“신 주장대신 한정원이 조정에 고합니다. 이곳 대막에 횡행하는 도적의 무리들이 날로 그 기세를 더하여 도시와 도시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고 녹주들이 고립된 것이 벌써 십주야가 지났습니다. 이를 기화로 곳곳의 부족들이 제국군의 무력함을 알고 들고일어나니 반적의 무리가 들불처럼 늘어 이곳은 이미 반란의 온상이나 진배없나이다. 신이 병마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코자 하였으나 적당들이 교활하고 날래어 그 그림자를 찾기도 버겁습니다. 대막은 넓고 지닌 군마는 한 줌이니 어찌 도적의 뿌리를 발본색원하겠습니까? 부디 지난날 성조께서 대막을 평정하며 보이신 전례를 따라 대병을 파병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 위력으로 대막의 도적 무리들을 굴복케 하여 천병(황제의 군대)의 위엄을 널리 보이시고, 제국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신은 조정의 명이 내려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황제 폐하의 성지와 위신을 지키기 위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주장대신의 서찰이 낭독되자 잠시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 당혹스런 빛이 감돌았다. 청림당의 인사 몇을 역모로 몰아 실각시키던 당시에 들어왔던 대막 정세 보고만 해도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대막의 정세가 이토록 흉흉해질 것이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장대신이 가진 군대는 결코 적지 않았고, 제국이 대막에 유지하고 있는 주요 도시와 요새들도 건재했다.

그렇기에 모두가 회군의 준비까지 여유를 가져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리 급박한 서찰이 오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주장대신의 서찰은 가급적 빠른 조처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도시와 도시 사이의 연결이 끊어졌다는 말은 외부의 식량 공급에 의존하는 제국의 ‘점’들이 고사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점들이 무너지면 점(도시)과 선(도로)에 의지해 대막을 통치하는 제국의 통치 근간이 와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면 대막은 제국의 판도에서 이탈하고 만다.

대막을 잃으면 조정의 위신 실추는 말할 것도 없고 열강에서도 제국의 대륙 통치 역량을 미심쩍은 눈으로 볼 것이다. 그리되면 제국 정부가 그린 원대한 그림은 끝이다.

“대막의 정세가 그리 안 좋다면 조속히 군대를 보내야지 않겠습니까?”

침묵을 지키던 대신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조정의 거두 중 하나인 위해충이었다. 그는 암묵적으로 청림당을 대변하며 그 영수 노릇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정부의 화제를 청림당 사건에서 대막 문제로 돌림으로써 당을 보호하려는 속셈을 내비쳤다.

“그건 곤란한 문제요. 회군은 준비되지 않았고 섣부른 군사 행동은 재정 파탄과 위신 실추를 초래할 뿐이요.”

황실 보수파를 대변하는 대신 하나가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자 위해충이 다시 그 말을 받고 나섰다.

“하면 도적들이 조정의 권위와 폐하의 성지에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을 묵과하는 것은 위신을 떨어트리는 일이 아니란 거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 않소이까?”

위해충은 다른 이들을 보며 동의를 구하듯 말을 이었다.

“제국의 위신은 성조께서 보여주신 것과 같은 단호하고 신속한 군사 행동을 통해 반석에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질질 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입니까? 회군이 준비되는 만큼 대막의 도적들은 더 강성해질 것이요, 북적이 개입할 시간만 늘려줄 것입니다. 시간은 꼭 우리 편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위해충의 주장에 여러 대신들도 수긍의 빛을 보였다. 임경문도 앞으로 나섰다.

“노신의 생각에도 조속한 조처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문제는 시일을 끌어 좋을 것이 없다 여겨집니다. 우리가 하루를 지체하는 만큼 도적들을 토벌하는 것은 더 힘들어지게 마련입니다.”

군의 출병에 찬성하는 대신들이 하나둘 늘자 총리대신도 신중하게 이 건을 생각해 보았다. 정략적인 부분에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일이지만 대국적인 차원에서는 고려해보아야 할 부분이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군대를 보내는 것은 문제이나 도적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도 문제가 되긴 마찬가지였다. 도적들이 생각지도 못한 강성함을 이른 시기에 보여준 것이 문제의 원인이지만, 이미 벌어진 결과였다. 상황이 변한 이상 만반의 준비를 기다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려웠다.

공연히 시간을 끌다가 대막의 지배권이라도 상실하는 날에는 열강에서 제국 정부의 존립에 의혹의 시선을 보낼 가능성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대막을 잃음은 제국 군사력과 통치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성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계를 보인 정부는 언제나 도전을 허용하게 마련이었다. 그 도전을 감당하기에 제국 정부의 힘은 이미 고갈되어 있었다. 가능한 한 빨리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주장은 지극히 타당했다.

‘하지만.’

총리대신은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바뀐 이 밑그림은 ‘누군가’에게 지나치리만큼 유리한 판이었다.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잘 차린 밥상을 그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도록 짜인 각본.

총리대신은 알 수 없는 흐름 속에 자신이 그물에 걸려들었다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도 좋을 것은 없었다. 정치가에게 필요한 덕목에는 ‘신중함’도 있었지만 ‘결단력’이란 것도 있었다.

필요한 순간에 우선순위를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는 그 결단력이 없다면 정치는 할 수 없었다. 총리대신은 짧은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사이에도 대신들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그만.”

총리대신이 제지했다. 그의 발언에 논쟁을 지켜보던 태후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실 보수파와 파벌의 지지를 가진 제국 조정 최고 권력자의 목소리는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렸음을 인지하며 말을 이었다.

“여러 대신들의 고견은 충분히 알겠소. 대막 문제에 손을 쓰자는 분들도,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들의 말씀도 일리는 있소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총리대신의 입에서 이 문제의 결정이 곧 나온다. 대신들은 그가 어느 의견에 힘을 실어줄지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회군을 출병시켜 황제 폐하의 성지를 회복하고 법도를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는 것이 제국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필요한 최선의 조처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회군을 보내자는 말이요?”

태후가 물었다. 그녀는 일전에 총리대신과 ‘제국의 장래’에 대한 구상을 나누며 충분히 전력을 갖춘 회군으로 대막을 평정하자는 말을 들었다. 갑작스럽게 총리대신이 입장을 선회하자 그것이 그의 진심인지 한 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준비가 된 군대로 가는 것이 정석 아니요?”

“그렇긴 하오나 작금의 상황은 다소 급박하옵니다.”

총리대신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급박’하다는 말에 태후는 비로소 사정이 달라졌기에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뜻을 읽었다.

태후를 납득시킨 총리대신은 입맛을 다시며 조정대신들을 보았다. 최초에 구상을 할 때는 전혀 그리지도 않았던 부분, 회군의 조기 출병을 결정할 시간이었다.

***

오승도의 하루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일정한 업무 시간과 식사, 그리고 휴식 시간.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그 자리에 앉혀 놓아야 견딜 법한 톱니바퀴 같은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 본인은 그 생활을 잘 견뎌냈다. 권력을 누린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에 구속된 삶을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을 감내할 만큼 권력은 달콤했다.

권력은 그 어떤 마약보다 강한 쾌락을 주었다. 말 한마디로 인간을 자신의 뜻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 그보다 더한 재미를 주는 것은 지상에 달리 없었다.

물론 그도 사람이었기에 이 꽉 막힌 생활에 싫증을 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평범한 상인의 차림을 하고 호위 몇을 거느린 채 도시를 돌아보기도 했다.

이날 승도는 상경의 저자거리로 나와 잠시간의 갑갑함을 해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모처럼 주어진 이 휴식을 달콤하게 채우기 위해 평범한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물론 그들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승도는 밀가루로 분칠을 했다. 다소 격이 떨어져 보이긴 했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쌉니다, 싸요. 건어물 하나에 세 푼만 줍쇼.”

시전을 돌다보면 이런저런 장사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승도는 전란의 여파에서 금세 회복된 시장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은비에게 줄 적당한 노리개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무얼 드릴까요?”

승도의 걸음은 노리개를 파는 상인 앞에서 멈추었다. 상인은 여성들의 장신구를 취급하는 자답게 언변이 사근사근하고 얼굴 표정이 부드러웠다.

“내자에게 줄 노리개가 필요합니다.”

“아, 그거라면 이게 어떨까요?”

상인은 질 좋은 옥을 깎아 만든 노리개를 내밀었다. 하늘을 닮은 청아한 빛이 몹시 인상적인 노리개였다. 승도는 잠시 그것을 보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는지 고개를 저었다.

“다른 것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상인이 천천히 보라는 듯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물러났다. 승도는 노리개를 하나씩 주의 깊게 살피다 상인에게 물었다.

“전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시전이 이만큼 번성하다니. 이곳에 모인 상인들은 강상 사람들이던가요?”

그의 물음에 노리개를 팔던 노점상이 웃으며 대답했다.

“강상은 몇 되지 않습니다. 지난 전쟁으로 역적으로 내몰려 파산한 자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행상에 줄을 댄 상인들입니다. 물론 강상 출신들이 많긴 하지만 말입니다.”

승도는 노점상 상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비 모양의 장신구를 가리켰다.

“저게 좋겠군요.”

나비 모양의 장신구는 은비의 흑단처럼 긴 머리카락에 잘 어울릴 듯싶었다. 그의 선택에 상인이 잘 골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잘 나가는 물건입니다. 상경에 있는 관리들이라면 하나 정도는 사간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입지요.”

승도는 웃으며 호위에게 눈짓을 했다. 그에 호위가 주머니를 꺼내 값을 지불했다. 그가 장신구를 보고 있는데 시전 저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승도가 고개를 돌리자 상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또 빌어먹을 고리대업자 놈이 설치는 모양입니다.”

“고리대업자라니요?”

상인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기 설치는 유협(건달) 놈들은 고리대업자 요대라는 놈의 수하들입니다. 월비들이 상경을 접수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시전에서 돈놀이를 하던 작자였습지요. 그러다 월비들이 이곳을 접수하면서 요대가 피난을 떠났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월비가 무너지고 돌아오자마자 이 요대가 그간 내지 못한 이자를 모두 쳐서 내놓으라고 말한 겁니다. 그것도 이자를 내지 못했으니 ‘계약’에 정한 대로 곱절로 말입니다.”

“곱절로 몇 년 분의 이자를 받아낸다면 이곳 사람들은 모두 줄도산을 하겠군요.”

“맞습니다. 요대란 놈도 그걸 모르진 않을 겁니다. 그 큰돈을 누가 마련하겠습니까? 다들 급전을 잠시 써서 한 달에 일 할의 이자와 함께 빨리 갚아가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상인은 요대라는 자가 얼마나 포악한지에 대해 늘어놓았다. 승도는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시전 저쪽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지켜보았다.

요대의 수하라고 하는 유협들이 가게를 발로 차 부수며 소리를 질렀다.

“누군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나. 요 대인의 돈을 이 년이나 공짜로 먹었으면 이젠 갚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응?”

“그야 요 대인께서 피난을 가셔서.”

“그럼 찾아와서 갚아야지. 요 대인이 당신네들한테 돈을 받으러 여기까지 돌아왔어야 된단 말이야? 응?”

유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큰돈을 빌리지 않는 이상 언제나 목소리가 커지는 쪽은 채권자이다. 상인은 절절매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우리 요 대인은 은혜로우시다, 이 말이야. 당신네 사정을 이해하시고 담보 하나만 받고 기한을 기다려 주시겠다고 했잖아.”

“그, 그건.”

“어차피 때 되면 출가외인 될 딸년, 요 대인께 잠시 맡겨둔다고 생각하면 독촉도 받지 않고 요 대인도 마음 편히 기다리실 수 있고, 서로가 얼마나 편하고 좋아. 안 그래?”

“제, 제발. 딸은 안 됩니다.”

“영감, 우리 요 대인의 배려를 자꾸 무시하면 우리도 좋게 끝낼 생각이 없어요.”

“제발. 사정 좀 봐주십시오.”

늙은 상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승도는 그 모습을 보다 장신구 상인에게 물었다.

“요대라는 자가 저 상인의 딸을 담보로 달라는 건 무슨 소립니까?”

“요대라는 자가 여색을 몹시 밝혀 거느린 처첩만 육십이 넘습니다. 그는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면 그 딸을 담보로 잡아끌고 가는데, 그렇게 해서 그의 처첩이 된 여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 시전 상인들 중에 담보가 잡힌 이들 중에 벌써 딸을 뺏긴 사람이 열이 넘습니다. 저 상인도 곧 그리될 것입니다.”

“저런.”

승도는 혀를 찼다. 그가 딱히 도덕에 구속되는 인간은 아니지만 저 정도로 상도덕이 없는 악덕한 수단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행위는 혐오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상이라 해도 ‘최소한의 자존심’은 언제나 지켜왔다고 자부했다.

저런 저질스런 행위로 상인의 품위를 떨어트리는 일은 눈에 밟힐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뒤늦게 여자가 달려와 늙은 상인의 앞을 막아섰다. 그것을 본 불한당들이 희죽거리더니 그녀에게 손을 가져갔다.

그때 호위가 승도에게 물었다.

“대인, 대인의 땅에서 불경을 범하는 자입니다. 제가 손을 써도 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있으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악법도 법이란 말이 있었다.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일을 권력으로 밟아 버린다면, 상인들 사이의 일에 관이 개입하는 선례를 만들게 마련이었다.

그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몰라도 다른 일에서 관이 개입하는 일은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아니요. 내버려 두세요.”

승도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는 평범한 인간의 도덕률로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권력자였고 그의 행동은 무거운 의미를 가졌다. 그 행동은 언제나 신중한 고민을 거친 후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린 시절, 상인의 몸으로 지내던 때처럼 즉흥적인 기분으로 결정해선 안 되었다.

승도는 잠시나마 들떴던 기분이 사그라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여자를 질질 끌고 가는 불한당들을 보았다. 그러고는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 발길을 돌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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