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4화. 회군 출병 (3)
어리석은 자는 과오를 되풀이한다. 역사에서 수도 없이 증명된 일이다. 제국 정부도 그 전철을 밟으려 했다. 그들은 신의 초기 황제들이 대막으로 전쟁을 하러 가며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까맣게 잊었다.
강력한 신무기와 잘 훈련된 군대라면 어렵지 않게 승리할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국군은 잘 훈련된 군대가 아니었고 대막의 전쟁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가장 성공적인 대막 정벌을 이끌었던 성조의 경우에도 자그마치 이십 년에 걸쳐 유목민들의 분열을 획책하고, 그들을 공략할 거점과 보급선을 다지며 기다렸다.
한두 해도 아니고 수십 년의 인내를 들여 준비하는 것이 대막 원정이다. 아무리 신무기가 있다 해도 불충분한 준비만으로 간단히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전쟁.
제국은 그런 장대한 일을 준비도 하지 않고 섣부르게 시작했다.
회군은 조정의 명을 받들어 주둔지로부터 수천 리 장도에 올랐다. 그들의 여정은 곧 강주 관리사의 귀로 속속 들어왔다. 먼 북경의 일은 시간차로 적시에 파악하지 못하는 승도였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움직이는 군의 이동을 모를 수는 없었다.
‘회군이 출발했다.’
승도는 그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좋은 준마 몇 필을 준비하게 했다. 그는 수행원들과 함께 말을 달려 대하 변으로 달려갔다. 강 건너편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군의 주둔지가 있었다.
유사시 상승군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위치였다. 그 진지가 텅 비어 있었다. 승도는 그 진지를 보다 망원경을 내렸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신 것을 감축 드립니다.”
긴 머리를 늘어트린 서역 처녀가 말했다. 그녀의 푸른 눈은 회군의 주둔지에 못 박혀 있었다.
승도는 그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변수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를 일. 제국을 도모함에 있어 돌다리를 두드리는 신중함으로 상황을 주시하지 않으면 대업은 실패로 돌아가기 쉬운 법입니다.”
승도가 자신의 서역 고문(?)과 강변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말 한 필이 이쪽을 향해 곧장 달려왔다. 이내 말에서 사내 하나가 훌쩍 뛰어내리더니 승도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대인을 뵙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예, 대인. 북경에서 서신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어디.”
승도는 북경에서 온 서신을 펼쳤다. 그러곤 그 서신을 읽다 표정을 굳혔다. 어찌나 그 낯빛이 차갑고 입술을 앙다물었는지 붙임성이 나쁘지 않은 엘리자베스도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승도가 겨우 입을 열었다.
“조정의 능구렁이에게 한 방 먹었군요.”
승도가 받은 서신에는 그간 북경에서 있었던 일의 전말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청림당의 역모(?)와 그에 이어진 당 중진들의 유배에 관련된 사안 말이다. 역모 조작 정도야 정치적 암투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그를 짜증나게 한 것은 이 사건 자체를 꾸민 것이 제국의 주요 권력 기관들이었다는 데 있었다. 북경의 암흑가를 통해 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게 한 건문의 조처로 그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조정의 형부와 금군, 병기창, 감옥. 그야말로 사용할 패는 죄다 동원해서 일격을 가했다. 정말이지 나라꼴이 우습군.’
승도는 겨우 가슴을 진정시켰다. 권력 기관들이 나서서 없는 사건을 만들어 조작한 것도 우스웠지만, 암흑가에 꼬리가 밟힐 만큼 그 내부가 썩어 문드러졌다는 것은 더 어이가 없었다. 이런 허술한(?) 자들에게 한 방 먹었다는 것. 그것이 그를 진정 화나게 한 이유인지도 몰랐다.
승도가 서신을 구겨버리자 엘리자베스가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북경에서 일이라도 있으신지.”
“구렁이가 선수를 쳤군요. 추잡한 수단으로.”
관리사는 구겨버린 서신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구렁이가 움직였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승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북경의 장기짝들은 소모품입니다. 얼마가 상하든 대체할 말은 얼마든지 있지요. 상대는 우리 살점을 한 점 잘라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도는 선수를 당하긴 했어도 자신이 훨씬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경석이란 말을 움직여 제국 정부가 그린 밑그림을 다른 색깔로 바꾼 이상, 그의 패배는 있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제국 정부가 서서히 몰락하며 그에게 대권을 내어줄 기회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승도는 회군의 주둔지에 등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수행원들이 따라붙었다.
“참.”
그가 다시 말을 꺼내자 엘리자베스가 얼른 그의 얼굴을 보았다. 서기가 그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자 그 입에서 말이 이어졌다.
“우리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제국을 먹을 준비 말입니다.”
승도는 제국이 대막 원정이라는 도박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 자신했다. 그 패배는 제국의 내정에 파탄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힘의 결집체가 무너진 순간, 무력 하나에 의지해 버티던 정부의 통제력이 와해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리고 들불처럼 일어날 반군을 구실로 대하를 건너 북경으로 진공한다. 그 과정에서 그 앞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지기반을 스스로 갉아먹은 정부에 충성하려는 자들은 드물 것이고, 반군도 오승도의 선전에 투항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강북을 제압하고 북경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의 권력은 단단해지고 그 입지는 반석에 오른다. 그다음은?
‘껍데기뿐인 정부만 남겨두고 실권을 내가 장악한다.’
승도는 제국 정부를 제거하는 무리수를 둘 생각은 없었다. 과거 역사만 보아도 무리수를 둔 자들의 끝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는 잘 드러나 있었다. 강압으로 정권을 탈취한 자들은 그 예를 본 수하들에 의해 권좌를 도로 내주기 일쑤였다.
승도 자신만 하더라도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권좌를 지켜냈지만, 그 과정에서 전 왕실과 왕족들의 피를 너무 흘리게 했다. 그 참혹성은 이웃 국가들의 반감을 사 타협할 수 없는 전쟁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그 몰락의 원인 중 하나라면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권력에서 직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황제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어도 그 실권이 신하에게 있다면 일개 관료만도 못 했다. 언제 실질적인 1인자에게 제거 당할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기 때문이다.
권력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직함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부릴 수 있느냐. 그것이 전부였다. 승도는 황제의 자리에 머물며 그 사실을 깨우쳤고,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황제가 아니라 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 자리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도 그가 하려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었다.
“상승군을 준비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래야지요. 정의군도.”
승도는 상승군만 가지고 강북을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한된 군세로는 광대한 지역을 장악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강남에서 그가 세를 부식할 때에는 지역 단련들과 행상의 힘을 빌려 제한된 상승군의 결점을 보충했었다. 하지만 그가 북벌에 나선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가 북벌에 나선다면 조정의 명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행동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당연히 단련의 도움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행상 또한 강북에는 별 기반이 없었다. 완전한 적지인 셈이다.
적지를 아군의 영토로 만들려면 깃발을 박고 치안을 장악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런 절차를 밟지 않으면 홀로 머나먼 타지로 올라갈 상승군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승도는 그 위험을 간과하지 않았기에 정의군도 준비할 생각을 했다. 정의군은 전투에 동원되지는 않지만 상승군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의 치안 유지 및 보급 지원을 담당해야 했다. 그들이 뒤를 든든히 받쳐주어야 북벌은 성공할 수 있었다.
“모든 지휘관들에게 기별을 보내셔야 되겠군요.”
“그래야지요.”
승도는 서역 처녀의 말에 대답하며 자신의 말안장을 잡았다. 제위에 오른 다음에는 체중이 불어 혼자서 말에 오르는 것도 꽤 힘들었지만 지금의 그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승도는 말에 훌쩍 오르며 자신이 대륙을 도모하기에 지나치게 젊은 권력자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거야 아무래도 좋은 허울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양이야 어떠하든 그의 힘은 대륙을 도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강주의 거인은 회군의 출병 소식과 동시에 그의 패를 준비했다.
승도는 수행원들이 말에 오른 것을 확인하고는 힘차게 말의 배를 걷어찼다. 제국을 도모하려는 야심가의 마지막 일보가 지면을 떠났다.
***
북경의 모처에 마련된 작은 장원. 그 밀실에 세 명의 사내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대인께서 모든 사실 관계를 파악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당한 조처를 취해주실 겁니다. 하니 아무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촛불 너머에 있는 남자의 말에 나머지 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둘은 청림당에 적을 두고 있는 신진 관료들로 그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오승도의 심복을 만나러 온 차였다.
청림당의 영수 역할을 맡는 위해충의 말은 아무래도 미덥지 않았던지 그들은 구태여 건문을 만나보려 했다. 같은 말이라도 강주 관리사의 심복으로부터 들으면 마음이 더 안심되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대인의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
“오 대인께서 정말 보호해 주시는 것은 확실하겠지요?”
“물론입니다. 강주 관리사께서 계시는 한, 조정에서 청림당에 더 이상 손은 대기 어려울 겁니다. 손을 더 댄다면 대인께서도 가만히 계시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은 건문의 대답에 만족했다. 건문은 그들을 돌려보내며 쯧쯧 혀를 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도 신물이 났다.
하지만 이 일은 결코 게을리할 수 없었다. 오승도의 지지 세력들이 겁을 먹지 않도록 다독여 주어야 그 구심점을 잃지 않고 조정에서 한자리를 지킬 수 있어서다.
변변찮은 자들이지만 이들이 있어야 오승도의 입장을 대변하기에 좋았다. 북경의 정계에 이미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 강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세력의 와해는 투자비의 손실을 의미했다.
건문은 승도에게 그런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건문이 손님들을 배웅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 자리에는 다른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 사내는 옆방에서 손님들이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자였다.
사내는 건문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도 손님들이 많이 드나드시는군요.”
“총리대신 덕분이지.”
건문은 사내의 말에 가벼이 대꾸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 사내는 청운방에서 주기적으로 그에게 보내오는 연락책이었다. 조정 대신들의 뒷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그들의 일로, 일전의 청림당 사건 전말 조사도 이들이 한 것이었다.
건문은 의자에 몸을 묻고는 그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무슨 건을 가지고 왔나?”
“총리대신의 저택에 연합왕국 공사가 방문했더군요.”
“왕국 공사가?”
건문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님을 직감하고 주의를 기울였다. 사내는 정확한 발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 어제저녁에 총리대신의 자택 주변을 감시하던 우리 아이들이 그 대문 앞에서 왕국의 깃발이 달린 마차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 북경에서 왕국 깃발을 단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공사 한 사람뿐이지요.”
“공사가 총리대신과 밀담을 나누었단 말인가?”
“그것까지는 우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긴 그도 그렇군.”
하지만 그들이 만났다는 사실 자체도 상당한 정보였다. 회군이 서북 변경으로 움직인 이 시점에서 그들이 만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건문은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보았다.
먼저, 총리대신이 오승도의 위협을 고려해 보험을 들어놓았을 경우를 생각할 수 있었다. 대막으로 군대를 보낸 사이에 오승도가 반기라도 들면 신은 회군을 되돌려 북경을 지켜야 했는데, 그리되면 북적의 초원 장악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북적의 남하를 가장 두려워하는 연합왕국의 생리에 익숙해진 총리대신이라면 그 점을 이용해 안전보장을 받아냈을 수 있었다. 회군이 돌아올 때까지 강주를 억제해 달라는.
그런 류의 이야기라면 그들이 만날 법도 했다. 강주의 입장에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실이라면 그 역시 공사를 찾아 손을 쓸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 경우의 수라면 이번 원정에 대한 연합왕국의 협조를 구하는 일을 들 수 있었다. 제국군은 한창 정비를 하던 상태에서 뜻하지 않은 원정을 시작하게 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모든 부분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탄약은 제대로 보충되지도 않았고, 왕국에 구매 의뢰를 넣은 대포는 도착하지도 않았다. 병사들을 위해 구매하기로 한 군복과 신발도 아직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제국 정부에서는 이 물자들이 가능한 한 빨리 지원될 수 있도록 공사의 협조를 요청할 만했다.
세 번째 경우의 수는 차관 문제일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그만큼 들어가는 돈도 천문학적으로 늘게 마련이었다. 아편 수매로 군비에 들어갈 돈은 마련했다 해도 제국 정부는 전쟁을 치를 돈은 아직 비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돈을 연합왕국에 빌려 급한 불을 끄려는 의도에서 공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 아니면 이 세 가지 경우의 수 전부이거나.
건문은 연합왕국이 이 사안에 끼면 강주에 상당히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사내와 이야기를 마치고는 겉옷을 걸치고 장원을 나섰다.
그는 곧장 호부대신 위해충을 만나러 갔다. 강주의 서기 신분인 그가 공사를 만나려 해도 그 얼굴을 보기는 쉽지 않으니, 호부대신을 통해 공사를 만나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위해충은 건문의 이야기를 듣고 사정이 다소 급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기꺼이 이 일에 힘을 빌려주었다. 이미 총리대신의 눈 밖에 난 그로서는 청림당과 오승도가 보다 탄탄한 입지를 갖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위해충의 주선으로 건문은 연합왕국 공사 하워드를 만나볼 수 있었다. 공사를 만난 곳은 북경 공사관의 응접실이었다. 건문은 그곳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중후한 인상을 가진 노련한 외교관을 만났다.
“만나서 반갑소.”
공사는 자신을 만나려 한 자가 오승도의 심복이란 사실을 알고 절제된 어조로 인사를 건넸다.
건문도 그에게 가볍게 예를 표시했다. 둘은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이야기를 꺼냈다.
차를 마시는 허례도 생략했다. 말문을 먼저 연 것은 공사 쪽이었다.
“강주에서 나를 만나보려 한다니 뜻밖이오. 뭔가 나를 만나야 할 급한 사정이라도 생긴 거요?”
건문은 그 물음에 단도직입적으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각하께서 총리대신 각하와 만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남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정보가 빠르군.”
하워드는 강주가 어느새 북경에도 정보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물론 이 대답은 건문이 의도한 것이었다. 강주의 역량을 과시함으로써 그들의 상대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였다.
“정보는 곧 돈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요. 돈이 곧 정보이고 권력이지.”
하워드는 수긍하며 수염을 매만졌다. 강주가 가진 힘의 원천은 행상이 가진 가공할 경제력이었다. 그 돈의 힘으로 상승군을 키웠고, 상승군을 통해 강남을 제패했다. 돈은 강주의 기반이요, 권력의 원천이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강주는 이 대륙에서 가장 강성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이 호랑이가 되어가는 제국 정부와 달리 말입니다.”
“제국 정부가 종이 호랑이라. 그들에겐 아직 회군이 남아 있소.”
“지금은 남아 있지요, 지금은.”
건문의 대꾸에 하워드가 피식 웃었다. 그 대답은 회군이 파멸할 것이라는 것처럼 들렸다.
“회군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이란 말이요?”
“왕국에서 손을 쓰지 않으면 그리되겠지요.”
“그 말씀을 들으니 손을 쓰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그리 생각하신다면.”
건문은 공사의 말을 잘랐다.
“각하와 연합왕국은 호의를 얻을 수 있었던 강주를 잃게 될 겁니다. 왕국이 종이 호랑이인 제국을 우방으로 얻은 대신, 로망스가 강주를 우방으로 갖게 될 겁니다.”
“재미있는 협박이군. 그런 이야기로 왕국의 외교에 영향을 줄 것 같소?”
“모든 것이 이익으로 결정되는 나라가 연합왕국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익에 영향을 준다면.”
건문이 잠시 말을 끊었다. 하워드는 자신을 향해 대담한 발언을 하려는 자의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응시했다.
“외교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달라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도발적인 물음에 하워드가 피식 웃었다. 그는 이미 몇 주 전에 강주의 성장과 관련해 그들을 적이 아닌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태도를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상대가 이렇게 찾아와 이야기를 꺼내니 그도 결정을 내리기가 한결 편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오. 이익만 보장된다면 더한 것도 달라질 수 있지. 그래서 제국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면 강주는 우리에게 무얼 약속할 수 있소?”
“강주의 호의입니다.”
하워드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