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6화. 폭풍전야 (2)
제국의 통치 질서는 실로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무너져오고 있었다. 관리의 부패와 거듭된 천재지변, 황제의 무능함이 겹쳐진 결과였다. 거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서역의 존재였다.
압도적인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서역과의 경제 전쟁은 제국의 경제를 결정적인 내리막길로 내몰았다.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전쟁 이전부터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나름의 생존 방향을 모색한 강주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열강의 경제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었다. 조정은 열강의 차관에 짓눌려 있었고, 지방은 외국의 상품(아편 등)이 들어와 제국의 화폐를 무제한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겨우 유지한 제국의 군사력이었다. 제국민들의 피눈물로 만들어진 군비로 이루어진 회군. 그들의 존재에 기대 제국은 겨우 연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군대가 쓰러지는 순간 제국의 권위도 동시에 무너진다. 회군이 곧 제국이었고, 제국이 곧 회군이었다.
회군은 그 무거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 싸움은 쉬울 턱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대막으로 ‘가는 것’이었다.
회군의 지휘관들은 바로 이 난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물론 중원에서의 이동에서는 몇 가지 이점을 누릴 수는 있었다. 거미줄처럼 뻗은 운하의 도움을 받아 물자와 병사들을 옮길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운하는 중원의 중서부까지 뻗어 있을 뿐, 옥문 관까지 이어져 있지는 않았다. 전적으로 그곳에서부터의 이동은 병사들의 발과 동물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 부분을 놓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조께서 원정을 하실 적에 2만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가축 20만 두를 대막으로 끌고 가셨다. 우리 회군도 모든 병력을 가지고 가자면 그 정도의 가축은 몰고 가야 하는데.”
하지만 그만한 가축을 징발하는 것은 무리였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백성들에게서 그 많은 가축을 징발하려 했다간 새로운 반란의 씨앗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주고 산다고 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 한 지역에서 수천, 수만 두씩 사들이면 자연히 그 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었다. 가격이 폭등하면 당연히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게 마련. 징발이나 다를 바 없는 피해를 백성에게 끼칠 수밖에 없었다.
군사 작전은 이런 이유 때문에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백성들을 피로하게 한다고 할 수 있었다.
홍적은 머리를 긁적이다 선실로 나왔다. 사령관이 밖으로 나오자 군관들이 그에게 예를 표했다. 그는 그에 가볍게 응대하고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운하의 폭이 좁은 구간이라 노를 쓰기 어려워 병사들이 하선한 채 양쪽에서 줄로 배를 당기고 있었다. 걷는 속도나 다름없는 느린 이동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던가?”
“변주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옥문 관까지 가려면 수천 리는 족히 더 가야 합니다.”
“딴은 그렇겠군.”
홍적은 한숨을 내쉬며 서역에서 들여온 회중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어느덧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군관들에게 신호를 보내 병사들을 잠시 쉬게 하고 주먹밥이라도 먹여주라고 말했다.
사령관의 지시 덕분에 병사들은 줄을 끌던 몸을 잠시 멈추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부대에서 지급한 주먹밥을 받았다. 소금 간이 된 짭짤한 밥을 먹고 더러운 운하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식사였다.
병사들은 주먹밥을 가능한 천천히 씹으며 이번 전쟁에 대해 떠들었다.
“빌어먹을. 변방의 야만인들이 따로 살겠다는데 그걸 왜 우리가 가서 손을 써야 하나?”
“황제 폐하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니 우리가 가야지.”
“그 존엄을 지켜드리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어차피 그곳을 잃어봐야 황제 폐하의 수입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던가? 오히려 쓰시는 돈이 적게 나가서 좋을 일이지.”
병사들은 이번 반란 진압을 기존 반적 진압과 다른 맥락에서 보았다. 중원에서 일어난 반란이야 당연히 진압해야 할 일로 여겼지만 옥문 관 바깥의 일은 ‘외국’의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옥문 관 바깥은 전통적인 중원의 범위 너머였다. 거기에 별로 풍요롭지도 않은 황량한 땅이었다. 가봐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 고향에서 수천 리나 떨어진 이역만리의 땅이니 그들이 별개로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야만인들은 따로 살아도 될 일이야. 괜스레 그자들을 잡겠다고 우리가 중원을 비웠다가 오씨가 천하라도 넘보면 어찌 되겠나?”
“그도 그럴 법한 말이야.”
병사들은 강남을 차지한 오승도가 장차 제도까지 넘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인식은 민간에도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오승도가 야심가라고 생각해서 그리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치세를 한다고 알려진 그가 제국을 대체해 주기를 바라는 바람에서 만들어진 풍문이었다.
“그럼 정말 오씨가 우리가 자리를 비운 틈에 천하를 도모할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천하 인들이 보고 있는데 어찌 천한 상인이 황위를 넘보려 하겠나?”
“황위는 무리라도 제국의 실권 정도는 노릴 수 있지 않나? 과거의 반역자들처럼 말이지.”
병사들은 주먹밥을 씹으며 오승도의 역모 가능성을 떠들었다.
“명분이 없이는 불가능하지. 황족의 혈통도 아닌 자가 군대를 어찌 함부로 일으키겠나?”
“그리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명분이야 만들어 붙이면 그만 아닌가?”
병사 하나가 말했다. 역대 역적들이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거병하며 가져다 붙인 명분들을 볼작시면 그 말도 그른 것은 아니었다.
가장 단순무식한 반역자였던 포공은 정말이지 단순한 명분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그 단순한 격문을 생각하면 명분이란 것은 생각보다 단순할 수도 있었다.
물론 대륙이 처음으로 통일되던 시대의 혼란기 속에 ‘정통성’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때의 일이라 이 예는 그리 합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것처럼 명분이란 것은 그렇게 절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뭐 그건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나. 당장 중요한 건 저 빌어먹을 오랑캐 놈들을 상대하는 일일 테니까.”
“오랑캐를 상대하기 전에 가다가 지쳐 쓰러지는 것이 걱정일세.”
“딴은 그것도 그렇군.”
병사들은 그 말에 시답잖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불평불만을 떠들면서도 탈영을 하지 않는 것은 회군이 그나마 제대로 된 군대인 탓이 컸다.
회군은 서역식으로 편성된 군대인 까닭에 그 급료부터 병사들의 처우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전근대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있었다. 이전의 제국군이었다면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군대가 스스로 붕괴되었을 가능성마저 있었겠지만, 지금의 회군은 그런 위험을 내포하고 있지 않았다.
비교적 괜찮은 급료와 제국 내에서의 대우가 있다 보니 병사들은 이 벌이가 좋은 일을 버리고 떠날 생각이 없었다. 먹고살기 힘든 이 난세에 회군은 안정된 좋은 직장이었다.
병사들이 껄껄 웃는 와중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대막에서 우리가 상대할 오랑캐들. 그리 쉬운 상대일까 모르겠네.”
“제국의 최정예인 회군이 그깟 오랑캐들을 상대하지 못할까. 말이나 타고 다니는 야만인들 정도야 우리 총포 앞에 녹아날 걸세.”
“하지만 출발 전에 군관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오랑캐들 뒤에 북적들이 있다고 하더군.”
“북적이?”
그 말에 병사들이 웃음을 거두었다. 북적은 제국의 가장 오래된 적 중 하나였다. 지난 북방 전쟁에서 제국 북방군이 치렀던 힘겨운 싸움에 대해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북방군에 종군하다 회군으로 들어온 병사들도 있어 북적이 얼마나 강한 적인지 모르지 않았다.
“북적이 배후에 있다면 쉬운 상대가 아니지.”
“그것도 우리는 수천 리 길을 가서 싸워야 하는 입장이네. 쉬운 싸움이 될 리 없어.”
“그렇다 해도 대막에는 우리 제국의 주둔군이 있다지 않나?”
주장대신이 이끄는 제국 주둔군이 있는 한 원정군의 입장에서 싸우진 않을 것이다. 말을 꺼낸 병사도 그 부분은 수긍했다.
“그 부분은 다소 낫겠지만 우리가 직접 걸어서 가야 한다는 건 달라지지 않겠지. 그렇지 않나?”
“제길.”
병사들은 떫은 감을 씹은 얼굴이 되었다. 가는 것이 문제이지 가서 싸우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던 이들이었다. 새삼 이번 싸움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자연히 그 표정이 굳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서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이렇듯 회군은 이번 원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절감하고 있었다.
그 긴 여정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상승군의 지휘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긴 테이블의 상석에는 오승도가 자리했고, 그 바로 옆에는 비서 역할을 맡은 서역 처녀가 섰다. 우측에는 서역 장교들이 쭉 앉았고, 좌측에는 신과 천국 출신 장교들이 앉았다.
지휘관들이 모두 착석하자 승도가 눈짓을 했다. 엘리자베스는 미리 준비한 지도를 그들의 앞에 펼쳤다. 지도는 광활한 대륙의 지형을 담고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신판으로 연합왕국의 측량 기사들이 제국의 용역으로 측량해 만든 것이었다.
사람들은 펼쳐진 지도에 잠시 눈길을 주다 승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을 모두 불러 모은 이유와 이 지도가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서였다. 그들이 자신에게 눈을 모으자 승도가 자신의 용건을 입에 담았다.
“이번에 이렇게 여러분을 모두 한자리에 모시게 한 것은 우리 강주가 마지막 계단을 밟을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계단이라고 하시면.”
하비가 물었다. 승도는 그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좌중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모두가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과 모두 눈을 마주친 다음 입을 열었다.
“대륙 장악입니다.”
“대륙을 지배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듯 저는 더 이상 평범한 위치에 있지 않으니까요. 권력의 계단을 밟고 올라선 이상, 제게 남은 것은 끝까지 올라갈 일밖에 없습니다. 그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갈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 기회를 기꺼이 잡으려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하비가 말했다. 그는 조금 회의적인 빛을 보였다.
“회군이 자리를 비웠다곤 하지만 강북으로 움직이는 것은 명분상 우리에게 좋지 않습니다. 대외적인 여건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열강이 우호적이라곤 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 유동성이 크다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 점은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회군이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무턱대고 북상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인의 의중은?”
“회군이 무너지길 기다릴 겁니다.”
“회군이 무너지기를 기다리신다면 지나치게 일을 서둘러서 생각하고 계신 것이 아니신지요.”
알롱이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오승도가 보이는 모습은 감이 익기도 전에 떨어질 것을 생각하는 격이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회군은 분명히 패배합니다.”
“그래도 근대적인 군대가 아닙니까? 전근대적인 유목민들에게 패할 가능성은.”
“루시가 배후에 있다면 어떻습니까?”
승도의 반문에 서역 장교들이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루시가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 잘 알았다. 그 대국이 배후에 있다면 유목민들이라고 해서 쉬울 리는 없었다. 거기에 병참의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소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결과를 예단하기에는 아직 전국의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울 거라 봅니다.”
“아닙니다. 승패는 판가름 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 판단하시는 근거라도 있으십니까?”
“로망스 대 육군의 루시 원정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에우로페 최대 규모의 원정군이 일시에 전몰했던 일이 좋은 사례가 됩니다. 그 군대를 이끈 이는 당대 제일의 육군 사령관. 하지만 원정군은 패했습니다. 병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입니다.”
“병참 문제로 승패를 점치고 계셨습니까?”
“전쟁의 반은 병참에서 결판나는 법이니까요.”
승도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회군에 승산이 전무하다고 판단했다. 루시가 그와의 약속을 지킨다면 유목민들에게 상당한 원조를 더 제공할 것이고, 그만큼 유목민들은 자신들의 안방에서 병참 부담을 걱정하지 않고 기동전을 펼 수 있었다.
제한된 병참에 의존한 채 기동력을 마음껏 살리는 적과의 대결은 수십 만 대군을 동원한다고 해도 승산이 없는 일이었다. 그 자신이 뼈저리게 맛본 일인 만큼 승패를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대인의 말씀대로 회군이 패한다고 가정해도 우리가 북상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 또한 손을 써둘 겁니다. 그 패전을 틈타 반군이 일어나 준다면 우리가 반란 진압을 명목으로 진공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승도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회군의 패전이 들리는 즉시 그는 그 소문을 강북에 퍼트릴 작정이었다. 제국군 패배의 소식은 반란의 불씨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설령 그 불씨가 모자랄 것 같다면 그 자신이 직접 불씨를 만들어 넣으면 그만이었다.
“반란 진압을 명분으로 진공을 한다. 그 정도로는 제도 진공에 명분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대하를 건너는 명분 하나면 족합니다. 반적을 진압하며 이 반란의 이유를 아편 수매에 돌리고 제국 조정을 전복하면 그만입니다. 북경 안에 우리 세력도 있으니 그 정당성이야 그들이 꾸며 주겠지요.”
다소 그 과정은 엉성하게 보이지만 외부에서 그 논리를 찌르긴 쉽지 않았다.
그 논리의 허점을 찌르려면 아편과 관계가 없거나 혹은 강주와 이해관계가 없어야 했는데 외부 열강들은 모두 이 줄에 목이 매여 있었다.
이 점에서 오승도가 짜둔 판은 그에게 꽤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는 이런 부분에서는 매우 용의주도하고 탁월했다. 과거 에우로페에서의 전쟁에서도 그랬다. 그는 오스티아를 치기 전에는 프리지아를 회유하여 오스티아를 고립시켜 쳐부수었다. 이어 오스티아를 관대한 조건으로 항복시키면서 프리지아의 ‘배신’을 운운하고 오스티아에 좀 더 좋은 조건을 주는 대가로 중립을 만들어 놓고 프리지아를 박살내 버렸다.
이런 식으로 판을 유리하게 설계하여 그 자신이 최대의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전략가로서 그가 가진 장기였다.
“북경까지 가신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려 하십니까?”
풍겸이 물었다. 승도는 수염을 매만진 다음 말을 이었다.
“일단 황실 보수파와 총리대신의 파벌은 모두 숙청할 겁니다. 그리고 섭정대신의 자리에 올라 실권을 장악할 생각입니다. 이후 신정(새로운 정치)을 실시하여 제국을 새로운 모습으로 일신하여 강주와 대륙의 모든 이들을 보호할 튼튼한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내 목표입니다.”
“원대한 생각이십니다.”
풍겸이 자못 감탄한 듯 말했다.
“물론 이 구상을 실천에 옮김에 있어 허점이 있어선 안 됩니다.”
“허점이라면 어떤 점입니까?”
“황제를 잡아야 한단 겁니다.”
승도는 대륙에서 통치의 명분은 황제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의식했다. 제국 황실이 민심을 잃었다고 해도 제국을 통합하는 상징성은 황제에게 있었다.
머나먼 대막에서부터 서장의 고원, 북방의 몽족, 동북방의 금족들까지, 제국의 무수한 종족을 통합하려면 황제란 상징은 필수적이었다.
제국의 여타 번 속국들과의 관계도 유지하기 위해서 황제는 무시할 존재가 아니었다. 승도는 그 점 하나만은 명확히 인식했다. 과거에 이웃 국가의 왕을 폐하고 자신의 수하를 앉혔다가 본전도 뽑지 못했던 ‘실수’를 기억하고 있던 그는 상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대인께서 대하를 가로질러 올라가면 틀림없이 그 움직임은 제국 조정의 눈에 들어갈 겁니다.”
하비는 그 계획이 완전치 않다고 말했다. 승도도 거기에 동감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더할 생각입니다. 바로 바다로 여단 하나를 보낼 겁니다.”
“바다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대하를 건넌 시간에 정확히 군대를 태운 선단을 대하 위쪽 위도로 올려 보낼 겁니다. 제국 정부가 우리 움직임을 눈치챈 시간에 상승군 여단 하나가 선진에 상륙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제국 정부는 도망갈 기회를 잡지 못합니다.”
승도는 자신의 구상에 있을 약점을 보완할 계획도 하나씩 꺼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면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움직여야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제야 지휘관들은 그가 회군의 파멸이 결정되기도 전에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이 사내가 대륙을 장악하기 위해 그린 밑그림이 새삼스레 놀랐다. 승도는 자신의 거대한 그림에 놀라는 이들의 얼굴을 보며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엘리자베스가 가져다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서북방으로부터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