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68화 (268/425)

제268화. 발검 (1)

회군이 서북방으로 움직이는 동안 북경의 건문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청림당 관료들을 다독이는 동시에 연합왕국 공사와 접촉하고, 북경의 주요 대신들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이렇게 획득한 정보는 인편을 통해 남쪽의 강주로 전달되었다.

이러한 정보야말로 강주의 오승도가 북경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제국 정부도 눈과 귀가 먼 봉사는 아니었다.

기민한 감각을 가진 총리대신은 오승도의 눈과 귀가 북경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북경 외곽에 있는 자신의 장원 비처에서 그는 심복들과 모여 이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주가 생각보다 움직임이 빠르고 정보도 정확한 것 같은 점이 문제요. 연합왕국 공사와 접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주 쪽 인사가 공사를 예방했소.”

“하면 그쪽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 있을 거요.”

“그들이 왕국 공사와 만난 이유는 알 수 있었습니까?”

팔기도통아문의 장이 물었다. 이 사내 역시 제국 내에서 수위에 드는 권력자로 총리대신이 총애하는 인물이었다. 총리대신은 고개를 저었다.

“양이가 말을 해주지 않았소. 슬쩍 떠보았지만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니.”

“그쪽에서 대답을 흐리는 건 제국 정부에 대한 지지를 망설이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에 대한 지지를 망설인다.”

총리대신은 그 말을 무겁게 곱씹었다. 천장에서 비친 불빛이 그의 머리를 지나 음울한 그림자를 그렸다. 제국 정부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자면 왕국 쪽에서 지지를 다시 생각해볼 법도 했다.

회군이 패한다면 그 결정은 결정적인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패할 리는 없다. 한낱 야만인들에게.

총리대신은 무겁게 내려앉으려던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쳤다.

“강주 쪽에서 아무리 움직여도 왕국에선 아직 우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생각까진 없을 겁니다. 일단 우리는 대륙을 지배할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아편을 팔건 대포를 팔건 우리의 협조 없이는 제 이익을 온전히 누리긴 어렵습니다.”

그 말은 여러모로 옳았다. 제국 정부는 아직 대륙을 통치할 유일한 권위의 원천이었다. 제국의 지배력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권력자 오승도조차도 그 관모와 관복은 제국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문제는 회군이 고전하는 경우입니다.”

산동의 총독이 말했다. 총독은 군무 경험도 있었지만 민정에 대한 경험도 풍부했다. 그는 통치 말단에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제국의 지배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통치하는 산동에서는 수시로 반란이 일어났고, 때때로 제국의 지주들에 대한 각종 쟁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위험한 현상은 제국군에 대한 두려움으로 억제되고 있었는데, 그 군대가 무너질 경우 심지에 불을 붙이듯 일시에 폭발할 우려가 있었다.

“회군이 고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요?”

총리대신이 물었다.

“우리 제국군의 군비야 충실하게 준비되었지만 전장인 대막은 넓습니다. 그 넓은 초원에서 반적들을 정확히 포착해 격멸할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말도 틀리진 않지만 고전하진 않을 거요. 회군은 기존 군대와 달리 서역식으로 만든 신식 군대요.”

“하지만 각하, 생각해 보십시오. 대군을 거느리고 출병하신 성조께서도 몇 년을 모래 바람을 맞으며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수십 년의 밑 작업으로 유리한 그림을 다 그리시고 말입니다. 우리 회군은 그런 이점을 누리지도 못한 채 전장에 나갔습니다. 아무리 싸움이 잘 풀려도 고전은 예상해 두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총리대신이 그 말을 받았다.

“회군이 고전할 경우 우리가 생각해야 할 위험은 어떤 것들이 있겠소?”

“강주 관리사가 역심을 품을 가능성 혹은 반란군의 대두입니다.”

“반란군의 대두라면?”

“회군이 먼 길을 떠났다. 그렇지만 그들은 반군에 묶여 돌아오지 못한다. 세인들이 이렇게 인식했을 때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혹은 패했다는 유언비어라도 퍼진다면.”

“무기를 들고 일어날 수 있을 거요.”

“그렇습니다. 일이 그렇게 번지게 되면 강북은 다시 전란에 빠지게 됩니다.”

“설마 일이 그리 비관적으로 흘러가겠소?”

“언제나 최악의 상황은 가정해두는 편이 유리합니다.”

“강주 관리사가 역심을 품을 가능성이란 것은?”

“그자가 반군 진압을 빌미로 군을 일으킬 가능성을 말합니다.”

산동 총독의 이야기에 총리대신이 흠칫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가능성이었지만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했다. 강주 관리사가 반군 진압을 구실로 군대를 보낸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그자는 천국 잔당 토벌을 명분으로 강남 대영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강북으로 ‘천국의 잔당’들이 옮겨가 난을 다시 키웠다는 구실로 군대를 끌고 올 자격이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일은 아주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회군이 없는 상황에서 오승도의 북상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경우에 대비해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총독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팔기도통아문의 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훌륭하신 고견이라 생각합니다. 만사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오승도가 역심을 갖지 않더라도 대비해두는 것은 경계의 원칙에 부합합니다.”

“좋소. 그럼 어떻게 대비를 해두는 것이 낫다 보오?”

총리대신이 물었다.

“먼저 강북에 산재한 군량을 모두 북쪽으로 옮기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만에 하나 오승도가 북벌을 시도하더라도 치중을 모두 남쪽에서 조달해야 하니 그 부담이 실로 적지 않을 겁니다.”

“간단히 말해 먹을 것을 없앤다. 청야전술이로군.”

총리대신이 말했다. 청야전술은 고대로부터 쓰였던 오래된 전술로 들판을 비우고 우물을 메워 적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지 않는다는 말로 대표되는 전술이었다. 이 방법은 공격자가 전진해오다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방어자의 피해가 크다는 것을 제외하면 가장 효과적인 방어 전술이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각하.”

“그것으로는 부족하지 않소?”

“그래서 하나 더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제방을 무너트릴 준비를 해두는 겁니다.”

“제방을?”

“대하 이북에는 상당한 규모의 하천들이 많습니다. 이들 하천의 제방을 무너트리면 오승도가 북상을 하다가 저절로 발이 묶일 겁니다. 도로와 들판이 물에 잠기면 놈이 무슨 재주로 북상을 하겠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놈이 움직일 수 있다면?”

“그 경우에 대비해 황실의 금군을 준비해야 할 겁니다. 놈이 역심을 품은 것이 확인되면 도성을 지킬 최소한의 병사만 남기고 모든 병사를 태산으로 보내야 합니다. 태산은 수만의 군대도 능히 숨길 수 있는 요지. 이 험지를 이용해 태산 서쪽으로 돌아서 올라올 오승도의 병참을 타격하면 그는 결코 도성으로 올라오지 못할 겁니다.”

산동 총독은 자신의 관할 하에 있는 명산, 태산을 방어의 요충으로 여겼다. 이 산을 경계로 산서와 산동이 나누어질 정도로 산은 거대했다. 이를 이용하면 오승도의 북벌을 막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회군이 돌아올 시간을 벌고도 남을 정도로.

총독의 설명에 총리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아주 좋은 이야기요. 만에 하나 오승도가 역심을 품더라도 도성까지 오지 못할 것 같소. 믿음이 가오.”

“감사합니다, 각하.”

“혹시나 그가 불온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으니 그대에게 남방에 대한 방어 문제를 일임하리다. 팔기도통아문에서도 이 문제에 적극 협조해 주도록 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좋소. 아주 좋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니 근심 걱정이 싹 사라지는군. 한잔들 받으시오.”

총리대신은 모처럼 불안이 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혹시나 오승도가 역심을 품었을 때 수도를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갖고 있었지만 수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문제가 없을 거란 확신을 얻었다.

오승도가 오더라도 이길 수 있다. 그는 그 확신을 가지고 잔을 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한지는 미지수였지만.

***

강주의 움직임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었다. 승도는 대하 이남의 천국 잔당 토벌을 구실로 모든 병력을 대하 이남에 전개하였다. 이 같은 움직임이 조정의 경계심을 높일 것이라는 점은 확실했지만, 이 또한 승도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싸움을 하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고수해온 전략의 중요한 원칙이었다. 그는 적이 원하는 형태의 싸움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승도는 대하 이남에 병력을 모은 만큼 제국 정부 당국에서 대하 방어에 더 신경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같은 조처는 오히려 그에게 유리한 선택지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점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적지 깊숙한 곳에서 적의 병력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다. 대하를 건너 제국 깊숙한 곳에서 교전을 벌이면 익숙하지 않은 전장에서 예상치 못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불리한 조건을 안아야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하 주변에서 싸우면 전장도 이해하기 쉽고 전투에 필요한 물자의 조달도 용이했다.

둘째, 제국의 방어선을 아래로 내려 그 북쪽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제국의 방어가 아래로 집중되면 자연히 수도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해상을 통해 수도를 참수 공격할 생각을 가진 승도에게 이 같은 전략적 상황의 조성은 대단히 유리한 국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셋째, 강북의 반란을 지원하여 오히려 제국군이 병참의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점이었다. 배후에 반군을 둔 제국군은 자연히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방자의 이점을 역으로 뺏어버리는 셈이다.

이러한 이점들은 오승도가 북벌에 앞서 획득해 두려는 중요한 이익 중 일부였다. 이 이점들은 장차 그가 북벌에 나서면서 완전무결한 승리를 획득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어줄 터였다.

‘문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권을 차지할 명분을 얻느냐다.’

승도는 정권의 정당성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다. 선전과 선동을 통해 민중을 조종한다고 해도 최소한 보여주기는 있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로망스 제정 시절에는 광대한 제국 영토의 획득과 그를 통해 얻은 경제적 약탈을 성과로 제시했었다.

지금도 그러한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다. 단순한 정권 교체 정도로는 대중적 지지를 얻기에 부족했다. 정권을 얻는 즉시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세계 최강의 열강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돈을 부어서 만드는 변화는 황금으로 대하를 메울 재력이 있어도 불가능했다.

있다면 오직 하나, 제도의 변화를 통한 변화였다.

‘일단은 토지 제도를 바꿔야겠지.’

승도는 우선 토지 분배를 생각했다. 물론 무상몰수, 무상분배와 같은 토지개혁의 모델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는 지배계급을 적으로 돌리는 개혁이었고, 이러한 개혁은 정권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컸다.

따라서 승도가 선택할 방법은 보다 온건한 형태의 토지 분배였다. 유상몰수, 유상분배다. 이쪽은 실제 프리지아 쪽에서 이룩한 변화를 참고한 개혁 방향이기도 했다.

이 개혁의 장점은 토지 지주들의 자산(토지 자본)을 원시 자본으로 바꾸어 자본주의로 이행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었다. 경제 발전에서 외부가 아닌 국내 자본이 필요한 오승도의 입장에서는 이쪽이 훨씬 유리했다.

‘이 정도만 해도 민중의 입장에서 지지를 얻기엔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다.’

승도는 이 한 가지 개혁으로도 다소 느슨한 하층민들의 지지를 확고히 끌어들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땅을 생명으로 여기는 농민들에게 땅을 준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준다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층 계급에게도 ‘죽음’을 불사한 개혁 저항을 피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개혁에 대한 저항에서 물러설 구멍을 줌으로써 개혁이 저항 없이 추진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단순히 무상몰수, 무상분배와 같은 이상적인 개혁 방안을 추진해서는 정권만 흔들리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었다. 황제로서 직접 국정을 운영해본 그는 지배 계급의 반발을 최소화하며 저항을 줄이고 단계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최선의 개혁 방향임을 직시했다.

‘이어서 지주들에게 투자할 곳을 제공한다. 근대적인 산업 시설과 철도에.’

승도는 이를 통해 행상과 외부 자본으로 부족한 근대화에 필요한 자산을 충당하고자 했다. 이 같은 방식은 결과적으로 새롭게 세워질 국가의 근대적 성장을 확실히 견인하게 될 터였다. 성공리에 근대화를 완수한 프리지아 왕국처럼 말이다.

그렇게 발전의 수순을 밟아나가면 이 나라는 장차 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승도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을 거라 보았다. 신은 인구 삼억이 넘는 인구대국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였다. 본국 인구가 오천만도 되지 않는 에우로페 열강들과 비교할 때 이 점은 엄청난 이점이었다.

이 방대한 인구와 에우로페 본토 전체에 맞먹는 광활한 영토, 어마어마한 자원.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근대적인 제도와 정부, 그리고 공업 기반만 갖춘다면 이 나라는 연합왕국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승도는 그 생각까지 하다 피식 웃었다. 초유의 열강과 자웅을 겨루는 것까지는 사실 바라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의 가족과 자산, 가문을 지킬 수 있는 튼튼한 울타리였다.

그의 모든 것, 그리고 야망을 지킬 수 있는 울타리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최강의 열강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

승도가 손가락을 두드리며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름다운 서역 처녀가 다과를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그녀가 차와 약간의 간식을 내려놓는 소리에 승도의 상념이 깨졌다.

그는 그녀가 내려놓은 차를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부대 배치에 대해서 보고가 들어온 것이 있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정리된 문서를 건네자 승도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상승군 1여단은 대하 하류에, 2여단과 3여단은 대하 중류에, 정의군 병력은 대하 상류에서 하류까지 길게 포진해 있었다. 이 병력은 모두 합쳐 육 만에 이르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병력 규모가 더 증가한 것이다.

상승군의 각 여단 역시 풍겸이 넘겨준 신병을 받아들여 그 규모가 배가되어 있었다. 이제는 이름만 여단일 뿐, 보유 병력의 수가 각 오천을 넘고 있었다.

승도는 각 여단의 배치에 대한 부분을 보고 지도를 한 번 보며 대하 하류 쪽을 확인했다.

“1여단이 승선할 곳은 어촌일 텐데, 이쪽도 준비가 되고 있습니까?”

승도는 북경으로 참수 공격을 하러 갈 1여단 병력이 제시간에 배를 타고 대하를 건너가야 한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항구에서 탑승에 시간을 오래 잡아먹을 경우 작전이 헝클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쪽도 준비가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내일 보고가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그만 나가보라고 말했다.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문을 닫고 나가자 승도는 차를 한 모금 들며 지도를 다시 살폈다.

그는 손으로 대하 하류에서 북경까지 대강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직선거리로도 육천 리는 족히 넘을 거리였다. 실제 이동 거리는 팔천 리가 넘을 것이다.

항구에서 꾸물거리면 북경에서 도착 직전에 알아챌 가능성이 높았다.

승도는 지도를 보며 손가락을 두드렸다. 이 일이 실패하면 좀 전의 생각들도 모두 허사였다.

제국 황제를 놓치면 완전무결한 승리는 물론이고 정권의 정통성을 놓고 신과 긴 내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황제를 잡아 꼭두각시로 세우고 정통성을 확보한 다음, 개혁을 해서 정권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정리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열강의 지지를 얻어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했는데, 그러면 손해가 작지 않았다. 그건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었다.

승도는 엘리자베스가 둔 쿠키를 하나 자신의 입에 밀어 넣으며 상념을 정리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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