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77화 (277/425)

제277화. 천하제패 (2)

뛰어난 전략가들은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승부가 어떻게 날지 종종 정확한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 예측은 전쟁의 판을 누가 설계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나오곤 했다.

상대가 짠 판 위에서 놀게 되면 천하에 다시없을 지휘관이라 해도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산동 총독과 양의 지휘관들은 이 싸움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믿었다.

그들이 보기에 오승도와 그 군대는 수동적인 자세로 이쪽의 움직임에 대응하기에 급급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은 유리하게 판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그 믿음이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북경에 남아 있을 거라고 믿은 자, 오승도는 애써 얻은 권력을 만끽하며 구중궁궐에 머무르지 않았다. 대신 선공을 가하기 위해 초원으로 나왔다. 그 움직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흰 준마 위에 탄 승도가 망원경을 들었다. 그러곤 관도를 따라 느릿느릿 움직이는 적의 행렬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관도 위를 터벅터벅 걸어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그들이 든 무거운 제국의 깃발이 그 무게를 더해주었다.

평범한 지역의 단련, 그리고 치안이나 맡았을 지역 관병들에게 전쟁은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이 전쟁에 나선 상황은 확실히 비극 그 자체였다.

승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전쟁에서 적에게 동정심을 품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경의를 표시하기도 하고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목숨을 살려두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전쟁은 상대를 추켜올리거나 도와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인다. 죽여서 이쪽의 의지를 관철한다. 그것이 전쟁의 참된 의미였다.

승도가 손을 가볍게 들었다. 그 손짓에 말에 타고 있던 보병들이 일제히 내렸다. 승도는 망원경을 내리고 그 옆에 있던 장교에게 눈짓을 했다.

그 명령을 받은 장교가 말을 몰아 보병들 앞으로 가 짤막하게 말했다.

“각하의 명이다. 눈에 보이는 적을 하나도 남김없이 쳐 죽여라. 항복은 받지 않는다.”

그 명령에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는 것으로 응했다. 승도는 망원경을 든 채 자신의 병사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곧 나팔 소리와 함께 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우렁찬 함성 소리를 내며 적을 향해 몰려갔다.

적을 향해 공격하며 함성을 내는 것은 기습 효과를 떨어트리는 행동이었지만 상승군에 그런 효과는 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적을 다소 놀라게 해도 충분히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그 자신감은 높은 훈련도와 막강한 후장식 소총이 보증해 주었다.

갑작스런 적의 출현에 제국 병사들이 우왕좌왕했다. 전투 경험이 없다는 것이 여실하게 엿보였다. 승도는 적 지휘관이 형편없는 작자라는 사실을 이 상황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지휘관이 경험이 있었다면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을 다독여 최소한 싸울 준비를 하게 만들어야 했다. 오합지졸이라 해도 지휘관의 차분한 한마디가 있으면 저런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다.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승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거리를 좁힌 상승군 병사들이 일제히 총격을 퍼부었다. 새하얀 화약 연기와 오렌지 빛 섬광이 등장할 때마다 얼이 빠져 있던 제국 병사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뒤늦게 일부 군관이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하기도 했지만 압도적인 연사 속도를 가진 상승군을 상대로 돌격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노련한 검은 군복들은 자신들을 향해 적병들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자 몇 걸음 물러서며 이들을 향해 화력을 집중했다.

기세 좋게 달려오던 자들은 순식간에 수백 발의 총탄을 뒤집어쓰고 벌집이 되었다. 화력을 통제하고 적절하게 운영할 줄 아는 근대 군대 앞에 일부의 돌발적인 용기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다섯 번의 일제 사격이 끝났을 때 공격을 받은 제국 군대는 거의 와해 직전에 놓여 있었다. 잔병들 사이에서 항복의 목소리가 올랐다.

일부 군관들이 손을 들고 병사들이 백기를 들었다. 완곡하게 항복을 청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승도는 망원경을 들고 상황만 주시할 뿐 특별한 명령을 추가로 내리지는 않았다. 최고 지휘관의 의중이 달라지지 않아 상승군이 할 일은 자명했다.

처음 받은 명령을 수행하는 것뿐이다.

“모두 죽여라.”

장교가 싸늘하게 말했다. 병사들은 백기를 들고 나온 적병들 앞에서 총검을 끼웠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그들을 향해 총검을 휘둘렀다.

항복을 받아줄 상황이었다면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동력을 살려야 하는 상승군의 입장에서 항복을 받아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병력은 겨우 일개 대대. 기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적의 대군 사이에 갇히면 그대로 끝장이 나고 만다.

오승도의 냉혹한 명령은 인간미가 없어 보이는 것이지만 전장 상황에 가장 적절한 것이기도 했다. 동정을 베풀어도 될 상황과 그러지 않아야 할 상황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는 지휘관이 될 자격이 없었다.

검은 군복들이 총검을 들고 달려들자 항복을 하러 나오던 병사들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총검이 무자비하게 배와 가슴을 쑤시자 항복을 받아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았다.

공포에 질린 자들이 이리저리 흩어졌지만 상승군은 그들을 놓아 보내지 않았다. 이 습격 전에서 그들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였다. 그 정보가 적에게 제때 넘어가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했다.

검은 군복들은 달아나는 자들의 뒤에도 자비 없는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오렌지 빛 섬광이 번질 때마다 아무 의미 없이 전쟁에 끌려나온 죄 없는 자들의 피가 대지에 뿌려졌다.

생명을 잃은 고깃덩어리가 여기저기 널리자 나뭇가지에 앉았던 까마귀 한 마리가 신이 난 듯 울어댔다.

승도는 싸움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 망원경을 내렸다. 그에 옆에서 수행을 하고 있던 장교가 물었다.

“각하, 이런 방식으로 적에게 타격을 주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결정적인 피해를 주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의 물음도 일리가 없진 않았다. 상승군이 조금 전 상대한 것은 북쪽으로 이동한 산동 총독의 주력과 합류하기 위해 이동 중이던 지방관의 군대였다.

이런 자들의 군대를 몇 더 박살낸다고 해도 적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누적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단순히 그 후방을 어지럽히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물음에 승도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닙니다. 충분히 유의미한 전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후방이 어지럽다는 것은 단기적으로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람의 심리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배후가 흔들리는 만큼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입니다.”

승도는 적이 아주 냉철한 지휘관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자신의 후방이 휩쓸리며 수시로 후방 부대가 격파되고 있다고 하면 사람인 이상 불안을 품게 마련이었다. 그 불안의 크기만큼 사람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 조급해지는 만큼 그 군대는 움직임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오합지졸 군대의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곧 파탄을 의미했다.

승도는 상대를 제풀에 무너지게 만들 속셈이었다. 양의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쪽은 그와 협조관계에 있는 몽족 기병들이 휘젓기로 했다. 그들 역시 ‘무리수’를 두며 출병한 이상 회군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뒤가 밟히고 있다면 그들이 취할 선택은 하나로, 행군 속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양자 모두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밟게 된다는 것이 그가 그린 그림이었다.

전략에 있어 적은 한참 아래에 있는 자들이었다. 정략이라면 몰라도 군략에서 적수가 될 수 있는 자들은 연합왕국 육군과 같은 자들뿐이었다.

“적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이 각하께서 이번에 거두려한 이익의 핵심이군요. 그렇다면 일부를 살려 보내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그리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판입니다. 우리 군대의 위치가 적시에 파악당하면 적은 오히려 한결 편하게 생각합니다. 심리적으로 적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공격을 진행 중인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곳의 시체들은 관도에 있어 머지않아 적의 귀에 들어갈 겁니다. 이 귀신이 곡할 것 같은 습격이 계속해서 알려지면 그것이 더 적을 혼란스럽고 두렵게 만들 테니까요.”

승도는 장교를 향해 미소를 보인 다음 말 머리를 돌렸다.

***

느긋하게 북상을 이어가던 산동 총독의 막사는 뒤늦게 들어온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후방으로 들어와 주력에 합류하고자 북상 중이던 지방관의 군대를 몰살시켰다고 했다.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규모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적이 후방을 휘젓고 다닌다는 상황은 처음부터 생각해 보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후방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끌어올 예정이던 치중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일이 매우 복잡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흐릿한 명분(황제는 오승도가 잡고 있음)을 가지고 조정을 바로 세우겠다고 나선 입장이다 보니 관내 지방관들의 충성심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오승도의 군마가 산동 관내를 휘젓는다?

그 상황이 장기화되면 산동은 저절로 총독의 영향력 하에서 이탈하고 말 것이다. 기반을 잃으면 군대를 잃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병사들이 총독의 명을 듣는 것은 그가 산동의 지배자이기 때문이지, 조정에 충성해서가 아니었다.

“일이 아주 고약하게 돌아가게 되었군.”

총리대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역시 이런 그림은 미처 그려본 적이 없었다. 상대는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도 찌르고 들어오고 있었다.

“상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좋은 수가 없겠습니까?”

“이리된 마당에 무슨 좋은 수가 있겠나. 방법은 오직 하나. 북경 앞으로 신속하게 진격하여 공성을 시작할 모양을 취해야 놈도 방어를 위해 모든 병력을 물릴 걸세.”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총리대신은 그렇게 주장했다. 논리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는 유령 같은 적을 쫓으며 시간을 허비하다간 그들의 입지만 좁아질 뿐이었다.

최선의 수는 총리대신의 주장대로였다. 하지만 그리하자면 행군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에 수반된 위험은 결코 작지 않았다.

“병사들이 크게 지칠 겁니다. 그리되면 무더기 탈영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인데.”

“감수해야 하네. 그렇게 해도 그 반적들과 힘을 합치면 우리 병력이 월등히 우세할 걸세.”

“각하의 말씀대로입니다.”

산동 총독이 공감의 뜻을 보였다.

그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행군 속도를 높이기로 방침을 굳히려던 차에 전령 하나가 막사 안으로 급히 들어와 고했다.

“대인, 급보입니다.”

“이리 줘보게.”

총독이 전령의 손에서 서신을 받고는 비단에 포장된 서신을 꺼내 그것을 훑다 인상을 찌푸렸다. 총리대신은 그의 얼굴빛을 살피다 물었다.

“무슨 내용인가?”

“몽족도 역적의 편으로 넘어간 듯싶습니다.”

황실의 오랜 우방인 몽족이 오승도의 편에 넘어갔다는 것만큼 충격적인 이야기도 없었다. 오승도의 승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유령 군대와 몽족 기병으로 양쪽 군대를 동시에 흔들며 압박하면 시간에 쫓기는 상태에서 북경으로 진군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될 싸움도 어렵게 치러야 했다.

판이 좋지 않았다. 이 그림은 그가 그린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 애송이 괴물 놈이 그린 판인 듯싶었다.

‘당했군.’

노회한 정략가는 이내 자신이 판의 설계에서 밀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천시(시간)와 지리(장소), 인화(사람)의 모든 요소에서 그들은 이미 지고 있었다.

“이리되면 우리 입장이 매우 불리한 것 같습니다, 각하.”

“그런 듯싶소. 생각했던 것보다 입장이 좋지 않구려.”

“하면 이번 싸움은.”

총독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단정하긴 이르오. 우리 군대는 아직 약하지 않고 싸움은 해보지도 않았소. 거기에 하나의 패가 더 남아 있지 않소?”

“북적 말씀이십니까?”

“그자들이 협조만 해준다면 승산은 아직 충분하오.”

총리대신은 단언했다.

그때 다시 막사의 문이 걷히고 사람 하나가 더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자는 산동 총독의 수하 장수였다.

“무슨 일인가? 지금 총리대신 각하와 긴히 밀담을 나누는 중이니 중요하지 않은 일이면 이만 물러가게.”

“그것이 적장의 서찰이 와서.”

“적장의 서찰?”

“내가 보도록 하지.”

총리대신이 손을 내밀었다. 그가 서찰을 받자 총독이 놀라 만류했다.

“각하, 서찰에 독이 묻어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독? 오승도 그자는 그런 물건은 쓰지 않을 걸세.”

총리대신은 고개를 저으며 서찰을 뜯었다. 그 안에는 오승도의 친필 편지가 들어 있었다.

-제국 강주 관리사 겸 직례 총독, 군기대신 겸 총리대신 오승도가 친애하는 제국의 전(前) 총리대신, 리첸 각하께 글월을 보냅니다.-

그를 수식한 칭호만 보아도 조정에서 차지한 입지는 알 만했다. 리첸은 웃기지도 않다는 얼굴을 하고는 글을 읽어 내려갔다.

-대신께서도 이제 아시겠지만 본관의 군대는 이미 귀측의 숨통을 죄고 있습니다. 산동과 귀 원정군 사이의 연결은 아무도 보장해줄 수 없고, 양의 원정군 역시 귀측과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안방이 위험한 처지에서 싸움을 하는 것은 승산이 없는 일. 현명한 대신이라면 세가 기울었음을 이쯤에서 인정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까운 목숨 그만 버리고 항복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이라도 투항한다면 본관은 기꺼이 선처를 베풀어 가택 연금 정도로 목숨을 보장할 용의가 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연금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연금을 보장해 주겠다. 퍽이나 관대하신 처사로군.”

총리대신의 말에 총독도 실소를 지었다. 권력자들에 있어 생명이 다 하는 순간은 권력을 잃을 때였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잃고 비참한 피지배자의 위치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권력은 생명보다 귀하고 달콤했다. 그 쾌락을 한 번 맛본 자라면 차라리 죽기를 갈망하지 권좌를 잃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애송이 괴물도 그걸 몰라서 이런 서신을 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서신은 총리대신을 비롯한 반대파에 대해 보이는 오승도의 ‘관대함’을 포장하는 장치로써 보내진 것이었다.

정치적인 수로 보자면 굉장히 훌륭한 수법이었다.

총리대신은 비록 비웃었지만 새삼 두려운 마음을 품었다. 애송이 괴물 놈은 정략가로서도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이런 놈을 상대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전쟁만 잘하는 놈이라면 어떻게 구슬릴 방법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정략가라면 그것은 어려웠다. 상대 역시 정치에 능한 정치가라면 애초 언변으로 다루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애송이 놈이 서신을 보내 명분 쌓기를 하려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그것 외에 다른 것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네.”

“무얼 말입니까?”

“보고도 모르겠나? 놈은 앉은 자리에서 우리와 반적 놈들의 움직임을 다 보고 있다고 과시를 했단 말일세.”

정보력의 우위를 과시한다. 그 의미는 녹록지 않았다. 정보가 우세한 쪽은 무얼 해도 지기 어려웠다. 상대의 패를 보고 유리한 패를 고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럼 놈의 진정한 생각은.”

“우릴 좀 더 초조하게 만들려는 거겠지.”

총리대신이 씹어 내뱉듯 말했다. 그는 상대의 속셈을 읽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읽었기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까지 계산하고 서신을 보낸 놈은 정말 무서운 적이었다.

“오승도. 정말 제국의 신성이란 말이 어울리는 괴물인 듯싶습니다.”

“그렇다네. 그렇기에 내가 그토록 놈을 제어하려고 애썼던 것일세. 지금은 만사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네.”

그들은 오승도가 이제 무얼 할지 그 밑그림은 모두 보았다. 그리고 그가 만든 각본에서 어떤 배역을 맡게 될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각본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오승도.’

총리대신은 그 끔찍한 적의 이름을 곱씹으며 손에 쥔 서신을 구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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