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82화 (282/425)

제282화. 포석 (1)

장인에게 외정 문제를 맡긴 승도는 내정 문제 해결에 눈을 돌렸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구휼과 제국 내 교통망 구축이었다.

구휼은 새 정권이 민심을 잡는 수단으로 종종 이용되었기에 필요한 일이었고, 교통망 구축은 제국이 근대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속했다.

제국의 지리를 보면 강북 지역은 강우량이 적어 수상 교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고, 강남은 하천과 운하가 조밀하여 수상 교통의 중요성이 높았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근대적인 교통망 투자에 있어 집중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곳은 강남보다는 강북이라 할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강북에 대한 투자는 필수적이었다.

수많은 유민을 흡수할 일거리를 제공하고, 한편으로 남쪽에 편중될 수 있는 근대화의 과실을 제국 북쪽에도 나누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승도는 이런 자신의 내정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방편으로 연합왕국의 차관을 빌리기로 했다. 원래라면 이 차관이 그의 목줄을 죄는 올가미가 될 수 있었겠지만 그가 둔 포석들이 효과만 발휘하면 당분간 왕국이 그 올가미를 쓸 수 없을 테니 그 점은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돈은 동방 국가들에서 발생시킬 긴장과 열강들의 전쟁을 이용해 충분히 갚아나갈 수 있었다.

승도가 자신의 정책 방향을 확정짓고 대규모 차관을 요청하자 연합왕국도 이를 기꺼이 수용했다. 새로운 정권과 관계를 강화하여 대륙의 이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생각이던 왕국으로서는 그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승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전략적으로 돈을 제공해야 했다. 신의 중앙 정부가 그 통제력을 잃고 무너질 경우, 그들의 주된 경쟁자인 북적이 손쉽게 남하하여 부동항과 막대한 이권을 손에 넣을 수 있어서였다.

그런 이유에서 10년 상환 조건으로 제공된 차관은 자그마치 은자 2,500만 냥에 달했다. 안보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 결정된 지원이었다.

승도는 이렇게 외부로부터 조달한 재원을 가지고 대규모 공사를 일으켰다. 그는 먼저 선진과 북경을 잇는 구간에 철도의 착공에 들어갔으며, 동시에 북경과 산동, 산동과 양주를 잇는 대륙 종단 철도 공사도 강행했다.

한 번에 엄청난 양의 거금을 푸는 공사인 만큼 유민을 고용해 제국 내의 불안을 해소하는 효과는 충분했다.

북경과 선진 사이의 광활한 대평원 위로 수만 명의 일꾼이 곡괭이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철도를 놓기에 앞서 대지를 다지는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의 손길은 바빴다.

남루한 옷을 입은 남자들이 기합 소리와 함께 땅 위로 무거운 바위를 밀었다. 톤은 됨직한 돌이 통나무를 따라 느릿느릿 굴러갔다. 이 작업으로 인해 아래에 깔린 토사는 물 한 방울 스며들기 어려울 정도로 탄탄한 밀도를 갖게 될 터였다.

그들이 땅을 다진 위로 다른 이들이 와서 자갈을 깔았다. 공사 자체는 철도 건설 경험이 있는 강주 사람들이 지휘하고 있어 시행착오는 거의 없었다.

“어이, 거기. 단단히 땅을 다지지 않으면 두 번 일을 해야 한다. 제대로 하지 못하겠나?”

“거, 좀 빡빡하게 하지 맙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강북 출신들은 감독관 일을 맡은 강주 출신들의 지시에 못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강주 사람들은 그 불만을 그냥 들어주지 않았다.

“그게 싫으면 일을 그만두고 나가면 될 거요.”

“쳇, 매정한 작자들 같으니.”

사내는 감독관의 매정한 처우에 혀를 차면서 시킨 대로 움직였다. 공사에서 강압은 거의 없었다. 모든 일은 과거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노동력을 관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졌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은 나가지 않으니 과거처럼 적당히 무사안일주의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강주 사람들도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합리주의와 냉정함에 대해 치를 떨었지만,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어느새 그들도 강북인들에게 서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시 지반 다지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감독관 하나가 조금 전 입을 열었던 감독관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일꾼이 일의 강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더군요.”

“배가 부른 작자들이군. 얼마 전만 해도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던 자들에게 각하께서 일자리를 만들어 주셨는데 불평을 늘어놓다니 말일세.”

“강북 것들이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그 대답에 말을 걸었던 감독관 쪽이 피식 웃었다.

강남과 강북은 전통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랜 세월 대륙의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던 강북은 강남에 대해 일종의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강남 사람들에 대해 문명적으로 뒤떨어진 미개인, 혹은 물질만 아는 천한 것들이란 인식을 깔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배 계급에 해당되는 이들에게까지 그런 시각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강남 사람들 역시 강북을 경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거의 천 년 전부터 강북에 대해 경제적 우위를 점하며 고도의 문화 발전을 이룩한 자신들의 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강북의 낙후된 경제 수준과 문화에 대해 ‘야만스럽고’ 뒤떨어졌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강주가 급부상하며 먼저 안정기에 접어든 터라 그 인식은 과거보다 더했다. 성장의 과실을 먼저 취한 강남에서 강북을 깔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감독관 나리.”

그때 멀리서 한 사내가 큰 소리로 감독관들을 불렀다. 감독관이 고개를 돌리자 사내가 헉헉거리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사내는 북경에서 이번 공사의 인력 수급을 담당한 청운방의 사람이었다.

청운방은 과거 오승도가 강주에 머물던 시절부터 건문의 협력자로 그 눈과 귀가 되어준 바가 있었고, 청림당이 몰락하던 때에도 강주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에 대해 오승도 정권은 이번 북경 선진 간 공사 구간에 인력 모집을 전담할 수 있는 특혜를 비롯한 몇 가지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답했다.

덕분에 청운방은 이번 공사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적어도 인력 관리 부문에 있어 그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무슨 일이요?”

감독관이 묻자 사내가 그에게 다가와 읍을 하며 답했다.

“이번 공사에 사람을 좀 더 넣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려 찾아뵈었습니다.”

“사람을 지금보다 더 말이요?”

감독관이 떨떠름한 얼굴로 반문했다. 사람이야 많을수록 좋은 것이 공사지만 무제한의 인력을 동원하면 그만큼 돈이 더 나가게 마련이었다.

공사를 감독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비용이 나가는 일은 간단치가 않았다.

“그렇습니다, 나리.”

“얼마나 말이요?”

“천 명 정도 더 넣고 싶습니다.”

천 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다. 하루에도 일거리를 찾아 북경 근방으로 몰려오는 구름 같은 유민을 생각하면 적은 수지만 공사에 받아주기엔 상당히 많은 수였다.

“천 명은 단시간에 받기 곤란합니다.”

“하면 얼마나 받아주실 수 있으신지요.”

감독관은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현장을 얼른 둘러보았다.

서역인 측량 기사 앞쪽으로 조금 공간이 휑했다. 그 공간에 사람을 좀 욱여넣는다면 오백 정도는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백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감독관은 혹시 몰라 보수적으로 대답했다. 사내는 그 대답에 입맛을 다시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사백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추후 자리가 더 생기면 꼭 알려 주십시오.”

“그리하겠네.”

“그럼.”

사내가 읍을 하며 물러나자 감독관이 코를 문질렀다. 다른 감독관이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일자리 청탁입니까?”

“그런 셈이지.”

“그런 일을 왜 받아주시는 겁니까?”

“자네는 알지 모르지만 청운방은 오승도 각하를 위해서 공을 세운 자들일세. 그런 자들의 청은 간단히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지.”

감독관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행상 출신의 감독관은 나름대로 관료들과 접촉한 경험이 있어 정치적 계산에 밝았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면 반드시 그에 대한 보답이 있어야 했다. 최소한 그렇다고 사람들이 인식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정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에 정권을 위해 일하려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왕조가 바뀌거나 혹은 정권이 바뀔 때 공신이 책봉되고 그들에게 후한 상급이 내려지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다른 자들도 공을 바라며 정권을 위해 일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는 지출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정권 안정을 위한 투자인 셈이다.

감독관은 동료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주고는 뒷짐을 졌다. 그 앞으로 펼쳐진 지평선은 새로운 정권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탁 트여 있었다.

***

오승도 정권이 대륙의 패권을 차지한 것이 확실시될 무렵, 그들의 북경 장악에 대한 정보는 이역만리 동영에까지 알려졌다. 동영의 주요 영주 중 하나인 살마의 번주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감탄하는 빛을 보였다.

일개 지방 세력이 강대한 중앙 정부를 무력으로 뒤집고 전복한 다음, 국가를 통째로 집어삼킨 정변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가 내심 바라던 미래를 ‘대륙적인 스케일’로 해냈기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영주는 서신을 쥔 손을 놓았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은 무사가 고개를 조아린 채 제 주군의 말을 기다렸다.

“강주가 신을 삼키고 정권을 장악했다면 실로 고무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정권을 쥐고 막부에 힘을 실어준다면 그것은 우리 입장에서 썩 바람직한 일이라 하긴 어렵겠지.”

영주는 대륙의 변화가 동영에 미칠 영향을 염려했다. 이전에도 오승도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이 동영의 내전을 촉발했던 터라 그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향후 북경에서 어찌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나?”

“당분간은 내정에 전념하느라 대외적으로 크게 행보를 보이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사, 이토는 자신의 견해를 입에 올렸다. 거듭된 전란과 정변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신에서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내정을 어느 정도 탄탄히 한 후에 외부로 눈을 돌리는 법이었다.

그의 대답에 번주도 공감의 빛을 보였다. 하지만 이어진 무사의 말에 번주의 표정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북경 정권이 안정에 들어가면 그들은 전통적인 조공 책봉 질서를 회복하려 할 것입니다. 그간 신이 자신들의 천하관이 무너지는 것을 방관한 것은 어디까지나 힘이 없어서였지 이를 용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권력자 오승도가 국력을 충실히 다진다면 그들이 예전의 지위를 찾으려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대륙의 통일왕조는 주변국에 대하여 종주권을 인정받고, 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국력이 강할 때는 그 왕위에까지 제 입김을 넣을 만큼 그 간섭의 강도가 강했다.

근자에 와 서역 열강의 진출과 신 자체의 국력 약화로 전통적인 질서가 급격한 붕괴 수순을 밟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조공 책봉 질서가 포기된 것은 아니었다. 신의 황실이 천자를 칭하며 천하의 모든 군주들을 제후로 여기는 이상, 그들은 언제고 그 질서를 다시 부활시키려 할 터였다.

“신이 안정세에 접어들면 주변국에 대한 간섭을 시작할 거란 얘기군.”

“저는 그리 보고 있습니다.”

“이 동영에도 그럴 거란 말이겠지?”

“분명 그리할 것입니다. 은이 부족한 신으로서는 이 동영에 간섭할 동기가 충분합니다.”

이토는 단언했다. 신은 은을 기축통화로 하는 국가였지만 국내 은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 부족한 은은 대부분 서역으로부터 흡수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아편의 수입으로 이 은 유입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은이 순 유출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사정이 그러다 보니 신에서 은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면 우리 입장에선 시간이 썩 많지는 않다는 얘기가 되겠군.”

“예, 주군. 그렇게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번주는 제 가신의 견해를 다소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최근 강성해진 막부에 대항하고자 물밑에서 외양대번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세가 약해진 조마와도 슬슬 협력의 자세를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다.

막부보다 더한 상대인 오승도가 동영에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을 고려하면 앞날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었다.

“대책은?”

“오랑캐는 오랑캐로서 제어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막부의 눈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면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북방 영토 문제 정도가 되겠군.”

번주는 북방 영토를 입에 올렸다. 북방 영토는 북해도를 포함하는 동영의 동북방 영토를 이르는 말로, 소수의 개척 거류민단과 일단의 관리들에 의해 겨우 유지되는 땅이었다.

거주 인구가 적고 그 개척의 역사도 짧다 보니 외부의 위협만 있다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었다.

막부도 이 위험을 알고 있지만 국내의 강력한 제후들을 제어하기에도 힘에 부쳐 북방 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북적이 의지만 있다면 이 땅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것도 좋은 건이라 생각합니다.”

이토의 대답에 번주가 미소를 지었다. 북방 영토는 바로 막부의 직할령. 이곳이 위협을 받으면 막부는 여기에 집중하느라 힘과 관심을 소모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러자면 북적을 누군가 준동하게 해야 할 것인데.”

“그 건이라면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북해에 나가 있는 우리 쪽 사람을 시켜 원주민을 매수한 다음 물목을 거래하러 온 북적 상인을 쏴버리는 겁니다. 경위야 어떻든 북적 사람이 죽으면 그들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원주민을 이용해서 북적 상인을 죽인다?”

“어차피 원주민들은 북적 상인들에게도 원한이 많으니 무리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의 말처럼 북방 영토의 원주민들은 북적에 원한이 있었다. 모피와 고기를 얻기 위해 이들의 땅으로 들어온 북적 상인들 때문에 이들 영토에서 수렵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사냥감의 씨가 마른 탓이다.

물론 원한이 있는 것은 북적 상인만이 아니다. 현지에 진출한 동영인들 역시 원한의 대상이다. 토지와 물자를 무자비하게 수탈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동영과 북적, 외부 세계에서 온 자들은 모두 원수였다. 그들은 기회만 오면 이들에 대한 적의를 서슴지 않고 내비쳤다. 이토는 이 뿌리 깊은 적대감을 이용하자고 말했다.

“일을 그리 처리해도 의심의 여지는 없겠지. 좋아, 일은 자네가 맡아서 잘 추진해보게.”

“감사합니다, 주군.”

번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만 물러가도 좋다는 뜻을 보였다. 가신이 다다미방 너머로 모습을 감추자 영주는 다시 나른한 눈으로 바뀐 채 생각에 잠겼다.

‘북적을 이용해서 막부를 견제한다면 오승도가 동영에 손을 뻗쳐도 당분간은 걱정할 것이 없다. 문제는 이렇게 일을 진행하는 것이 강주에 유리해지는 경우다.’

노회한 정략가인 영주는 자신의 선택이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막부와 북적이 대립한다면 당분간 그들의 눈은 동영에 집중될 터, 그 시간 동안 강주가 정권의 기반을 탄탄히 하고 국력을 회복할 여지는 충분했다.

연합왕국이 그 행보를 적절히 제어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간 수천 리 밖의 정세에도 파괴적인 영향력을 보여 온 강주이다 보니 마냥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무리는 있었다.

‘만에 하나 강주가 연합왕국의 눈길까지 외부로 돌릴 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성장을 제어할 수 있는 세력은 당분간 아무도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오승도란 괴물은 얼마나 강해지겠는가?’

번주는 그것이 두려웠다. 강주라는 작은 도시 하나를 기반으로 성장한 일개 상인이 대륙의 거물이 되더니 순식간에 제국을 집어 삼키는 역량을 길렀다. 이제 그 기반이 강주라는 땅덩이 하나에서 대륙이라는 거대한 땅으로 커졌으니 그 성장의 폭을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연합왕국이 있는 한 그리되진 않을 것이다.’

번주는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연합왕국이 있는 한, 오승도가 압도적인 힘을 가지게 될 가능성은 없었다.

왕국이 제대로 그 목줄을 당기고만 있다면 말이다.

번주는 그리 생각하며 시녀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는 어깨에서 느껴지는 나긋나긋한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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