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83화 (283/425)

제283화. 포석 (2)

신과 려 양국 사이에는 비교적 광대한 봉금 지역이 있었다. 국경을 명확하게 나눈 서역 국가들과 달리 ‘사람’의 이동을 통제하고 사적인 무역을 억제하려는 목적에서 설치된 중립 지대였다.

이 중립 지대의 양 극단에는 신의 번장과 려의 국경이 있었다.

양국은 이 봉금 지역에 대해 어떠한 행정력도 발휘하지 않은 까닭에 이 지역 내에 있는 도로와 성에 대해서도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았다. 이는 오승도 정권에 들어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곳은 인구 밀도가 낮았지만 산삼을 비롯한 특산품이 많고 밀무역이 성행하여 강도질을 할 거리가 많았다. 그래서 이 치안 부재의 땅에는 도적이 들끓었다.

이 땅을 한 해에 네 차례씩 신과 려의 사절들이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도적의 습격을 받아 죽는 사절도 종종 나오곤 했다.

말을 몰아가고 있던 정사는 이 사행을 몇 번 다녀온 터라 봉금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부사로 따라온 김장조도 그런 원로대신의 표정을 읽었는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사절단에 힘을 쓰는 자들을 많이 데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안전은 보장할 수 없었다. 이 봉금 지역의 도적들은 말을 탄 마적들인 까닭에 그 전투력이 평범한 도적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다행히 첫날은 별 소란 없이 구련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리가 되지 않은 폐 성에 도착하자 역관들이 익숙하게 병졸들에게 명을 내렸다.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허물어진 곳에 천을 덧대고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 식재료는 대부분 국경을 넘기 전에 준비한 것들이라 보관 상태는 양호했다.

모닥불이 천천히 타들어가는 동안 정사가 곰방대를 문 채 허물어진 성터 너머를 응시했다.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고 여긴 장조가 그 옆으로 다가갔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오시는 길에 내내 안색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아, 그거라면 도적들이 올까 근심해서 그런 것이었다네. 지금 생각하는 것은 그런 걱정이 아닐세.”

“뭔가 다른 생각이라도 드신 것입니까?”

“여길 한 번 보게.”

정사는 손을 들어 허물어진 폐 성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성터를 둘러보던 장조가 입을 열었다.

“다 허물어진 성이 아닙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이곳도 번영하는 제국의 방위 요충으로 자리한 시절이 있었을 걸세.”

“그럴지도 모르지요.”

“이걸 보고 생각이 드는 게 없는가?”

“무슨 생각 말씀입니까?”

장조가 다소 정중하게 물었다. 비록 권력을 농단하는 김씨 일가의 준비된 권력자인 그라 해도 조정의 원로대신인 정사를 무시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영화는 영원하지 않고 제국도 언젠가는 쇠한다는 것 말일세.”

“대감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정사는 곰방대를 입에서 떼어내며 회백색 연기를 훅 불어냈다.

“이번 사행은 그런 의미에서 의의가 크다 할 수 있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흐름은 고인 물을 흐르게 하고 말 것일세. 그 변화를 읽는 눈이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네. 그러지 못하면 우리의 도성도 이 폐 성처럼 되고 말겠지. 나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네.”

“대감께선 오승도가 그런 큰 변화를 이끌 재목이라 보십니까?”

“그야 모를 일이지. 하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네. 그렇기에 자네같이 귀한 신분도 이리 험한 길을 가게 되지 않았나?”

정사의 대답에 장조도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날이 밝자 사절단은 여장을 추슬러 장도에 올랐다. 봉금 지역은 폭이 백 리가 넘는 광대한 무인 지대인 까닭에 그곳을 가로지르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무조건 걷도록 명령받은 군대라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막대한 조공품과 교역용 물품, 그리고 관료들을 포함한 일행은 그런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사절단이 봉금 지역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흘에서 나흘 사이였다. 그 이상의 속도는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었다.

둘째 날에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역관 하나가 말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문제가 생긴 것은 책문(번장의 관문)이 코앞인 염곡에서였다.

염곡은 예로부터 밀무역을 하던 자들이 종종 물목을 거래하기도 했고 사절단이 수시로 지나는 곳이라 도적들이 눈여겨본 곳이기도 했다.

정사는 이곳도 상당히 위험하게 생각했지만 역관들은 얼마 전 사행에서 문제없이 통과했던 터라, 염려할 것이 없다 여겼다.

아무래도 최근에 사행을 다녀온 역관들의 말이 믿음직스러웠던지 내금위의 무사들은 긴장을 조금 늦추었다. 장조도 책문이 코앞이란 말을 듣고 딴생각을 하며 주변의 산세를 살피면서 느긋하게 말을 몰아갔다.

일행 모두가 붕 뜬 기분으로 말을 몰아가는데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지기 전까지는.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내금위 무사 몇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염곡의 반대편에서 뿌연 먼지 구름이 이는가 싶더니 한 무리의 기마가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봉금 지대의 마적이었다.

그들의 출현에 역관들이 대경실색하며 외쳤다.

“마적이다!”

“어서 정사와 부사 대인을 뫼셔라. 서둘러라.”

내금위 별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비록 김씨의 세도 정치로 왕실의 사정이 어렵긴 해도 내금위 무사들은 반도 제일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자들이었다.

18개의 병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 겨우 내금위에 적을 올릴 정도이니 그 무술은 알아줄 만했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실력을 믿고 칼을 마주 뽑았다. 마적들은 먹이들이 칼을 뽑아든 것을 보고 포악하게 으르렁거렸다.

이내 양쪽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지더니 쇠붙이가 충돌했다.

스악.

내금위 무사 하나가 내달리며 칼을 그대로 그어 올려치며 지나갔다. 단 일합에 깔끔하게 동맥이 잘려나간 마적 하나가 목을 움켜쥔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내금위 무사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제법 잘 싸웠다.

가려 뽑은 무사들의 수준이란 것이 있어 일개 마적들이 쉽게 넘보기에는 그 전투력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마적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이들 역시 봉금 지역에서 칼 밥을 먹으며 살아온 자들. 실전 경험 하나만큼은 내금위 무사들도 당할 수 없었다. 그들은 교묘한 협공을 통해 내금위 무사들을 공략해가기 시작했다.

한 명이 눈길을 끌며 내금위 무사의 주의를 끌면 남은 하나가 쇠 그물을 던져 무사의 운신을 어렵게 하는 식으로 공격을 해나간 것이다.

그들의 공격이 워낙 능수능란하다 보니 내금위 무사들의 손발이 차츰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이라고 해서 초인인 것은 아니었다. 손도 둘이요, 눈도 둘이었다.

사각 지대에서 그물이 날아온 다음 손발이 묶이면 당대 제일의 고수라 해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금위 무사들이 하나둘 쓰러지자 장조의 표정이 하얗게 굳어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역관들을 제외한 짐꾼들은 벌써 짐을 팽개치고 달아나고 있었다.

마적들은 그런 이들에 대해서는 별 시선을 두지 않았다. 돈이 되지 않는 걸 아는 탓이다. 돈이 되는 것은 이들이 지고 온 물목, 그리고 신분이 높은 자들의 품에 든 물건들이 전부다.

그렇기에 잔챙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책문 쪽으로 달아났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쫓아가 죽일 이유가 없었다. 마적들이 칼을 휘둘러 마지막 남은 내금위 무사의 목을 쳐 날렸을 때 장조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고 느꼈다.

마적 두목은 무사들을 모두 해치운 다음 천천히 앞으로 말을 몰고 왔다.

그는 정사와 부사를 힐끗 보더니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이거. 고귀하신 려의 양반 나리들 아니시오?”

놀랍게도 사내는 신이 아닌 려의 말을 구사했다. 그 말에 정사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우리 려의 백성이더냐?”

“려? 그런 것이 어디 우리네 나라였소?”

마적 두목이 목소리를 높이자 그 주변의 마적들이 실소를 지었다. 그랬다. 이 마적들은 려에서 국경을 넘어간 화전민 등으로 이루어진 도적 집단이었다.

조정의 폭정을 피해 북방으로 달아나 제 나름의 호구지책을 위해 도적이 된 자들. 정사는 그들의 정체를 알자 도리어 공포를 느꼈다.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그들 양반 계급에 얼마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장조 역시 겁을 먹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처음으로 분노한 백성을 마주한 터라 그들도 권력자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들이 이 생경한 깨달음에 몸을 가늘게 떨고 있을 때 마적 두목이 칼을 겨누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무기를 겨눈 채 그는 표정을 싹 바꾸었다.

“그런 개도 물어가지 않을 소리는 하지 마시오. 당신들을 뼈째로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으니까.”

마적 두목은 차갑게 말했다. 그 말에 실린 분노는 컸다. 가뭄이 있어도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걷어가는 양반 지주들과 그를 돕는 탐욕스런 관료들. 그런 관료들을 임명해 내려 보낸 조정의 부패한 권세가들.

백성들에게 있어 려는 그들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라기보다는 폭정의 상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이놈들. 무엄하다. 이분들이 누구이신 줄 알고.”

뒤늦게 하급 관료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호통을 쳤다. 상대가 그냥 마적이라 생각할 때는 벌벌 떨었지만 양민이라고 생각하니 용기가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사내는 상황을 잘못 판단했다.

그가 나서자 마적 두목이 희죽 웃더니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종횡으로 휘저었다. 그 손짓 한 번에 관료는 멍청한 표정을 한 얼굴을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머리를 잃은 관료가 털썩 쓰러지자 마적들이 외쳤다.

“두목, 그냥 죽여선 안 됩니다. 우리가 피가 말라가며 살았듯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야 합니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그가 미소로써 제 부하들에게 답했다. 정사 일행은 그 웃음에 전신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장조는 권력과 신분도 때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그가 누렸던 그 지위는 백성의 불만에 기반을 한 것. 백성이라는 바다 위에서 무얼 믿고 나룻배 하나가 영원히 떠다닐 것이라 믿었던가. 어리석었다.

그가 입술을 꽉 깨문 채 뜻하지 않은 운명을 마주하려 한 순간이었다.

타당! 타당! 탕탕!

느닷없이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막 칼을 들고 앞으로 움직이려던 마적 두목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가슴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에서 생명과도 같은 붉은 액체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는 멍청하게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다 말에서 풀썩 쓰러졌다.

갑작스런 총격에 마적들 사이에 혼란이 번졌다. 총탄을 맞은 자들이 차례로 낙마했다. 어디서 공격이 이루어졌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적들이 그에 놀라 일단 물러서기 시작했다.

두목도 죽어나갔고 공격도 어디서 이루어지는지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군복을 입은 기마 한 무리가 마적들이 서 있던 곳으로 달려왔다.

이들은 오승도가 국경의 밀무역을 단속하기 위해 보낸 상승군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은 쓰러진 마적들을 확인 사살한 후 주위를 경계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조처가 끝난 것을 확인한 장교가 말에서 내렸다.

느닷없는 마적의 습격과 그에 이은 상승군의 출현에 잠시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던 정사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장교 앞으로 나섰다.

“구원해 주셔서 감사하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차림으로 보아 하니 사절단으로 국경을 건너오신 분들 같으신데 맞으십니까?”

“맞소이다.”

“한데.”

장교는 말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호위를 맡은 것 같았던 병사들은 모두 죽은 듯싶었고 짐을 나르던 일꾼들은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남은 것은 통역을 맡은 역관과 관료 몇이 전부였다.

일행은 그야말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있었다.

“남은 분들은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입니까?”

“그렇게 되었소이다.”

정사는 씁쓸한 어조로 답했다. 생을 구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 상태로는 북경으로 가기에 곤란했다.

사절단이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놓였음을 안 장교는 수염을 매만졌다.

그의 주 임무는 밀무역 단속에 있었지만 그 외에 부차적인 역할도 있었다. 봉금 지역에서 횡행하는 도적을 잡아 신과 려를 오가는 사절단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그 부가적인 임무였다.

북경이 정권의 입지를 확보하려면 주변국의 인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사절단의 북경 방문이 곧 인정인 만큼 그들이 그냥 돌아가게 하는 것은 곤란했다.

“하면 저희가 일을 좀 도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일을 도와준다고 하면.”

“책문까지 짐과 호위를 우리 상승군이 맡아드리겠습니다.”

장조는 그 말을 듣다 상승군이란 말에 흠칫 놀랐다. 상승군이라 하면 오승도의 사병으로 천하를 전복시킨 힘의 원천이었다. 이들이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천하제일의 강병, 상승군이었단 말인가?

김씨 세도가는 새삼스런 눈으로 검은 군복들을 보았다. 보기에도 기강이 잘 잡혀 있고 움직임에 절도가 있었다. 천하에 다시없을 강병이란 말도 어색하지 않았다.

신이, 오승도가 이런 강병을 거느린 이상 그 정권의 안정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만큼 신의 영향력도 다시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변화에 발을 맞추는 것이 려에 있어 최선일 것이다. 장조는 그리 생각하며 장교에게 눈길을 옮겨갔다.

“천하제일 강병 상승군이 호위를 맡아준다면 어찌 그 호의를 거절하겠소이까? 그리해 주신다면 기꺼이 호의를 받겠소이다.”

정사가 청을 수락하겠다는 뜻을 보이자 장교가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지금부터 우리 부대는 려 사절단의 호위를 맡는다. 책문까지 짐과 호위를 맡기로 하였으니 짐은 말에 싣고 모두 내려서 간다.”

장교의 명령에 병사들은 군말 없이 복종했다.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교육된 병사들인 만큼 일말의 불만도 엿볼 수 없었다. 외부 인들이 보기에는 다소 생경할 수 있지만 이들의 훈련 방식을 생각하면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병사들은 장교의 명령에 따라 여기저기 팽개쳐진 짐들을 말에 실었다. 끌 수 있는 수레는 다시 마필을 달아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정리는 몇 분 지나지 않아 끝났다.

준비가 끝나자 장교가 정사에게 출발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정사는 한시라도 빨리 이 끔찍한 곳을 떠나고 싶어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검은 군복들이 말을 모는 동안, 정사가 중얼거렸다.

“천운이 도와 살았네. 저들이 이곳을 순회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렇습니다, 대감.”

“그건 그렇고 자네도 보았나. 저들이 얼마나 정강한 군대인지.”

“보았습니다.”

정사는 상승군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몇 번이고 그 얘기를 했다. 하지만 장조는 상승군보다 아까 그 도적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는 불만 섞인 백성의 적의에 처음 노출이 되었던 터라, 그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보다 대감, 아까 그 마적들 말입니다.”

장조가 말을 하다 화제를 돌리자 정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도 마적 생각에 그 말을 얼른 받았다.

“그 도적놈들이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가?”

“예, 대감. 그 도적들이 우리 백성들이란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닐세. 삼남에 기근이 들어 흉작이 들었을 때 수만 명의 유랑민이 생겼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국경을 넘어 이 봉금 지대로 흘러들었네. 하니 마적 무리 중에 우리 백성들로 이루어진 자들이 있는 것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지.”

“대감, 전 처음 도적을 보았습니다.”

“그럴 걸세. 이런 험한 여정에 나서지 않는 이상 도적을 볼 일이 어디 많겠나?”

“이런 자들이 늘면 그만큼 조정에도 근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조정의 손이 미치지 않는 봉금 지대이나 우리 강역 안에 도적이 늘면.”

“그땐 엄히 다스려야겠지. 그리하면 되는 걸세.”

정사의 대답에 장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과연 그 방법이 능사인 것일까? 그리하는 것이 정답일까? 그는 조금은 회의를 품었다. 가문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백성의 적의를 사면서 유지하는 권력은 언제고 위협받을 수 있었다.

보다 안전하게, 민중의 적의를 덜 사며 권력을 유지할 방법은 없을까?

장조는 그 생각을 하며 정사의 뒤를 쫓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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