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4화. 포석 (3)
장조 일행은 상승군의 호위를 받아 책문에 무사히 당도한 다음, 이곳에서 짐꾼을 새로 고용하고 지역 관부의 호위를 청하여 북경 행을 이어갔다. 그들이 북경에 도착한 것은 책문에 도착한 지 두 주가 지나서였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의 끝자락 위로 거대한 성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로부터 북방 유목민들이 중원으로 쳐들어가기 위해 이용하던 이 연 땅의 군사 요충지로 성장한 도시, 북경의 성벽이 햇살을 받으며 먼 길을 온 이방인들을 맞았다.
장조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를 앞에 두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도시는 이곳으로 오며 지나온 천하제일 관문이 준 것보다 더한 인상을 주었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든 도시는 마치 초원에 뚝 떨어진 황금의 세계처럼 보였다.
과거 황금 씨족의 군주가 건설하고 역대 황제들이 손을 보아 만든 ‘황금의 도시’를 앞에 둔 감상은 ‘놀람’과 ‘경이’로 요약할 수 있었다.
부사가 말을 멈추자 일행도 잇따라 말을 멈추었다. 정사는 도시를 보는 장조의 얼굴을 보며 그 충격을 알겠다는 듯 말했다.
“제도 북경은 처음 보는가?”
“그렇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도읍은 정말 촌구석이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것일세. 대륙의 물산이 모두 모이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지.”
정사는 그 말을 받았다. 일행은 멀리서 도시를 목격하며 받은 경이의 감정을 묻어두고 다시 말을 몰아갔다.
성벽이 서서히 가까워질 즈음 그들은 또 하나 기이한 풍경을 목격했다. 도시의 남쪽에는 전통적으로 바다와 도시를 연결하는 운하가 뚫려 있었는데, 그 옆으로 사람들이 모여 분주하게 땅을 다지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은 도시와 항구를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는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은 경직되고 침체된 려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오승도가 집권하면서 뭔가 일을 많이 하는 모양입니다. 공역이라도 크게 일으켜 유민들에게 일거리를 주려는 것인지요?”
장조가 묻자 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재물이 많이 들 것인데 그래도 하는 걸 보면 그가 돈이 많다는 것이 실감이 가네.”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관도를 따라 움직였다. 관도는 고른 크기로 다듬어진 포석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성문을 넘어선 다음에도 전체적으로 잘 정비된 느낌을 주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경의 경관 정비를 서둘러 실시한 덕이었다.
정사는 새삼스런 눈으로 주변을 훑다 주위에 명해 서남쪽 방향으로 길을 잡게 했다. 전통적으로 려에서 온 사신들은 제국 정부가 지정한 공식 숙소에서 머물게 되어 있었다.
이 숙소는 외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행은 몇 분도 가지 않아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로 제공된 건물은 상당히 깨끗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사절단이 여장을 푸는 동안 장조는 이곳저곳을 쓱 둘러보았다.
“일전에도 북경의 우리 숙소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습니까?”
“그건 아닐세. 몇 해 전만 해도 엉망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네만.”
정사도 다소 어리둥절한 빛을 보이며 주변을 살폈다. 신의 재정 상태가 나빠지면서 제국 예부의 예산은 급격히 감소세를 보였다. 그 여파로 상당한 시간 동안 외국 사절들을 위한 숙소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 말끔하게 정비가 된 듯싶었다.
이는 오승도 정권이 대외적으로 신의 국력이 회복되었음을 과시하기 위해 행한 ‘전시행정’인 동시에 주변국에 호의적인 제스처를 보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정권을 갓 장악하고 내정 문제를 신경 쓰기도 바쁠 오승도가 이런 숙소 문제에도 관심을 두는 걸 보면 그가 대외 문제에 아주 손을 놓을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은 일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반가운 일이네. 우리 숙소를 손봐줄 정도라면 당분간 우리 려를 존중하겠다는 태도로 볼 수 있으니.”
장조도 부사의 견해에 공감했다.
그들은 사람을 보내 제국 예부에 접견 신청을 넣고 제국 조정에 인사를 언제 올리러 가도 될지 답을 기다렸다. 보통 이런 답변은 빠르면 사흘, 길면 열흘 안에 내려오곤 했다.
정상적인 외교 관례에서는 말도 안 되는 무례이지만 전통적인 동방의 외교 관례에서는 용인이 되는 부분이었다.
답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장조와 정사가 접견 신청을 넣은 다음 날, 접견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막 아침 식사를 위해 젓가락을 들던 정사는 역관의 통역을 듣고 당혹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보통 대국은 자존심이 있어서 답을 빨리 내주어도 사흘은 기다리게 하는 것이 관례인데, 새 정권은 그런 관례는 생각지도 않는 모양이군.”
“잘된 일입니다. 기다려봐야 허송세월만 할 일입니다.”
장조의 말에 정사도 공감하긴 했지만 그래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렇긴 하나 이리 파격적인 일이 겹치면 그만큼 예상치 못한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니 조금은 경계되는군.”
정사는 노인다운 불안감을 드러냈다. 파격은 곧 변화. 변화는 기존의 관례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경우의 수를 던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식사를 대충 마치고 마중을 나온 제국 관료를 따라 제국 황궁으로 들어섰다. 황궁으로 들어갈 때는 전통적인 법도에 따라 ‘기어서’ 문을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 절차는 황실의 권위를 번국이 인정하는 요식 행위였다. 정사는 내심 이 의식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문을 지키던 금군은 그 의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 행위는 오승도가 명하여 금지시킨 것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동방의 외교 관례가 언제고 붕괴될 것이라 예상했다. 과거에는 통용되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합리주의를 앞세운 서역 열강이 밀고 들어온 시대다. 지금은 명분보다 실리가 앞서는 시대.
공연히 우방의 자존심을 꺾어 자신을 높이는 짓은 멍청하기 그지없는 행위라고 판단하고 이런 허례를 폐지하게 했다.
장조는 그에 대해 무지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정사로서는 놀랄 일이었다.
그들은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고 황제가 있는 대전까지 안내되었다. 중간에 몇 시진 기다리게 하는 ‘절차’도 생략되었다. 접견 신청이 바로 수락된 것도 파격이었지만 황제에게 바로 안내된 것도 파격이었다.
대전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른 사절단 앞에 거대한 대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이 음각된 기둥이 떠받치는, 이층 높이의 광활한 공간은 수천 명을 집어넣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넓었다.
흡사 광장을 연상시키는 공간이었다. 그 대전 안에 자줏빛 관복을 입은 관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국 안에서 높은 품계를 가진 고관. 일개 번국의 고관과 대등 이상의 신분을 자랑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위압적인 분위기에 사절단은 침을 삼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환관이 관료로부터 안내를 인수받아 그들을 인도했다. 대전의 중앙을 따라 걷는 동안, 그들은 긴장을 감추지 않은 채 한 걸음씩 움직였다.
이윽고 환관의 걸음이 멈추자 그들의 긴장된 움직임도 멈추었다.
환관은 그 자리에서 황제에게 고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절단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들의 앞을 볼 수 있었다.
그 앞에는 높디높은 단상 위의 옥좌에 앉은 황제가 있었다. 평범한 이들이 시선을 함부로 마주할 수 없도록 내려둔 발 너머에 금빛 용포를 입은 대륙의 군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절단은 이내 이 위대한 존재보다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의식하게 되었다.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대전 안을 지배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자. 용포를 두르지 않는 진짜 권력자를 말이다.
그 사내는 무척이나 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관료들과 달리 검은 관복을 입고 있었다. 음양오행에 따르면 황제의 앞에서 검은 관복을 입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전통적으로 황제의 복색으로 지정된 것이 황색과 흑색이기 때문이다.
“려의 정사 이중호와 부사 김장조입니다. 폐하의 생신을 축하드리기 위해 려의 국왕 전하께서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동서고금에 있어 이웃 국가끼리 친교를 유지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는 법입니다. 이렇게 려에서 사절을 보내서 폐하의 생신을 축하드리는 것은 양국의 관계에 있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절단은 신 조정의 환대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가져온 조공물품에 대해 아뢰었다. 그리고 황제의 만수무강을 비는 의례적인 말을 덧붙인 후, 향후로도 제국에 충성을 바칠 것을 다짐하는 말로 인사를 마쳤다.
그들의 말을 묵묵히 듣던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단상 아래의 ‘역적’에 워낙 시달리고 있던 터라, 외국 사절이 말한 ‘충성’이란 말에 상당히 감동을 받은 터였다.
“그대들의 충성에 대한 약속, 짐은 기쁘게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제국의 든든한 번병이 되어 우리 경계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황제가 몸소 인사에 답을 하자 사절들은 크게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명을 분골쇄신하여 지키겠습니다.”
하지만 제국에 대한 충성의 수사는 별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었다. 외교 관계란 결국 입바른 소리를 주고받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줄 것이 없다면 결국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다. 그것이 냉정한 외교의 장이었다.
설령 그 수사가 의미를 갖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들은 제국에 충성할 것을 약속했지 황제에게 충성할 것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은 황제가 아니다. 바로 제국의 모든 것을 장악한 권력자가 곧 제국이었다.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며 장조는 제국 조정 내에 흐르는 힘의 기류를 감지했다. 그는 황제의 앞에서 과할 정도의 힘과 위세를 보이고 있는 승도를 보며 황실이 실권을 잃었음을 알았다.
북경에 오기 전에도 오승도가 최고 권력자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본 광경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신임 총리대신은 용포를 걸치지 않은 황제, 무관의 제왕이나 다름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번병으로서의 약속을 지키는 한, 우리 신도 보호의 약속을 이행할 것입니다.”
황제가 한마디를 한 다음, 오승도도 한마디 했다. 하지만 그 무게감은 달랐다. 실권 없는 황제의 한마디는 단지 격려의 한마디에 그쳤지만, 오승도의 말은 달랐다.
그는 실질적인 안전 보장의 약속을 걸었다. 황제와 그에게 차이가 있다면 약속을 해줄 수 있는 힘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각하의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장조가 그에 장단을 맞추어주자 승도가 미소를 보였다. 장조는 그 미소에 침을 꿀꺽 삼켰다.
‘무서운 자다. 하지만 그가 구태여 그 한마디를 붙여 안전 보장의 약속을 꺼냈다는 것은 우리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반증이다.’
장조는 그 생각을 눌렀다.
황제에 대한 문안 인사를 마치고 대전에서 물러나오는 길에 정사가 장조에게 말했다.
“오승도. 실제로 보니 정말 무서운 자인 것 같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일부러 황제와 자신을 대비시켜 외부 세계에 자신의 힘과 실력을 알리다니요. 평범한 자라면 생각도 못 할 일입니다.”
“아까 그가 한 말 기억하고 있나?”
정사가 물었다. 노회한 대신은 그가 꺼낸 한마디를 마음에 새긴 듯했다.
“우리에 대한 안전 보장의 약속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실은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가 그 한마디를 한 것은 우리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황제가 아니라 자신이란 것을 분명히 한 것일세. 자신만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자네도 그리 생각했기에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지. 그자가 우리와 할 말이 있다면 뭔가 원하는 것도 있다는 걸세. 무얼 원하는 것 같은가?”
정사가 물었다. 그러자 장조는 신중히 생각해보곤 입을 열었다.
“무역이 아니겠습니까? 그자에겐 아무래도 돈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새로운 정권은 안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다. 그 돈을 얻을 방법은 역시 무역이 제격이다. 하지만 가난한 려는 시장도 작고 화폐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정사는 고개를 저었다.
“무역은 아닐세. 우리가 상업이 융성한 동영이라면 몰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어. 그건 답이 아니라네.”
“하면 무엇이 답이라 생각하십니까?”
“내 생각에는 길을 빌려달란 것이 아닌가 싶네.”
“설마 동영을 치러간다는 겁니까?”
장조가 흠칫 놀랐다.
정사는 그 놀란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동영의 한 야심가가 그 열도를 통일하고 대륙을 정벌하겠답시고 려에 길을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민 왕조를 정벌하기 위한 길을 내달라. 정민가도가 그것이다.
그처럼 새로운 정권을 세운 오승도가 동영 정벌을 위한 길을 내달라는 것이 심중의 계산인 것일까?
장조는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을 하면 안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까?”
“전쟁이 길어지거나 패한다면 문제가 커지지만 쉽게 이긴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않겠나? 군사력만 강하다면 그런 문제는 능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일세. 무엇보다 그 안정이란 것은 결국 돈 문제일 것인데 동영만 점령하면 막대한 은과 구리를 벌어들일 수 있지 않나? 그자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네. 하물며 불패의 장군이자 최강의 군대를 거느렸단 자신감도 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지.”
“그렇다면 동영을 쳐서 돈을 벌어들여 내정을 해결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생각이라 보시는군요.”
“이 늙은이는 그리 생각하네.”
“우리 려에는 득이 되는 일이겠습니까?”
“득이 될 걸세. 섬나라 오랑캐 놈들을 혼내주는 일이니 한 팔 거들어도 시원치 않을 일이지. 나쁠 것이 없지 않나?”
정사의 말에 장조도 동감의 빛을 보였다.
“하긴 일이 그리 풀린다면 적극 협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 생각하면 오승도, 이자는 정말 무서운 괴물인 듯합니다. 역대 대륙의 왕조들이 정복할 엄두도 못낸 동영을 넘보다니요. 이런 자가 이 시대에 있다는 것이 두려울 따름입니다.”
“적이 되지 않으면 될 문제일세. 조상들처럼 강한 상대에겐 머리를 숙여 소나기를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하면 그만 아닌가.”
정사는 여유롭게 답했다.
사절단은 황궁에 난 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사절들의 모습이 대전에서 멀어질 즈음, 단상 아래에 앉아 있던 승도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조금 전 마주한 사절단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사절이 나타난 마당이니 그들을 우리 무대에 적당히 이용할 수 있도록 거짓 각본을 내주는 것도 괜찮을 듯싶군. 진의를 숨기는 정도라면 적당한 거짓 공격도 나쁘진 않을 것 같으니, 동영 정벌 정도가 좋겠어.’
동영 정벌은 실제로 할 생각도 의지도 없는 일이지만 려에 대한 오승도의 수상한 움직임을 은폐해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국혼과 무역 규모의 증가. 이 모든 요청을 동영 정벌의 연장선에서 받아들이게 만든다면 려 조정에서는 요구를 쉽게 수락할 터였다.
그렇게 일을 진행하면 연합왕국도 속이기 쉬웠다.
신의 자존심 높은 황실이 공주까지 내주며 ‘무역 규모’를 키우는 것을 보면, 분명 거래액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다고 해도 깜빡 속아 넘어가고 말 테니 말이다.
그가 투자할 것은 약간의 수고와 입담, 그리고 발품을 좀 파는 것뿐이었다.
그걸로 두 나라를 농락하여 이익을 챙기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한 정략의 요체였다.
승도는 생각을 마치기가 무섭게 눈을 떴다. 마침 청림당 각료 하나가 의제 하나를 떠들고 있었다.
그가 말을 적당히 멈추어 두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움직임을 보이자 대전의 공기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황제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승도는 황제를 향해 돌아선 다음 고했다.
“폐하, 조금 전 려의 사절이 다녀가지 않았사옵니까?”
“그런데 그걸 왜 입에 올리는지요?”
“신이 생각하기에 려는 가장 가까운 번병이요, 이웃입니다. 이 우방과의 관계를 튼튼히 하기 위해 신의 황실과 려의 왕실이 국혼을 맺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려와 국혼을?”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혈연 동맹만큼 믿을 수 있는 안전장치도 없사옵니다. 폐하께서 가납해 주신다면 신의 만세일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신은 생각하옵니다.”
“총리대신 각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신의 만세일계를 위해 번병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시옵소서.”
“만세일계를 위해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오승도가 한마디를 하자 그의 충실한 번견들이 그 말을 받아 떠들었다. 조정의 태반이 청림당 소속이니 황제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그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국혼을 하면 적어도 려의 왕실은 황실의 우방이 될 수 있다.’
그 정도 계산은 할 수 있었다.
황제가 잠시 생각하는 것을 본 승도는 느긋하게 그 대답을 기다렸다. 그 답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아마 그 손바닥을 벗어나긴 어려울 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