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88화 (288/425)

제288화. 화룡점정 (1)

북해도 남단에 위치한 삿포로.

원주민의 말로 ‘건조하고 넓은 땅’이란 이름을 가진 도시는 수백 년 전부터 북해도 통치 행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동경의 막부는 도시를 송전 번에 맡겨 북해도 통치 및 북적 방어를 전담하게 했다.

그러나 송전 번의 영주는 이 춥고 소출이 작은 땅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는 이 삿포로에 직접 오는 대신 가신들 중 신뢰하는 심복을 골라 관리 역으로 임명해 보냈다.

신이치는 송전 번의 중급 무사 출신으로 상업에 밝고 실무에 능한 전형적인 실무 관료형의 인간이었다. 그는 영주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이익을 내기 위한 방편에 몰두했다.

이를 위해 북적과의 관계를 개선할 목적으로 그들의 방문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한편, 모피와 수산물 시장을 개설하여 양국의 경제적 이익 교환을 적극 지원하였다.

이러한 신이치의 정책은 외국인들의 호응을 받았다.

루시를 비롯한 외국 상인들은 신이치가 개설한 시장을 드나들며 차츰 이 영지의 세수를 올려주기 시작했다. 신이치는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 영주의 재가를 구한 후, 외국인들에게 보다 넓은 지역을 개방하였다.

이 조처는 북해도에 거주하는 동영인들에게는 이익이 되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상당히 해가 되었다. 내륙 깊숙이 들어온 북적 상인들이 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해 수렵 활동에 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이런 변화에 강한 불만을 가졌다. 기존의 통치와 달리 작금의 통치는 날이 갈수록 그들의 입지를 좁히고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해도에서는 종종 원주민과 이주민, 북적 상인 간의 충돌이 벌어지곤 했다. 본토에서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이치의 정책이 가져다준 부가 그런 사실을 모른 척하게 만들었다.

불만은 그렇게 차츰 누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계기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된 채로.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들어가며 불똥을 튀겼다. 그 가장자리에 앉아 잘 잘라낸 양의 살점을 굽고 있던 노인이 손길을 잠시 늦추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보던 아이가 할아버지의 곁에서 눈치를 보다 꼬치에 손을 가져갔다.

노인은 그것을 못 본 척 눈감아주었다. 아이가 조심스레 전리품을 챙겨 쏙 빠져나갔다. 노인과 마주 앉아 있던 사내가 인상을 썼지만 아이는 못 본 척 제 수확물을 챙겨갔다.

사내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하고는 노인을 보았다. 노인이 자글자글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근자에 사냥감이 말라가고 있는 건 자네도 알 거네.”

늙은 족장의 말에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양인들이 와서 사냥을 하는 판에 어쩔 도리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동영 것들이 토지를 심심찮게 개간한다며 숲을 밀어버리는 판이니.”

사내는 원주민들의 씁쓸한 현실을 입에 담았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절망적인 미래뿐이었다. 아이들에게 고기 한 점 제대로 먹여줄 수 없는 날이 곧 찾아오고 말 것이다.

노인은 불 속에서 익어가던 꼬치를 꺼냈다. 그러곤 칼로 살 몇 점을 잘라내어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살점을 받아 입에 털어 넣었다.

텁텁하면서도 질긴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사내가 입을 움직이는 걸 보던 노인도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이대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 상황을 바꿀 힘이 없지 않습니까?”

사내는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바꿀 수 없음을 잘 알았다.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북해도는 물론이고 남방의 광대한 토지를 경영하며 동영인들과 경쟁을 했던 그들이었건만 작금에 와서는 이 땅조차 지킬 힘이 없었다.

한 세대 전에 일어났던 무장 봉기는 송전 번의 영주가 보낸 대규모 진압군에 의해 참혹하게 진압 당했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느낀 것은 그들의 능력으로는 동영의 지배를, 서서히 질식해가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방법이 있다면 어찌할 텐가?”

“그런 방법이 있다면 왜 가만히 있겠습니까? 뭐든 해봐야지요.”

노인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꼬치 하나를 불에서 더 꺼냈다.

“실은 어젯밤에 동영 사람 하나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네.”

“동영 사람이 말입니까?”

사내는 그 말에 적잖이 놀랐다. 노인은 동영에 맞선 무장 항쟁을 이끌었던 세대의 생존자였다. 그처럼 동영에 강한 적대감을 가진 이가 동영 사람을 만나다니. 무슨 소리일까? 사내는 흥미를 느꼈다.

“그렇다네.”

“그자가 뭐라고 이야기라도 했습니까?”

“했네. 처음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지.”

“상황을 바꾼다는 그 방법 말입니까?”

“그래.”

노인은 고기를 손질하며 말했다. 그 짧은 대답을 내놓는 순간 그 눈에 빛이 스치는 것을 사내는 놓치지 않았다.

“그자가 도대체 뭐라 이야기하였기에 이리 마음에 담아두신 겁니까?”

“일을 일으키라 하더군.”

“난이라도 도모하라고 부추긴 겁니까? 필경 송전 번의 경쟁자인 자가 보낸 자일 겁니다. 동영 것들은 교활하기 그지없으니 제 잇속을 위해 우릴 이용하려는 겁니다.”

“그 진의는 몰라도 결과는 분명 우리에게 유리할 것 같더군. 들어보겠나?”

노인의 말에 사내가 고기를 씹던 입을 멈추었다.

“정확히 그자가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더러 북적 상인을 죽여 달라고 하더군. 재미있지 않나.”

“북적 상인을 말입니까?”

그 말에 사내가 크게 놀랐다. 북적 상인은 원한이 있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험한 상대였다. 그런 자를 건드리라니,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말씀이신지.”

“북적 상인이 죽으면 북적과 동영의 관계는 악화될 거라고 그자가 말하더군. 틀린 이야기는 아닐세. 양국의 관계가 악화된다고 하면 우리 처우는 어찌되겠나?”

“그야.”

사내는 말을 하려다 노인을 얼른 보았다. 노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얼핏 짐작이 갔다.

분쟁 지역이 된다면 동영 정부는 원주민에 대한 처우를 개선시킬 수밖에 없었다. 안정된 상태에서는 원주민을 마음대로 고사시켜도 상관없었지만, 불안정한 상황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이들이 북적의 편으로 넘어가면 북해도에 대한 지배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분쟁이 생기면 그들에겐 무조건 유리했다. 설령 동영이 지배권을 잃고 북적이 지배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지배자는 지배권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피지배민들에게 관대한 처우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을 싸움 붙여 몸값을 올려라.

참으로 그럴듯한 계책이었다.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매우 유리하겠군요.”

“바로 그걸세. 최소한 지금처럼 내일을 걱정하며 가슴을 졸이진 않겠지. 한 세대 정도는 마음을 놓고 지낼 거라, 나는 생각하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듣고 보니 어떤가? 이 일 한번 해보겠나?”

노인이 살코기를 발라내며 물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처럼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면 위험은 감수할 만했다. 이만한 이익을 내다보고 움직인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해보겠습니다.”

“좋네. 대숲을 자주 찾는 북적 상인 일행을 잘 봐두었다가 그자들을 치게. 그게 자네에게 맡겨질 일일세.”

“문제없습니다.”

사내는 일을 자신했다. 그는 대숲에서 수십 년을 구른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그러니 외지에서 온 양적은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 더구나 혼자서 할 일도 아니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함께한다면 양적 일행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는 이 사냥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노인은 바람 소리를 내며 고기 조각을 몇 점 잘라 다시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는 노인이 건넨 고기를 씹으며 타들어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일렁이는 불꽃, 그 너머에 그들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

끼익.

문이 움직이더니 그 사이로 두툼한 털외투를 걸친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그가 통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고 내려서자 도열해 있던 무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주변에 있는 무사들과 달리 칼을 차고 있지 않았다. 전형적인 행정 관료인 양 비무장 상태였다. 그가 바로 이 삿포로의 전제 군주라 불리는 자, 삿포로 관리 역이었다.

관리 역 신이치는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체격을 가진 볼품없는 남자였다. 그를 처음 본 자들은 ‘땅콩’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두 번 본 자들은 감히 땅콩 따위로 비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의 푸근한 얼굴 속에 가려진 냉혹한 성정을 본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신이치가 차가운 흙에 나막신을 내려놓자 무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관리 역의 명을 기다렸다. 이유가 있어 그들을 부른 눈치라 뭔가 명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신이치의 두툼한 입술이 움직였다.

“번에서 경계를 강화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북적이 이 북해도 일대를 넘보기 위해 뭔가 흉계를 품고 있을 거란 말씀인 거다.”

그는 제국과 막부를 거쳐 날아온 이 첩보 내용에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 보았다. 북적은 본시 탐욕스런 자들이라 구실만 생기면 이 북해도를 넘보려 할 만했다. 경제적 이익으로 묶어두고 있긴 했지만 그 본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이 북해도의 관리 역으로서 그는 경계심을 항시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하니 각 지대(지역에 주둔한 단위 부대)는 북적들의 수상한 행동을 탐문하여 꼼꼼히 기록하고, 혹시 이곳 주민들과 접촉하는 일이 있거나 하면 즉시 보고하도록 하라. 알겠는가?”

“옛.”

무사들은 기합이 들어간 소리로 대답했다. 이들 역시 신분은 제법 되는 자들로, 상명하복에 대한 관념은 철저했다.

“좋아. 모두 가서 일들 보게.”

신이치는 지침을 전하고 해산을 명했다. 그가 무사들을 흩어 보내고 관사로 비대한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헉, 헉. 지사 대인(관리 역에 대한 존칭)!”

멀리서 누군가 그를 찾았다. 그를 부른 자는 수렵 허가를 맡은 관리였다. 꽤 진중한 자라 중책을 맡겨 두었는데, 이리 방정을 떨 줄은 몰랐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인가?”

신이치가 날카로운 눈을 돌렸다. 그 시선이 닿자 소리를 치며 그를 부르던 자가 얼른 부복하며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일이라니?”

신이치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반문했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이 북해도에 일어날 일은 몇 없었다. 원주민들의 소극적인 반항이나 사냥 과정에서 사람이 곰에게 죽는 일. 혹은 시전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충돌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니 이런 일을 큰일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내는 숨을 고른 후 얼른 고했다.

“그것이, 사냥 허가를 받고 대숲에 들었던 양이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아주 떼죽음을 당했사온데.”

“뭐, 뭐?”

신이치는 그제야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 하나 죽는 정도야 북방의 고약한 땅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북적 사람도 이곳에서 몇 사고로 죽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사냥을 하러 간 북적들이 떼거리로 몰살을 당한 사건이라면 사안이 전혀 달랐다.

누군가 작심을 하고 그들을 몰살시켰다는 이야기인데, 그건 정치적인 사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북적 쪽에서는 일단 사건의 진상 조사부터 요구할 것이고, 이를 구실삼아 북해도에 대한 각종 요구를 내놓을지도 몰랐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그 같은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누가?”

“그것이 확실치는 않지만 이곳 원주민 놈들 같습니다.”

“이 미개한 것들이.”

신이치는 주먹을 쥐었다. 그가 분노에 입술을 부르르 떠는 동안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북적 상인 대표가 이미 알고 있다 하옵니다.”

신이치는 욕설이 절로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 망할 놈의 원주민 놈들을 당장 추포해야겠다. 가서 삿포로 지대에 출동 준비 명령을 내려두도록.”

“옛, 지사 대인.”

사내가 얼른 절을 하고는 물러갔다. 신이치는 이 일이 복잡해지리라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삿포로에는 루시의 상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주로 모피와 생선 거래를 위한 곳이었지만 그 외의 물품도 거래하고 있었다. 이곳 상관에는 모두 서른 명의 루시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 수장은 콘스탄틴 백작으로 알려진 몰락 귀족 출신의 모피 상인이었다. 이 사내는 은빛 여우의 가죽을 제도에 내다 팔아 그 유명세를 떨친 자로 모피 무역에서 전설로 남은 인물이었다.

그는 보다 희귀한, 좀 더 가치 있는 가죽을 찾아 동방으로 온 끝에 이곳 북해도까지 온 참이었다.

“각하, 야만인들이 대숲에 담비 사냥을 나간 우리 상인들을 몰살시켰습니다. 자그마치 열 명이나 말입니다.”

느릿하게 담비의 가죽을 쓰다듬던 백작의 손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미개인들이 대숲에서 우리 루시의 상인들을 전부 죽였다. 지금 그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습니까?”

백작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인간적인 감정이 실리지 않은 계산적인 어투였다. 상인이라고 해도 다소 차갑다고밖에 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안내역으로 함께 갔던 동영 사람이 그리 보고했습니다.”

“그 사건에 관해 삿포로 관청에는 통보했습니까?”

“아직 통보하진 않았지만 그쪽도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공식적인 답변은 차차 들어봐야겠군요. 일단 본국에도 사정을 보고해야 하니 배편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고가 생긴 이상 본국에 보고하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외국에 나온 재외국민의 목숨에 대한 보상과 권리 보호는 전적으로 국가가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백작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상관의 대표이지 영사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즉시 손을 쓰겠습니다.”

배편을 준비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급한 일이면 한 척 빌려 쓰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이곳 삿포로가 동영에서도 외진 항구라곤 하지만 항만 내에는 언제나 범선이 한두 척 정도는 있었다.

“나머지는 내가 차차 알아보겠습니다. 그만 가서 일들 보세요.”

“예, 각하.”

백작은 손을 저어 그만 나가보라고 말했다. 상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가죽을 쓰다듬던 그의 손이 멈추었다.

‘멍청한 야만인들, 우리 상인을 건드리면 가만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웃기는군.

오히려 잘된 일이야. 이곳 모피 장사는 이제 이문도 별로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총독부에 공을 세우게 되었으니.’

백작은 냉소를 지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동료 상인들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죽은 자는 이미 한 푼의 가치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일 뿐이다. 백작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냉정하게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터졌다는 거지만.’

백작은 그 점이 걸렸다. 제국주의 열강들이라고 해서 명분이 생기자마자 덥석 그것을 물고 이용하진 않았다. 그들도 사전에 명분을 이용할 힘을 준비해놓고 움직이게 마련이었다.

이곳 극동은 루시가 힘을 투사하기에 너무 먼 곳이었다.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는 그들의 이익을 챙기기가 너무 어려운 변방이다.

준비 없이 모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지난 북방 전쟁에서 오승도란 괴물에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잘 배웠다.

‘총독부에서 이 명분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이번에 이익을 얼마나 얻을지 연결이 될 것인데.’

백작은 가급적 총독부에서 많은 이익을 얻길 원했다. 그들이 공을 많이 세울수록 이곳 상관의 대표인 그가 ‘명분’을 만들어낸 자로서 그 과실을 나누어 받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변방에서 짐승 가죽이나 벗기며 지내는 삶도 이제 지겨웠다. 화려한 과실을 맛보려면 총독부가 확실히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뭐. 전문가들이니 잘 해주지 않겠나.’

백작은 매만지던 가죽을 옆으로 치워놓고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남은 것은 명분을 보다 확고히 하고 양념을 쳐서 본국 정부에 넘겨주는 것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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