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화. 화룡점정 (4)
붉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용이 여의주를 물었다. 신화 속의 동물들이 음각된 용상에 젊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일국의 지존이라는 위치에 있는 자, 왕이라는 지위를 거머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를 보자면 왕의 지위에 어울리는 권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근엄하게 신하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대신 옆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시녀를 향해 음탕한 눈길을 던지거나 이상한 인상을 만들어 놀리는 데 신경 쓰고 있었다.
나무꾼 출신의 왕.
왕좌에 요구되는 소양 교육을 받지 못한 왕은 그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뜻하지 않게 굴러들어온 용상에 딸려온 여자와 재물에 눈이 돌아가 그것을 탐닉하기에 바빴다.
이런 자격미달의 인간이 왕이 된 것은 결국 조정을 농단하고 있는 김씨 일가의 책임이 컸다. 그들은 영민한 군주가 왕좌에 앉아 왕권을 강화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조종하기에 알맞은, 멍청하고 무능한 왕이 용상에 앉기를 원했다.
그런 이유에서 유능하고 뛰어난 왕재들을 역모로 몰아 제거하고, 먼 변방으로 보내버렸다. 남은 것은 왕좌에 오른 무능한 사내와 같은 자들밖에 없었다. 능력이 있는 왕족이라면 이미 다 김씨 일가의 손에 제거되고 말았으니까.
왕이 궁녀들을 향해 무슨 짓거리를 하건 김씨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발 너머에 있는 왕이 궁녀를 가까이 불러 그 가슴에 손을 넣건 말건 무시한 채 오경석이 준 서신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양이들이 조만간 아조를 범할 것이라 상국에서 경고를 주었는데, 여기에 대해 기탄없이 논의를 해보도록 하세.”
김씨 일가의 수장이자 집정대신의 위에 있는 영의정이 입을 열었다. 작금에 와서 영의정이란 벼슬은 명예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실력이 있는 자가 가지고 있다면 의미가 전혀 달랐다.
“상국이 이유 없이 경고를 주진 않았을 겁니다. 총리대신 각하가 우리와 각별한 사이가 되실 것이라 신경을 써주신 경고겠지요.”
“경고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대비를 강화해야 할 것인데, 역시 서신에 나온 것처럼 강도의 방비를 강화할 겁니다.”
“강도의 방비 강화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하려면 군세를 지금의 배로 늘려줘야 하는데,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군대를 몰아주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병조판서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입에 올렸다.
김씨 일가가 조정의 요직을 모두 점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입장에 있긴 하지만 그들 가문 전체가 차돌처럼 뭉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해관계는 가문 안에서도 알력을 만들고 있었다. 간택 문제 등 권력과 연결되는 부분들이 가문 내 구성원들의 갈등을 빚어내는 주요인이었다.
아무리 김씨 일가의 권력이 강대하더라도 향유할 수 있는 권력은 제한적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가문의 다음 세대의 머릿수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결국 같은 핏줄조차 경쟁자가 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누군가가 군권을 전부 차지하는 구조는 기피해야 했다. 만에 하나라는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권력을 지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병조판서 어른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군권은 누군가에게 집중되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강도의 병력을 지금의 배로 늘리면 중앙군 전력의 태반이 한 사람의 수중에 들어가고 맙니다. 그리되면 권력 균형이 어찌 되겠습니까?”
“하지만 양적이 침공한다면 강도로 올 것이라 총리대신께서 경고해주신 문제요. 이를 알고도 손을 놓는 일은 상국에 면이 서지 않는 일입니다. 손은 써두어야 합니다.”
“그건 안 될 일입니다. 강도를 내주고 뭍에서 막아도 될 일입니다.”
“뭍에서 막는 건 안 된다고 상국에서 알려오지 않았습니까?”
김씨들 사이의 목소리가 차츰 높아졌다. 가문 내 권력을 양분하는 두 계파가 상반된 입장을 내비쳤다. 현재 권력의 중핵을 차지한 직계와 지방으로 밀린 방계의 입장 차였다.
방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에서는 강도에 힘을 싣자고 주장했다. 이들의 수장이 강도 방어사이니 그럴 만도 했다.
반면, 직계는 일이 그리 돌아가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직계는 권력이 방계에 넘어갈 가능성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병력 증강을 거절할 이유가 충분했다.
쌍방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부딪치자 영의정이 손을 들어 양자의 대립을 조율하고 나섰다. 일단 가문의 대표가 나서자 양자는 언쟁을 멈추고 가주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강도의 방어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과 방어의 당위 문제를 잘 들었소. 해서 이 문제에 대해 이조의 견해를 들어보겠소. 참의가 한마디 해보게.”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자신에게 의견을 구하자 장조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부친의 의중을 알고 앞으로 나섰다.
가문이 지금 둘로 나뉘어 의견을 대립하는 상황에서 가문의 장자가 할 일은 갈등을 봉합하고 구성원들이 가능한 승복할 수 있는 합의안을 내놓는 데 있었다. 여기서 직계의 입장을 지나치게 대변해 버리면 방계의 신망을 잃게 마련이니 적절한 선에서 타협점을 구해주어야 했다.
이것이 타협이고 가주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었다.
“예. 제 생각에는 강도의 방어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직계 중의 직계, 가문의 적장자가 방계의 입장을 대변해주자 방계 쪽 인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신 직계 인사들은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장조는 그 명암의 대비를 읽으며 신중하게 언사를 골랐다.
“하나 한 사람에게 힘이 너무 실린다는 부분도 조금은 고려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해서 방어사 휘하에 두는 각 진의 지휘관들을 가문의 각 어른들이 추천하는 방식으로 하면 ‘군권의 집중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장조의 말에 처음 실망했던 직계 인사들도 뒷부분까지 이야기를 듣자 표정을 폈다. 방계 쪽은 다소 실망한 빛을 보이긴 했지만 나름 승복할 만한 타협안이라고 생각하고 반발의 빛을 지웠다.
영의정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아들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에서 어느 일방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권력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힘의 추를 맞추는 균형감이었다.
“이조 참의의 견해가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시오?”
“나쁘지 않은 견해라 생각합니다.”
“안전장치로 문제가 없다 여겨집니다.”
“이 정도면 우려하지 않을 수준이옵니다.”
김씨들이 입을 모아 적절한 수준의 타협이라고 말했다. 그들도 타협을 한다면 이 근처 수준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거라 예단하고 있었다. 단지 조율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가주와 그 직계 가솔에 국한되어 있던 터라 타협안을 낼 수 없었을 뿐이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된 듯싶으니 강도의 병력 증강에 대해 동의한 것으로 알겠소이다. 하면 얼마나 병력을 늘리면 좋겠소?”
“상국 사절 오경석의 제안대로 육천 수준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원래부터 배 이상의 증강에 대한 말이 나온 터라 육천이라는 수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가 좋을 듯합니다. 다만 그만한 규모의 군세를 주둔시키자면 병량 확보 문제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병량 확보 문제라.”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군대의 증강은 무리인 줄로 아룁니다.”
병조에서는 병량 확보를 우선 지적하고 나섰다. 강도 주둔군은 그 섬에서 나는 소출에 더해 매년 한 번 지원되는 양곡으로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력을 두 배로 늘리면 그보다 많은 지원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강도로 가는 조운선을 지금의 세 곱절은 띄워야 군대의 유지가 가능했다. 그렇게 하려면 당분간 삼남의 세수를 도성으로 들여올 조운선을 모두 강도로 돌려야 했다.
“그리하려면 조운선을 강도로 모두 돌려야 합니다.”
“당분간 조운선을 모두 강도로 돌리면 도성의 물가가 배로 뛸 것입니다. 거기에 증원될 군대까지 강도로 실어 나르려면 수상 운송 부족은 현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호부 쪽에서도 입장을 밝혔다. 국가의 세수를 관장하는 입장에서는 조정으로 들어오는 세입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을 어찌 처결하잔 말이오?”
“우선 병력을 천천히 증강하도록 일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급격히 일을 추진하기에는 나라의 사정이 너무 어렵습니다. 거기다 가문의 어른들께서도 새로 지휘관들을 추천하시려면 사람들을 검증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계파의 인사들을 고르고 뽑을 시간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영의정도 그 말을 듣고 수긍의 빛을 보였다.
“온당한 지적이오. 그런 문제가 있다면 일을 서둘러선 안 되겠지. 일은 그리 처결하기로 합시다.”
영의정이 결정을 내리자 가문의 중진들이 이를 추인했다.
왕은 자신 앞에서 멋대로 국정을 결정하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궁녀를 희롱하다 ‘회의’가 끝났다는 말을 듣고 화색을 띤 얼굴로 얼른 편전을 빠져나갔다.
***
연합왕국은 일개 분 함대와 1개 해병대대(선진 주둔 함대 탑승 병력)로 이루어진 원정군 병력으로 모험을 강행하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공사 하워드가 만들어준 ‘운신의 폭’에 따라 다음과 같은 지침을 세웠다.
1. 왕조의 전복 및 식민지화와 같은 시도는 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목표는 정치적으로 연합왕국의 이해에 큰 손실을 줄 뿐만 아니라 극동의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낳을 우려가 크다.
2. 왕국 본토를 직접 공격하는 일은 회피한다. 수도로 통하는 관문에 해당하는 강도를 점령하고 ‘강화 협상’을 진행하는 선에서 목적 달성을 추구한다.
3. 협상의 주된 내용은 경제적 이익에 국한하며 그 외의 어떠한 정치적 요구도 배제한다. 여기에 대한 논의는 신과의 교섭 이후에 추가하도록 한다.
4. 민간인에 대한 처우는 일반적인 원주민에 대한 대우와 달리한다.
5. 사전 협상은 원정군이 진행하되, 본 교섭은 총영사 혹은 왕국 동방 지역 정책 담당관이 진행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사항은 원정군이 ‘굉장한 야심’을 추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식민지 구축 혹은 새로운 항구의 획득과 같은 제국 확대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일이 아니다 보니 원정에 참가한 장교들은 다소 느슨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 역시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신과 같은 대국이 상대라면 압도적인 수의 적을 생각해서 조금은 긴장할 수 있었을 것인데, 소국이다 보니 그럴 걱정도 덜했다. 많아야 기천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니 염려하는 것이 이상했다.
장교들은 트럼프를 하며 이번 원정에 대한 가벼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번에 가는 나라는 여자가 아주 많고 금과 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얘기가 많더군. 가서 젊은 아가씨들과 진탕 놀고 한몫 단단히 챙겨 돌아올 생각이야.”
“그것도 좋은 얘기지만 동방에선 여자가 아무리 많아도 구경하기가 쉽지 않잖나.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외모를 가리는 여성들이 많다 보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교 하나가 파이프를 물며 말했다.
“미개한 관습이지. 여성의 미모는 드러날수록 빛이 나는 법인데, 보석을 가려서 뭘 어쩌잔 말인가.”
“그게 다 자네 같은 작자들 때문에 나온 관습인지도 모르지.”
장교들이 낄낄대며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해군은 전통적으로 술이 배급에 포함되어 있을 만큼 술을 사랑하는 곳이었다. 귀족이라 자부하는 해군 장교들도 이 관습에 물들어 있어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번 원정이 아주 놀고먹는 싸움이 아니란 얘기는 있더군.”
“참모장 이야기 말인가.”
한 장교가 아는 척 나섰다. 이번 원정 계획을 수립한 참모장 본 백작은 어느 전투든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작전을 짜기로 유명한 인간이었다.
해군 장교들 사이에서 본 백작은 ‘우울한 본’, ‘침울한 백작 나리’, ‘음침한 점성술사’ 따위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작전만 짜면 우울한 전망을 내놓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작자야 작전을 짤 때마다 안 좋을 거라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사람이니 그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온 적이 있나.”
“그거야 그렇지만 본 백작이 은근히 예상을 잘 하기도 하지 않았나?”
장교 하나가 참모장의 ‘신통함’을 입에 올리자 장교들이 포도주 잔을 들었다.
“재수 없는 말을 하는데 들어맞는 건 좀 기분이 더럽지. 그 작자가 이번에 뭐라고 했던가?”
“상륙부터 고전할 거란 예상을 내놓더군. 우리가 갈 나라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개펄에서 허우적거리며 섬으로 기어오를 거란 얘기부터 하던데,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지 않나?”
“빌어먹을. 개펄이라면 되었네.”
남방에서 개펄에서 구른 적이 있는 장교 하나가 인상을 썼다. 개펄은 연합왕국 군대가 가장 싫어하는 전장이었다. ‘멋’ 때문인지는 몰라도 절대 멜빵을 채용하지 않는 왕국 육군은 개펄에 들어가면 장화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기동력이 떨어진 상태로 개펄을 오를 거란 가정은 시작부터 술맛을 떨어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럼, 개펄에서 우리가 포격이라도 받을 거란 얘긴가? 그 점성술사 나리의 예상은?”
“그렇다고 하더군.”
“웃기는 소리. 우리 해군이 바보도 아닌데 그 하찮은 미개인들의 포대를 모두 제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나?”
장교들은 그 불쾌한 가정을 일축했다. 왕립 해군의 역량은 세계 최강의 요새 중 하나인 크론테르 성을 전열함의 대포만으로 굴복시킬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열강들조차 두렵게 여기는 가공할 요새도 해군의 힘으로 굴복시킨 그들인데, 야만인들의 포대도 굴복시킬 수 없다니? 가정 자체가 불쾌했다.
말을 꺼낸 자도 백작의 예상이 적중할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건 나도 그리 생각하네만 우리가 쳐들어갈 섬의 지형을 모두 보고 온 것은 아니잖나. 만에 하나 해군의 대포가 닿지 않을 수 있는 곳에 포대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면 그 가정이 가짜는 아닐 테지. 백작은 현지에서 살다 온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판단했을 수도 있을 걸세.”
그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장교들이 백작의 가정은 싫어했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부정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개펄에서 포격을 맞으며 올라간다면 꽤나 치열한 싸움이 되겠군. 그런 다음은 어찌 될 거라고 예상하던가?”
“이후에는 잘 정비된 성곽 위에 버티고 있는 방어군과 겨뤄야 한다고 가정하더군. 섬 전체에 방어군이 얇게 퍼져 있긴 하지만 최초 공격군의 1.5배 수 이상은 상대해야 한다고 상정하는 판이야. 우리 화력이 압도적이라고 가정해도 방자의 우위를 생각하면 꽤나 죽어나갈 거란 게 백작의 생각이지.”
“역시 듣기만 해도 우울해지는 더러운 말이군. 백작 이야기는 듣는 자체가 기분이 좋지 않아. 함대 제독으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편이 차라리 속이 편하지. 그쪽은 이런 우울한 이야기보다는 자신감 있는 이야기를 잘하거든.”
“딴은 그렇지.”
장교들이 웃으며 잔을 다시 들었다.
장교들이 장교 식당에서 즐거운 소풍 정도로 전쟁을 받아들이는 동안, 함상의 수병들 역시 자신감을 갖고 전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제국의 첨병으로 서오며 그 조국과 군사력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그들의 군홧발이 닿는 순간 그 판도는 왕국의 영역에 놓였고, 수많은 인간이 그 강력한 조국에 고개를 숙였다. 세계를 호령하는 초유의 열강, 연합왕국. 그 사자기를 든 이들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그들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다가올 침공의 시간만을 기다렸다.
“이번에 싸울 상대가 신의 속국이던가?”
“들리는 이야기론 그렇다더군.”
“신도 아니고 그 속국이라면 볼 것도 없군. 신도 우리 왕국에 간단히 굴복했는데 그 제후국이라면 상대가 될 턱이 없지. 딱 일주일만 공격하면 항복하는 것 아닌가?”
병사 하나가 킬킬거리며 마룻바닥을 해면으로 문질렀다. 통상 이 주일에 한 번 있는 갑판 청소는 몹시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일주일도 너무 길어. 아마 그들은 우리가 항복을 요구하는 서신만 보내도 항복을 할 테지.”
“서신을 보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그림자만 비쳐도 벌써 백기를 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병사들은 나름대로 이번 싸움이 싱겁게 끝날 거라 믿었다.
동방의 맹주인 신의 무기력함이 그 주변국들에 대한 평가도 결정지었다. 맹주로 떠받드는 나라가 허약하니 그 주변도 약하다는 건 자연스런 결론이었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그리 간단하게 재단할 수 있지 않았다.
신이 왕국에 쉽게 굴복한 것은 정권의 안정 문제를 우선시한 탓이지, 열강의 위협에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는 아니다.
하물며 이번 원정에 동원된 연합왕국의 군사력은 신을 침공할 때에 비해 턱없이 적다. 그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미약한 군사력을 동원한 침공. 그들이 승리를 쉽게 자신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