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화. 망라 (1)
신이 국혼으로 떠들썩한 시간을 보낼 무렵, 세 척의 이양선이 강도 남쪽 앞바다에 나타났다. 이들 이양선은 연합왕국 원정군의 첨병으로써 사전 수로 정찰을 위해 먼저 파견된 프리깃함들이었다.
프리깃함들은 강도에서 비교적 먼 곳에 닻을 내린 후, 보트를 내려 수로 측량 작업을 시작했다. 군함의 작전에 있어 수심 측량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게을리하면 배가 좌초하기 일쑤여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왕국 장교들은 직접 측량 작업을 지휘했다. 그들이 침공할 나라를 얕보는 것과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던 터라, 그들의 측량은 주의 깊게 이루어졌다.
강도 최남단의 진을 지키고 있던 진무사 염정은 천리경을 들어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입맛을 다셨다.
“양이들이 벌써 이 강도에 이르렀으니 일이 아주 급하게 되었어. 조정에 올릴 장계는 어찌 되었는가?”
진무사의 물음에 군관이 공손히 아뢰었다.
“한 식경 전에 강도 군영으로 파발을 올렸으니 곧 본토로 장계가 올라갈 것이옵니다.”
염정은 천리경을 내리고는 점점 가까워지는 서역 종선들을 바라보았다. 종선 한 척에는 열 명 남짓한 서역 병사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무언가 열심히 수로를 따라 올라오며 탐문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양이가 자신의 관할 구역에 드나들게 내버려두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염정은 주위에 명해 포격을 준비하게 했다.
진무사가 지휘하는 ‘남파 진’에는 모두 서른 문의 대포가 있었다. 태반이 낡고 오래된 것들이었지만 유지 보수가 잘 되어 있어 모두 쓸 만했다. 양적과 정면으로 대응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종선 정도는 간단히 격파할 수 있었다.
진무사는 각 포대로 하여금 적 종선을 조준하게 하고 군관 하나를 배에 태워 양이들 쪽으로 가서 문정을 하게 했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더라도 그 의도를 대강이나마 알아보아야 했다.
군관이 양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염정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군관이 돌아와 그에게 고했다.
“영감, 양적들이 말하길 식수와 먹을 것이 떨어져 이를 구하고자 우리 강역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조정과 친교를 맺고 싶다는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헛소리.”
염정은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조정에서도 양적들이 곧 침공할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는 양적들의 교활한 기만에 다름 아니었다.
“소인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감, 이제 어찌하시겠습니까?”
“가서 저자들에게 더 들어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단단히 주의는 주었나?”
“그렇습니다.”
“그럼 되었네. 조정에서도 양적을 물리치라 명을 내렸으니 우린 할 일을 하면 그만일세. 수기를 올려 방포를 준비하라 이르게.”
진무사의 명이 떨어지자 수십 문의 대포들이 슬금슬금 제 머리를 내밀었다. 진무영의 병사들이 분주하게 전투를 준비하는 동안, 종선에 탄 붉은 코트들은 상대의 문정에 조금은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선두에 있던 종선에 탄 붉은 코트 장교가 망원경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야만인들이 한판 해볼 생각인가. 이대로 진행하면 조금은 위험할 듯도 싶군.”
“상대가 위험하단 말씀이십니까?”
그 물음에 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협은 좁고 포대 앞은 시계가 트여 있어 우리 배를 공격하면 피할 곳이 없어.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은 어려워. 이만 배를 돌리도록 하지.”
“측량은 차후로 미루는 것입니까?”
다른 장교가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더 측량할 것도 없네. 이 정도만 측량해도 기본적인 해도는 대강 작성할 수 있지. 이곳은 물살이 빠르고 해협의 폭이 좁아 해협 입구와 안의 수심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걸세. 어림짐작 정도는 가능하지.”
“하지만 조금 더 찾아보면 진입 가능한 부분을 찾아낼지도 모릅니다.”
다른 장교는 측량을 조금 더 해볼 것을 권했다. 이들은 잠시간의 측량을 통해 해협 입구의 수심을 대강 파악하였다. 그들이 파악한 수심은 대형 군함의 운신에 장애가 있었다.
강도 공략을 위해 보다 많은 전력을 가지고 들어올 필요가 있는 연합왕국 원정군으로서는 수로를 좀 더 탐색해 주력함들을 해협으로 가지고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측량을 더 해본다고 해도 대형 군함의 운신이 가능한 길을 찾아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있다 해도 좁고 제한된 약간의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고작이라 웬만해선 군함의 출입에 문제가 있었다.
“그건 나중에 해협 입구의 양안을 장악하고 진행해도 늦지 않아.”
장교는 딱 잘라 말했다. 포격을 받으며 측량을 하는 것은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일단 모선으로 돌아가지.”
선임 장교가 뜻을 확실히 하자 나머지 장교들도 수긍했다. 그들이 배에서 일어나 두 손을 높게 들고 흔들자 한창 측량을 진행하기 위해 조금씩 전진해오던 종선들이 방향을 선회하였다.
장교들은 망원경을 들고 남파 진의 포대들을 살피다 모선으로 돌아갔다.
연합왕국의 최초 측량 행위가 일단 중단되자 진무사는 ‘적의 활동’이 멈추었다는 사실을 강도 군영에 보고했다. 강도 군영에서는 이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양적이 당장 침공을 할까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유는 있었다. 상국에서 경고해준 대로 병력을 증강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거의 전력을 증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병력의 증강에 대비해 대량의 화약과 여분의 물자를 미리 옮겨둔 정도가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방어전을 ‘참관’하기로 하고 몸소 강도에 건너온 경석은 이런 상황에 혀를 차면서도 연합왕국이 간단히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가 그렇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이곳 강도의 지형에 있었다. 강도는 섬의 서쪽과 북쪽, 남쪽이 험준한 산세로 둘러싸여 있어 공격자에게 상당히 불리한 지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나마 상륙이 용이한 동쪽 해안은 폭이 좁은 해협과 접해 있어 공격자들이 상륙하기 전부터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공격자들은 섬의 동남쪽에 상륙하여 육상 병력으로 섬 동쪽의 포대들을 깨트리며 수로를 따라 올라오는 전술을 취해야만 했다.
두 번째는 연합왕국 군대의 규모였다. 경석은 승도로부터 원정군의 규모에 대해 대강의 언질을 받았는데, 시간상 왕국이 동원 가능한 전력이 그리 크지 않을 거란 말을 들었다. 기껏해야 천 단위의 지상군이 고작인데 그만한 머릿수론 이곳 강도 방어 전력을 압도하기에 문제가 있었다.
천하의 붉은 코트라 해도 천 정도의 군대로 일국의 중앙군 주력과 자웅을 겨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 번째는 사전 정보다. 이 나라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공격을 받았다면 위로부터 아래까지 공황에 빠진 상태로 흔들렸을 수도 있지만, 공격에 대한 사전 경고는 이미 받았다.
싸울 준비도 했고 전의도 다졌다. 그런 만큼 연합왕국이 예상한 이상의 저항을 보일 요소는 갖추어진 셈이다.
‘문제라 하면 각하의 예상 이상으로 왕국이 피해를 보고 물러나느냐. 혹은 이 나라가 굴복하느냐의 가부인가.’
경석은 뒷짐을 진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강도 군영의 군졸들을 살폈다. 바람이 그의 백의를 슬쩍 흔들었다.
왕국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물러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가 되었다. 그리되면 이 나라의 집권층이 전쟁에 자신감을 가지고 호전성을 가질 수도 있었고, 혹은 연합왕국이 이들을 진지하게 극동의 장기짝으로 키워주려 검토할 수도 있어서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면 오승도의 구상은 상당 부분 흔들리게 된다. 열강의 관심을 돌리는 부분은 해결하더라도 동쪽에서 예상하지 못한 위협이 성장할 수 있어서다. 정치적으로 혈연 동맹을 맺더라도 ‘영원한 우방’은 없었다.
반대로 이 나라가 굴복해도 문제가 되긴 마찬가지.
이 나라가 간단히 굴복해 버리면 행상의 수입에 문제가 생겼다. 경제적 이익이 곧 정치적 안정으로 연결되는 오승도 정권의 입장에서 보자면 심히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가급적이면 연합왕국이 오승도가 생각하는 적절한 수준의 피해를 보고 물러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경석은 전운이 불어오는 남쪽을 응시하다 소맷자락을 털고는 군영으로 걸음을 옮겼다.
***
연합왕국 함대의 기함 격으로 참가한 그랜트의 사관 회의실에서는 마지막 작전 검토가 있었다. 장교들은 지도를 앞에 두고 지휘봉을 들어 공격 방향을 이리저리 찍어댔다.
“이번 사전 측량으로 확실해진 부분은 수로를 따라 충분히 전진한 다음 섬의 동안에 상륙하려던 계획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선교사의 말로는 범선의 운항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는 동방 전통의 범선들이나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처럼 큰 대형 함정들은 수로를 따라 전진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려고 하면 수로의 양쪽 포대를 육상 병력으로 제압한 후에 측량을 다시 실시하여 안전한 항로를 확인해야 합니다.”
“해군에서 수로 전진이 어렵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해병대가 자력으로 수로 양쪽을 모두 공략하며 전진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합니까?”
측량을 나갔던 선임 장교의 말에 해병 소령이 반문했다. 왕국 해병대의 전투력이야 세계 최강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지만 개인 화기만 가지고 잘 준비된 요새들을 격파하며 나아가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어려울 겁니다. 아무리 해병대라고 해도 그런 임무는.”
“아니, 가능합니다. 적의 화력은 우리가 우려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이 아닙니다. 본 백작은 적 주력 화포의 성능을 5분에 1발의 포탄을 쏘는 수준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백작의 가정대로 생각한다면 포대들을 격파하는 것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대포를 감당할 수 있다 해도 방어 측 보병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요새마다 우리 초기 공격 병력의 배에 가까운 병력이 버티고 있다면 우리 손실이 적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 점도 충분히 상쇄 가능할 겁니다. 신에서의 교전 경험을 반영하여 생각해 본다면 적의 전력은 동일한 병력에서 우리 화력의 십분의 일을 내도 다행일 겁니다. 그런 화력 차라면 크게 우려할 것도 없습니다.”
해군 장교 몇이 걱정할 것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들은 해병대가 적당히 잡병들을 쓸어버리고 수로 측량을 실시해 강도를 본토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면 이 전투가 간단히 끝날 거라 예단했다.
물론 원정군 참모장 본 백작과 같이 비관적인 견해를 내놓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목소리는 소수였다. 신에서 파격적인 승리를 경험한 그들에게 동방 군대는 머리만 많은 얼치기였다.
오승도와 같은 천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동방 군대로 열강의 군대와 겨룬다는 것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이야기였다.
“정말 그리 낙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이 풀리지 않을 경우도 대비해야 합니다. 최소한 최초 상륙에서 가능한 화력 지원이 확실히 이루어지도록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섬 남쪽에 최대한 접근이 가능한 프리깃함 세 척으로 포대를 확실히 무력화시키겠습니다.”
해병 장교들의 우려에 대해 해군은 확실한 화력 지원을 약속했다. 조금은 불안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해병은 그 보장을 믿기로 했다. 그들이 보아온 해군은 그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좋은 친구였다.
이튿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왕국 해군 전투함들에서 수십 척의 보트가 내려왔다. 강렬한 아침 일출을 배경으로 바다에 보트들이 가득 내려지자 강도 앞바다는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사자기를 매단 종선들은 힘껏 노를 저으며 앞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국가를 흥얼거리며 푸른 물을 갈랐다.
종선의 선두 그룹이 빠르게 해안선을 향해 다가설 즈음, 그 뒤를 따라 전진해온 프리깃함들이 섬과 수평 방향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날 측량을 하며 보아둔 포대들을 향해 대포를 조준한 채 기다렸다.
기다림은 일종의 명분 쌓기였다. ‘침공’이 아니라 그저 물과 음식을 구하러 가는데 포격을 먼저 받았다고 주장하기 위한 기다림. 왕국 해군은 이런 일에 상당히 능했다.
곧, 양이들이 침공을 시작했다 여긴 남파 진의 포대가 먼저 불을 뿜었다. 진무사의 수기가 오르기가 무섭게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종선들 주변에서 물기둥이 솟구쳤다.
종선에 탄 해병들은 그것을 보고 얼른 노질을 하여 뒤로 물러섰다. 적의 포격을 유도하기 위해 일단 간만 본 것인 만큼 물러섬에 있어 주저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적이 포격을 시작하자 망원경을 든 채 이 순간만을 기다리던 왕국 해군 장교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적이 선공을 가했음에 만족하며 준비한 명령을 입 밖으로 꺼냈다.
“발사!”
그들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거대한 양선들의 포문이 일제히 개방되었다. 전열함에 비해 화력은 떨어지지만 프리깃함들의 화력도 결코 약하진 않았다. 이들의 화력만으로도 낡은 요새의 포대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콰쾅!
우렁찬 벽력 소리와 함께 조금 전 포격을 압도하는 포탄이 성곽 위에 자리한 포대들을 향해 쇄도했다. 일부 포대는 군함이 쏘기 곤란한 사각에 있었지만 상당수는 충분히 포격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다.
단 한 번의 포격에 성곽 곳곳에서 흙먼지가 일며 돌가루가 튀었다. 사거리 차이는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육상 포대의 대포는 그들을 향해 나아오는 보트조차 사거리에 넣지 못했지만, 왕국 해군의 군함들은 한참 뒤에서 성곽을 두드리고 있었다.
몇 번의 포격 만에 포대 곳곳이 허물어지고 성곽에 균열이 일었다.
방어 측의 저항이 급격히 약화되어 가자 잠시 돌입을 멈추고 있던 보트들이 다시 전진했다. 해병들은 날렵하게 노질을 하여 포탄이 쏟아지는 바다를 가로질렀다. 수십 미터의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종선들이 해안에 닿자 해병들이 차례로 진흙 위로 뛰어내렸다.
질퍽한 진흙은 그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고약한 복병이었다. 해병들은 재빠르게 성곽을 향해 전진할 생각이었지만 진흙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염병할. 생각한 것보다 더 고약한 곳이잖아.”
개펄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고 곤란한 공간이었다. 해병들은 그곳에 발을 디딘 즉시 군화가 깊이 빠지는 문제에 직면했다. 일부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엉금엉금 바닥을 기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였다. 움직임이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콰앙!
느닷없이 진흙 한복판에 폭발이 일었다. 고약한 흙덩이가 사방으로 튀며 붉은 코트들의 옷을 더럽혔다. 병사들은 옷이 더럽혀진 순간 적 포대가 자신들을 조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진흙에서 뒹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들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절박함에 급히 발을 놀리다 태반이 군화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멜빵을 한 로망스 병사들을 가리켜 ‘난쟁이’들이라고 비웃던 그들이었지만 막상 진흙탕에서 구르고 보니 비웃을 입장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를 갈며 맨발로 성으로 올라가는 길로 뛰어올랐다. 다음 순간 울창한 숲 사이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선두에서 뛰어가던 병사 셋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매복한 적 보병이었다. 붉은 코트들은 재빠르게 엄폐물을 찾아 흩어진 다음 응사를 시작했다. 콩 볶는 총성이 오가길 잠시, 붉은 코트들은 압도적인 화력의 힘으로 매복한 적 보병들을 밀어냈다.
시체가 즐비하게 깔렸다. 붉은 코트들은 달아나는 적 보병들을 뒤쫓으며 총격을 연거푸 퍼부었다. 분당 연사 속도와 정확도에서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가진 그들이었기에 전투는 거의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기습을 당했다면 몰라도 정면에서 그들의 적수가 되기에 적은 너무 약했다.
붉은 코트들은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적을 추격하여 성까지 진출했다. 성에는 포대가 있어 그 안으로 입성만 하면 승리는 확실했다. 포대만 치워버리면 걸릴 것은 없었다.
선두 공격 부대를 지휘하는 빌리 소위가 외쳤다.
“야만인들은 궁지에 몰려 있다. 건방지게 우리 코를 때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자.”
“야만인들을 죽이자!”
붉은 코트들이 용기백배한 채 성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일부 적이 성문 위에서 저항을 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들의 진입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몇 번의 총격 끝에 저항하던 자들이 모두 성문 아래로 떨어졌다. 빌리 소위는 소대 병력을 이끌고 재빠르게 성내로 진입했다. 그가 성문으로 들어선 순간 그는 늙은 적장과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진무사는 처음으로 마주한 양이 장교를 보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의미 모를 미소에 빌리는 잠시 섬뜩함을 느꼈다. 하나 곧 왜 상대가 웃었는지 알고 경악하며 몸을 낮추었다.
다음 순간 두 발의 포탄이 바닥을 튕기며 성문으로 밀고 들어온 붉은 코트들 사이를 치고 나갔다. 팔과 다리가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뒹굴었다.
비명을 지르는 붉은 코트들을 향해 누런 군복을 입은 려의 병사들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해병들은 서릿발 같은 기세로 달려드는 적을 보며 황급히 총검을 고쳐 쥐었다. 전투는 그들이 처음 생각한 것과 달리 훨씬 힘겹게 진행되려 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