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97화 (297/425)

제297화. 남하정책 (2)

증기의 강한 힘으로 움직이던 기선이 서서히 속도를 줄여갔다. 갈매기가 날개를 편 채 거대한 배의 옆을 스치듯 지나쳤다. 갑판에 서서 멀리 보이는 육지를 보고 있던 사내가 손을 들었다.

오랜 시간 방문하지 못했던 제국 영토가 한 손에 잡힐 듯 들어왔다. 그는 차츰 가까워지는 항구를 보다 코를 문질렀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제국의 관문 선진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낡은 동방의 범선과 정비되지 않은 어촌 수준의 항구를 생각했던 그의 생각과 달리, 도시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항구에는 수십 척의 서역식 범선이 정박해 있었고 부두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어마어마한 창고들이 줄을 지어 들어서 있었는데, 전부 새로 지은 듯 색감이 부드러웠다.

기선이 부두에 와 닿자 미리 마중을 나온 관료가 그를 맞았다. 관리는 서역식 예법에 맞게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마차로 안내했다.

전통 동방 관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사내는 적지 않게 당황하면서도 마차에 얼른 몸을 실었다. 마차에 오른 다음에도 놀랄 것이 더 남았다는 사실에 흥미를 가졌다.

마차가 덜컥하고 출발한 다음 그 주변의 풍광이 시선을 붙들었다. 새롭게 건설된 철도와 운하가 마차가 움직이는 길을 교차하며 지나갔다.

잘못 보았다면 제국이 아니라 에우로페의 어느 지역을 지나가고 있다고 믿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다 동승한 관료에게 물었다.

“지금 신의 연호가 어떻게 됩니까?”

서방과 달리 동방은 황제의 연호를 기준으로 해를 세었다. 관료는 그 물음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영건 3년입니다.”

영건 3년. 오승도가 정권을 장악하며 황제의 연호를 새롭게 고친 지 세 번째 해가 되었다는 말이다.

“영건 3년이라면 총리대신 각하께서 집권하신 지 삼년 차 되는 해입니까?”

“그렇습니다.”

관리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권 삼 년. 그는 그 말에 크게 놀라면서도 자신이 기억하는 승도라면 이만한 변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차는 선진을 떠나 새로 닦은 관도를 따라 달렸다. 길이 워낙 잘 포장되어 있어 마차는 거의 최고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기존에는 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이런 이동 속도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는 겨우 하루 만에 자신이 마차로 북경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경탄했다.

북경에 도착하자 관리는 그를 승도의 장원으로 안내했다. 장원은 승도의 아내, 은비의 취향에 맞추어 서역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터라 상당히 익숙한 정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장원에 들어서자 펌프에 의해 작동하는 분수가 먼저 눈에 띄었다. 제정 시절 오승도가 가장 좋아했던 기물로 승도가 아내를 위해 건설한 것이기도 했다.

사내는 분수를 둘러보다 시녀의 안내를 받아 승도의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집무실은 서역의 정치가들처럼 밖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밀폐된 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까만 관복에 수염을 조금 기른 젊은 사내. 예전보다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정확히 말하면 나이가 들었다기보다 관록이 붙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제국 최고의 권력자. 그리고 이 대륙의 지배자인 남자는 인기척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듯합니다. 콜 씨.”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각하. 그간 못 뵌 동안 인상이 강해지신 듯합니다.”

동방 무역 회사에서 대반을 지냈던 사내, 콜의 인사에 승도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가 소파에 앉자 승도가 시녀에게 다과를 내어오게 하고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신임 대반으로 오신다는 이야기를 받고 기다렸습니다. 그간 승승장구하셨다는 얘기도 들었고.”

“모두 각하의 보살핌 덕분입니다.”

콜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느껴지는 승도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권력을 쥔 자가 발하는 카리스마이며 위압감이란 것이었다. 물론 보통 인간이 권좌에 앉는다고 이런 것을 갖진 않았다. 즉, 그 앞의 사내는 권좌에 어울리도록 태어난 자였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동방 무역 회사가 어디 제국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회사이겠습니까.”

콜은 승도의 과찬을 옅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사내가 회사를 띄워주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다.

승도는 여유롭게 콜을 상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제국의 내정 이야기부터 자신의 정원에 들어간 신축 자재 이야기까지. 잡다한 이야기를 꺼내는 그 화법에 콜은 신중하게 대답을 꺼내며 논점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일국의 최고 권력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가 자못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을 확인한 승도가 느긋하게 찻잔을 놓으며 본론을 꺼냈다.

“사실 대반께서 오시자마자 본인을 찾아달라고 편지를 보냈었던 데에는 사정이 조금 있습니다.”

“사정이라고 하시면.”

승도의 말에 콜은 조금 긴장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대반도 아시겠지만 우리 제국은 영토 일부를 북적에게 잠식당한 처지입니다.”

콜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막을 점령당한 것이 벌써 삼 년 전의 일이었다. 연합왕국 본국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북적에게 압력을 가했지만 일은 수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왕국 본국에서 에우로페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둔 탓이다. 덕분에 북적은 이 대막을 통해 신의 영토로 다시 남하하려는 기미를 보였고, 그에 대해 왕국은 속수무책이었다.

방법이 하나 있다면 신의 국력을 키워 북적의 남하를 막는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전제가 있었다. 차관을 더 주어 확실히 목을 졸라놓고 신의 국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오승도가 거부하기도 했거니와 지난 ‘려’ 문제로 신의 내정에 개입하기엔 입장이 좋지 않아 왕국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왕국은 로망스가 신에 암중 접근하여 대량의 무기를 팔아치우는 것까지 묵인하고 북적의 남하를 저지하길 바라는 처지였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우리 입장에선 꽤 곤란한데, 그들은 좀 더 많은 영토를 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이 사람에게 호된 맛을 보고도 그 욕심이 꺼지질 않은 겁니다.”

“그들의 욕심이야 세상 전체를 삼켜도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해서 그 문제에 대해 왕국의 협조를 구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협조라면 차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반이 묻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라면 공사를 불러 해결하면 그만이다. 구태여 대반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아닙니다. 그런 해결책 외의 방법을 원하는 겁니다.”

“그 외의 해결책이라면.”

“우리는 북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응을 할 생각입니다. 전쟁을 통해 대막을 수복할 생각이지요.”

“전쟁.”

“그렇습니다.”

콜은 꽤 놀란 표정으로 승도를 보았다. 대막은 이미 지난 전쟁이 증명하듯 신의 군대에 매우 불리한 전장이었다. 그런 곳에서 북적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수였다.

도리어 패하기라도 하면 북적의 남하 야욕에 부채질을 할 것이다. 콜은 그 생각이 위험하다고 만류했다.

“각하, 그 선택은 위험한 자충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도 알고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언제까지 강산을 남의 손에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그 위험이 있기에 왕국의 협조가 필요한 겁니다.”

“차관이 아니라면 무슨 협조를 바라시는 것인지 의아스럽습니다.”

대반의 물음에 승도가 짤막하게 말했다.

“동방 무역 회사의 사설 군대를 회사령 북부에 증강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대반의 눈이 무거운 빛을 보였다. 회사령 북쪽에는 루시 제국과 연합왕국 식민 제국 간의 ‘중립 지대’로 간주되는 토착 부족들의 땅이 있다. 이 지역의 중간에 왕국과 제국의 국경선이 그어져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곳에 양국의 군대가 주둔한 적은 없었다.

서로가 직접 경계를 마주하면 충돌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군대를 주둔한다는 것은 왕국으로서는 상당한 마찰을 감수해야 한다.

승도의 제안은 지지부진한 ‘남하’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이긴 했다. 북적을 그냥 두면 신의 영토는 물론이고 슬슬 분쟁의 강도를 높여가는 동영의 영토까지 넘볼 것이 뻔했다.

왕국의 국익이 달린 극동에서 그런 세력 팽창은 결코 좌시할 수 없었다.

“각하의 말씀,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도박은 다소 위험한 선택이니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대반의 물음에 승도가 찻잔을 들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

신의 국력 신장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대량의 신용 화폐 공급은 ‘고질적인 통화 부족’에 시달리던 신의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이 신용 화폐에 필요한 대량의 지급 준비금은 행상과 강주양행이 보유한 막대한 은과 백지어음으로 보장되었다.

덕분에 통화를 시장이 요구하는 만큼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신은 일순간에 ‘금융혁명’이라고 일컬을 만한 변혁을 맞이했다. 금융은 로스실트 가문에서 말하듯 ‘산업의 토양’이나 마찬가지인 중요한 지반이었다.

이것이 안정되면서 신의 산업은 3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 제국의 경제 규모는 겨우 3년 사이에 연 6퍼센트 이상 성장했고(연합왕국은 연 평균 2퍼센트 내외), 산업 규모는 3배 가까이 급성장했다.

이 어마어마한 팽창에 힘입어 제국의 노동자 계층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두터워졌다. 도시 노동계급의 증가와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그간 이루어진 오승도의 정책과 맞물려 전통 사회의 해체를 가속화했다.

그 과정에서 씨족 사회는 빠르게 붕괴 수순을 밟았다. 제국의 사회적 변화가 점차 가속화되는 와중에 토지에 기반을 둔 지주 계급들도 몰락의 수순을 밟았다. 전통적인 토지 자본은 막대한 화폐 공급에 따른 경제 팽창 과정에서 그 가치가 빠르게 떨어졌다.

이 변화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토지가 아니라 금융 자본이었다.

지주들은 이런 추세에서 살아남고자 토지를 팔아치우고 자신들도 자본가로 변신하는 수순을 밟았다. 과거 프리지아가 산업 혁명 과정에서 밟았던 모델, 즉 토지 자본이 원시 자본으로 변화하는 고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격변의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자본은 투자처를 찾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세수를 급증시켰고, 제국 정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예산을 갖게 되었다.

세제 자체도 개선되었고 부정부패도 감소한 터라 예산의 증가는 예견된 일이었지만, 그 증가폭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승도는 이렇게 증가한 돈을 군비에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제국에 새로 건설된 기기창과 병기창에 일거리를 주는 동시에 로망스와 연합왕국으로부터 닥치는 대로 무기를 사들였다.

그는 열강이 북적을 견제하고자, 혹은 그들을 길들이고자 자신을 말로 이용하려는 정세를 이용해 최신무기들까지 마구 사들였다. 군비에 제한이 걸리지 않으니 그 군사력의 증강은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제국 중앙군은 이 군비 증강의 수혜를 입어 엄청난 양의 무기로 무장했다. 기존 4개 여단(3개 여단+1개 포병 여단)이 10개로 늘어난 양적 팽창도 컸지만 질적인 성장도 눈부셨다.

각 대대마다 새로운 신무기 기관포가 도입되었고, 서역식 박격포도 들여왔다. 거기에 일시 구매가 막혀 있던 콩그리브 로켓을 비롯한 각종 병기를 산더미처럼 사들이면서 각 부대의 화력은 기존 상승군 시절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졌다.

해군을 위한 장갑함도 다섯 척 발주되었다. 인도까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해군력의 증강은 과거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승도는 이렇게 꾸린 막강한 군사력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만한 군사력이라면 북적과도 한바탕 겨뤄볼 만했다. 백만 대군을 가졌다고 하는 그들이라 해도 전 병력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승산은 충분했다.

그는 이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제국의 서북변에서 정치적 승리를 따낸 다음,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제국의 패권을 확립해야 향후 열강의 위협에 대항할 ‘덩어리’를 만들 수 있었다.

“흐음.”

“뭘 그리 생각하세요, 오라버니.”

승도는 잠시 대막 정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상념을 끊고 현실로 돌아왔다. 발 너머에 있던 젊은 여자는 그런 그를 향해 입술을 삐죽였다.

승도는 그녀를 향해 넉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략혼을 한 여동생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을 자주 보인 보람이 있었다. 의지할 곳이 없는 그녀에게 유일한 힘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보니 ‘원망할 수밖에 없는’ 오라버니임에도 차츰 가족의 색깔로 대하는 것이 보였다.

“잠시 정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선 그런 생각은 내려두시지 그러세요.”

“송구합니다. 그건 그렇고, 요즘 궁 생활은 어떠십니까?”

승도가 묻자 여자는 미미한 웃음을 보였다.

“괜찮은 것 같아요.”

그 대답에 승도는 피식 웃고 말았다. 죽일 듯이 오씨를 증오하던 황제도 거듭 살을 섞다 보니 황후에 대한 증오를 상당히 누그러트린 모양이다. 둘 사이의 관계가 최악은 아닌 듯 벌써 생산한 자손만 둘이었다.

황자가 하나, 황녀가 하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소녀의 나이가 한창 꽃피는 방년인지라 그 미모가 슬슬 물이 오르는 시기였다. 사내라면 그런 여인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미워해도 육체적으로는 끌리는 미묘한 관계 말이다. 아무리 승도가 강제했다고 해도 자손이 둘이나 생길 정도면 그렇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승도는 황후가 내준 차를 한 잔 마시며 그녀의 근황에 대해 듣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가 황후 전을 나오려는데 총판장경(총리아문에서 조서의 초안 등을 작성하는 직책. 총리아문의 2인자이자 비서 격)의 직무 대행을 맡고 있는 건문이 그 앞에 손을 모았다.

장서기로 일을 해오던 건문은 승도의 배려로 ‘연납’을 통해 정3품의 벼슬을 받은 다음, 파격적인 승차를 하여 총리아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믿고 쓰는 심복이라 붙여진 직함은 평범한 대신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강대했다.

자고로 권력은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에서 결정된다. 역대 왕조에서 대신들보다 환관이 실세로 불렸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각하.”

“아, 서기. 여긴 어쩐 일입니까?”

승도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를 칭했다. 공적인 관계로 칭해도 좋지만 사적인 관계가 담긴 호칭 쪽을 둘 모두 선호했다. 그의 호칭에 건문이 답했다.

“예, 긴히 고할 것이 있어 각하를 뵈었습니다.”

“긴히 고할 것이라니요?”

승도가 의아한 듯 묻자 건문이 목소리를 낮추며 은밀하게 말했다.

“황궁 안에서 각하에 대한 모반이 있을 거란 소문이 있습니다.”

“모반이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예의 황실 쪽입니까?”

“소문의 출처로 보건데 그리 보셔도 무방합니다.”

건문의 대답에 승도는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옮겼다. 건문이 얼른 그 뒤로 따라붙었다.

“그렇다면 함정이군요.”

승도가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했다.

건문은 그의 태연한 반응에 도리어 당황했다.

“어찌하여 함정이라 보시는 것인지.”

그러자 승도는 딱하다는 듯 설명을 해주었다.

“이번 일에 대해 내 귀에 들어온 것은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 궁 안에서 구체적인 모반 시도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정보는 궁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궁 바깥의 누군가가 내가 궁에 손을 대도록 모략을 꾸민 겁니다.”

음험한 궁중에선 기기묘묘한 모략이 오고 간다. 그걸 한 눈에 못 알아봤다고 건문을 책망할 생각은 없었다. 승도 본인도 전생의 경험이 없었다면 무력과 별개로 궁중의 암투에 시달렸을 것이다.

“궁 바깥에서 모략을 꾸몄다는 말씀은.”

“이 사람이 손에 피를 묻혀 인심을 잃게 한 다음 실각을 하게 하려는 의도이겠지요. 수로 보자면 꽤 교활한 방법입니다.”

건문은 그 말에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도 승도와 같은 정보를 취했다면 이 일을 꿰뚫어보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면 각하께 악의를 가진 자들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겠습니다.”

“그럴 겁니다. 그들이 자의로 한 것인지, 아니면 누구의 사주를 받아 일을 도모한 것인지는 몰라도 말입니다.”

승도는 건문의 말에 대꾸하며 걸음을 옮겨갔다. 삼 년의 평화를 보장했던 태양이 불길한 빛을 내며 가라앉고 있었다. 그 음울한 빛 아래로 길고 어두운 그림자가 궁을 비추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천하를 한 손에 쥔 권력자도 모든 것을 감시하진 못한다. 그 그늘에서 음모의 싹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각하께서 그걸 두고 보시진 않겠지. 또 피가 흐르겠어.’

건문은 그 그림자를 보며 짙은 피비린내가 난다고 느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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