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98화 (298/425)

제298화. 남하정책 (3)

북경에는 요 몇 년간 외국 사절들이 부쩍 늘었다. 연합왕국에 이어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들이 늘어나서다. 그 나라들은 모두가 서역 유수의 열강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제국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광대한 시장을 가진 나라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들이 구태여 관계를 나쁘게 유지할 이유는 없었다.

유일하게 하나. 제국과 사이가 나쁜 국가가 있다면 북적이었다. 북적은 제국의 강역을 잠식하고 있었고 동영에서도 제국의 이익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안보상의 위협을 가하는 상대와 사이가 좋은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승도의 이목이 이 나라의 외교 사절들에게 쏠려 있는 것은 당연했다.

대로를 따라 움직이는 마차의 정면으로 행인 몇이 걸어왔다. 그들은 물건을 사서 돌아가는 평범한 농민들처럼 보였다. 마차 안에서 외알 안경을 밀어 올리며 창밖을 바라보던 공사 베리야가 이 ‘평범한 풍경’에 관심을 잃고 시선을 돌렸다.

은발의 외국인이 시선을 거둔 채 멀어져가자 조금 전까지 평범한 행인처럼 대로를 걷던 자들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한적한 골목으로 뛰어든 다음 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아 올렸다.

요란한 폭죽 소리에 잠시 고요함을 즐기던 공사의 눈에 일순 짜증의 빛이 스쳤다. 그는 이 동방에서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마다 폭죽을 터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갑작스런 소음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천박한 야만인들.”

그가 불쾌감을 보이자 무관이 마부에게 마차의 속도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마부는 애꿎은 말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짝 소리와 함께 피부에 날카로운 감촉이 와 닿자 말들이 흠칫 놀라며 발굽을 더욱 재게 놀렸다.

공사는 그 진동을 느끼며 라비우 대령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번에 만나기로 한 자들은 누구요?”

“신 황실의 방계 왕족들입니다. 왕작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지만 실력은 있는 이들이라 ‘헛소문’을 내기에는 유용한 친구들이지요.”

그 대답에 공사는 흡족한 얼굴을 했다. 공사는 그의 행보 하나조차도 정치적인 수로 사용할 줄 아는 노련한 정략가였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를 신에 초대 공사로 파견하며 ‘남하 전략’의 재개를 위한 포석을 주문할 정도로 그 능력은 대단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는 ‘겨울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 별명은 냉혹한 정략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정치적 동맹을 쉽게 만들어내는 수완에 대해 정적들이 경의와 두려움을 담아 붙여준 것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페테르부르크의 엘리트였고, 이번에도 그 경력에 성공을 한 줄 더할 터였다. 이 신까지 황제의 홀 아래 굴복시키면서 말이다.

“내가 그자들을 만나는 것을 오승도가 확인한다면 그도 슬슬 반응을 보이겠군.”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일전에 낸 소문의 배후를 궁금해하던 차에 각하의 행보를 눈치챈다면 그자도 마음이 다급해지겠지요. 우리가 자신을 향해 포석을 두기 시작했다는 걸 안다면 그가 선택할 길은 둘. 먼저 손을 내밀던지 아니면 연합왕국에 연수를 제안하겠지요.”

라비우 대령은 냉정하게 오승도의 다음 행보를 분석했다. 대령은 외교에 경험이 많은 자로 정략에 식견이 많았다. 에우로페에서는 로망스와 프리지아, 오스티아 궁정에 파견되어 신성 동맹의 존속에 대한 회담에 참가했고, 동시에 우스만의 군사 고문단에 파견된 경험도 있어 정략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연합왕국에 연수를 제안한다면 우리 쪽은 그 움직임을 역으로 이용할 테고.”

공사는 좌석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연합왕국은 전통적으로 적이 많은 열강이었다. 이 나라가 신과 확실히 손을 잡는다면 그를 견제할 입장에 있는 나라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공공연히 동맹을 맺고 도울 수는 없어도 암묵적인 지원은 기대할 만했다.

프리지아 문제에 대한 개입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프리지아와 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지난 무장중립전쟁으로 앙금이 남은 중립국들의 지지도 기대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포석을 두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로망스를 회유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들이 연합왕국과 보조를 맞추어 신을 밀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로망스의 입장’에 루시가 따라주길 바라는 압박용 카드일 테니 말이다.

“그 과정만 페테르부르크에서 잘 이끌어 준다면 우리 쪽 패가 연합왕국보다 유리해질 겁니다.”

라비우 대령이 단언했다. 연합왕국이 초강대국이긴 하지만 그들의 역량도 무한하지는 않았다. 루시가 ‘고립’된 입장을 탈피하여 주변국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반 연합왕국 진영의 깃발을 세우고 나서면 그들은 신경 쓸 곳이 지금의 배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우선순위에서 뒤지는 극동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게 될 것이고, 자연히 루시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있다고 하면 오승도 하나가 고작일까.

“유일한 장애물은 결국 오승도 하나인가.”

공사가 오승도의 이름을 툭 내뱉자 대령이 턱을 문질렀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차는 경성의 대로를 지나 제도의 외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런 그들을 하늘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붉은 폭죽이 오른쪽에서 달려온 붉은색 마차는 저것 하나인데. 저게 북적 공사인가 하는 작자가 탄 마차인가?”

사내가 망원경을 빙글 돌렸다.

그의 물음에 동승한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시자들이 제대로 일을 했다면 저 마차가 맞겠지.”

사내는 코를 문질렀다.

그들은 오승도의 명을 받고 제도 내의 외교사절들을 감시하고 있는 상승군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외교사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를 접선하는지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이들이 모든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사관에서 일하는 무수한 사환과 고용인, 군인, 하급 관리들을 모두 감시하기에는 그들의 인력과 역량이 턱없이 모자랐다.

핵심 인사들만 감시하기에도 사실 힘에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을 종종 놓치기도 했다.

승도가 여기에 대한 보완책으로 공사관에 각 방의 사람을 심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완전한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그 증거로 지난번의 뜬소문에 대한 배후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적 공사 놈이 교외로 나갔는데.”

사내가 망원경을 만지다 꺼낸 말에 다른 자가 그것을 빼앗았다. 그는 잠시 빼앗은 망원경으로 마차가 향하는 방향을 보다 입맛을 다셨다.

“시계 거리 밖이군. 감시하기엔 곤란해.”

사내도 그 말에 동의했다. 기구를 사용할 때는 먼 거리도 쉽게 감시할 수 있었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었다. 대규모 군대처럼 멀리서도 그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집단이라면 모를까, 조그마한 마차 한 대, 사람 한 명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살피는 것은 무리였다.

숲이나 지형지물에 언뜻 가리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놓치기 일쑤였다.

“제길.”

“각하께서 실망하시겠군.”

“할 수 없는 일이잖나. 보이지 않는 걸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내는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저들이 달려간 방향이 어딘지 익숙한 곳 아닌가?”

“익숙한 곳이라니?”

다른 자가 묻자 사내가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보여주며 말했다.

“북북서 방향이면 황족들이 모여 사는 곳 아닌가.”

“황실 친족들이 사는 곳?”

그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북북서에는 제국 황족들이 다수 모여 살고 있었다. 예로부터 북방은 제국의 황실이 발원한 곳이라 북쪽 방위에 제국 황족들이 거주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서쪽에 모여 사는 것은 ‘서쪽’을 상서롭게 생각하는 풍습 때문이었다.

그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다 이 일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기구 아래를 보았다. 기구 아래에는 만에 하나 급한 일이 있을 경우 일하기 위해 대기 중인 기마병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얼른 아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북적 공사가 황족들과 접촉하러 간 것 같다. 어서 각하께 사실을 고하도록 해.”

그 말에 기마병이 크게 놀란 빛을 하고는 얼른 묶여 있던 말 위로 뛰어올랐다. 제국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인 북적이 황족들과 접촉했다는 사실은 신속하게 보고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었다.

마차는 불길한 인상을 남긴 채 검은 숲 너머로 사라졌다.

***

제도는 크게 서른 개의 구획으로 구분되었다. 그중 교외에 해당하는 구획은 모두 열다섯 개로 정확히 절반에 해당되었다.

그 중 하나가 황족들의 거주지였는데, 이 구획 안에는 모두 서른 개의 왕부가 있었다. 왕부들은 황제가 바뀔 때마다 그 주인이 달라지곤 했는데, 현재 이곳의 주인은 현 황제의 숙부 및 형제들에 해당되는 자들이었다.

물론 이 왕부들에 그 주인들이 실제로 머물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동쪽 성경에 마련되어 있는 거처에 머물렀고, 일 년에 한 번 황제에게 인사를 하러 올 때나 자리를 채우곤 했다.

그래서 이 ‘명패’만 왕부라고 붙은 곳에 있는 왕공은 숙친왕 한 사람이 유일했다. 그나마 그는 조정에 적을 두고 있어 왕부에 거의 머무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왕부에 있는 자들은 태반이 직계와 거리가 먼 방계 왕족들이었다. 이들은 팔기에 적을 두고 있어 경성에 머물 수밖에 없는 데다 직계 황족들과도 혈연이 있어 왕부에 머물 이유가 충분했다.

그런 까닭에 현 제국에서 실력이 있는 황족은 모두 방계들이었다.

공사가 이들과 접촉하려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었다. 이 방계들은 제국 황실 내에서 오승도 정권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유일한 자들이었다.

공사는 약속된 위 왕부 앞에서 마차를 세웠다. 그가 마차를 세우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가솔들이 나왔다. 인상이 좋고 체격이 늠름한 무사들이 그를 맞자 공사는 미소로써 그들에게 답례하며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장원은 그 자체로 일종의 병영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승도가 군을 통폐합하고 황실의 힘을 박탈하긴 했지만 팔기의 전통을 완전히 박살내지는 못했다.

팔기는 정규군 조직으로서의 성격도 있었지만 제국 귀족 집단의 모태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어 이를 박멸하는 것은 무리가 많았다.

그래서 각 왕부를 중심으로 한 팔기의 깃발 자체는 온존되고 있었고, 형식적이나마 옛 팔기를 대표했던 왕부들은 그 가내에 팔기의 조직을 유지하는 것도 허락받고 있었다.

이 조직의 구성원은 물론 모두 귀족들로 실력은 별로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들 귀족들이 ‘특정한 집단’으로 유사시에 뭉쳐 자신들의 가솔들을 동원한다면 경성 주변에서 수만의 사람을 모을 수도 있었다.

왕부의 잔여 팔기 조직이 오승도 정권에 대항할 잠재력이 손톱만큼 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공사가 붉은 비단이 깔린 정원의 회랑으로 들어서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들이 그를 보고 인사를 했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신의 황족들이라고 볼 수 없는 정중함이었다.

공사는 그 태도를 보며 이자들이 상당히 다급해졌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외국 사절을 오랑캐라 여기며 눈이 마주치는 것도 불쾌하게 여긴 자들이 신의 황족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살갑게 구는 꼴을 보니 세상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사 베리야입니다.”

“어서 오시지요, 찾아주시길 오래 기다렸습니다.”

황족들이 미소를 보이며 공사를 안으로 안내했다. 안내된 방은 커다란 연회석을 연상시켰다. 사람이 족히 백 명은 앉을 수 있을 큰 자리에 황족과 공사를 합쳐 모두 열 명이 앉으니 자리가 썰렁하게 보였다.

황족들은 그런 황량함이 익숙한 듯 이내 손뼉을 쳐 음식을 내어오게 했다. 신의 황실에서는 전통적으로 손님을 불러 배를 채우게 한 다음, 술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풍습이 있었다. 유목민의 전통인데 베리야에겐 그리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배를 채우고 포만감을 만든 다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에 썩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하지만 손님이 주인의 대접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베리야는 시녀들이 차례로 내어오는 요리를 보며 먹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요리는 북방의 손님을 고려해 대부분 육류였다. 말과 소, 염소, 양, 오리 등으로 만든 다양한 고기 음식이 차례로 상으로 올라왔다. 음식은 미리 기미(독이 있는지 감별)를 했는지 향이 조금 옅었다.

보통 기미를 하고 나면 식은 음식을 다시 데워 내어왔는데 그렇게 하면 음식의 풍미가 좀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미식가로서 정확한 시간에 최고의 풍미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공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음식은 동방의 풍습에 따라 손님이 만족할 때까지 나왔다. 베리야는 이 풍습에 대해 잘 모른 까닭에 음식을 계속 나오게 만들었다. 그는 마음에 든 오리 훈제고기를 계속 맛보며 그릇을 비웠는데, 동방에서는 그릇이 비면 주인의 대접이 박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 바람에 애꿎은 시녀들은 계속해서 그릇에 오리고기를 담아 가져와야 했고, 베리야는 주는 음식은 대강 다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그릇을 비웠다.

서로의 풍습에 대한 오해 때문에 베리야는 무려 다섯 그릇을 비워야 했고, 반대로 황족들은 식사를 다 하고도 보조를 맞추어 주느라 억지로 음식을 더 욱여넣어야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뒤에는 불편하기까지 했던 식사가 끝나자 음료가 나왔다. 베리야는 거북했던 속을 달래며 과식으로 불룩해진 배를 편하게 하기 위해 단추를 하나 풀었다.

슬슬 음료가 돌기 시작하자 식사 동안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가 슬슬 나왔다. 제국 황족들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생각한 것보다 본론이 빨리 나왔다.

베리야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신에게 이목이 돌아오자 입을 열었다.

“여러 전하께서 하신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이번에 일이 잘 풀리면 역적 오승도의 입지는 충분히 좁힐 수 있을 겁니다. 그자도 사람인데 어찌 실수 한 번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 황실 종친과 우리가 ‘결탁’하여 일을 도모하고 있다. 그렇게 믿게 만든다면 그자는 초조한 마음에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리수를 둔 순간이 그의 파멸이 시작되는 지점이 될 겁니다.”

공사는 자신을 바라보는 황족들에게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승도가 그리 쉽게 파멸할 가능성은 없었다.

정확히 말해 이번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오승도 정권에 흠집을 내고 그 내정을 흔들어 신으로의 진출을 용이하게 만드는 정도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자가 실수를 한다면 어찌 일을 도모하지 못하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역적을 도모하고 황실을 반석에 세우는 그날이 오길 기원하며 모두 한 잔 드십시다.”

방계 황족 하나가 잔을 높이 들자 모두가 술잔을 들었다. 공사는 분위기에 맞추어 잔을 마주 들고는 단번에 술을 비웠다.

공사는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로 돌아간 황족들을 보며 잔을 천천히 채웠다. 이들이 처음 움직임을 보인 계기는 황실의 후사가 탄생한 시점이었다.

황위를 이을 계승자가 탄생하자 황족들은 오승도가 황제를 제거하고 섭정을 세울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위기감을 강하게 느꼈다.

황제 역시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족들과의 유대를 강화하였고, 그런 연장선에서 황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오승도의 권력이 워낙 탄탄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상황을 바꾼 것이 초대 공사로 부임한 베리야 자신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이 얼치기들이 오승도 정권을 무너트리려는 원대한 야망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조국이 가진 강력한 힘과 영향력, 그리고 그의 정략이 없다면 저들은 오승도가 두는 장기판을 구경할 자격도 없는 허섭스레기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잔을 다시 채우자 그 옆에 앉아 있던 황족이 말을 건넸다. 서열이 제법 높은 방계로 공의 반열에 있는 자였다.

“그나저나 그자가 생각보다 강하게 강수를 두면 우리 피해도 생각보다 클 것인데 공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오승도가 강경하게 나오면 황족들의 목을 날리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황족들도 그것은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공의 물음에 공사는 잔을 놓으며 대답했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오승도가 그리 단순한 자였다면 이리 오래 권좌를 지킬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권력은 쟁취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까?”

그의 반문에 공도 그럴 듯하다 여겼는지 잔을 들어 비웠다. 공사는 그런 황족들을 보다 잔을 들었다.

이 제국에서 역시 그의 적수가 될 자는 집정대신 오승도밖에 없었다. 그만 없다면 이 나라는 간단히 집어삼킬 수 있으리라.

그는 냉소를 지으며 황족들의 욕망을 부채질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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