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00화 (300/425)

제300화. 남하정책 (5)

투르 한국은 건국한 지 세 해가 된 신생 독립국이었다. 세계의 주요 열강 중 루시만 ‘독립 승인’을 한 국가로 그 국제적 지위는 불안정하기 그지없었다. 신은 여전히 그들을 수복의 대상으로 보았고, 연합왕국은 ‘곰의 남하’를 막는다는 목적 하에 신의 입장을 지지해주고 있었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투르 한국은 건국 이후에도 새로운 국가 건설에 매진하기보다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는 기형적인 면모를 보여 왔다. 독립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은 작지 않았다.

군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차관을 대거 빌려 써야 했는데, 그 부채의 크기만큼 자신의 자유를 저당 잡힐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차관만으로 군비를 충당할 수 없어 세금을 대폭 인상한 결과 ‘독립 초기’에 유목민들로부터 받았던 지지를 상당 부분 잃어야 했다.

신생 국가는 출발부터 몹시 위태로운 처지에 내몰려 있었다.

투르 한국의 지도자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자국의 방위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루시에 군 파견을 요청했다. 독립 주권 국가의 입지를 버리고 ‘열강의 군대’에 주둔할 권리를 허용하는 ‘식민지화’의 첫 수순을 밟은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흐름을 예상하고 독립을 후원해 주었던 루시는 이에 당연히 응답했다. 미카엘 대공은 중앙 시비르 관구의 기병 연대 하나를 포함해 모두 세 개의 연대를 한국으로 들여보냈다.

이 위풍당당한 파병군에 포함되어 국경을 넘은 이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실로 오랜 시간 만에 제국의 강역을 확장하는 원대한 사업을 견인한다는 긍지와 자부심에 군대의 사기는 높았다.

말을 몰아 국경을 넘는 기병들의 뒤로 수도 없는 대포와 보병의 행렬이 따랐다. 군의 무장은 대부분 시비르 지역에 어울리는 2선급 장비들(전장식 소총 및 전장식 대포)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구식은 아니었다.

명색이 열강의 군대인 만큼 최신 장비와 못 싸울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았다.

국경을 넘는 긴 행렬의 중간에서 말을 몰아가고 있던 장교가 지도를 꺼내 살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투르 한국이 주둔지로 제공하기로 한 지역의 위치를 살폈다.

주둔지는 투르 한국과 루시 양국의 국경선 상에 위치한 중요한 길목에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방패로써 그들을 부르긴 했지만 필요한 최소한의 ‘억지력’으로만 쓰겠다는 의도에서 고른 주둔지 선정이었다.

아예 국경선에 배치한다면 억지력은 더 좋아지겠지만 옛 주인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 그것은 안보의 이익을 취하려는 본래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으니 투르 한국이 선택할 수 없는 방안이었다.

그녀가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옆으로 한 필의 군마가 속도를 내어 다가왔다. 그녀는 지도를 접어 품에 넣고는 모자를 고쳐 썼다. 상대는 연대장이었다.

그녀가 딱딱하게 경례를 붙이자 대령이 손을 들어 답례하고는 말을 건넸다.

“지도를 보고 있었나?”

“예, 각하.”

“그럼 잘 되었군.”

연대장이 품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그녀는 얼떨결에 연대장의 서류를 건네받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훤칠한 귀족 신사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관구에서 명령이 새로 내려왔네. 거기 서류에서 ‘아라한’이란 지명이 나오는데 그 위치가 어디쯤인지 지도를 봐야 알겠더군. 어디인지 알겠나?”

그녀는 연대장의 물음에 서류에 적힌 아라한이란 지명의 알파벳을 꼼꼼히 읽고는 다시 지도를 폈다. 아라한은 조금 전에 본 지도에 있는 지명이었다.

“아라한은 투르 한국과 신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옛 요새 중 하나입니다. 다소 이질적인 지명이라 기억하기 쉬운 곳입니다. 바로 여기가 아라한입니다.”

그녀는 지도 한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대령은 얼굴을 지도 가까이 가져왔다. 그 바람에 그녀의 얼굴 가까이 대령의 콧김이 느껴졌다. 그녀는 애써 그걸 모른 척하며 대령이 지명을 잘 볼 수 있도록 손가락의 위치를 조금 아래로 옮겼다.

대령은 그 지명을 유심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한이 최전방 국경 근처에 있었군. 고맙네.”

“아닙니다, 각하. 그런데 아라한은 왜.”

그녀가 약간의 의문을 표했다.

그녀의 의문에 대령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1급 군사기밀이라면 보안을 유지해야 했겠지만 하급 지휘관들에게 공유해도 상관없는 3급 군사기밀 정도라면 입에 올려도 문제되진 않았다.

“거기가 우리 연대의 새 주둔지가 될 거라고 하더군.”

“아라한이 말입니까?”

그녀는 그 대답에 적잖게 놀랐다.

처음에 주둔하기로 할 적에는 투르 한국과 자국 국경 사이에 군대를 두어 신에 대한 압박을 조금 높이는 수준에 그치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제국의 본토 가까운 곳에 군대를 두게 되면 그 압박은 당초 상정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지게 되었다. 상부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부대의 전진 배치를 결정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리 현명한 선택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라면 설마 신과의 전쟁을 위한 포석인 것일까?

나타샤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신과 조국이 전쟁을 하기에 가장 유리했다. 열강은 그들의 조국에 직접 압력을 넣을 수 없는 처지였고, 신은 아직 신생 정권이 완전히 안착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런 때에 그들의 도발을 유도해낼 수만 있다면 조국으로서는 꿈에 바라 마지않던 ‘부동항’과 광대한 시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얻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연대장은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그리될 것이네.”

“하지만 주둔 문제는 투르 한국 쪽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습니까?”

주권 국가에서 외국군이 마음대로 주둔지를 바꿀 수는 없었다. 조약에 기반 하여 주둔지를 제공받았다 해도 새로 협의를 하는 것은 상식이었다.

그녀의 반문에 연대장은 서류를 품에 넣으며 답했다.

“그거야 대공 전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 아니시겠나? 우리는 명령을 받았고 그리 따라야 할 군인이니 거기에만 신경을 쓰면 충분하네.”

대령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군인은 시킨 일에만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대령은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고 재차 말의 배를 걷어차고는 대열의 앞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한숨을 깊게 쉬고는 자신의 병사들을 보았다.

그녀의 부하들은 주둔지까지 이틀만 더 행군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말의 체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었다. 말을 타지 않고 구보를 해도 되는 시간에조차 병사들은 군장을 갖춘 채로 말에 타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강건한 체력의 전마라도 아라한까지 가게 되면 그 전에 홀쭉하게 말라비틀어지거나 쓰러지게 마련이었다.

그녀는 약간은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른 다음 부하들을 보며 외쳤다.

“이봐, 멍청이들. 그렇게 말을 타고 가면 어떻게 하나?”

“하지만 대위님, 주둔지도 그리 멀지 않은데 전마를 좀 타고 간다고 문제가 될 것이 있겠습니까? 사정을 좀 봐주십시오.”

기병들은 귀찮은 것을 싫어했다. 특히나 귀족 혹은 지주 출신들이 많은 엘리트 기병들은 더욱 그랬다. 최소 계급이 부사관 이상인 기병들은 병사들과 달리 땀을 흘리는 것을 ‘불명예’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어지간하면 걷는 것을 ‘천박하다’고 생각하고 걸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도 귀족 출신이기에 부하들의 습관을 잘 알고 그를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습관을 이해해 주기엔 방금 들은 이야기가 컸다.

“그건 안 돼. 모두 말에서 내리도록 해. 그렇게 가다간 주둔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마가 모두 지치고 말 거야.”

“백 마일도 가기 전에 전마가 지치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둔지가 변경될 거라고 연대장님이 말씀하셨어. 나중에 공식 명령이 내려올 거야. 그때 가서 전마가 지쳤느니 우는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그녀의 대답에 기병들은 투덜거리며 하나씩 전마에서 내렸다. 기병들은 기본적으로 기병용 검과 총, 권총 외에도 각종 무기와 장비를 휴대하고 있어 보병처럼 걸을 때는 부담이 결코 작지 않았다.

“국경을 넘자마자 명령 번복이라니.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기병들은 불만을 토로하면서 가능한 말에 묶어둘 수 있는 무기는 모두 말 옆에 걸었다.

그래도 귀족의 품위를 지키고자 허리에는 칼을 차고 무거운 훈장이 달린 코트를 벗지는 않았다.

기병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 말고삐를 잡는 것을 본 그녀도 말에서 내렸다. 그들은 초원을 따라 터덜터덜 걸었다. 그 행군의 끝에는 뜻하지 않는 땅, 제국과의 국경 요새 아라한이 있었다.

***

“북적 공사가 접견을 신청해 왔습니다, 각하.”

총리아문에서 정무를 보고 있던 승도에게 엘리자베스가 접견 신청을 알렸다. 서역 처녀의 말에 승도는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자베스와 더불어 응접실로 향하자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은발의 외국 공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워드와 달리 편안한 인상을 주는 자였지만 실상 그 가면 속에는 노회한 여우가 숨어 있음을 승도는 꿰뚫어 보았다.

“다과를 준비해 달라고 하세요.”

승도의 주문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물러났다. 승도는 공사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접견 신청은 이미 예상하고 있어 그리 놀랄 것도 없었다.

공사는 승도의 표정을 탐색하다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무리한 접견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별말씀을. 제국의 집정대신으로서 외국의 사절과 만나는 것은 당연한 책무입니다. 거기에 대해 감사를 표시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 각하를 찾아뵌 것은 그간 냉랭해진 양국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한 말씀 올리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공사와 그 문제로 할 말이 있었습니다. 먼저 말씀하시지요.”

승도가 일단은 들어준다는 태도를 보이자 공사는 그의 알 수 없는 속을 통찰하려고 애쓰며 입을 열었다.

“먼저 우리 제국이 ‘대막’, 투르 한국의 독립 문제와 개입되었다는 부분에 대해 항의를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각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 제국과 귀국 사이의 광활한 초원에는 무수한 유목민들이 삽니다. 그들의 소속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귀국의 성조께서 조약을 제의하셨고, 그에 따라 연합왕국 국토의 이십 배에 달하는 광대한 초원 지대에 대한 분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두 나라와 유목민들이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 부분은 각하께서도 부정하실 수 없으실 겁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공사의 말은 그르지 않았다. 차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승도는 대충 짐작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그런 연유로 귀국에 있는 유목민들과 우리 제국 사이에도 일정한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는 점은 잘 아실 겁니다. 양국 사이의 분할로 나누어지긴 했지만 본시 유목민들은 국경이 없는 존재라 우리와 귀국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자들이었으니까요.”

“그 또한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투르 한국 독립 전쟁에서 우리 경역에서 무기를 구해 간 ‘유목민’들이 다수 나타난 것도 사실입니다. 그간 우리 영토를 드나들던 이들을 전쟁이 났다고 출입을 막는 것도 사실 문제이지 않습니까? 그 건과 관련해서 각하께서도 우리 쪽과 교감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승도는 그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대막을 넘겨준다는 암묵적인 밀약을 제안한 것도 그였고, 유목민들이 무기를 넘겨받은 문제에 대해 묵인한 것도 그였다.

그래서 승도는 그 건에 대해 문제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그는 열강을 상대로 그런 ‘사소한’ 것을 명분으로 삼기에는 신의 국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본국이 크게 유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승도는 일단 외교적 수사로 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면 아래에서 연합왕국 등에 이 건을 수시로 들먹이며 북적 압박의 수단으로 써먹는 것이 그의 이중적인 부분이었다.

어차피 외교는 기만의 연속이었고 상대를 얼마나 잘 속이느냐의 싸움이었다.

“각하께서 그리 생각해 주신다니 큰 걸림돌을 하나 치운 기분입니다.”

“다만 이 사람은 귀국에 대해 두 가지 섭섭한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하나는 귀국에서 우리 내정에 계속 간섭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얼마 전 공사께서 우리 황실의 사람들과 접촉을 한 일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외교적 접촉이라면 분명 총리아문에서 모두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심에도 그러한 행보를 보이신 것은 분명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할 수 있습니다.”

승도는 먼저 상대의 수상한 움직임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 움직임은 공사가 승도의 오판을 유도하기 위해 흘린 것이었다.

공사는 그 물음에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순한 의도라고 하시니 다소 마음이 불편합니다. 더구나 외교 사절이 누구를 접촉하는지 모두 감시하고 계시다고 이리 공표하신다면 누가 신에서 외교 활동을 마음 놓고 하겠습니까? 각하, 그 질문은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공사는 공격에 공격으로 응수하며 유연하게 그 칼날을 피해갔다. 승도는 조금 더 강하게 파볼 수도 있었지만 한 수 물려주기로 했다.

어차피 그의 의도는 공사와 담판을 짓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여기서 공사의 속내를 대충 들추어보며 이들이 전쟁 의도가 있는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상대가 전쟁을 확실히 준비하고 있다면 그 역시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하여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미리 준비한 계획대로 선수를 쳐야 했다.

“좋습니다. 그럼 하나 더 불편한 부분을 묻겠습니다. 귀국에서 투르 한국이라 자칭하는 무리와 직접 관계는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귀국과 그들 사이의 협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 승인도 해주셨고 덧붙여 무기도 상당히 팔아치운 걸로 압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부분입니까?”

“그 부분이라면 국제 사회의 상식대로 행동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서방에서는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여 일어난 나라에는 주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그와 관계를 맺는 것은 전적으로 자유의사에 놓이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거 재미있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귀국의 왕 홀에 놓인 흰 백합에 대한 프리지아와 연합왕국의 원조는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합법적으로 해석될 수 있겠군요.”

승도는 코웃음을 쳤다. 흰 백합이란 루시의 황제가 왕위를 겸한 일란드를 일컫는 말이었다. 일란드는 루시를 상대로 수차례 독립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 연합왕국과 프리지아가 빈번히 개입했다.

거기에 대해 루시는 ‘부도덕한 간섭’이라고 비난을 퍼부은 바 있었다.

“그 문제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각하. 흰 백합은 우리 황제 폐하께서 왕위를 합법적으로 계승한 곳인 만큼 다른 곳과는 사안이 다릅니다.”

“그리 본다면 문제의 ‘투르 한국’이라 불리는 역당들의 땅 역시 우리 황제 폐하께서 ‘대한’의 자격으로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말이 조금 아귀가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승도의 여유로운 찌르기에 공사는 한 방 먹었다고 생각했다. 서방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면 그저 넘어갈 부분이었는데, 상대는 서역에 대한 견문이 풍부했다. 풍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각하, 투르 한국은 엄연히 별개의 국가로 분리된 상태입니다. 우리 폐하의 군마가 지속적으로 점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흰 백합과는 다릅니다.”

공사는 실질적인 점유를 근거로 입장이 다르다는 논리를 폈다. 깊이 생각하면 썩 논리가 있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승도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공사의 변명을 들어주었다.

“그건 그렇다고 치지요. 하면 공사께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그 투르 한국이란 역당들의 무리에 대해 우리가 군사적 행동을 취한다면 귀국은 어떤 입장을 보이실 생각이십니까?”

그 물음에 공사는 난처하다는 빛을 보이다 입을 열었다.

“그 문제에 대해 본국의 훈령을 받은 바는 없지만 간단히 입장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승인’을 한 국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절대 발을 빼지 않겠다는 뜻이다. 공사는 그 한마디를 통해 그들이 남하를 통해 얻은 성과를 내놓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말은 동시에 향후로도 제국 내의 특정 영토가 독립을 하고 그를 승인하면 거기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경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승도는 상대의 그 한마디에서 진의를 읽었다. 북적은 역시 전쟁보다는 협박을 통해 이익을 얻을 생각이었다.

적당한 위협과 협상. 이를 통한 이익의 획득이 그들이 세운 전략의 요체라고 그는 생각했다.

상대가 그렇게 판을 짜고 나온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간단했다. 처음 구상한 대로 판을 뒤집어 유리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승도는 공사의 대답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시비가 내어온 차를 권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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