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개전 (1)
공사와의 접견을 통해 상대의 의도를 유추한 승도는 대응 조처를 지시했다. 일부 부대를 옥문관으로 이동 배치하고 필요한 보급품들을 옮기는 절차를 진행했지만, 사전 첩보 활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승도는 북적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확신하지 못해 미루고 있던 첩보 활동을 시작했다. 정보 수집 활동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국경에 배치된 열기구를 통한 장거리 관측이었다. 열기구들은 국경으로부터 약 60리에 이르는 거리를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었다.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 제국에 대항하려는 투르 한국과 북적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는 살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제국과 대막 사이를 오가는 상인들을 통한 탐문이었다. 대륙 중앙부는 전통적으로 ‘실크로드’라 불리는 고유의 육상 무역에 그 경제를 의존하고 있었다. 양을 치고 말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은 상인이 자주 왕래하였고 내정을 정탐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 눈과 귀를 막으려 애를 써도 그것은 쉽지 않았다. 승도는 이를 통해 투르 한국의 허와 실, 그리고 혹시 모를 지리적 변화를 확실히 살피도록 했다.
세 번째는 제국에 우호적인 지배 계급과의 접촉을 통한 정보 수집이었다. 귀족의 작위를 가진 자들은 제국의 지배 회복을 요망하는 터라 그들의 정보를 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들로부터 고급 정보는 얻기 어려웠다. 그렇다 해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모으면 군사 작전에 필요한 고급 정보를 추려낼 수 있었다.
첩보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제국의 총리아문에 새로운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북적 쪽에서 제국이 공식적으로 ‘미수복령’으로 간주하고 있는 대막에 군대를 투입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북적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한편, 군기처에 명해 최종적인 물자 운송 및 추가 병력 확보를 지시했다.
총리아문을 중심으로 제국의 핵심이 전쟁 쪽으로 분위기가 급격히 기울긴 했지만 조정에서는 별말이 없었다. 승도가 자신의 반대파들에게 별다른 정보를 흘리지 않은 데다 열강을 상대로 싸울 정도로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시각이 많아서였다.
‘평화’도 ‘전시’도 아닌 미묘한 분위기.
그 공기 속에 상승군의 세 번째 여단이 북경의 주둔지에서 군장을 꾸렸다. 기존에 2개 여단이 옥문관으로 이동한 상황이었기에 이 부대까지 국경으로 출발하면 모두 10개의 여단 중 3개가 전방으로 나가게 되는 셈이었다.
정권의 핵심 전력인 중앙군의 삼 할이 국경으로 나가는 상황. 사람들은 이를 두고 승도가 북적에 대해 꽤나 강력한 무력시위를 하려 한다고 해석했다.
북적 쪽도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그들은 승도가 정말 자신들에게 도전하려 한다면 10개 여단 중 북경 유지에 필요한 2~3개 여단을 남긴 모든 병력을 가져올 거라고 믿었다.
그 정도가 아니고는 그들을 상대로 선공을 가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현실적으로 미카엘 대공이 거느린 군사력의 규모를 감안하면 3개 여단으로 덤빈다는 발상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공사는 본국 정부를 향해 ‘오승도 정권이 투르 한국에 대한 본국의 군대 배치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기 위해 강도 높은 무력시위를 계획하고 있음.’이라는 짤막한 전문을 보내는 것으로 경고를 마쳤다.
그들의 생각은 모두 틀렸다. 거대한 판에서 그들이 알고 있던 틀을 바꾸기 시작한 승도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는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단하고 생각지도 않는 가능성을 향해 냉철한 일보를 내딛으려 하고 있었다.
“총리대신 각하께서 오셨다. 모두 정렬.”
장교의 명령에 병사들은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정렬했다. 열과 오를 기계적으로 맞춘 다음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자신들의 영웅을 기다렸다.
수많은 제국의 적들과 내부의 적을 쳐부수며 권좌를 향해 상승가도를 달려온 지휘관.
말로만 듣던 이를 처음 보게 된 신병들은 경외심에 숨이 차는 것을 느꼈고, 그와 함께했던 이들은 오랜만에 제국의 신성을 마주 한다는 감격에 도취되어 숨을 쉬지 못했다.
다소 들뜬 분위기 속에 의장대의 호위를 받는 검은 관복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을 탄 사내는 젊디젊었고 인상도 강하지 않았다. 체격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선이 마주 한 순간에는 고개를 숙이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제국의 최고 권력자는 자신의 병사들을 굽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조련된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충성심’으로 무장한 눈을 하고 있었다.
3여단장이 그 곁으로 다가와 보고했다.
“각하, 군기처의 명령에 따라 총원 3,450명이 행군 준비를 마치고 모두 집결해 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승도는 그에게 가볍게 치하를 하고는 말에서 내렸다. 권력자가 말에서 내리자 그 수행원들도 얼른 말에서 내렸다. 승도는 병사들 앞을 천천히 걷다 한 병사 앞에 멈추었다.
“이름이 뭡니까?”
“장육입니다. 각하.”
병사는 잔뜩 힘이 들어간 음성으로 대답했다. 승도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장육. 우리 군대가 양적과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그는 이 질문을 통해 병사들이 제국군에 가진 자긍심을 알고 싶었다. 실제로 이길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 것은 아니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각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병사의 대답에 승도는 턱을 가볍게 만졌다. 병사들이 가지는 자신감의 원천이 자신이라면 의도한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서다.
최고 지휘관을 자신감의 이유로 말한다면 아직 서역 강군에 비교하기에는 부족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승도는 병사 몇에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같은 대답을 얻었다. 그는 이 질문을 통해 이번 원정에서 자신이 부재할 경우, 군의 전력에 상당한 누수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예감했다.
최고 지휘관의 역량에 의존하는 군대가 그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그 능력은 절로 반감될 터.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그 말은 승도 본인이 최전방으로 나가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승도는 병사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들의 자신감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뒷짐을 진 채 돌아섰다.
승도는 병사들의 열병식을 구경하고는 여단장의 막사로 향했다. 여단장의 막사는 병사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화려하고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승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 출신 신분이 사회의 최상류층은 아니었던 터라 병사들과 거리감을 두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전통적인 군의 지배계층은 병사들과 거리감을 둠으로써 그 권위가 바로 선다고 믿었다.
승도는 그 뿌리 깊은 우월감에 구태여 손질을 가할 생각은 없었던 까닭에 별말 없이 여단장이 내준 의자에 앉았다.
승도가 자리에 앉자 여단장이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미리 준비한 대로 보고를 올렸다.
“각하, 여단은 철도와 운하를 이용해 옥문관으로 이동할 예정이며 이동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은 한 달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장비는 군기처에서 중원에 건설해둔 병기창으로부터 수납 받을 예정이라 이동 일정은 당초 예상한 것보다 단축될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여쭈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우리 군의 임무는 정확히 대막의 수복인 것입니까? 아니면 그 이상의 작전 범위를 상정한 것입니까? 그에 대한 지침이 내려져야 저희도 현지에서 전술 지도가 수월해집니다.”
서역 장교는 작전의 재량 범위를 요청했다.
보통 전쟁에서 대전략, 즉 전쟁의 범위와 목표는 국가에서 결정했다. 여기에 장군이 끼어드는 것은 군부가 곧 국가인 군국주의 국가에서나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프리지아처럼 군대가 국가를 소유했다고 이야기되는 비상식적인 국가가 아닌 이상 재량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었다.
장교의 말에 승도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 부분이라면 현지에서 본인이 직접 사정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각하께서 전방에서 나오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여단장은 그 대답에 적지 않게 놀랐다. 일국의 최고 권력자가 전장에 나오는 것은 과거 중세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작금에 이르러서 최고 권력자가 전방에 나온 사례는 전쟁 황제 필립을 제외하면 전무했다.
“그렇습니다.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인의 부재 여부가 사기에 영향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작전의 재량 범위에도 유동적인 부분이 있어 현지에서 지도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필요해서 하겠다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여단장은 그 대답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전략을 각하께서 직접 주관하시겠군요.”
문외한이라면 몰라도 승도는 이미 몇 차례의 전쟁을 이끈 노련한 명장이었다. 그런 그라면 전쟁에 지휘할 자격이 충분했다.
“기왕 본인이 간다면 지휘권을 이원화하는 것보다는 직접 지휘하는 편이 낫겠지요.”
승도는 그 자신이 직접 전쟁을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여단장은 이 뛰어난 괴물이 전장을 다시 이끌겠다는 말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천재의 지휘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을 감상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이번 전쟁이 몹시 흥분되는 한바탕 승부가 될 것이라 예감했다.
***
“요새가 정말 엉망이군요. 완전히 폐허가 돼서 주둔지로 쓸 수나 있을지.”
여 장교는 허물어진 성벽을 돌아보며 혀를 찼다. 그들의 새 주둔지로 정해진 아라한은 실로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지난 독립 전쟁에서 제국군과 한국군의 치열한 공방이 오고간 전장이다 보니 성벽 곳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내부 건물은 몽땅 불에 타 있었다.
우물은 메워져 다시 파야 했고, 창고와 막사는 새로 건설해야 했다. 더 좋지 않은 것은 공방전 직후 요새가 방기된 탓에 남겨진 엄청난 수의 시체였다. 초원은 건조하고 수분이 없는 대기를 가지고 있어 시신의 부패 속도가 매우 느렸다.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시체들이 성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주둔을 위해 우선 이 시체부터 치워야 했다.
그레고리우스 대령은 전염병 방지를 위해 화장을 명령했지만, 시신을 태울 땔감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유목민들처럼 동물의 배설물을 말렸다가 땔감으로 썼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태울 시신은 어디에나 넘쳐났다.
하는 수 없이 태우고 남는 것들을 가매장했는데 그것도 상당한 중노동이었다. 고귀한 귀족 및 지주 출신의 기병들은 그 잡스런 노동에 동원되지 않았지만 농노 출신 보병들은 그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다.
습기조차 찾을 수 없는 건조한 대지에서 땀을 흘리며 움직이는 병사들을 보자면 동정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특권의식에 찌들어 농노들을 가축 비슷한 존재로 생각하던 귀족 출신들조차 그런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노동 강도는 상당히 심한 수준이었다.
시신 매장이 끝나면 병사들은 성벽 수리 및 건물 건설, 우물 복구에 시간을 보냈다. 거의 개미처럼 일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씩 쓰러지기 일쑤였다.
대령은 이 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나타샤는 달랐다. 그녀는 과거 오승도와의 전쟁에서 ‘무력’했던 기병과 달리 싸울 만큼 싸운 보병들의 능력을 더 높게 보고 있었다.
전장의 주력은 잘난 기병이 아니라 보병이었기에 그들의 비전투 손실은 군의 큰 손실이기도 했다.
그녀는 생각 끝에 대령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들어와.”
대령은 마침 책을 읽고 있었다. 로망스 제정의 필립이 쓴 ‘용병술’에 관한 저서로 ‘병사는 발로 말한다.’라는 유명한 책이기도 했다.
그녀는 대령의 책에 주던 시선을 얼른 돌린 다음 그에게 말했다.
“각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귀관이 내게?”
대령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책을 덮었다. 그러곤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커피?’ 하고 짤막하게 물었다.
그녀가 사양하자 그는 멋쩍은 웃음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보통의 부하 귀족 장교라면 이렇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지만, 상대는 공작의 딸이었다. 그런 데다 지난 전쟁에서 ‘포로 신세’까지 지며 제국을 위해 ‘희생한 몸’이라 황제가 직접 나서서 혼처를 알아봐 준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니 대령이 예를 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 할 말이란 것이 뭔가, 대위.”
대령이 물었다. 연대장이 중대장 급의 장교를 직접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는 보통의 보병 장교에 해당되는 일로 귀족 기병 장교들도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병 장교들은 같은 계급이라 해도 실질적으로 한두 계급 이상의 대접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예. 병사들의 노역에 대해 건의를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병사들의 노역이라니?”
대령은 처음 듣는다는 듯 물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령은 이렇게 저렇게 하라 짤막하게 한마디를 하면 그만이고, 나머지는 아랫것들이 알아서 상세하게 지시를 하게 마련이었다. 그가 세부적인 내용에 관심이 없는 한 자세히 알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보병연대 병사들이 각하의 지시대로 요새의 수리 및 보수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신 화장 및 가매장도 모두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단시간에 모든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노동 강도가 상당히 심합니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면 병사들은 쉽게 지쳐 차후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병 연대장인 그레고리우스가 보병 연대에도 지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연대들만 파견되고 상급 지휘관이 보내지지 않은 까닭에 동 계급 서열 중 최고참인 그레고리우스가 선임으로서 명령권을 행사한 결과였다.
“귀관이 보병 문제에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군.”
대령은 의외라는 눈을 하고 물었다. 기병 장교, 그것도 고고한 귀족 가문의 여자가 천한 가축들의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우리 군대의 전투력과 관련된 일이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미있군. 하지만 어차피 전장의 핵심은 가축들이 아니라 기병일세. 그들이 조금 지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어. 귀관은 지금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군.”
“하지만 각하.”
그녀가 반박하려 목소리를 내려하자 대령이 손을 들었다.
공작의 여식이라고 해서 편의를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몇 마디 더 떠들게 놓아둘 수도 있지만 그렇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그만하게. 자네 요구대로 해주자면 이반 대령에게 한마디 해야 하는데, 아무리 내가 상급자라고 해도 몇 번을 명령하면 그의 자존심에 문제가 되지 않겠나? 그런 일이야말로 군의 전투력에 문제가 되는 사안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러니 그 일은 못 들은 걸로 하지.”
대령은 딱 잘라 말했다. 그녀는 그 대답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딱딱한 거수경례를 붙였다.
그녀도 군문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이 건의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전장에서 진실로 용맹하게 싸울 수 있을 병사들을 이렇게 허비하는 것을 그냥 보고 넘어가기엔 ‘지난 포로 생활’이 뼈에 사무쳤다.
그녀는 두 번 다시 그런 수모를 되풀이할 생각이 없었다. 이길 수만 있다면 가축이 아니라 개똥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새로운 사고방식이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고 연대장의 방을 나오는데 그 맞은편으로 귀족 장교 둘이 걸어왔다.
그들은 그녀를 보고 경례하며 물었다.
“각하께 다녀오시는 길이십니까?”
“그렇다.”
그녀는 하급자들에 대한 위엄을 세우려 애쓰며 답했다. 그러다 그들이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귀관들은 누군가?”
“이반 연대의 장교들입니다.”
보병 연대의 장교들이란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러다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보병 장교들이 갑자기 왜 기병 연대장을 찾는단 말인가?
업무상 보고할 것이 있다면 자신들의 상관에게 보고하면 그만이었다. 그녀의 의혹에 찬 시선을 느낀 장교 하나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그레고리우스 연대장께 긴히 보고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우리 각하께 뭘 보고한단 건가? 보병 연대에서.”
“그것이 전염병이 발생해서 미리 주의를 드리라는 이반 대령 각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 말에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람의 몸은 약해지는 만큼 전염병에 쉽게 취약해지곤 했다.
과로한 중노동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시신 가매장을 계속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이 전염병이 얼마만한 피해를 가져올지 겁이 났다. 만에 하나 전염병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상태에서 적이라도 쳐들어온다면.
‘정말 어려운 싸움이 될 거야.’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연대장의 방으로 향하는 두 장교를 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