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02화 (302/425)

제302화. 개전 (2)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가장 무서운 위협이 있다면 적보다 낯선 환경이라 할 수 있었다. 낯선 환경은 병사들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각종 풍토병과 전염병에 노출시키곤 했다.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북방의 곰들은 상당히 둔하고 멍청한 작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농노 병사들을 가축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손쉽게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여겼다.

그 사고방식이 이 낯선 초원에서는 끔찍할 정도의 위험을 불렀다. 방치된 시신들을 뜯어 먹으며 자란 초원의 쥐들이 옮긴 ‘쥐벼룩’을 통해 흑사병이 퍼졌기 때문이다.

흑사병은 영양 상태가 좋지 않거나 체력이 저하된 인간들에게 특히나 악마적인 살상력을 발휘했다. 이런 참사를 피하려면 위생 상태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성급하게 주둔지를 결정하면서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먼 후방의 참모들은 책상머리 위에서 ‘적당한 주둔지’를 골라 결정했고, 현지 지휘관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고 그 명령에 따라 부대를 배치하는데 골몰함으로써 스스로 재앙을 불렀다.

구토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전신에 검은 반점이 돋아난 병사들이 몸을 벌벌 떨며 여기저기 누워 있었다. 격리를 명령한 지휘관들의 조처가 있긴 했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성내에 바글거리는 쥐와 쥐벼룩, 그리고 과중한 노동이라는 삼박자가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기병들은 그런 처지와는 무관한 깨끗한 숙소와 적당한 업무만을 부과 받고 있는 입장이라 당장 전염병에 벌벌 떨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도 흑사병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어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기병들은 자신의 방에서 어지간하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지휘관들도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꺼려 기병의 활동을 제약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적절하게 발생한 전염병이 아니었다면 국경 너머에서 벌어지는 제국 쪽 움직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상승군은 적의 움직임이 줄어든 것을 이용해 국경에서 보다 가까운 위치에 열기구를 옮겨 관측 범위를 확장하고, 일부 유목민들을 매수하여 투르 한국 내에 ‘비밀 보급창’을 만드는 일을 추진했다.

이미 적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던 터라 그들이 하는 일은 주로 ‘공세’에 앞선 사전 정지 작업이 대부분을 이루었다.

상승군은 지난 전쟁의 경험을 살려 보급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만큼은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가축을 몰고 가더라도 가능하면 가축도 적게 가져가면 유리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각종 건조식품과 식수 등이 초원 곳곳에 착착 비축되어 나갔다.

전투 준비는 두말할 필요가 없이 잘 진행되었다.

오승도의 명령만 내려지면 상승군의 여단들은 즉시 경계를 넘어 수복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광대한 작전 지역과 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병력 규모였다.

상승군 병사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광활한 대막으로 나아갔다가 지난 회군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장비가 아무리 좋고 보급품이 풍부하다고 해도 승리에 대한 확신까지 덧붙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엔 위협만 하는 것이 아니란 소문이 있던데.”

불가에 모인 병사 하나가 입을 열자 주변에 있던 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위협이 아니라 양적들을 치러 간단 말인가?”

“그런 말들이 종종 도는 것 같더라고.”

병사는 이른 새벽의 한기를 쫓기 위해 손을 불에 바싹 가져가며 동료들의 의문에 대답해 주었다.

“우리도 회군 꼴이 날 수 있단 말인데.”

“그리될 수도 있겠지. 다른 곳도 아니고 가는 곳이 대막인데.”

병사들은 자신들이 대막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막은 지금까지 제국의 영토였지만 사실상 국외로 간주되는 낯선 이국의 땅이었다. 이 이질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없을 수가 없었다.

상승군 병사들 중 국외로 나가본 경험이 있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강남 출신들이라 물이 없고 메마른 이 옥문관 일대의 황량한 초원 지대에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낯선 세계로 수천 리를 더 나아간다?

사람이라면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전쟁을 한다면 오승도 각하가 나서시지 않겠나. 다른 적도 아니고 양적을 상대하는 일인데. 그분만 나서신다면 어련히 이기지 않을까, 나는 생각하네.”

한 병사가 불가로 가까이 다가와 엉덩이를 붙이며 말했다. 그의 입에서 승도의 이름이 나오자 병사들이 맞장구를 쳤다. 승도가 만능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믿음을 주는 존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분만 오신다면 그럴 테지.”

“암, 각하께서 종군하신 전쟁에서 패한 적이 있긴 하던가.”

“듣자 하니 이 북적들도 제국 동북방에서 크게 패한 적이 있다더군.”

병사들은 승도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많아졌다. 앞으로 대막으로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나마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며 불안을 떨치려는 나약한 인간 심리였다.

그렇지만 언제나 분위기에 초를 치는 자는 있었다.

“각하가 나오신다면 확실히 안전하겠지. 하나 그분이 나오신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그분은 이제 일개 지휘관이 아니라 일국의 최고 권력자인 몸. 변방의 전쟁에 나오실 턱이 없다고 생각하네.”

그 말에 병사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최고 권력자가 전장에 나오는 경우는 사실 보기 드물었다. 신만 하더라도 개국 초기에 직접 전장에 나서던 황제들이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에는 전장에 나온 전례가 없었다. 수천 리 떨어진 안전한 북경에서 ‘서찰’을 보내 원격 지휘는 해도 전장에 나온 이는 없었다.

그 점에서 승도가 예외라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강주를 쥐고 있을 때에야 ‘불안정한 입지’를 위해 전장에 나올 이유가 충분했어도 지금은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각하가 없는 전쟁을 해야 한다는 건가.”

“그건 아니네. 제국에서 각하를 빼놓고 양적들과 싸울 자가 어디에 있겠나.”

병사들은 그럴 수 있는 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상승군의 지휘를 맡은 서역 출신 장교들에게도 능력은 충분히 있었지만 그들은 태생적으로 ‘양적’과 싸우기에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당장 연합왕국과 전쟁을 벌인다면 병사들 스스로가 장교들을 신뢰하고 그 지휘를 받을 수 있을까?

서역 출신들을 뺀 제국 출신의 지휘관들 중 열강과 겨룰 만한 능력을 가진 장수들은 거의 없었다. 있다 해도 병사들이 이름을 들어볼 정도로 인지도를 가진 자는 전무했다.

“전쟁을 한다면 각하께서 반드시 오실 거라고 생각하네. 그분이 없이 전쟁을 할 수는 없으니까.”

병사들은 애써 승도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단정 지을 근거는 없었지만 나름의 논리(?)로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확신을 부여하려 했다.

“각하야 그렇다 치고 대막으로 간다면 시기적으로 언제나 가게 될까.”

“아마 3여단이 온 다음이 되지 않겠나.”

“3여단? 그럼 여단 세 개로 북적과 싸운단 말인가? 그건 무리지.”

병사들은 여단 세 개로 전투를 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들 역시 북적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제국이 지금껏 양적들을 상대할 때는 언제나 병력의 수적 우위를 기반으로 싸웠다.

심지어 오승도가 지휘한 전역에서도 공통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강주에서 벌인 연합왕국과의 교전이나 제국 동북방에서 벌인 북적과의 교전에서나 모두 수적 우위에 기반을 두고 진행한 싸움이었다.

제국이 수적 열세에서 싸운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하면 모두 패한 전투뿐이다. 그러니 이기고자 한다면 수적 우세를 갖추고 싸우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렇겠군. 그럼 싸움은 몇 달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겠나?”

“그럼 공연한 걱정을 쓸데없이 미리 한 셈이군.”

병사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자 불안한 빛을 얼굴에서 지우며 껄껄 웃었다. 그들은 뜨끈한 음료를 마시며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머지않아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풍문’은 어느새 그들의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다.

하지만 전쟁은 정말 그들의 코앞까지 성큼 다가서 있었다.

***

“부디 몸조심하세요.”

승도는 자신의 옷깃을 여며주는 은비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다짐에 은비는 애써 얼굴을 폈다. 승도는 그런 아내의 손을 가볍게 쥐어본 다음 그 옆에 서 있던 딸아이를 당겨 가슴에 안았다.

인형처럼 작은 소녀가 가슴에 쏙 들어오자 따스한 체온이 관복을 넘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는 오랜만에 직접 접촉을 한 아버지의 체온에 적잖이 놀란 듯 조금은 굳어진 반응을 보였다. 승도는 그런 딸을 아쉬운 마음에 놓아주며 그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럼, 집을 잘 부탁합니다.”

승도는 전송을 나오는 아내의 얼굴을 한 번 돌아본 다음 미리 마중을 나와 있던 장교들을 향해 그만 가자는 눈짓을 했다.

장원을 나서며 그가 걸음을 옮기려는데 일단의 관료들이 급히 달려와 그 앞에 섰다. 전날 황궁에 입궐했다가 관료들에게 ‘대막’으로 직접 출정하겠다는 뜻을 밝혀둔 터라 인사를 나올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들은 최고 권력자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앞을 다투어 인사를 올렸다.

“각하, 제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오랑캐들을 토벌하고 빛나는 대명을 사해에 떨쳐 주시옵소서.”

“각하의 무용이라면 양적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건강을 잘 관리하시어 조정에 무사히 돌아오시길 염원하겠습니다.”

관료들의 인사를 들으며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예까지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조정에 계신 덕에 자리를 마음 놓고 비우는 것이니 정사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염려 놓으시고 오랑캐 토벌에 전념하시옵소서.”

“믿고 맡겨 주시옵소서.”

“알겠습니다.”

승도는 인사를 나온 관리들을 돌아보다 그들 사이에 있던 총판장경 건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승도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승도는 관료들의 인사를 대충 받고 말에 오르면서 건문에게도 말을 내주었다.

인사를 하러 와서 ‘동행’하는 것 같은 이상한 모양새였지만 승도도 건문도 그 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뒤에 남겨진 관료들의 모습이 가물가물해질 즈음이 되어서야 승도가 입을 열었다. 말이 달리고 있어 어지간히 작은 소리는 들리지도 않아 다소 큰 목소리였다.

“원정을 가면서 미리 주의할 사항은 모두 당부한 것 같은데 보고할 것이라도 생겼습니까?”

“예, 각하.”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동영 쪽 소식입니다. 동영에서 내전이 터졌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북적이 손을 쓴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승도의 표정이 굳어졌다. 동영은 지난 조마 토벌 이후 막부의 영향력이 증대되어 상당히 안정된 형세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북적이 북해도를 건드리는 바람에 정국이 급격하게 변화하긴 했지만 내전이 터질 정도는 아니라고 승도는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판이었다. 막부에 반대하는 제번들의 연대는 승도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거대했다. 이 연대는 수면 아래에서 새로운 동영 무역의 판을 짜기 위해 밑밥을 준비한 윈스턴 상회가 한몫을 했다.

거기에 더해 북적 쪽에서 동방 무역의 안정성을 떨어트리고 북해도를 넘볼 목적으로 동영의 제번들과 접촉, 그들에 대한 경제적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연대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 같은 실력을 배경으로 번들은 막부를 상대로 무기를 뽑아들었다. 행상이 제대로 정보를 모으기도 전에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진 움직임이었다.

허를 찔렸다고 표현해도 그리 틀리지 않았다.

“행상은 뭘 한 겁니까?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렇게 아무 소문도 듣지 못하고 당할 이유는 없을 텐데.”

“눈과 귀가 막부 직할령에 집중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제번들의 동향에 대한 정보 수집이 느렸습니다.”

건문은 변명하듯 덧붙였다. 승도도 동영에서 행상의 정보력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 해도 뒤통수치기는 어이가 없었다. 연합왕국이 사실을 알았다면 통보 정도는 해주었을 것인데.

그는 한 방 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연합왕국 역시 동영 무역의 이익을 탐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비록 남하에 관해 승도를 돕는 입장이긴 했지만 경제적 이익에서는 양보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들은 북적을 막을 무기를 충분히 주었으니 남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시류에 편승해 자국 상인들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줄 기회를 잡으려 했을 것이다. 행상이 정보도 없이 내전을 맞이하도록.

“연합왕국. 그 오랑캐 놈들도 우리 뒤통수를 치는 것을 구경만 했다는 건데.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군요. 행상에선 어찌 대응하기로 했습니까?”

“반 대인과 오 대인께서 급히 회합을 소집하시고 이 일에 대한 방책을 강구하고 계십니다.”

“그럼 되었습니다. 그 일은 그분들에게 맡기도록 하세요.”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 막부가 전복될 지경에 몰리면 어찌합니까?”

건문은 자못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경우에는 우방인 막부와 동영 무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파병도 검토해야 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대세가 기울어 파병을 해야 할 지경이 된다면 막부는 버리는 패가 될 겁니다. 그 지경이 되어선 원조를 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승도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이익에 얽매여 그것을 지키고자 하다간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지난 내전에서는 막부 쪽에 연합왕국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그 어떤 열강도 없었다. 거기다 막부의 권위에 대항하는 제번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여러 번들이 동시에 반기를 들었고, 열강들이 막부의 반대편에 은근히 힘을 싣는 모양새였다.

상승군을 대거 파견하고 승도 본인이 동영으로 건너간다 해도 막부가 안정된 통치력을 확보할지는 미지수였다.

더구나 작금의 제국은 북적과 전쟁을 할 처지였다. 강적과 싸우는 입장에서 전선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은 신의 국력을 벗어난 일이었다.

지난 로망스 제정의 붕괴가 그 위험을 상기시켰다. 신과 비교할 수 없는 군사력과 국력을 가졌던 로망스 제정도 여러 개의 전선에서 수많은 적들을 상대하던 끝에 그 힘이 마모되어 자멸하고 말았다.

수위의 열강도 무너진 판에 허약한 제국이 이중전선을 버티는 건 능력 밖의 일이다. 승리를 해서 막부를 지켜준다고 해도 그 권위는 만신창이일 수밖에 없었다.

보호를 받는 자가 패자의 지위를 누린다는 것은 어불성설. 적절한 협력이라면 몰라도 대세가 기울어 원조를 청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들은 더 이상 동반자가 아니었다.

“그럼, 각하의 말씀은.”

“파병은 본인이 제도에 있다 해도 결정하지 않을 사안입니다. 하니 서기는 제도에서 혹 준동할지 모르는 불순한 무리들을 감시하는데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그리하겠습니다.”

건문은 승도의 지시에 따르겠다는 뜻을 보였다.

총판장경이 그의 지시를 확인하고 인사를 올린 후 물러가자 상승군 장교 하나가 물었다.

“각하, 동영 문제가 그리 시급하다면 북적과의 개전을 조금 미루고 그쪽에 먼저 손을 써도 되지 않습니까?”

그 물음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시기적으로 지금 이상의 개전 시기를 고르기란 무리였다. 연합왕국의 회사 군대가 압력을 가해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더불어 적이 공격을 해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하는 지금이 적기였다.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신이었다. 이번 동영 문제만 봐도 그렇지만 상대에게는 신을 천천히 찌르며 압력을 가할 수단이 무궁무진했다. 그것이 국력의 차이이고 안정된 지반을 가진 나라와 불안정한 나라의 차이였다.

승도는 전략적으로 자신이 싸우기에 지금이 최적의 시기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을 주어서 될 일이 있고, 그러지 않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로망스 제정의 필립이 루시 원정에 나서며 이런 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루시 공격을 하루 머뭇거리면 그들의 대포와 소총을 루테티아에 100킬로미터씩 접근시키는 것과 같다고. 그 말대로입니다. 우리가 하루 시간을 줄 때마다 루시는 북경을 향해 유리한 고지를 확고히 해나갈 뿐입니다.”

승도가 전쟁 황제(즉 자신)의 말을 빌려 지금 전쟁을 해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자 장교도 수긍했다. 전쟁도 때를 놓치면 필요 이상의 힘을 쓰고도 성과를 얻지 못하는 법이었다.

승도 일행은 말을 달려 호위 기병이 기다리고 있는 제도 서문을 향했다. 그의 뒤에 늘어진 장포가 지난날 에우로페를 떨게 했던 독수리의 깃발처럼 힘차게 펄럭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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