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오로목제 (3)
검은 군복들이 깃발을 높게 든 채 행군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이동을 감독하고 있는 여단장 알롱은 뒤처지는 부대를 수시로 확인하며 부관을 보내 장교들을 독촉했다.
그가 이렇게 독하게 구는 것은 제시간에 승도의 계획대로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승도가 새로 전략을 바꾸어 1, 2여단이 단시간에 유사를 건너 적을 몰아 3여단 쪽으로 밀어 버리기로 했지만 알롱은 그 생각을 몰랐다. 그는 처음 받은 명령대로 회랑까지 단시간에 주파해 적을 측면에서 쳐야 했기에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병사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각하.”
부관이 알롱에게 말했다. 그는 행군 중에 수시로 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는 병사들을 보았던 터라, 이 같은 무리한 고속 기동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롱도 그걸 알면서 행군 속도를 조절하라고 할 순 없었다.
“나도 모르진 않아. 하지만 우리가 기동 속도를 늦추게 되면 군의 작전 계획을 맞추기가 어려울 테지. 그건 곤란하지 않나?”
알롱의 언급에 부관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군사 작전에서 단위 부대의 행동에 재량권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당한 경우는 최고 사령관의 지침에 묶이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모든 하급 부대에 자유재량을 줄 경우, 각개 전투를 벌이다 적에게 차례로 격파당할 위험만 초래될 뿐이었다.
군대는 작전계획에 따라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너무 경직되게 계획에만 얽매이는 것도 좋지는 않았지만, 상승군의 수장인 오승도의 계획은 믿어도 괜찮았다. 지금까지 그는 기계적으로 정밀한 전략을 짜 ‘실행 가능한’ 것만 명령했다.
여단은 승도의 지시에 따라 계속해서 북동쪽으로 움직였다. 약 한나절을 쉬지 않고 행군한 그들은 뜻하지 않게 남서쪽으로 이동해오던 적과 조우했다.
알롱은 접적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곧바로 장교들을 소집했다.
양자 모두 교전에 들어가려 하지는 않았지만 임기응변으로 먼저 대응에 들어간 것은 상승군이었다. 상승군은 경험 많은 장교와 사병들을 가지고 있어 갑작스런 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유목민들은 혹시 포위를 당한 것이 아닌지 겁을 먹고 잠시 머뭇거렸으며, 그 시간을 이용해 알롱은 부대를 넓게 전개시켰다. 화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 상승군이었기에 병력을 펼쳐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거의 상대를 반 포위하다시피하며 포진을 마쳤다. 유목민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포위당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움직임을 보였지만 전투를 피하기엔 너무 늦어 있었다.
뒤늦게 일부 기병이 아직 닫히지 않은 포위망 쪽으로 움직였지만 그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는’ 적의 장대한 물결이 포착되었다.
유사 구 전투에서 그들을 놓아 보내었던 상승군의 제 1, 2여단 병력이었다. 열린 돌파구로 빠져나갈 경우 1, 2여단 병력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은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상승군 3여단의 전선에 구멍을 내고 서남쪽으로 계속해서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목민들이 슬슬 기동을 시작하자 알롱은 망원경을 내린 다음 병사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전진 명령’이 떨어지자 전열을 갖춘 보병들이 앞으로 움직였다. 넓게 퍼진 기관포들이 압박의 축을 맡아주고 있어 실상 보병과 경포의 화력으로 기병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알롱은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관포가 없어도 후장식 소총의 위력은 기병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박격포의 화력이 더해진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다 우리에겐 아직 콩그리브도 남아 있다.’
콩그리브는 필요시에 언제든지 기병에 유효하게 쓸 수 있는 병기였다. 로켓의 날카로운 소리는 말이 놀라게 만들어 그 행동에 큰 지장을 줄 수 있었다.
보병이 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자 유목민들도 나름의 대응책을 구사하려 했다. 유목 기병들은 평범한 농경 세계의 기병들과 달리 여러 필의 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이 말들을 방패로 쓸 수 있었다. 말 가격이 비싼 농경 세계에서는 감히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할 방법이었다.
전날 오승도가 한차례 사용한 적이 있는 전술로 유목민들이 자주 쓰는 교전 방법이기도 했다.
유목민들은 말에서 내린 다음 여분의 말들을 앞에 모아 자신들의 앞에 세웠다. 후장식 소총을 든 보병들을 상대로 나름의 저항을 해보려는 잔 수였다.
알롱은 망원경을 들고 상황을 살피다 부관에게 말했다.
“콩그리브를 쏘도록 하지.”
“준비시키겠습니다.”
부관이 포병 쪽으로 달려간 동안 알롱은 기수에게 명령해 보병의 전진을 잠시 멈추게 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 후, 말을 방패삼아 상승군 보병의 접근을 기다리던 유목민들의 귀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백 발의 로켓이 비처럼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많지도 않은 숫자였지만 그 굉음은 ‘로켓’ 무기에 전혀 익숙해져 있지 않던 말들을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
갑자기 터진 굉음에 말들이 이리저리 뛰었다. 고정된 방패로써 의미를 가져야 할 말들이 날뛰자 유목민들의 진형은 엉망이 되었다.
그 상황에서 상승군의 경포들이 불을 뿜었다. 진형 곳곳에 재차 포탄이 떨어지자 혼란은 더욱 커졌다. 마른 짚단에 불씨가 붙어 불이 커지는 형국이었다.
혼란이 가중되자 유목민들이 처음 생각했던 ‘교전’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알롱은 그 꼴을 보다 기수에게 손짓을 해 보병의 전진을 재개하게 했다.
보병들이 발을 맞추어 다시 전진했다. 검은 군복들이 표정 하나 없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광경은 실로 위압적이라고 표현해야 했다.
그들의 전진에 유목민들은 급히 대응할 준비를 하려 했지만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유목민들이 미처 사격을 가할 틈도 없이 거리를 좁힌 검은 군복들의 일렬이 유효 사거리에 접어들었다.
장교가 ‘정지’를 외치자 보병들이 기계적으로 군화를 멈추었다.
“사격 준비!”
검은 군복들이 총탄을 장전하는 꼴을 본 유목민들도 급히 총을 들었다. 워낙 진형이 혼란스럽다 보니 사격은 통제되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총탄이 몇 발씩 날아갔는데 이런 공격으로 피해를 주기는 불가능했다.
상승군은 그 공격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격 준비를 마쳤다. 이어 그들이 일제히 총구를 유목민 쪽으로 겨누자 유목민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사격!”
장교의 명령과 동시에 천 발이 넘는 총탄이 쏟아졌다. 제1열이 쏜 총탄 세례는 파멸적이었다. 말들이 이리저리 움직인 탓에 상당수의 유목민들이 노출된 채로 총탄을 뒤집어썼다.
수십 명이 쓰러지자 남은 자들은 처음보다 더욱 겁을 먹었다. 전열 전투에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유목민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총탄이 오가는 전장에서 평정을 유지하도록 훈련을 받은 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는 싸움을 해왔었다. 그런 그들이 상승군과 정면에서 전열 전투를 벌여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유목민들은 한차례 사격을 받자 제대로 총을 재장전하지도 못했다. 어떻게든 상승군의 전열 한곳에 피해를 주고 무사히 부대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유목민들은 간헐적인 사격을 다시 가하기도 전에 상승군의 두 번째 일제 사격을 뒤집어썼다. 이번에도 피해는 굉장했다. 수십 명이 초주검이 되었고 말들도 무더기로 쓰러졌다.
공격이 몇 번 반복되자 유목민들은 이렇게 싸워선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탈출구를 열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 그들이 등지고 있는 유사를 건너 달아나는 방법뿐이었다.
그들은 평소에는 감히 발을 들일 생각도 하지 못하던 유사 위로 죽은 동료와 말들의 시체를 던졌다. 그것들이 빠지는 동안 이를 밟고 유사를 탈출하려는 비정한 생각에서였다.
유목민들이 눈앞에서 ‘생각 밖’의 움직임을 보이자 알롱은 인상을 썼다.
“놈들을 보내선 안 되지. 부관!”
“예, 각하.”
“포병의 화력 지향점을 유사로 돌려서 탈출 시도를 막아. 여기서 놈들을 놓아 보내면 오승도 각하께서 실망하실 게 뻔해.”
알롱은 조바심을 내며 속사포처럼 지시를 내렸다. 부관이 포병대에 새로 명령을 전하는 동안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보병들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검은 군복들은 착실하게 말을 방패로 삼은 적 기병들을 줄여가며 한 발 한 발 전진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을 준다면 확실히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시간이 흐르기 전에 멀리 깃발을 드러낸 1, 2여단이 가세해 전공을 나누어 먹겠지만.
알롱은 마른침을 삼켰다.
***
폭발과 동시에 살점과 피가 비처럼 뿌려졌다. 유목민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쏟아지는 포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티무르가 멍청하게 주저하는 병사들을 보며 소리쳤다.
“지금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모두 여기서 뼈를 묻을 셈이냐?”
하지만 혼란에 빠진 인간들에게 닿기에 그 목소리는 힘이 부족했다. 티무르는 인상을 찌푸린 다음 손수 고수의 북을 빼앗았다. 그가 북을 치자 일부의 시선이 따라왔다.
티무르는 북을 치던 북채를 들어 유사를 가리켰다.
“여기 있으면 죽는다. 무얼 주저하는가?”
꿀꺽.
유목민들은 두려움에 잠긴 눈으로 유사를 보았다.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삼키는 유사는 보통의 용기로 뛰어들 수 없었다. 무언가 밟고 건널 것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시체를 던지긴 했지만 그 주변으로 쏟아지는 포탄을 보니 겁이 났다. 한 발만 헛디뎌도 모래 늪에 빨려 들어가 숨도 못 쉬고 죽고 말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포탄을 피할 곳이 없으니 죽음의 손길을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어려웠다.
티무르는 모두가 망설이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심리적인 문제였다. 포탄이 쏟아지고 있긴 해도 한 번에 시체를 던진 다음 건너기를 시도하면 죽는 자는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대로 모두 뼈를 묻어야 하나.’
티무르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유사를 바라보았다. 한때 오승도의 뒤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충분히 벌어 오로목제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가공할 만한 상승군의 위력에 밀려 쫓기다 보니 그 모든 가정이 무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면 전투를 피해 뒤를 노리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상대는 아예 보급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오로목제로 가는 시간이라도 늦추어 보려고 유사 구에서 지연전을 폈지만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저지선을 돌파한 오승도의 공격에 중포만 모두 상실해 버렸다.
그래도 그 주의를 조금 돌려보려 방향을 서남으로 돌렸건만, 그조차도 함정인 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 그와 그 군대는 오승도의 아가리에 갇힌 채 파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티무르가 무거운 눈으로 유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족장 하나가 외쳤다.
“티무르 공, 저길 보시지요.”
그 외침에 티무르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쪽에는 예상치도 못한 변수 하나가 전장에 개입하고 있었다. 바로 서전에 싹 쓸려나간 줄 알았던 루시의 잔존 기병이 나타나 얄팍하게 늘어진 적 저지선의 배후를 공격했다.
그 공격은 후미를 노출한 채 저지선을 만들고 있던 적의 마차들을 강타했다. 화력은 막강하지만 기동력은 둔한 기관포들이 공격을 받자 단숨에 저지선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유목민들을 사냥하기 위해 알롱이 임시방편으로 부대를 넓게 전개한 약점을 정확히 찌른 것이다.
기병들이 내달리며 쏜 총에 포병들이 연달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생각지도 못한 대반전에 상승군도 당황했다. 검은 군복들은 맹렬하게 유목민들을 밀어붙이다 본진 쪽에서 울린 북소리에 움직임을 늦추었다.
그 잠깐의 망설임이 교활한 여우에게는 기회로 보였다.
티무르는 대번에 힘을 되찾았다.
‘지금이 기회다. 적의 대오가 흔들린 지금 그 옆구리를 찌르고 나가 병마를 살린다.’
티무르가 힘을 얻자 족장들도 기운을 얻었다.
티무르는 칼을 뽑아들었다.
“모두 적진을 돌파한다!”
늙은 거인이 움직이자 족장들이 그 뒤를 따랐다. 유목 기병들도 그를 따라 물결을 이루었다. 그들은 다가오는 상승군 보병들을 우회하여 저지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서히 움직이자 그 모습은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고정된 위치에서 상승군과 전열 전투를 벌일 적에는 비루하기 그지없는 모습만 보였지만, 그들은 역시 기병이었다.
대규모 기병이 한 번에 말을 달리는 광경만큼 압도적인 아우라를 발하는 연출도 찾기 어려웠다.
기병이 한 번에 움직이자 상승군 보병들도 급하게 총격을 가했다.
연달아 퍼부어진 사격에 기병들이 잇따라 낙마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기병들은 보병들의 대열을 우회하여 저지선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상승군의 지휘관들은 그 광경을 그냥 두고 보려 하지 않았다.
곧 굉음과 함께 수백 발의 로켓이 비처럼 쏟아졌다. 밀집된 기병들 사이에서 폭음이 울렸다. 어마어마한 폭발과 동시에 수십 명의 인간과 말이 분쇄되어 육편이 되었다.
혹은 백린을 뒤집어쓴 채 절규하며 말발굽 아래로 떨어지는 자들도 있었다. 말들이 놀라 앞발을 드는 통에 낙마하여 허리가 부러지는 자들도 있었다.
순식간에 수백의 기병이 죽거나 다쳤지만 유목민 기병의 대열 전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마는 죽거나 다친 동료들을 우회하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탈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상승군은 급하게 박격포의 화력 지향점을 바꾸었지만 그 또한 소용이 없었다. 이미 적 기병은 마차 근처까지 다가서고 있었다.
아직 제압되지 않은 기관포 하나가 빛을 뿜었다. 사신의 낫이 사정없이 기병들의 옆구리를 긁자 연달아 사람들이 말에서 추락했다.
티무르는 그 무자비한 화력에 치를 떨면서도 그 병기가 하나만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상승군의 저지선은 이미 붕괴 상태였다.
루시 기병들이 탈출해오는 티무르의 기병들을 향해 기를 들어 ‘탈출’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티무르는 이를 악물고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말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유목민 기병들의 대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차의 저지선을 지났다. 뒤늦게 적의 탈출에 대응해 오승도가 보낸 기마 보병이 그들의 뒤를 밟았다.
탕. 탕.
경쾌한 총성을 연거푸 내며 추격해오는 적 기병이 뒤를 물어뜯었지만 티무르는 그에 응전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적 기마에 대적하려고 말 머리를 돌렸다간 먹이를 놓친 사나운 보병들에게 둘러싸여 최후를 맞을 뿐이었다.
어차피 적 기마는 ‘기마 보병’이었기에 마상에서의 사격술은 형편없었다. 총에 맞아 낙마하는 자는 극소수였다.
티무르와 루시 기병들은 한 시간을 내달려 검은 악마들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티무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에서 내렸다.
그와 나란히 달려오던 흰 군복의 기병 무리 중 장교 하나가 그쪽으로 다가왔다. 그 사내는 꽤 익숙한 인물이었다.
사내는 말에서 훌쩍 내리더니 티무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꽤 반갑구려.”
그의 인사에 티무르가 옆을 보았다. 그러자 티무르 가까이 있던 자가 얼른 통역을 해주었다.
“우리도 만나서 반갑소. 이렇게 도움을 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소이다.”
티무르의 대답에 기병 장교는 피식 웃었다.
“같은 적을 둔 아군끼리 돕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오? 그나저나 병마가 꽤 상한 것 같은데. 오백 정도 남았으면 얼마나 상한 거요?”
그 물음에 티무르는 입맛이 쓰다 느꼈다.
“9할을 잃었소.”
사실상 괴멸이나 다름없는 수치였다.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투르 한국의 군사적 중추나 다름없는 그가 살아있는 한 병마는 어느 때고 모을 수 있었다.
“우리보다 처지가 안 좋구려. 이쪽은 반이 남았소.”
그레고리우스 대령이 말했다. 루시 기병 연대는 정원 천 명에서 절반에 불과한 520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봐야 둘 모두 패한 처지다.
둘은 서로의 군마를 보고 씁쓸한 웃음을 지은 다음 향후의 움직임에 대한 논의를 했다. 루시 영토로 함께 넘어갈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 게릴라전을 펼칠지.
투르 한국 내의 그들 군사력이 모두 무너진 이상 이곳의 전력으로 정규전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 나라는 오승도의 수중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