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15화 (315/425)

제315화. 전략가들 (1)

승도는 고민 끝에 루시 본토 침공을 강행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세운 전략대로 승부를 보기로 한 것이다.

‘침공 명령’이 떨어지자 오로목제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상승군의 여단들이 일제히 북쪽으로 발진했다. 각 여단은 가장 먼저 루시 영토를 밟겠다는 경쟁심에 하루에 백 리 이상을 달렸다.

루시 영토를 침범하는 최초의 명예를 얻은 것은 역시 전통의 1여단이었다. 용병들은 강인한 지구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선두를 유지했고, 2, 3여단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루시 영토에 진입했다.

상승군이 자신들의 깃발을 들고 침공을 개시하자 몇 안 되던 루시 측의 국경 수비 부대들은 간단히 유린당했다.

수십 발의 포탄이 비처럼 요새로 쏟아졌다. 에우로페 표준의 요새라면 경포 따위에게 유린당할 이유가 없었다. 요새 개념이 발달한 에우로페였다면 요새마다 100문 이상의 대포를 장비하였겠지만, 이곳은 머나먼 극동이었다.

더구나 그만한 물자와 인원을 요새마다 할당하는 것은 가난한 루시로썬 불가능했다. 루시 군대는 요새마다 겨우 10문의 대포와 500여 명의 수비 병력을 배치하는 데 그쳤다.

다소 평화로운(상당 기간은 괴뢰 국가인 투르 한국과 접경) 기간을 보내온 국경 지역이라 이런 배치도 무리는 아니었다.

요새의 외벽마다 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때마다 벽돌로 만든 성벽이 부스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요새의 대포도 그냥은 당하지 않았다.

그들도 몇 발의 포탄을 쏘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너무 구식이었다. ‘신형’의 고성능 경포를 끌고 온 상승군과 사정거리 차이가 너무 커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연달아 쏟아졌다. 폭음이 울릴 때마다 사령관의 방에 진동이 전해졌다. 종이 위로 흙먼지가 쏟아지자 사령관은 애써 흙을 치운 다음 깃털 펜을 다시 잡았다.

“각하,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됩니다. 승산이 전혀 없습니다. 가망이 없는 싸움입니다.”

장교들이 책상 앞에 몰려와서 몇 마디를 했지만 사령관은 그 말을 무시했다.

“각하, 탈출을 해야 합니다. 요새를 지키는 건 무리입니다.”

“각하!”

“그만들 합시다. 요새를 버리고 싶으면 귀관들이나 그렇게 하시오.”

사령관은 나지막이 말했다. 장교들이 그에게 요새를 버리자고 말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상급자인 그와 함께 요새를 나가면 ‘요새 방기’에 대한 책임을 떠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나가지 않으면 이들 장교는 전시에 임지를 버리고 도망간 탈주자가 되고 만다. 이는 포로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수치였기에 장교들로서는 계속 탈출을 종용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어떻게 각하를 남겨두고 떠나겠습니까?”

“그럼 싸우시오. 내 할 말은 그게 전부요.”

사령관은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당혹감에 찬 표정을 지으며 장교들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그는 뜨거운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다음 요새의 설계도를 다시 유심히 보았다. 요새는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대단하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내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요새 지하에는 ‘건조한 지역’에서 오래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대한 지하 저수조가 있었다. 이 저수조는 얼마 전에 쏟아진 빗물을 잔뜩 담아두어 포화 상태였다.

이 물은 필요에 따라 요새 지하 수도를 따라 바깥의 메마른 ‘해자’로 흘러 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바싹 마른 해자라고 해도 일순간에 물이 들어차면 거의 6미터 이상의 수심을 자랑하게 되었기에 이는 ‘숨겨진 비밀 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이 적당히 포격을 가한 후 보병을 돌격시켜 온다면 이 지하 저수조의 힘을 이용해 타격을 가하고, 이어 요새 내에 남은 약간의 기병을 이용해 혼란에 빠진 적의 전열을 치고 지나가 적 포병을 공략한다면 요새 사수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사령관 파블로프는 지하 저수조에 동그라미를 친 다음 펜을 놓았다.

생각해보면 그도 참 우스운 팔자였다. 투르 한국의 건국에 결정적인 공을 세워 출세가 보장될 줄 알았지만, 노회한 능구렁이 블라디미르에게 공을 빼앗겨 페테르부르크 사교계로 진출하지도 못했다.

그 대신 주어진 것이라고는 보잘것없는 변방 요새의 사령관 자리와 대령이라는 허울만 좋은 계급장이었다. 변방 요새의 사령관 따위는 정말이지 실속이 없는 자리였다.

투르 한국이 건국되기 전에는 그나마 국경 밀무역으로 뒷돈이라도 챙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처지에 놓인 그가 구태여 어려운 싸움을 하려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 싸움에서 달아나봐야 ‘지난 공적’을 확실히 독식하고자 자신을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는 블라디미르의 손에 죽을 것이 확실해서다.

그런 도망자의 삶은 그의 성정에도 맞지 않았다. 이 싸움에서 이겨 ‘공적’을 세운 후, 그 빌어먹을 블라디미르 영감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유일한 바람이자 남아 있는 가능성의 전부였다.

콰앙!

다시 굉음이 울렸다. 돌가루가 쏟아지는 것이 심상가 않았다. 곧 그의 방으로 장교 하나가 다시 들어와 말했다.

“각하, 요새 벽에 금이 갔습니다. 이대로는 몇 분 견디지 못할 겁니다.”

“알았으니 나가보시오.”

파블로프는 간단히 대꾸하고는 자신의 코트를 찾았다. 먼지가 묻은 흰 코트를 입고 허리에 권총을 찼다.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서자 아까 축객을 당한 장교들이 불안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대령은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요새의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성벽 위는 포격으로 온통 엉망이었다. 포격이 뚝 그쳐 있긴 했지만 성벽 위로 올라오려는 병사는 없었다.

파블로프는 홀로 성벽 위에 올라선 다음 망원경을 들었다. 적은 요새를 충분히 무력화시켰다고 판단했는지 보병대의 투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투입을 위해 앞으로 나선 적 보병은 보기에도 군율이 바로 서 있는, 잘 훈련된 정병이었다. 열과 오도 잘 맞추었고 장교의 지시에 정확히 통제되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검은 군복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대령은 망원경을 내린 후,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내려오자 아까부터 그의 눈치만 살피던 장교들이 다시 말했다.

“각하, 요새 사수는 어렵습니다.”

“지금이라도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들은 끈질기기 그지없었다. 대령은 그런 그들을 향해 엄하게 말했다.

“정말이지 귀관들은 겁이 많군. 그렇게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했을 텐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요? 한마디만 더 같은 말을 하면 이 자리에서 즉결 처분하겠소.”

“…….”

장교들을 침묵시킨 파블로프는 그들에게 ‘도망가지 않을 것이면’ 제 위치에서 임무를 다하라고 덧붙였다. 그의 위압적인 태도에 압도당한 장교들은 별말을 더 하지 못하고 경례만 붙인 채로 흩어졌다.

파블로프는 장교들이 제 위치로 향한 것을 확인하고 지하 수로를 관리하는 병사들을 불렀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보내면 즉시 수로를 개방하라고 병사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귀한 식수’를 함부로 내보내라는 것이 진짜 지시인지 병사들이 의심하여 ‘시간’을 낭비할까 염려하여 내린 조처였다.

이어 기병들에게 말을 준비하여 요새의 입구에 집결하라고 명령했다. 이 기병은 모두 귀족 출신들이라 이들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파블로프는 이상의 조처를 모두 내린 다음 자신도 말에 타기 위해 자신의 하인을 불렀다.

요새의 사령관들은 대개 서너 명의 하인을 두고 있었는데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하인들은 자질구레한 잡일을 담당하는 하인이 하나에 그의 말을 보살피는 마구간지기가 하나, 그리고 그의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가 하나였다.

그가 부른 하인은 마구간지기였다. 마구간지기는 그가 시킨 대로 사령관이 탈 백마 한 필을 끌고 나왔다.

옛날에 공적을 세워 황실로부터 하사받은 귀한 말이었다. 그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마구간지기에게 자신이 말에 오르는 것을 돕게 했다.

나이가 있다 보니 혼자 말에 훌쩍 오르기는 좀 부담스러웠다. 하인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오르고 보니 모양새가 좀 그럴싸했다.

대령은 제자리를 한 바퀴 돈 다음 요새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명령을 받고 모인 기병들 오십이 모여 있었다.

그는 기병들을 슬쩍 본 다음 코트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대충 적이 공성을 시도하면 약 이삼 분 사이에 물이 쏟아져 ‘일시적인 혼란’이 적을 강타할 예정이었다.

그 짧은 혼란의 틈을 비집고 나가 적의 대포를 타격하고 돌아오는 것이 그가 할 일이었다.

대령은 시계를 매만지며 적의 공격을 기다렸다.

잠시 후, 성벽 바깥에서 요란한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그 자신의 운명을 건 승부를 시작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

장교의 권총 소리와 동시에 수백의 검은 군복들이 물밀듯이 전진했다. 포격으로 요새의 포가를 여럿 손상시킨 탓에 방어 측은 제대로 된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보병의 사격이 고작이었는데 그 정도로는 상승군에 위협도 되지 않았다. 전진하는 보병의 뒤를 따라온 엽병들이 침착하게 총안에 눈을 가져간 루시 보병들을 하나씩 저격했다.

저격이 이어질 때마다 여러 명의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고 방어자들은 더욱 겁을 먹었다. 그러자 가뜩이나 명중률을 기대하기 어렵던 전장식 소총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상승군은 적의 공격이 힘을 잃자 용기백배하여 해자의 경사면을 타고 내려가 요새로 접근했다. 그들은 그 상태에서 동료들이 건넨 사다리를 타고 해자에 다시 오를 차비를 했다.

해자만 건너면 요새의 문이 코앞이었고 적을 공략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용맹한 검은 군복들은 자신들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믿었다.

선두에 선 척탄병 무송도 그런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 중 하나였다. 무송은 날렵하게 해자로 뛰어든 다음 동료들의 엄호를 받으며 사다리를 타고 반대편으로 기어올랐다.

적 보병들에 대한 동료들의 끈질긴 견제사격이 있어 무송은 어렵지 않게 해자 위로 오를 수 있었다. 그는 해자 위에서 적당한 엄폐물을 발견한 후, 거기에 몸을 숨긴 채 동료들이 올라올 수 있도록 총안에 공격을 퍼부었다.

그 위는 아까 떨어진 포격의 여파로 만들어진 구덩이와 돌무더기로 엄폐할 곳이 많았다. 척탄병들은 차례로 적 보병들의 총안에 견제 사격을 가하면서 한 발 한 발 요새의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요새의 문만 개방하고 나면 그다음은 식은 죽 먹기였다. 수류탄 몇 발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문만 내리게 한다면.

무송이 조심스레 해자로 다가서는 동안 동료들은 그의 안전을 위해 구덩이와 돌무더기 뒤에서 계속 총격을 퍼부었다.

‘이제 몇 발 남지 않았다.’

무송은 요새의 문에서 열 발자국 떨어진 구덩이에 몸을 감춘 채로 눈을 빛냈다. 이번에 문을 여는 공만 세운다면 훈장과 부사관 승진은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한 다음 구덩이에서 달려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우르릉!

땅이 흔들리는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병사들은 그 진동에 놀라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적들조차 사격에 잠시 머뭇거렸다.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해자의 한쪽에서 흙더미가 쏟아지더니 어마어마한 흙탕물이 터져 나왔다.

느닷없이 터져 나온 물에 병사들이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정예 중의 정예인 상승군 병사들도 이 생각지 못한 참변에 몸을 허둥거렸다.

“물이다!”

“살려줘!”

순식간에 수십 센티미터씩 차오르는 물에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일부는 급하게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그럴 경황도 없이 제 키보다 높게 차오르는 물에 휩쓸렸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무거운 총과 군장을 차고 있어 수영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물에 잠긴 다음 고개 한 번 내밀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수장 당했다.

백 명이 넘는 병사가 해자에 들어온 물에 휩쓸리는 통에 상승군은 혼란에 빠졌다. 해자로 들어가려던 병사들, 그리고 해자를 건너 요새 쪽에 있던 병사들까지 모두 얼어붙었다.

검은 군복들이 그 예기를 잃고 얼어붙자 루시 쪽은 대번에 사기를 되찾았다. 절망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던 그들은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자 힘을 냈다.

해자 안에서의 지원이 사라지자 총안에서의 공격도 탄력을 받았다. 요새 근처에 고립된 상승군 보병들은 그 공격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염병할!”

무송은 구덩이에 몸을 움츠린 채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총탄에 욕설을 내뱉었다.

상승군 2여단의 지휘부까지 이 상황에 바로 대응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승도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았을지 모르나, 그는 1, 3여단을 거느리며 적지 깊숙이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여단 하나로도 요새들을 격파해 배후를 다질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고 먼저 움직인 것이지만 이 예상외의 참사는 그도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승군이 갑작스런 수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요새의 문이 열렸다. 천천히 개방된 도개교는 해자 위로 가지런히 놓였다.

상승군은 그 상황을 보고 급히 대응하려 했지만 위험에 빠진 병사들의 구출과 이 충격적인 상황을 보고 얼어붙은 병사들을 다독이느라 즉시 손을 쓰지 못했다.

더구나 요새 공격 대형으로 부대가 전개되어 있어 적의 돌격에 대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도개교가 내려진 순간 힘찬 나팔 소리와 함께 일단의 기병이 그 위를 바람처럼 달려 나왔다.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야만인들을 죽이자!”

기수가 깃발을 펄럭이며 선두에서 내달렸다. 이어 지휘관과 기병들이 기병총과 ‘대기병용 못’을 들고 질주했다. 그들의 돌격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타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상승군이 대응할 전열을 만들지 못하자 기병들은 단숨에 앞으로 치고 들어갔다.

“막아! 놈들을 막아라!”

장교들이 뒤늦게 소리쳤지만 기병들로부터 포병을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관포는 요새 공략에 불필요하다고 여겨 먼저 선행 전진한 여단들이 모두 인수해버려 그 원호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기병은 보병들이 대응할 틈도 없이 보병들의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일부가 급히 총을 쏘았지만 낙마한 기병은 몇 되지 않았다.

“맙소사.”

적 기병이 보병의 대열을 지나 포병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자 포병은 급한 대로 대포의 입사각을 낮추었다.

포병을 직접 공격하는 적에 대한 전통적인 방어 수각, 수평 사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포탄을 장전하기가 무섭게 서둘러 귀마개를 하고 불을 준비했다.

“발사!”

장교들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포들이 불을 뿜었다.

쾅. 쾅.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포탄은 평소와 달리 수평으로 쭉 날아간 다음 기병들 쪽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포병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전과를 살폈다.

적이 너무 가까운 곳까지 다가온 상태에서 급히 쏜 것이라 이번 사격이 효과가 없다면 끝장이었다.

그들은 짙은 포연 쪽을 보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은 공포와 경악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은 포격이 이루어지던 순간 신속하게 좌우로 분산하여 피해를 최소화한 후 그들을 향해 곧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기병을 포병으로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포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포를 버리고 급히 달아났다.

기병들은 달아나는 포병들을 추격하는 대신 대포 앞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미리 가지고 온 못을 대포의 점화구에 박아 넣었다. 이렇게 하면 상당한 기간 동안 대포를 쓸 수 없었다.

공성전의 핵심 병기인 대포를 아주 간단히 무력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대포마다 못질을 한 후 재빨리 말에 올랐다. 뒤늦게 보병들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못질 자체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병들은 말에 오른 다음 바람처럼 제 요새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상승군 지휘관들도 그 꼴을 그냥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열린 도개교를 향해 보병들을 돌격하게 했다.

그러자 요새 방어군은 도개교를 올릴 수밖에 없었고 파블로프는 대포를 무력화시키고도 제 요새로 돌아갈 수 없었다.

파블로프와 기병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북쪽으로 달아나는 동안 상승군 지휘관들은 잔뜩 인상을 쓴 채 ‘빌어먹을 해자’를 노려보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메마른 대지’에서 난데없이 터져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물 때문이었다. 이걸 예상하고 공성 전략을 세우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들은 해자를 건너간 병사들을 구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 후, 공성전을 일시 중단했다. 요새를 공략할 수단이 없어졌으니 그들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이 요새 외에도 공략해야 할 요새가 셋이나 더 남아 있어 2여단은 당분간 국경 지대를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대담한 한 수로 대막을 삽시간에 평정하며 ‘기선’을 제압한 상승군이 맛본 첫 번째 패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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