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17화 (317/425)

제317화. 전략가들 (3)

알렉세이는 상대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를 받고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니코틴이 가득 담긴 뿌연 연기가 코를 통해 훅 흘러나왔다. 그는 상대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기에 자신의 초대에 응했다는 것은 짐작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가졌기에 방심하지 않았다. 지도를 내려다보며 수시로 들어오는 적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기입하며 적이 취하려는 작전의 형태를 읽으려 했다.

적 보병은 숲의 남쪽으로 진입한 후, 동쪽을 따라 반원을 그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 방식은 이쪽이 다수의 병력을 매복시켰을 거라고 가정할 때에나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이쪽에서도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애초 숲에 대기시킨 병력의 대부분을 숲 북쪽에 대기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적이 ‘안전’을 확인하고 호수로 진입하면 숲을 따라 병력을 움직여 그 퇴로를 차단하고 소리 없이 포위망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처음부터 숲에 넓게 병력을 퍼트려두는 것은 어설픈 삼류나 하는 짓이었다.

물론 병력을 전부 숨기는 것도 이류다. 적이 의심할 경우에 대비해 ‘적당한 규모’만 보여주는 행동도 필요했다. 그 병력을 격퇴하고 적이 들어와야 제대로 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세이는 지도 위의 적 장기짝을 움직인 다음 다시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흰 군복들과 검은 군복들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숲에서 마주쳤다. 쿠크리가 옅게 비치는 햇빛을 반사하며 섬뜩한 반사광을 튕겼다.

상승군에서 잔뼈가 굵은 비슈누는 자신들의 앞에 보이는 적 병사들을 보며 희죽 웃었다. 근접전에서는 자부심 높은 붉은 코트들조차 그들을 상대로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이렇게 무기를 마주하는 적을 보니 재미있었다.

그것도 그들의 세계나 마찬가지인 숲속이다. 그들의 고향은 광활한 삼림으로 뒤덮인 땅이었다. 그곳에서 맹수를 잡고 사람을 사냥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 숲은 자연스런 사냥터의 일부였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붉은 코트들조차 쿠크리 한 자루만 들고 모조리 사냥할 수 있을 정도의 전장이 바로 숲이었다.

‘재미있어.’

비슈누는 쿠크리를 양옆으로 늘어트렸다. 사람 키만큼 높은 수풀만 있었다면 그들의 모습을 볼 기회도 없이 머리를 추수했겠지만 이곳은 그런 지형지물은 없었다. 하지만 시계를 적당히 제약하는 나무만으로도 그들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황제 폐하의 적이다. 모두 죽여라!”

흰 군복들은 능숙하게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총성과 함께 불꽃이 튀었지만 검은 군복들은 그 공격을 어렵지 않게 대응했다. 정글에서 붉은 코트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용병들에게 ‘숲’에서의 사격은 별반 두려울 것도 없었다.

총탄은 바위와 나무, 썩은 폐목 등을 방패 삼아 날렵하게 움직이는 용병들의 반응에 무용지물로 돌아갔다.

루시 장교는 그 신속한 반응에 혀를 내두르며 병사들에게 착검을 지시했다. 흰 군복들이 차례로 착검을 하자 용병들은 적이 원거리 전투를 포기했다는 것을 알고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용병들은 전통적인 전투 방법에 따라 삼각 전투대형을 갖추었다. 3인 1조로 조직을 갖추고 서로를 엄호하며 나아가는 대형이다. 루시는 숲에서의 전투 경험이 부족해 그냥 전통적인 편제로 승부를 했다.

양쪽은 서로를 향해 칼을 던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자 함성 소리와 함께 폭발적인 가속도를 냈다. 양자는 거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무기를 내질렀다.

최초의 충격이 일어나던 순간 타격을 받은 쪽은 루시 병사들이었다. 흰 군복들은 ‘충돌 직전’에 민첩하게 한 걸음 뒤로 빠진 적 보병들의 반응 때문에 헛손질을 했다.

그들이 헛손질을 하자 총검은 ‘사거리’의 이점 대신 긴 병기의 단점을 드러냈다. 공격의 간극으로 파고들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 짧은 틈에 바로 뒤 열에서 달리던 용병들이 쿠크리로 총검을 쳐내며 밀고 들어갔다.

고대부터 긴 거리를 가진 창과 공격 속도가 빠른 검의 대결에 대한 우위 논쟁은 많았다. 대부분 창이 ‘검’에 대해 우월하다는 결론으로 정리되곤 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먼저 ‘타격’할 수 있는 대신 자유자재로 무기를 다루기 힘든 ‘조밀한 거리’, 즉 검의 살상 반경 안에서 창은 검의 적수가 되기 어려웠다.

특히 보통의 칼과 달리 휘어진 구조를 한 쿠크리는 총신으로 막더라도 신체를 찌를 수 있어 그런 이점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흰 군복들의 첫 전열은 답답한 비명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피분수가 터지며 목이 바닥을 굴렀다. 비슈누는 능숙하게 적병의 머리를 쳐내며 적 보병 수십의 대열로 파고들었다. 한 번 간격을 허용하자 그다음부터는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았다.

거리가 긴 총검은 적이 접근하지 못할 때 위력적이지 접근한 다음부터는 상대가 될 수 없는 병기였다. 더구나 아군 사이의 좁은 간격에서 호랑이처럼 날뛰는 적을 잡기엔 더욱 부적합했다.

‘멍청한 놈들.’

비슈누는 적 보병들을 비웃으며 앞에 있던 병사의 목을 쿠크리로 그으며 앞으로 쳐 날렸다. 그 바람에 총검으로 반격해 오려던 뒤 열의 적병들이 주춤했다.

그는 그 망설임을 이용해 군화로 총검을 발로 차 올린 다음 그 사이로 다시 뱀처럼 파고들었다.

상승군 병사들이 한 번 대열로 파고들자 싸움은 일방적으로 흘렀다. 근접전 기술에서 그들은 전쟁 전문가들인 용병들과 상대하기에 너무 약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가능한 ‘총’과 달리 근접전의 세계는 약간의 경험과 기술 차이만으로도 무자비한 갭이 벌어지곤 했다.

용병들은 그 점에서 초일류였고 십만 대군도 무참하게 썰어버린 전쟁사 초유의 악마들이었다.

“뭐하나! 놈들을 막아!”

장교들이 악을 썼지만 용병들은 상대에게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못했다. 적이 머뭇거릴 때마다 다음 전열로 파고들어 아비규환의 참상을 만들고, 뒤에서 상황을 파악할 때는 다시 거기까지 전진했다.

양떼 사이로 호랑이가 뛰어드는 판이니 그들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론 모두 전멸한다. 전부 쏴!”

“하지만.”

“전부 쏴. 피아 가리다간 우리까지 죽는단 말이다!”

일부 장교는 적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후미 전열의 병사들을 재정비해 다가오는 아군과 적을 가리지 않고 쏘게 했다. 무자비한 사격이 퍼부어졌지만 사실 ‘사격’은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악재였다.

아군이 자신들을 향해 총질을 하자 혼란에 빠진 루시 군대는 지휘 체계마저 완전히 허물어졌다. 뒤늦게 상급 부대 지휘관이 상황을 알고 수습을 시도했지만 숲에서의 명령은 쉽게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대 병력 하나가 공중 분해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20분도 되지 않았다. 화력을 거의 살릴 수도, 적을 특별히 대량 학살할 수단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있을 수 없는 전투가 나왔다.

상승군은 적 보병대대를 단 한 번의 충격으로 갈아버린 다음, 속도를 높였다. 그들이 전진해오자 뒤쪽에 남은 흰 군복들의 전열도 차례로 붕괴 수순을 밟았다.

그들이 평지에서 상승군을 상대했다면 이렇게 밀릴 이유는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고른 전장이 ‘숲’이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상승군은 피로 물든 쿠크리를 치켜들며 승리를 과시했다. 처음 목표로 한 숲의 동쪽 제압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승도는 이 공격으로 숲의 남쪽(상승군이 진입한 곳)과 동쪽을 확실히 확보하고 숲 안으로 진출해도 되리라 판단했다.

한바탕 교전을 통해 적의 전력이 그의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숲에서 보인 적의 저항으로 짐작한다면 ‘도리어’ 호수 쪽에서 제대로 된 저항을 보일 가능성이 컸다.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도 높았다. 숲 안으로 대포와 기관포를 몰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 ‘미리’ 병기를 준비한 적이 화력의 이점을 살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적은 호수에서의 싸움에 만전을 기하지 않았을까?

승도는 처음으로 ‘너무 깊게’ 생각한 나머지 오판을 저질렀다. 적을 과소평가해서도 아니고 과대평가해서도 아니었다. 전투에서 얻은 ‘전과’가 너무 터무니없어 다른 쪽을 의심해본 데 기인한 판단이었다.

승도는 그 생각에 기초하여 1여단에 계속해서 숲 북쪽으로 전진하는 대신 숲 안쪽, 즉 호수로 진출하도록 명령했다. 그의 명령대로 상승군은 방향을 전환하여 호수로 나아갔다.

숲에서의 교전은 상승군 지휘관들의 적절한 지휘와 용병들의 괴물 같은 전투력에 힘입어 압승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가 이 승리로 말미암아 호수로 나아간 순간부터 전투의 바람은 조금 미묘한 곳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

“적이 호수로 진입해 왔습니다, 각하.”

장교가 급히 보고하자 지도 위로 장기짝을 옮기고 있던 알렉세이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와주셨군.”

그는 자신이 숲 동쪽에 두었던 적의 장기짝을 호수로 옮긴 다음 ‘체크’라고 짧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라니?”

알렉세이가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적의 호수 진입과 동시에 아군의 의도를 기만할 목적으로 배치한 숲 동쪽의 아군으로부터 들어온 전문인데, 동쪽에 배치한 연대 병력의 7할이 괴멸되었다는 보고입니다.”

“7할?”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과 조우한 지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던가?

화력을 최대로 발휘 가능한 평야에서의 회전이라고 해도 여단 병력으로 연대 하나를 완전히 청소하려면 몇 시간은 각오하는 것이 보통이었다(포격부터 포함한 시간).

하물며 거긴 숲이다. 화력이 최대로 제약된 공간인 것이다. 그러한 공간에서 연대 병력의 7할이 한 시간 남짓 만에 증발하다니. 실소만 나왔다.

그는 쓴웃음을 짓다 장교에게 물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보고가 그런가?”

“그렇습니다, 각하.”

“믿을 수가 없군.”

그는 그 농담 같은 보고에서 현실감을 느끼고 표정을 굳혔다. 그 보고가 사실이라면 적은 상상을 초월한 근접전 역량을 가진 괴물 같은 보병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놈들을 상대로 숲에서 교전을 벌인다?

이건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생각을 굳혔다.

판단은 잘못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를 포위한다면 심리적으로 그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었다. 어느 군대든 포위상태에서는 심리적 위압감을 맛보게 마련이었다.

알렉세이는 애써 불안한 생각을 떨쳐낸 다음, 모자를 집어 들고 막사를 나섰다. 막사 밖에는 이미 흰 코트를 입은 채 지휘봉을 들고 있는 장군들이 있었다.

그들도 ‘적의 접근’을 보고받았는지 상당히 흥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보고는 받았습니다. 알렉세이 경, 적이 호수로 접어들었다고 했지요?”

알렉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고 말했다.

“그럼 이제 다 이긴 것 아닙니까? 덫에 고기가 들어왔으니 볼 것도 없지요.”

“승전을 축하합니다, 알렉세이 경.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싸우면 쉽게 이길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기껏해야 야만인들입니다.”

장군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결전’을 요구한 자신들의 공을 떠벌렸다. 개중에 압권은 블라디미르 소장이었다.

“승전이 확실한 데 뭘 기다립니까? 당장 대공 전하께 승리 보고 서신을 보내야지요.”

“아, 그렇지요. 대공 전하께 보고부터 해야.”

그들은 호들갑을 떨며 승리가 입에 다 들어온 것처럼 굴었다.

알렉세이는 그런 장군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루시 제국의 병폐라고 하면 무능한 주제에 출신 신분이 높다고 요직을 차지한 귀족들이었다. 그들이 자리를 차지한 덕에 유능하고 실력 있는 인재들은 고위직에 오를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주변 에우로페 열강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오는 일이었다.

전통적으로 귀족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들에게 중요한 자리를 모두 할애하던 프리지아와 오스티아조차 로망스의 ‘실력 위주의 계급제’에 충격을 받고 개혁을 하는 마당에 루시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보고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지요. 장군들은 전투를 지켜보시고 서신을 쓰던지 하시지요.”

“그럴까요. 상세한 전투 묘사를 해서 올려드리면 대공 전하께서도 기뻐하실 테니.”

“그게 좋겠습니다.”

그들은 껄껄 웃으며 미리 준비된 테이블로 향했다. 양군의 전투를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미리 준비된 테이블에는 포도주와 유리 잔, 그리고 간단히 맛볼 수 있는 다과가 놓여 있었다.

다소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이긴 했지만 병사들에게는 ‘지휘부’가 이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승리를 확신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장군들의 요구대로 다과를 차려주었다.

알렉세이는 장성들이 테이블에 앉아 다과를 나누는 동안 망원경을 들고 다가오는 적을 살폈다.

적은 반듯하게 대열을 갖춘 채 숲의 그늘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열은 모두 다섯 개였는데, 여단급 규모의 편제에 어울리는 괜찮은 대형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확실히 제압한 숲을 등지고 진을 갖추긴 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는 듯 예비대 격의 대열 하나는 숲속에 남겨두었다.

움직임도 인상적이었지만 운용도 모범적이었다. 적 지휘관의 역량은 가벼이 볼 수 없었다. 애초에 숲에서 연대 하나를 한 시간 만에 박살내버린 것만 봐도 평범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알렉세이는 적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지난 며칠 간 숲의 한쪽에 공사를 해서 만든 길로 겨우 가지고 들어온 대포가 그에게 있었다.

시간이 촉박해 보유한 대포는 겨우 2문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비’를 걸기에는 충분했다.

말들이 끄는 포가 제 위치에 정렬하자 알렉세이는 지휘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병의 규모가 매우 작아 그는 ‘포대’를 직접 통제하고 있었다.

“발사!”

장교의 명령과 동시에 포탄이 발사되었다. 포탄은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허공을 날았다.

그 포탄은 잠시 비행을 이어간 다음 지면을 튕기려다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알렉세이는 그것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곳은 메마르긴 했지만 ‘호수’였다. 아직 흙에는 수분이 잔뜩 남아 있었다. 그 진흙에 아이언 볼을 쏘면 별 효과를 낼 수 없었다.

산탄이라면 사정이 좀 낫긴 하지만 ‘가난한’ 루시 군대의 사정상 극동에 비축한 포도 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얼마 안 되는 포탄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아껴야 했기에 인사로 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알렉세이는 착탄 지점을 확인하고 한 발 더 쏘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아이언 볼 한 발이 다시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 포탄은 정확히 적 보병 근처에 떨어졌다. 하지만 적은 그 포탄에 전혀 겁을 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세계 최강 붉은 코트가 자랑하는 무자비한 포탄 세례에도 겁을 먹지 않고 쿠크리 한 자루로 달려들던 사내들이니 포탄 한 발에 겁을 먹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용병들이 포탄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알렉세이는 포격으로 적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뭐 움직이지 않아도 나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호수에 들어온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알렉세이는 전령을 시켜 숲 안쪽에 남은 3개 연대(이제 전력은 사실상 2개 연대 남짓)의 지휘관들에게 숲을 각각 시계와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 포위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이들이 포진을 마칠 때까지 적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 아니, 그렇게 해주면 이익이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상승군이 움직였다. 검은 군복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황룡의 깃발을 높게 들었다. 이어 병사 하나가 뒤따라 나와 연대기를 들었다.

기수들이 병사들 앞을 천천히 걷자 검은 군복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졌다.

“돈이 우리를 먹이는 한, 패하지 않는다!”

다소 이상한 구호였지만 용병들에게는 나름 절박한 구호였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기에 고용주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다. 그로써 신의를 증명하고, 그 아들의, 그리고 손자의 일자리를 보장받는다.

그것이 용병들이 오승도와 계약을 하며 구축한 ‘맹약’이고, 그들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의 한 요소이기도 했다. 패한다면 그만큼 아들과 손자의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

그들 가족의 생계가 달린 만큼 용병들은 그 구호에 자신들의 투지를 담았다.

자신들의 일족들조차 인정해주지 않는 그들을 써주고 밥벌이를 할 수 있게 해준 자에 대한, 그리고 자신들을 위한 외침이 대지를 울렸다.

함성이 끝난 다음 용병들은 쿠크리를 늘어트린 후, 냉정하게 식은 눈으로 적진을 응시했다.

그들의 전투 준비가 끝나자 하늘을 날고 있던 열기구에서 노란색 천 하나가 내걸렸다.

다음 순간 용병들은 소리 없는 구호를 쿠크리를 들어 외치고 적진을 향해 내달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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