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20화 (320/425)

제320화. 반격의 조짐 (2)

승도는 로망스 황제 시절, 적이 내륙 깊숙이 후퇴하기 전에 그 뒤를 따라잡아 적이 얻으려 한 공간의 이점을 상쇄하고 적이 강해지기 전에 승부를 보려 했다. 그 계획은 대 육군이 내륙 깊숙이 진출하면서 너무 쇠약해진 탓에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십 년 만에 승도는 과거의 자신이 실패했던 카운터 전략을 꺼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갈고 다듬은 이 비장의 한 수로 과거 전략의 천재로서 맛본 굴욕을 돌려주는 것. 그리하여 멋진 승리로써 이 전역을 마무리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이는 단순한 전쟁의 승리를 넘어 전략가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이기도 했다.

처음 계획에서 다소 손해를 본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그의 역량이라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승도는 병사들을 독려하여 하루 평균 백 리를 주파하며 부하라를 향해 나아갔다. 루시는 그런 그들의 진격을 늦추기 위한 수단으로 유목민들을 동원했다.

승도에게 밀려 초원으로 밀려난 이 유목민들은 철저한 신의 적대자들이었다. 그들은 수시로 상승군의 측면으로 얼쩡거리며 그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하지만 승도는 그들에게 대응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행군 속도를 유지하게 했다. 적이 진정으로 덤벼온다면 기관포로 호된 맛을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그의 무시로 말미암아 유목민들은 재미를 보기 어려웠다. 일부는 그런 상승군의 태도에 ‘겁’을 먹었다고 오판을 했는지 후방에서 야습을 가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잘 훈련된 상승군의 반격에 쓴맛을 보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승도의 군대는 유목민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진격 속도를 유지하여 호반 전투 이후 한 주일 만에 시비르 통치의 중심인 부하라에 입성했다.

부하라는 철수 계획에 따라 모든 물자와 사람이 철수하고 대부분의 가옥이 불태워지는 ‘초토 작전’이 실시되어 사실상 폐허나 다름없었다.

“각하, 도시가 불바다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온통 화염과 검은 연기로 덮여 있었다. 자욱하게 연기로 덮인 도시는 흡사 지옥의 한 풍경을 보는 듯했다.

지난날 승도의 손에 철저히 파괴된 오로목제처럼.

그는 장교들이 주둔지가 모두 불탈 것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태연했다.

지난날 조국 전쟁에서 루시가 보인 무자비한 초토화 전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터라, 크게 놀랄 이유가 없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도시가 전소된다고 해도 폐허를 수선하면 병사들에게 안전한 쉼터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전염병 예방 차원에선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승도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장교들도 그럴듯하단 생각을 했다. 도시가 불타면서 쥐와 벼룩, 이 등이 몰살당한 탓에 이들이 옮길 수 있는 각종 질병도 자연히 원천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이점이 있다곤 해도 도시는 온전하게 손에 들어오는 편이 더 나았다.

승도는 불타는 도시를 느긋하게 돌아본 다음 회반죽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시청사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일부 건물은 불을 끄게 하여 병사들의 주둔지로 쓰게 했다.

시청 안은 나름 깔끔하고 정갈했다. 승도는 홀을 군의 회의실로 쓰기로 하고 이층의 시장 집무실을 자신의 몫으로 차지했다.

그는 자신이 차지한 집무실을 느긋하게 둘러보다 루시의 유명한 전략가 ‘수보로프’가 남긴 저서 ‘산에서 산으로’를 보고 그것을 뽑아들었다.

의자에 몸을 묻은 다음 적장의 저서를 읽다 보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들었다. 그가 몇 페이지를 넘기며 감상에 잠겨 있는데 장교 하나가 들어와 보고했다.

“각하, 전방에서 적 부대가 발견되었습니다.”

“불을 지르고 도시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정확히 어디에서 적이 발견된 겁니까?”

“도시에서 백 리 떨어진 잡목 숲 지역입니다. 벼랑을 끼고 있는 지역인데 많은 수는 아니고 소수의 병력을 발견했습니다.”

“이쪽으로 와서 표시해 보세요.”

승도는 집무실 한쪽에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장교는 그 지도의 한 지점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여기 정도입니다.”

“썩 멀지도 않은 곳이군요. 여기에 진을 치고 있다는 건, 우리가 추가로 공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건데.”

승도는 적이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똬리를 틀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국 전쟁 당시에도 적은 자신들이 잃어버린 수도에서 오십 마일 떨어진 곳에 진을 친 채 로망스 육군의 세력이 약해지기를 기다렸다. 혹한의 추위가 닥치고 보급품이 떨어져 그 군대의 사기가 꺾이는 순간을.

그리고 그들은 맹수처럼 결정적인 기회에 습격해왔다.

이번에도 적은 그럴 의도가 여실히 보였다. 아마 이번에는 이쪽이 약해지길 기다리기보다 자신들이 강해지길 기다렸다 공격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물론 승도는 그 생각대로 해줄 생각이 없었다.

“적이 준비를 갖추기 전에 밀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적 행정기관이 후퇴한 모이셰바까지 가는 것도 고려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하지만.”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모이셰바까지 진출하여 적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최상의 한 수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상승군이 처한 전략적 입장이었다. 이곳 부하라까지 달려오면서 이미 병참선은 심각하게 늘어 있었고, 수시로 일부 부대를 후방으로 보내 전방으로 오는 보급 부대를 지원해야 했다.

이런 판에 더욱 전진한다면 이는 자멸로 가는 수순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다면 이곳 부하라에 충분한 물자를 비축하여 전방 보급 기지로 만든 후, 공세를 구상하는 편이 타당했다.

“그 방법이 지금은 무리입니다. 최소한의 작전을 뒷받침할 물자가 준비되어야 전투 재개는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모이셰바로 지금 진출해도 득이 될 것은 없습니다.”

“적 행정망을 흔드는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전술적으로 본다면 적을 다급하게 하는 효과 정도는 기대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모이셰바를 손에 넣은 다음이 문제가 됩니다. 적이 ‘약점’을 잃게 되면 그 후에 우리가 찌를 곳이 없어집니다.”

요컨대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약점을 찔러 적을 휘두르는 것이 중요하지, 약점을 찌르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모이셰바를 점령한다고 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적이 그곳을 잃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심리를 이용해 적 병력이 어느 정도 지원이 시작될 때 찔러야 피해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적어도 승도는 그렇게 계산했다.

“각하는 역시 몇 수를 내다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전쟁도 하다 보면 늘게 마련이니까요.”

승도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농으로 장교의 말을 받아주며 그만 나가 일을 보라고 했다.

장교가 나간 다음 승도는 지도를 들여다보며 적의 병력 지원 시점을 대강 가늠해 보았다.

루시 제국의 내부는 ‘낙후’되고 베일에 가려져 있어 그 정보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지도상의 거리와 황량한 교통 사정(승도는 루시의 서부 지방을 침공한 전력이 있음)을 고려할 때 최소 4주는 있어야 지원이 시작되리라고 예측은 가능했다.

4주. 상승군이 전진 기지인 부하라에 상당 기간의 작전을 위한 물자를 비축하기엔 꽤나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일정을 맞추어야 아까 장교가 말한 모이셰바를 덫으로 쓰는 공격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 있는 적은 행동과 시간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고, 수보로프의 전략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었다. 그 약점을 적절히 찌른다면 이번 겨울 전역의 승자는 자신이 될 터였다.

물론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오판이라도 하고 만다면 상황은 반대가 될 것이다. 실로 긴장된 도박이었다. 과거 에우로페의 패권을 놓고 신성 동맹의 마지막 대륙 가맹국 루시와 ‘결정적인 승부’를 벌였던 당시처럼 이번에도 판돈은 컸다.

그가 지배하는 나라, 신을 건 승부이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질 수 없다. 이번엔 네놈들이 질 차례다.’

승도는 주먹을 가볍게 쥐어 보인 다음 지도에 보이는 모이셰바를 향해 단검을 뽑아 던졌다.

***

적우는 상승군 기마 보병대대에서 잔뼈가 굵은 병사였다. 그는 천국 정벌 이후 기마로 보직이 변경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마상 전투’를 훈련받은 적이 없었다. 동료들도 다를 바 없긴 했다.

하지만 별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적을 상대할 때는 언제나 말에서 내려 전투를 했고, 마상에서의 전투가 요구된 적은 만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왔다.

그러나 대막으로 들어온 다음부터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적이 모두 기동력을 갖춘 자들이다 보니 마상에서 추격하며 총을 쏘아야 하는 일이 점점 늘었다. 마상 사격을 배우지 않은 기마 보병들로서는 곤욕스런 일이었다.

일부 병사는 수치스럽게도 마상에서 총을 쏘다 낙마하여 크게 다치기도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기마 보병대대장은 유목민들의 협조를 얻어 마상 사격 훈련 과정을 만들기도 했다.

적우는 이 훈련에 적극 참가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자신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동료들 역시 이 부분에서 진지한 빛을 보였다.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느슨함을 보이던 자들도 이 훈련을 받을 때만큼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훈련은 부하라를 향해 진격하는 도상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적우와 그의 동료들은 ‘자연스럽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꼴사나운 정도는 면한 ‘사격술’을 갖게 되었다.

총을 쏠 때 말에서 떨어지는 위험을 면한 수준이라 정확도는 여전히 형편없었다.

적우는 그 생각을 하다 고개를 흔들고는 앞서 움직이는 동료 기병들을 보았다. 며칠 전에 출발한 보급 부대를 마중하기 위해 부하라에서 쉬지도 않고 움직이다 보니 모두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일정을 맞추자면 다른 수가 없었다. 그들은 상승군에 거의 없는 기마 세력인 관계로 정찰부터 잔적 소탕, 견제, 후방 호송 등 광범위한 임무를 수행해야 해서 쉴 시간 자체가 별로 없었다.

이번 작전도 시간에 딱 맞게 출발을 명령받아 어물거리다간 임무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노릇이지. 쉴 틈이나 주고 시켜먹어야지.’

적우는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상승군을 못해 먹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상승군은 대륙에서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이었다. 제국을 지배하는 오승도의 무력 기반이다 보니 정권의 수혜란 수혜는 모두 얻고 있었다. 제법 넉넉한 녹봉과 괜찮은 사회적 대우. 하나같이 농촌의 촌뜨기로 구를 적에는 꿈도 꿀 수 없는 분에 찬 것들이었다.

몸이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차버릴 정도로 만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상승군에 있으면 ‘위대한 제국의 영도자’이자 빛나는 별인 오승도와 가까이에 머물며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는 묘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성취감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과거에는 꿈도 못 꿀 막강한 양적과 싸우고 있는 입장이니까.

적우가 상승군에 대한 생각을 하며 불만을 삭이는데 앞서가던 중대장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기마 보병들이 재빨리 말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신호만을 기다렸다.

기마 보병은 기본적으로 말을 기동수단으로 쓰고, 전투는 일반 보병처럼 치르는 병과인 까닭에 그들이 최상의 실력을 내려면 하마 상태에서 싸워야 했다.

병사들이 엉거주춤하며 하마를 하려는 상태에서 대기하자 중대장은 망원경을 들고 지평선 쪽을 살폈다.

잠시 후, 초원 저쪽에서 한 무리의 마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따라 수십 기의 무리가 뒤를 따르며 총격을 가했다. 총격이 오가는 소리만 들어도 뭔가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중대장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수상한 움직임’이 자신들을 향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전원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중대장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전마의 배를 걷어찼다. 병사들도 급히 말의 배를 걷어차며 속도를 높였다. 기마 보병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가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기본 속도라 하여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말을 몰았지만, 위급 시에는 전마를 재촉해 최고 속도의 6할 이상의 속도를 내게 했다. 이렇게만 해도 말의 에너지 소모는 몹시 커서 30리만 뛰어도 전마의 몸무게가 몇 근씩 빠지곤 했다.

적우는 애마를 재촉하며 달려가는 동료들의 뒤를 따랐다. 곧 도망치는 무리들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달아나는 자들은 전형적인 유목민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표식’으로 쓰는 것인지 신의 황룡기를 들고 있었다.

중대장은 그것을 보고 그들이 아군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속고 속이는 초원에서 그런 위장 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총격을 주고받으며 몇 명이 죽어 나가는 연출은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중대장이 그들을 향해 뭐라고 외치자 유목민들 쪽에서 손을 흔들었다. 도와달라는 의사 표현인 듯싶었다.

중대장은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다음 기마 보병들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백 기가 넘는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자 추격해오던 유목민들이 잠시 당황한 빛을 보였다. 새로운 적의 출현에 꽤나 당황한 듯했다. 잠시 망설이는 빛을 보이던 그들은 그대로 말 머리를 돌리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보급선을 다지고 후방의 치안을 확보해야 하는 기마 보병으로서는 그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놈들을 쫓는다!”

중대장이 외치기도 전에 적우와 동료들은 벌써 가속하여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추격이 이어지는 동안 적우는 몇 차례 적을 시야에 넣었다. 그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총탄을 장전한 다음 적을 겨누었지만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그것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명중률을 기대하기에는 그들의 실력도 모자랐고 거리도 너무 멀었다.

기마 보병들은 연거푸 총을 쏘며 달아나는 유목민들을 추격했다. 계속해서 달아나던 유목민들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날카로운 피리 비슷한 것을 불며 방향을 급격하게 틀었다.

적우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면서 그들의 뒤를 밟았다. 잠시 후, 유목민들은 수백 마리의 가축과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마 저들이 공격했던 보급 부대의 마차인 듯싶었다.

주위는 온통 시체가 널려 있었는데, 그 주변에는 수백의 유목민들이 있었다. 보급을 맡은 유목민들을 몰살시키기에 충분한, 엄청난 규모의 상대였다.

그들은 상승군의 검은 군복을 보더니 흥분한 듯 소리를 질렀다. 적우는 상대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해했다. 그들의 고향을 불태우고 닥치는 대로 죽인 끝에 이 이역만리 타지로 쫓았으니 분노를 표시할 만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감정의 문제로 끝날 사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인간사의 도덕이 끼어들기엔 너무도 비정한 세계, 전장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지옥이었다.

“반적들이 다가온다. 모두 하마하라!”

중대장은 적 기마가 분노를 표하며 달려오자 병사들에게 하마를 명령했다.

그의 명령에 병사들이 신속하게 말에서 내렸다. 상승군은 기본적으로 보병으로서의 훈련이 가장 충실한 편이었다. 전열 전투를 가정하여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전통이 있다 보니 어지간해서 그들이 겁을 먹는 일은 없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적이 둘러싸더라도, 혹 죽음이 눈에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프리지아 식의 가혹한 훈련을 받았기에 지휘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 한 철벽과 같은 굳건함을 자랑했다.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고 서자 유목민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거리 400. 사격 준비!”

장교는 침착하게 명령했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적이라고 해도 두려울 것은 없었다.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장교는 순차적인 명령을 내리며 병사들에게 상황이 통제되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마침내 적이 100미터 거리에 접어들자 중대장이 외쳤다.

“사격!”

명령과 동시에 보병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적우도 자신의 앞을 달려오던 적병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기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연거푸 낙마했다. 압도적인 후장식 소총의 살상력을 감당하기에 적은 너무 약했다. 유목민들은 전장식 소총의 연사 속도를 생각하고 덤볐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사격을 퍼부은 후 병사들은 총검을 끼운 채 방진을 치고 기병의 접근을 막으며 재차 공격을 가했다. 그들의 유기적이고 유연한 대응에 유목민들은 제대로 손도 쓰지 못했다.

과거의 결함이 있고 느슨했던 중원의 군대였다면 유목민이 접근한 순간에 스스로 허점을 보이며 달아나던지, 아니면 사격 후 총검을 갈아 끼우고 방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약점을 노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승군은 이미 완성된 군대였다. 짧게는 삼 년 이상을 단련한 직업 군대이니 ‘필요할 때’만 싸우는 유목민과 비교하는 자체가 미안한 수준이었다.

유목민들은 무익한 공격을 몇 차례 반복한 끝에 엄청난 수의 시체만 남기고 후퇴했다.

기마 보병은 적을 쫓기에는 말이 너무 지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유목민들이 멀리 달아난 것을 확인하고 적이 방기한 물자와 마차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을 세운 것은 좋았지만 부하라까지의 운송은 아무래도 그들의 몫이 될 듯싶었다.

상승군은 이후로도 보급 과정에서 이런 싸움을 몇 차례 반복하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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