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21화 (321/425)

제321화. 반격의 조짐 (3)

승도가 운명적인 일전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동안, 연합왕국도 양국의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세계 최강의 열강치고는 정보 입수가 늦은 편이었지만 지구 반대편 변방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모처럼 수상 관저에 모인 내각의 각료들은 다소 신중한 얼굴로 이 사건을 대했다.

“신이 루시를 선제공격했다고 하는데 이 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이렇게 되면 명분상 우리가 끼어들기가 상당히 곤란해지는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일이 잘못되면 루시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되지 않습니까.”

다소 호전적인 해군성 장관은 이번 참에 연합왕국이 한 발 걸치고 들어가 루시의 콧대를 꺾기를 바랐다. 물론 실제로 전쟁에 들어가기에는 왕국이 처한 국제적 정세가 썩 좋지 않았지만 위협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해군 장관이 ‘왕국의 개입’ 비슷한 말을 꺼내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상이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손가락으로 집어내며 말문을 열었다.

“명분상 낄 필요는 없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다했습니다. 신에게 무기도 주었고, 식민 제국의 회사령 군대도 전진 배치시켰습니다. 줄 수 있는 도움은 다 제공한 셈입니다. 이렇게 판을 깔아 주었으니 신의 ‘새로운 정권’이 쉽게 패할 리는 없을 겁니다.”

“각하께서는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전쟁성 장관은 다소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신과 루시가 전쟁을 벌이면 그만큼 연합왕국에게 위험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가능하다면 막아야 할 일이었다.

그걸 알고도 강행했다면 수상은 간담이 큰 자이든지 아니면 머리가 비었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머리가 빈 머저리는 아니다. 그랬다면 이 최강국의 수반 자리를 지킬 수 없을 테니까.

장관이 다소 질책하는 뉘앙스를 던졌지만 수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하던 일입니다.”

“어떻게 그 같은 일을 내각에서 아무도 알지 못했단 말입니까?”

“전적으로 동방 무역 회사가 진행한 일이니 내각에서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각하, 이 사안은 일개 회사가 함부로 밀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곰들이 대양으로 나갈 수도 있는 일이란 말입니다.”

해군성 장관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수상은 시가를 쥔 손을 저었다.

“그럴 일은 결코 없습니다. 내가 장담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육군대국과 동방 국가가 싸우는 일입니다. 이 일에서 어떻게 곰들이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하십니까?”

장관은 신이 이기는 것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물론 참석자들 모두가 그럴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았다. 신이 ‘비길’ 가능성조차 낮게 점쳐지는 판에 이길 가능성은 가당치도 않았다.

“그건 신의 신임 권력자 오승도. 그 한 명의 사내 때문입니다. 그는 적당한 수준의 군사력만 뒷받침이 되면 그 역량을 십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나는 그의 가능성에 걸기로 했을 뿐입니다. 거기다 이번 도박은 우리만 나선 것이 아닙니다. 로망스 역시 신에 막대한 무기를 제공했습니다. 루시가 간단히 이길 만큼 신은 만만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쟁성 장관은 다소 흥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가능성만 가지고 결정을 내리시는 것은 무모합니다. 이건 어린애 장난이 아닙니다.”

수상은 빙그레 미소를 보였다.

“가끔은 어린애 장난 같은 도박이 필요한 법입니다. 지금 우리 입장이 어떻습니까?”

수상의 반문에 장관들은 입을 다물었다. 연합왕국은 과거 반혁명 전쟁 이래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대륙에서는 전통의 라이벌 로망스가 신흥강국 프리지아와 연대하여 새로운 축을 형성하고 있었고, 루시는 해군력을 증강하여 연합왕국의 위협에 대항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뿐이 아니다.

신대륙에서는 급격히 진행된 산업 성장으로 말미암아 본토의 경제를 도리어 잠식할 정도의 기업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본국의 경제력은 식민지의 위협을 받아 그 군비 증강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었다.

여기다 오스티아를 비롯한 전통적인 동맹국들이 왕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쇠잔하는 것을 보고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연합왕국의 입지는 나날이 좁아지는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을 바꾸자면 역시 극악처방이 필요했다. 기존의 판을 완전히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승부사인 수상은 바로 그 점을 역설했다. 만에 하나 신이 루시를 상대로 무승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잠재적인 적대자’는 그 위신과 영향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당분간 이빨이 뽑힌 채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무기’를 신에 원조해주며 루시를 길들이려 한 로망스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적절한 수준에서 루시에게 쓴맛을 보여준 다음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 했을 로망스에게 루시의 패배는 그들 외교 전략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리지아 역시 그런 꼴을 보면 다른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로망스 중심의 새로운 축이 무너지고 루시가 흔들린다면 새로운 줄을 잡고 ‘중부 에우로페’에서 세를 키울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이 재편의 소용돌이는 대륙에서 한 걸음 떨어진 연합왕국의 입지를 다시금 강화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폭풍에서 벗어난 이 강대국의 지지를 얻는 나라만이 새로운 판을 짜고 이익을 얻을 기회를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우로페의 질서를 그렇게 재편한다면 연합왕국은 다시 동방에 눈을 돌릴 여유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 전통적인 동방의 거대한 시장에 보다 많은 상품을 넣을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되면 식민지의 본국 경제 잠식을 당분간 늦출 수 있다.

나름대로 십 년, 아니 이십 년은 연합왕국의 패권을 지켜나갈 수 있는 승부수인 셈이다.

장관들은 수상의 설명을 듣고 평정을 찾았다. 역시 이 노회한 정치가는 엄청난 그림을 가지고 도박을 시작하고 있었다.

수상은 내각 회의를 마치고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장관들을 태운 마차가 관저 앞을 출발한 것을 본 그는 커튼을 슬쩍 밀었다.

방에 어둠이 드리워지자 방 한쪽에서 인기척도 없이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중절모에 양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창 쪽을 흘깃 바라보더니 수상에게 말했다.

“장관들이 이야기를 알아들었습니까?”

“아까 상의한 대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나도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로스실트 경.”

“무엇이 말씀입니까?”

로스실트 의원은 수상의 소파에 자연스레 앉아 궐련 한 개비를 물었다.

그가 찰칵 소리를 내며 불을 붙이는 사이, 수상은 창가에서 돌아서며 대답했다.

“이번에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우리가 손을 쓰는 편이 낫지 않았습니까?”

수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정치에서는 최상의 결과를 위해 가끔 도박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정한 선이란 것이 있었다. 최상을 얻고자 최악의 위험을 감수하는 지도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장관들에게 그럴싸하게 둘러대긴 했지만 이 도박은 너무 위험한 것이었다.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전쟁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집니다.”

로스실트는 궐련의 깊은 향을 빨아들이며 대꾸했다.

수상은 자신의 앞에서 넉살 좋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의원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로스실트는 표면상에 드러난 것보다 막강한 권력자였다. 막대한 부와 언론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권에 지분을 행사하는 실력자. 은막의 수상이라 불리는 자가 바로 그였다.

그는 대중 앞에 나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꺼려하며 언제나 ‘킹메이커’로 남았다. 그렇기에 권력의 핵심에 머물면서도 세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세계 최강국의 숨겨진 실력자.

로스실트는 그런 사내였다. 그런 자가 다시 움직임을 보였다. 웬만한 일에 흥미조차 보이지 않던 거물이.

수상은 그 움직임이 신경 쓰였지만 로스실트 남작의 일에 너무 신경을 써서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의 심연을 넘겨짚은 자들은 언제나 그 말로가 좋지 않았다.

수상은 정치계에 통용되는 속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도사린 로스실트의 그림자를 밟고 싶다면 먼저 고양이의 목숨을 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홉 개의 목숨을 갖지 않고는 네 목이 먼저 달아나고 말 테니까.’

수상은 궐련을 느긋하게 맛보는 의원을 보다 뒷짐을 진 채 자신의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엄숙한 성역. 황실 일가가 거주하는 겨울 궁전의 뜰이 사람들의 소리로 뒤덮였다. 해마다 한차례 근위병들의 충성 맹세(고대 루미 제국의 전통을 본받아 루시에서는 황제가 충성 맹세를 받음)를 받는 날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황제에게 청원을 올리고자 귀족 의원들이 상경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아니었다.

웬만한 도시의 광장에 버금갈 정도로 넓은 뜰을 가득 메운 것은 윤기 나는 흰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근위 보병연대가 아니라 페테르부르크 관구와 이웃 관구들에서 온 보병연대의 병사들이었다.

장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정렬한 채 심호흡을 했다. 곧 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 위로 황실 일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혈색 좋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한눈에 그 신분을 알 수 있는 자였다. 제국 황제였다.

황제의 옆에는 키가 작은 소년이 서 있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병약한 인상의 남자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쥔 채 애써 똑바로 서려 했다. 창백한 얼굴만 보아도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황태자의 뒤에는 황제가 특별히 데리고 나온 아름다운 금발의 소녀가 있었다. 막내 황녀이자 황태자의 누이동생인 마리아 대공 비였다. 그녀는 자신의 오라버니보다 키도 조금 더 크고 얼굴빛도 화사하여 병사들의 눈에 훨씬 잘 들어왔다.

세 황족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 다음 손을 들었다. 그들이 인사를 보내자 장교들이 한쪽 손을 가슴에 붙이며 허리를 숙였고, 병사들은 만세 소리로 답했다.

각양각색의 연대기를 든 기수들만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제는 그런 자신의 군대를 여유로운 눈으로 훑어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제국은 과거 서방으로부터 네 차례의 침공을 받았다. 그때마다 우리는 위기에 굴하지 않고 침략자에 저항할 용기를 낸 지도자와 병사들의 용기에 힘입어 그들을 격퇴하고 쓰디쓴 맛을 보여주었다. 그 위대한 역사에서 우리에게 선공을 가하고도 살아남은 침략자는 하나도 없었다. 에우로페를 제패한 로망스 제정조차 결국 우리의 대지에서 처참한 몰락의 길을 밟아야 했다. 우리는 그런 긍지 높은 전통을 가지고 주변 국가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그 어떤 상대라도 우리와 싸운 순간 반드시 몰락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호령하는 연합왕국이 우리가 바다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리는 그만큼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의 제국이다. 그런 우리에게 동방의 미개한 한 나라가 도전해왔다. 과거 연합왕국의 붉은 코트 수천에 짓밟히고 자국의 영토를 아편에 내준 멍청한 미개인들의 나라다. 그 어떤 강대국도 감히 넘볼 생각을 하지 않는 이 나라를 상대로 그런 미개인들이 덤빈 것이다. 짐은 이 상황에 심각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우리 제국이 지난 역사에서 쌓아온 명예가, 여러분의 군대가 만들어온 빛나는 전통이 지금 이 순간 위협을 받고 있어서다. 짐은 이 상황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로서, 이 땅의 군주로서 이를 묵시한다면 제국은 지금까지의 영광을 스스로 무너트리게 되어서다. 그렇기에 짐은 나의 사랑하는 군대에 명하고 싶다. 지금의 도전을 분쇄하고 과거의 명예를, 전통을, 제국의 이름을 지키라고 말이다. 짐의 자랑스러운 병사들아, 독수리의 깃발을 들고 에우로페를 호령할 자격이 있는 동토의 아들들아. 짐의 명을 받들어 건방진 야만인들을 토벌할 수 있겠는가?”

황제의 긴 연설에 병사들이 손을 들며 구호를 외쳤다.

“폐하의 뜻은 곧 신성하고 존엄하신 신의 말씀이며, 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이고 빛입니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지옥의 끝까지 달려가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나의 황제 폐하!”

“우리 군대는 폐하의 명을 죽음으로써 지킬 것입니다!”

병사들의 구호에 황제는 손을 들어 화답했다. 황제가 여기저기 손을 흔드는 동안 황태자는 손을 들 기력도 없는지 아버지의 한쪽 팔을 잡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대신 황녀가 앞으로 나서서 병사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병사들은 황녀의 인사에 조금 더 큰 소리로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다.

병사들의 구호에 만족한 황제는 손을 내린 다음 병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짐은 그 대답에 만족한다. 그대들이라면 반드시 임무를 해낼 것이라 믿는다. 출병하라!”

황제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발코니 아래에 정렬해 있던 황실 군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경쾌한 북소리와 함께 연대기 하나를 든 기수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황제를 향해 한 손을 가슴에 붙여 보인 다음 씩씩한 발걸음으로 발코니 앞을 지났다.

그가 발코니를 등지고 뜰의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움직이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의 대열에서 한 무리가 그 뒤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연대 하나가 밖으로 퇴장하자 다음 번 기수가 앞으로 나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겨울 궁전 앞에 집결한 열 개의 연대는 차례로 황제에게 임무의 수행을 서약하고 퇴장했다. 황제는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만족했다.

그가 응접실로 돌아왔을 때 그 자리는 여러 명의 고관들이 지키고 있었다. 모두 전쟁 계획 위원회의 위원들이었다.

고위 장성의 계급장을 가진 장군들은 황제가 응접실에 들어오자 급히 허리를 숙였다. 황제는 그들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하곤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여러 위원들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폐하, 미카엘 대공의 요청에 따라 열 개 연대를 출병시키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한 전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세르게이 원수가 열 개 연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서 일단 동의하긴 했지만 다수의 연대를 보내는 일에는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연대 차출에 대해 조금은 회의적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차출된 연대들의 태반이 페테르부르크와 그 주변에서 동원된 정예 보병연대들이었기 때문이다.

기왕 보낼 거라면 최상의 전력으로 보내야 한다는 원수의 말대로 한 것이었지만 위원들은 그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이 페테르부르크 일대의 정예 연대들은 폐하의 가장 충성스런 지지 기반입니다. 만에 하나 반란이라도 일어났을 때 정권을 지킬 수 있는 보루가 이들인데 이 병력을 동원하다니요. 재고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황제도 그들의 우려를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도박에 걸린 판돈이 너무 컸다. 신에 패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루시가 잃을 것이 너무 많았다.

제국의 위상은 물론이고 그들이 가져온 ‘강력한 이미지’까지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국제 외교에서 이 같은 부분들은 영토 이상의 가치를 가진 소중한 자산이었다.

황제는 이 부분을 내줄 생각이 결코 없었다.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말이다.

“짐은 이번 전쟁을 확실히 하고 싶었을 뿐이요. 경들의 우려를 모르진 않지만 만에 하나란 것이 있지 않소?”

전쟁에서 절대의 가능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그 어느 때든 중요한 일이었다.

“하오나 폐하, 페테르부르크 관구의 병력을 차출한다면 연합왕국의 위협이 있을 때 이곳이 직격당할 위험이 커집니다.”

실제 왕국이 공격을 하지 않더라도 공격을 당할 위험성이 커진다면 ‘정치적’으로 제국이 져야 할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연합왕국은 그러한 위협으로 얼마든지 루시로부터 이익을 취할 능력이 있었다.

“짐도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요. 하지만 우리에겐 새로 건설한 해군력이 있소.”

황제는 해군을 언급했다.

루시는 새롭게 여러 척의 장갑함을 건조해 페테르부르크로 통하는 수로를 방어할 준비를 갖추었다.

유사시 연합왕국 해군이 공격해 오더라도 쉽게 당하지 않을 전력은 되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 만전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위원들은 변방의 전쟁 하나를 위해 페테르부르크의 방비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싫어했다.

황제는 그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생각했다.

“그럼 짐이 다른 연대들을 소집해 페테르부르크에 들이겠소.”

황제의 말에 위원들은 흠칫 놀랐다. 전통적으로 페테르부르크에는 지역 출신 부대가 아니면 배치를 하지 않았다. 유사시 정권을 위협할 반란군이 되지 않을까 의심해서다.

가장 충성스런 부대만 믿고 배치한다던 황실의 ‘고정관념’ 때문에 전쟁 계획 위원회는 페테르부르크의 병력을 움직이면 다른 곳에서 보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가 전향적으로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로써 루시는 제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정예 연대들로 10개를 골라 시비르로 보내는 문제를 확정지었다.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서쪽으로부터 불어오려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