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화. 육참골단 (2)
루시는 유인계를 경계하여 모이셰바의 정면 방어에 집중하는 전략을 확정지었다. 그 덕분에 상승군은 모이셰바로 가는 척한 다음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루시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놀라운 기동은 그들의 허를 찌른 것이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확보한 부하라의 보급품과 기지를 포기하고 배후를 노출시킨 채로 루시 증원군의 측면을 치러 간다?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대담한 한 수였다.
“후우.”
한기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계절이 겨울에 가까워오면서 북방에는 벌써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의 기온은 거의 겨울과 다를 것이 없어 병사들은 손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들은 체온을 조금 높인 다음 지급받은 장갑을 꼈다. 보통의 보병 연대라면 장갑과 같은 ‘전투’에 직접 필요하지 않은 장비는 지급되지 않았겠지만 이들은 사정이 다소 달랐다.
루시 제국에서도 정예로 이름난 페테르부르크 관구의 보병 연대였기 때문이다.
황실이 신뢰하고 전쟁 계획 위원회가 ‘최고’라고 인정한 정예들이었기에 일개 보병연대임에도 피복 등의 지원은 최고를 달렸다. 부족한 것이라고 하면 실전 경험 정도라고 할까?
“대열 정지!”
병사들이 손을 문지르는 동안 말을 타고 가던 장교가 큰 소리로 외쳤다. 병사들은 그 명령을 반기며 걸음을 멈추었다. 대열이 정지하자 장교는 망원경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초원과 앙상한 나무들, 그리고 바위. 보이는 것에 특이할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 뭔가 반짝이는 것을 목격했기에 그는 신중을 기해 다시 한 번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던 그의 시선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반짝반짝.
멀리서 보인 ‘반짝임’은 장교에게 몹시 익숙한 것이었다. 그것은 햇빛에 반사된 망원경의 렌즈가 낸 반사광이었다.
당연히 그런 물건을 평범한 사람이 들고 다닐 이유는 없었다. 이 황량한 대지에서 그럴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군인인데, 이곳에 아군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각 연대는 순차적으로 모이셰바로 이동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적인가? 하지만 어떻게?’
소령은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적은… 그들의… 허를 찌르고 있었다.
“전투 준비!”
소령은 다급하게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흰 군복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데다 ‘모이셰바’까지 행군만 할 것이라고 일정을 통보받은 병사들로서는 갑작스런 전투 준비 명령이 당혹스러웠다.
병사들이 웅성거리자 대열의 뒤에서 따라오던 연대장이 급히 말을 몰아 다가왔다. 그는 소령에게 다가오자마자 다짜고짜 언성을 높였다.
“대열을 자네 마음대로 정지시키면 어떡하나. 그리고 전투 준비라니? 지금 여기서 훈련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는 걸 모르나?”
연대장의 질책에 소령은 지평선 저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망원경의 반사광이 포착되어서 내린 명령입니다.”
“망원경이라니?”
그제야 연대장도 뭔가 수상한 냄새를 맡았는지 급히 목에 걸고 있던 망원경을 눈에 가져갔다.
“아마 적인 듯싶습니다. 모이셰바까지 가는 도상에 아군이 머문다는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
연대장도 그렇게 생각했다. 망원경의 반사광이 비쳤다면 적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최소한 척후는 근처에 왔다는 말인데.
연대장은 망원경으로 소령이 보고한 방향을 살폈다. 그러다 그 얼굴이 놀람의 빛으로 젖었다.
“적이다.”
연대장이 짧게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소령에게 외쳤다.
“자네 말대로 진짜 적이다.”
소령이 망원경을 다시 들자 지평선 저쪽에 뿌연 먼지와 함께 무수한 무리의 실루엣이 드리워졌다. 적은 분명 ‘최적의 공격 시간’까지 고르고 나타난 것이 틀림없었다.
이쪽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이 반사광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적의 접근조차 제대로 몰랐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연대장이 뒤늦게 전투 준비를 명령하자 병사들은 재빨리 전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전투 방식에 알맞은 열 개의 대형을 갖추고 그 뒤로 대포를 배치했다.
연대 지휘부는 시계를 확보하기 유리한 지점이 자리를 잡고 보병들 중 일부에게 총검을 장비시켰다. 불시에 적의 기병이 덤벼들 것을 우려해서다.
전투 준비가 다급하게 끝마쳐질 무렵, 적이 다가왔다.
검은 군복을 입은 적은 보기만 해도 불길하게 느껴지는 까만 까마귀들을 연상시켰다.
황룡의 깃발을 펄럭이며 나타난 검은 군대는 정확히 이쪽 보병의 전면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동방의 야만인들치고는 매우 기강이 잘 잡힌 정예로운 군대였다. 그들은 대오를 갖춘 채 이쪽을 응시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적의 철모에서 빛이 번뜩였다.
연대장은 마른침을 삼킨 다음 전령에게 후속하는 연대들에 지원을 요청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지휘봉을 뽑아들었다.
“포병 준비되었나?”
“예, 각하.”
“쏴.”
연대장은 짧게 명령했다.
포탄이야 차고 넘칠 만큼 있었다. 이 전쟁을 위해 대량의 포탄을 지고 온 정예 보병연대다. 그들에게 포탄은 연합왕국 정도는 아니라도 부족함 없이 쓸 정도는 되었다.
수십 발의 포탄이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적진 주변에서 포연이 이는 것을 본 연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쪽은 대응할 생각이 없는 건가?”
이쪽이 방어태세를 갖춘 시점에서 대포를 마주 쏘며 전열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따라주어야 했는데, 적은 그러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장교 몇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각하, 측면에서 적이 출현했습니다.”
“뭐?”
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정면의 적을 늦게 발견한 것도 그랬는데, 측면의 적이 접근하는 것도 몰랐다니. 정예로운 황제의 군대로서 수치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정면의 적을 보고 부산을 떠는 사이 상대적으로 측면에 대한 경계가 소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채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우렁찬 함성 소리와 함께 수천의 적이 개미 새끼처럼 이쪽을 향해 쇄도해왔다. 미처 대포를 방열해두지 못한 방향에서 몰려오는 적이었다. 더구나 보병이 대열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측면에서의 공격.
연대장은 허를 철저하게 찔렸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신이시여.”
그가 성호를 그리는 사이 검은 물결이 흰 군복들의 좌익으로부터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들은 거리를 좁히기가 무섭게 무자비한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정석적인 유효 사거리보다 조금 먼 곳이었다. 그 공격에 흰 군복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전열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가해진 공격이었기에 피해는 막심했다.
뒤늦게 흰 군복들이 응사를 하려 하자 검은 군복들은 그대로 납작 엎드렸다.
“사격!”
흰 군복들이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전열조차 엉망인 상태에서도 정예답게 사격은 정확히 가해졌다. 2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총탄이 쏘아졌지만, 그 정도는 봐줄 만했다.
무수한 총탄이 퍼부어졌지만 엎드린 적에게 피해는 제대로 줄 수 없었다. 일부는 적이 쓴 철모에 튕겨 나가기까지 했다.
침착하게 상대의 사격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총탄을 재장전한 검은 군복들이 2차 사격을 퍼부었다.
총성과 함께 흰 군복들이 피를 뿌리며 짚단처럼 쓰러졌다. 연대의 좌익은 몇 번의 사격을 주고받은 끝에 너무나 어이없이 무너졌다.
적에게 피해조차 제대로 주지 못한, 허망한 전투가 아닐 수 없었다.
측면이 적당히 약화되자 검은 군복들이 함성을 지르며 밀려들었다.
그들은 총검을 번뜩이며 어수선한 연대의 옆구리를 물어뜯었다. 병사들이 힘을 내어 총검을 마주 후려쳤지만 상대의 공격은 그리 간단히 물리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정면, 정면에서도 옵니다.”
아군이 난전에 휘말려 포병이 무력해지자 정면의 적도 몰려왔다. 정확히 자로 잰 듯 차례로 수를 두는 적에게 연대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에우로페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했던 제4 페테르부르크 보병연대는 ‘데뷔전’에서 최악의 상대와 만났다.
총검에 맞아 이가 부러지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병사들이 절규했다.
총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내장을 쏟으며 쓰러지는 자들이 보였다. 전투는 일방적, 아니 학살이라고 해야 옳았다.
***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망원경을 쥐고 있던 여단장이 승도에게 보고했다.
검은 관복 자락을 펄럭이던 오만한 영웅은 그 보고에 기쁜 빛조차 보이지 않은 채 손을 들어 전장을 보는 시늉을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정확했다면 피해가 더 적었을 것인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쉽군요.”
“만사가 잘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나머지 적들의 움직임은요?”
승도가 묻자 여단장이 뒤로 손짓을 했다. 그러자 장교 몇이 지도를 가지고 왔다.
“출발 전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적 연대들은 각각 사십 리의 간격을 두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다음 보병 연대는 앞으로 이십여 분 안에 접촉할 예정입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확히 적의 허리를 자르고 들어와서 적 병력 전체를 분단시켰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지점을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그는 이 지점에 여단 둘을 투입해 중앙의 적 보병 연대를 타격하는 동시에, 여단 하나를 예비로 남겨 두었다가 다가오는 적의 보병연대 하나를 치게 했다.
총성을 듣고 적이 증원할 것을 계산해서다.
이 계획대로 된다면 앞과 뒤에서 각각 1개씩의 연대가 구원을 하러 다가오게 되는데, 1개 연대는 1여단의 살인귀들이 뼈와 살을 분리시킬 참이고, 나머지 1개 연대는 중앙 연대를 1시간 안에 처리하고 느긋하게 맞이할 예정이었다.
적의 중앙에 있는 3개 연대를 차례로 격파하면 적을 격파할 최적의 조건이 완성되는 셈이다.
여기서 적의 후속 부대들을 차례로 잡기만 해도 적의 전체 증원 병력을 1/3까지 줄여버릴 수 있었다.
계획대로만 돌아가면 적 병력을 다 잡고 남은 연대들과 일전을 벌여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승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와아아!”
보병들이 뒤엉켜 총검을 찌르고 총을 쏘았다. 난전의 와중에 선 밀러 대위는 검은 군복들의 공격을 독려했다.
흔들리는 적 보병들의 대열 사이로 균열이 보이자 그는 먼저 선두에 서서 병사들의 진격을 이끌었다.
전통적으로 연합왕국 사람들은 상류층이 모범을 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봉건 시대의 유산인 ‘명예의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귀족이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대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귀족도 아니다.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장교들은 언제나 선두에 서서 공격을 이끌 수 있었다.
난전에서 그런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은 병사들의 기를 높여주는 데 더 없이 효과적이었다.
반면, 루시 쪽은 그런 ‘감투 정신’이 부족했다. 루시 장교들은 병사들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는 면이 부족했다. 정예 보병연대들은 다소 사정이 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병사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자들은 전무했다.
동 에우로페에서는 병사를 단순한 소모품, 대체 가능한 가축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 강했기에 그들과 함께 사선에 선다는 인식이 부족했다.
필요하면 병사들과 전장에 나란히 서긴 하지만 선두에 서서 그들을 이끄는 자는 거의 없었다. 있다면 루시에서 몇 없는 특이한 인간이거나 혹은 평민 출신으로 공을 쌓아 장교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밀러는 자신의 부하들이 뒤를 따르는 것을 확인하며 자신을 향해 총검을 내지르는 적 보병들을 슬쩍 살폈다. 그들은 제법 훈련을 잘 받았는지 총검을 찌르는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고 낭비가 없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실전경험이 부족한지 밀러 자신만을 보며 달려들고 있었다. 바닥에 있는 시체를 보았다면 그런 무모한 돌진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혀를 찬 순간 총검을 찔러오던 적 하나가 헛바람을 삼키며 발을 움찔했다. 물컹한 팔을 밟고 동작이 엉킨 것이다. 그 바람에 다가오던 적 사이에 잠깐의 구멍이 생겼다.
노련한 대위는 그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그 간극을 파고들어 가며 칼로 좌측의 총검을 쳐낸 다음 권총으로 우측의 적을 쏘았다.
둘이 쓰러지고 하나가 밀려나가며 공간이 열리자 뒤를 따르던 부하들의 균열이 자연스레 아까의 몇 배로 커졌다.
장교들이 모범을 보이며 위험을 감수할 때마다 루시 군대의 균열은 점점 커졌다.
급기야 댐이 균열을 이기지 못해 무너지듯 흰 군복들의 제방이 함몰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무너진 간극으로 검은 물결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한 병사들이다. 야만인들에게 밀릴 순 없다. 놈들을 죽여라!”
장교들이 칼을 휘둘렀지만 보병들의 대열이 그 한마디로 정비될 수는 없었다.
밀러는 파도 같은 공격 부대의 선두에 서서 적의 저지선을 연거푸 뚫었다. 마침내 멀리 적의 연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깃발은 언제나 부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과거 에우로페를 지배한 고대 루미 제국 시절부터 부대기는 ‘부대 전체의 상징’이자 그 자체로 여겨지는 관념이 있었다. 깃발을 빼앗기면 그것을 되찾기 전까지 부대의 이름이 말소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고, 지휘관이 처형되기도 했다.
그만큼 깃발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념이 있었기에 연대기는 언제나 지휘관과 함께 나란히 서 있었다.
즉, 연대기 주변에는 적 지휘관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승리가 코앞이다. 모두 전진하라!”
밀러가 칼을 흔들었다.
병사들은 자신들의 지휘관이 낸 목소리에 부응하여 흰 군복들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연대 지휘부가 코앞에 이르자 흰 군복들도 필사적으로 변했다. 그들은 안간힘을 다해 자신들의 사령관을 지키고자 억센 물결을 막으려 애썼다.
희고 검은 선이 서로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며 격렬한 병장기 소리를 냈다.
승도는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다 코를 문질렀다.
“적 보병연대의 섬멸은 거의 코앞이군요.”
“예, 이번 작전의 첫 승리가 문턱에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각하.”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긴장을 풀어선 안 됩니다.”
승도는 전투가 끝나기도 전에 승리를 이야기하는 부하 장교들에게 한마디 따끔한 경계의 말을 던졌다.
‘전투는 거의 끝나가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안심하긴 곤란해. 적이 버티는 건 역시 증원 부대가 제 시간에 도착할 거란 믿음 때문이니까.’
만에 하나 전투 중에 적의 증원 부대가 도착하기라도 하면 싸움은 상당히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승도는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전투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여유를 부릴 만큼 그도 쉬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적이 좀 더 시간을 끌면 그도 상당히 곤란한 교전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망원경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전령 하나가 급히 다가왔다.
“각하, 전방에서 보고입니다.”
“응? 전방이라면 용병 여단 쪽 말인가요?”
“아닙니다. 좌측 전방입니다.”
“거기서 벌써 적이 나타났단 말입니까?”
승도는 회중시계를 꺼내며 물었다. 자그마치 사십 리의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적이 벌써 접근해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보병이 아무리 빠르게 행군한다고 해도 사십 리의 거리를 좁히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더구나 무거운 중장비를 동반한 연대라면 속도를 높인다고 해도 두 시간은 걸릴 거리.
절대 적 보병연대가 끝장나기 전에 도착할 수는 없었다. 중장비를 방기한다고 해도 이 시간에는 나타날 수 없었다.
“예, 각하.”
승도는 회중시계를 접어 품에 넣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간상으로 나타나기 곤란할 텐데.”
“새롭게 나타난 적은 기병입니다, 각하.”
“기병? 설마 기병연대가.”
놀랍게도 후속하던 적의 연대는 보병이 아니라 기병 연대였다.
승도 역시 그 점은 생각지 못했던 터라 표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병참이 어려운 겨울에 기병 연대를 시비르로 보내다니. 이건 상식 밖의 일이다.’
그는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