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5화. 육참골단 (4)
오승도의 군대는 적 증원군의 허리를 잘랐다. 그는 그 자리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며 적 병력의 좌측 연대들을 차례로 격파해 날려버렸다.
하루가 지났을 때 상승군은 모두 세 개의 연대를 격파해 버렸고, 이 전과는 상대를 경악에 빠트렸다.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들어와 허를 찌른 것도 놀라웠지만 전과는 더욱 놀라웠다.
지난 국경 전투에서 하루 만에 다섯 개 연대가 거의 전멸당한 전례가 있긴 했지만, 이들은 2선급 병력에 불과했다.
반면, 이번에 격파당한 연대들은 페테르부르크 등에서 불러온 연대들로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정예 부대들이었다. 이런 일류 부대들이 하루 만에 박살났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상대가 절대 ‘비우지’ 않을 거라 믿었던 ‘미끼’ 때문에 호되게 한 방 맞았다. 입맛이 절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이 일류가 아니었다면 공격에 나서기 전에 제 보급품을 불사르고 이동에 나섰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 연기를 척후가 보고 그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적이 모험적인 수를 꺼냈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은 그런 사소한 정황 증거조차 주지 않았다. 대범하게 모든 보급품을 넘겨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도박을 했고 그 주사위놀음에서 이겼다.
멋지게 허를 찔렸다. 승리를 자신하다 한 방 세게 먹고 나니 얼떨떨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승부는 지금부터다.’
그는 냉정하게 지도를 보고 전황을 판단했다. 적의 서쪽에는 아직 아군 연대 네 개가 남아 있었고, 동쪽에는 일곱 개 연대가 남아 있었다.
기선을 제압당하긴 했지만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잘만 이용한다면 적을 양익에서 밀어붙여 포위 섬멸하는 수순을 밟을 수도 있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러한 작전을 위한 사전 조율이 필요했는데, 적에게 중앙을 내줘버린 탓에 아군 부대 간의 연락이 쉽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적에게 내선의 이점을 허락하여 각개 격파의 기회를 제공해버릴 우려마저 있었다.
알렉세이는 이런 부분을 의식하면서도 지금 승부를 걸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적은 전략적으로 아군을 둘로 분단하고 있어 ‘주도권’을 가진 상태였다.
적이 이 이점을 누리고 있는 한, 당분간 적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국이 흐를 공산이 컸다. 이 위험을 방지하자면 역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반격은 필수 불가결했다.
‘방법은 하나뿐이군.’
알렉세이는 생각 끝에 장교 몇을 불렀다.
곧 그의 방으로 당당한 풍모를 갖춘 장교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절도 있게 경례를 붙인 후, 군화의 끝을 모았다.
장교들이 차렷 자세로 대기하자 알렉세이는 그 앞을 걷다 멈추어 섰다. 최고 지휘관이 자신들의 바로 코앞에 서자 그들은 자못 긴장한 표정으로 눈을 깔았다.
알렉세이는 손수 장교들의 견장을 고쳐주며 말했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대들은 지난 전투에서 황제 폐하의 위신을 땅에 떨어트린 불명예를 저질렀다. 그 일은 필시 그대들의 가문에도 대단한 굴욕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수치스런 일이었습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같은 일은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교들은 딱딱하게 대답했다. 이들은 국경 지대 전투에서 상승군에게 대패하고 달아난 아라한 주둔 부대의 장교들이었다. 그들은 병사들을 버리고 달아났다는 불명예로 말미암아 계급이 강등되고 전공도 삭제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들은 그 참혹한 수모를 겪고서 차라리 그곳에서 죽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물론 그들이 뒷배가 든든한 고위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면 그런 대우를 받을 이유도 없었겠지만.
알렉세이는 뒷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각오가 있다면 불명예를 씻을 자격도 있다고 해야겠지. 좋다. 그대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기회라는 말에 장교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두 번 주어지지 않을 명예로운 기회이니 잘 듣고 일을 수행할지 결정하게.”
장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을 삼켰다.
“그대들이 할 일은 바로 서신을 전달하는 일이다.”
서신 전달?
의혹에 찬 시선이 장교들의 눈에 떠올랐다. 그들이 뭔가 입술을 움직이기 전에 알렉세이가 말을 이었다.
“물론 사소한 서신 전달은 아니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그대들이 전달할 서신은 상승군 너머에 있는 아군 부대를 위한 작전 명령이다. 그대들은 그 서신을 들고 아군 부대들까지 달려가는 임무를 맡는 것이다. 이 임무에 우리 군과 제국의 성패가 달려 있다. 이 일을 무사히 수행한다면 그대들의 불명예는 화려한 전공으로 바뀔 것이며, 황제 폐하 앞에 서서 훈장을 받는 영예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영예로운 임무를 해볼 생각이 있나?”
그 임무의 무게는 매우 진중했다. 해내기만 한다면 이번 전쟁에서 명예로운 공적은 따놓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하지만 임무의 난이도가 문제였다. 적에게 분단당한 작금의 전략적 상황을 고려하면 적이 지배하는 영역을 지나 아군과 접촉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필시 적에게 잡히면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우리라.
장교들은 잠시 망설였지만 조금 전 좋은 자리에서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말을 한 이상 다른 대답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장교 하나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각하.”
하나가 나서자 나머지도 임무를 자청했다. 알렉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심리는 묘하여 하나를 불러놓고 물었다면 이렇게 쉽게 대답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임무를 수행하여 불명예를 씻으면 혼자 ‘불명예스런’ 존재로 남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들을 자발적으로 나서게 했다.
이것이 그가 장교 여럿을 동시에 부른 이유였다.
그는 장교들의 자원에 감사를 표하고 미리 준비한 서신을 내놓았다. 서신에는 장교들이 가져온 명령이 진품이란 것을 확인하는 밀랍 봉인이 찍혀 있었다.
“이 서신은 모두 ‘일정한 암호’를 가지고 쓰여 있다. 암호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몇 가지 규칙과 알파벳 교체 정도가 고작이지. 그대들은 이 규칙과 바뀐 알파벳을 외워 정확히 명령이 전달되게 하는 것이다.”
알렉세이는 서신에 대해 설명했다. 서신은 중도에 상승군의 손에 들어갈 것을 고려하여 적당한 암호처리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 암호는 사실 매우 단순한 것이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풀 수 있었다. 단지 해독에 하루 정도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알렉세이가 이 정도의 간단한 암호를 붙인 것은 아군이 쉽게 해독을 하여 바로 작전에 들어갈 수 있으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적이 해독을 한다고 해도 해독한 시점에서 작전이 시작되면 알아도 별수 없었다.
정보란 정확한 시간에 얻지 못하면 무가치했다.
알렉세이의 설명을 장교들은 긴장한 채로 묵묵히 들었다. 이 설명을 한마디라도 잘못 알아들었다간 아군에게 잘못된 명령을 전달할 수 있으니 몇 번이고 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교들이 설명을 잘 들었는지 검토를 마친 알렉세이는 흡족한 얼굴을 했다.
“좋다. 그대들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제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그대들의 의무를 다하기를 신께 기원하겠다. 신의 가호가 그대들과 함께하기를.”
“임무를 완수하고 뵙겠습니다.”
장교들이 머리를 숙인 후 막사에서 물러났다.
알렉세이는 그들이 물러나는 것을 본 후,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그 위에 놓여 있던 작은 벨을 흔들었다. 그러자 참모 하나가 방으로 얼른 들어왔다.
알렉세이는 그를 보고 말했다.
“준비가 다 끝났으니 각 연대 지휘관들을 전부 내 방으로 모이게 지시하게.”
“지금 말입니까?”
“지금 당장.”
알렉세이가 힘주어 말하자 참모는 고개를 숙이고 막사에서 물러났다.
알렉세이는 모두가 물러난 쓸쓸한 막사에서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들었다. 기름이 다 되어 침침해져 가는 등이 그의 눈에 비쳤다.
***
“이랴. 이랴.”
말을 탄 사내가 전마의 배를 찼다. 흰 군복 위에 견장이 달린 남자는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병사들이 ‘이’를 귀찮게 여겨 머리카락과 콧수염을 수시로 정리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신분이 병사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며 말을 달렸다. 광활한 초원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을 피할 수 있도록 일부러 빙 굴러가는 길을 선택한 만큼 ‘적’을 만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사내는 제발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나기를 바랐다. 지난 전투로 떨어진 명예를 되찾아 본국에 금의환향하는 것. 그 이상은 바랄 것이 없었다.
허황된 꿈을 꾸느라 소중한 약혼녀를 내팽개치고 동방으로 왔다 ‘날벼락 같은 재앙’을 만나고서야 깨달았다. 그가 추구하던 영광은 정말 부질없이 허망한 것이란 것을.
그가 얻으려 한 것은 그 삶에 있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이미 주어진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무얼 구태여 더 얻으려 했단 말인가?
그는 많은 것을 잃고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잃은 것이 얼마나 큰지.
망가진 명예를 되찾지 않고는 귀족의 평판을 중시하는 세계에서 사랑하는 ‘약혼녀’와 만날 기회조차 얻기 어려웠다.
잃고서야 깨달은 그 잔혹한 현실을 깨트리기 위해 용기를 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공명’을 쫓아버리고 온 약혼녀에게 다가서기 위해.
‘아나.’
그는 약혼녀의 소중한 이름을 되 뇌이며 말을 몰았다.
그가 한참 전마를 몰고 있는데 별안간 둔탁한 충격이 그의 옆구리를 물어뜯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컥.”
그는 고통스런 비명을 토하며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낙마의 충격으로 척추가 부러지고 다리가 어긋나 버렸다.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그가 헐떡이는 것을 본 공격자 몇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은 잠시 사내의 주변을 살피더니 중얼거렸다.
“장교인 듯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데려가서 심문을 하면 좋겠는데, 그건 아무래도 어렵겠지. 편하게 해 줘.”
사내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저 파란 하늘 저편에 아나가 미소를 보내오는 것처럼 보여 희미하게 웃었다.
다음 순간 그의 목에 날카로운 쇠붙이가 박혔다. 사내의 세계는 그걸로 영원히 얼어붙었다.
장교를 죽인 자들은 총검을 빼낸 다음 그의 품에 손을 넣어 소지품을 뒤졌다.
그들은 능숙하게 품을 뒤지더니 단단히 봉인된 서신 하나를 찾아냈다.
병사는 그 서신을 꺼내 머리 위로 흔들었다.
“찾았습니다.”
“운도 좋군. 벌써 찾았다니. 다른 것도 있는지 살펴보고 그건 나한테 가져와.”
지휘관은 병사가 가져온 서신을 보았다. 서신은 유려한 로망스 어로 쓰여 있었다. 루시인들이 루시어로 된 서신을 쓰지 않는 것은 의외일 것이다.
하지만 에우로페의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교양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로망스 어를 사용하곤 했다. 그런 이유에서 군의 작전 명령까지 로망스 어로 적히는 일은 상당히 흔한 편이었다.
연합왕국 출신인 장교도 당연히 로망스 어를 읽을 줄 알았다.
그는 서신을 개봉하고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하지만 내용은 아무리 보아도 조금 이상했다.
통속적인 남녀의 연애담. 그것도 철자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 희한한 문장으로 쓰인 글이었다. 적 장교가 잘못된 서신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교는 혀를 차며 병사들에게 물었다.
“더 나온 것은 없나?”
“없습니다. 돈하고 초상화 하나가 나왔는데 여자 그림입니다.”
“그건 되었네. 돈은 자네들이 알아서 하고 그림은 그자 품에 남겨두게.”
장교는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아마 그림은 죽은 자의 가족이거나 애인을 그린 것일 터였다. 아무리 삭막한 전장이라도 그런 사유물까지 뺏을 정도로 몰염치하진 않았다.
장교는 이상한 내용이 있는 서신을 파기할까 고민했지만 혹시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것을 가지고 본대로 귀환했다.
“적 보병은 계속해서 이동 중입니다. 모든 적이 아군의 공격을 확인한 것이 확실합니다.”
승도는 척후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도 위에 기입된 적의 기호를 슬쩍 옮기며 탁자 위에 턱을 괴었다. 적이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를 골라 ‘최초의 타격’을 가하긴 했지만 아직 결정적인 승리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전과를 확대하여 적의 핵심 전력을 모두 쓸어버리지도 못했고 ‘승리’를 확신할 정도로 적을 흔들어 놓지도 못했다.
아직 승리는 모호한 안개 너머에 있었다. 자신을 두꺼운 드레스 속에 감춘 승리의 여신이 환한 미소를 보여주기에 그가 가진 패는 너무 적었다.
승도가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막사 안으로 장교 하나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지휘관들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제지하자 승도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급히 보고할 것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보고할 것이라니요?”
“아군 척후 부대에서 거두어들인 서신이 세 점 있어 보고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적의 전령인가요?”
“예, 각하.”
승도는 그 대답에 퍼즐 조각 하나가 맞추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승리를 위해 마지막으로 갖추어야 할 조각, 바로 적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주어질 것 같았다.
그는 장교가 건넨 서신을 보고 ‘흐음’ 소리를 냈다.
“이건 통속적인 연애편지 같은 느낌이 나는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적이 구태여 이 시기에 세 통의 서신을 같은 내용으로 써서 보낼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장교들을 시켜서 말입니다.”
승도도 그에 동감했다. 물론 기만하기 위해 미끼로 전령을 던질 수 있긴 했다. 적에겐 분명 그럴 만한 실력이 있었다. 하지만.
승도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미끼라고 한다면 아군이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작전 명령’이 밑밥으로 던져져야 했다. 그게 아니라 연애편지라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잠시 편지를 보던 승도에게 헨들릭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각하, 제 생각에는 암호문인 것 같습니다.”
“암호라면.”
“원래의 문장에 사용되어야 할 알파벳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내용’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내용이 지나치게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그를 대비해서 몇 가지 규칙을 정해둔다면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용된 방식입니다.”
로망스 황제 필립이 치렀던 반혁명 전쟁에서 각국은 전투를 벌일 때마다 수시로 전령이 사로잡혀 정보가 노출되는 문제를 겪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끝에 연합왕국 육군 대령 테일러가 한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바로 알파벳을 바꾸고 일정한 규칙으로 글을 재배열하는 기법을 더함으로써 서신을 적이 손에 넣어도 손쉽게 알아보기 어렵게 하는 생각을 해낸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곧 에우로페의 각국 육군에 전파되어 대대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면 적에게 정보를 누출하지 않고 작전을 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암호 해독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이 널리 보급된 지금에 와서는 ‘정보 해독’을 지연하는 효과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경의 말대로라면 이 연애편지는 암호문이고, 그 안에 적이 숨기고 있는 의도가 있다는 말이겠군요. 해독이 가능하겠습니까?”
“몇 가지 문장을 보니 알파벳이 바뀐 부분들은 쉽게 알아볼 것 같습니다. 자주 쓰이는 단어와 동사를 이용하면 특정 알파벳들을 알아볼 수 있고, 이들을 근거로 추리하면 원래의 알파벳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다른 규칙을 발견하는 부분입니다. 최소 하루는 소요될 겁니다.”
“그렇다면 해독을 서둘러 주세요.”
“예, 각하.”
헨들릭이 편지를 받아들고 막사에서 물러났다. 승도는 그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어차피 하루면 해독될 정보다. 하지만 적이 이 점을 계산하고 보낸 서신이라고 한다면 하루 전에 움직임을 보이겠지. 그렇다고 한다면 역시 공격인가?’
승도는 어렵지 않게 적의 의도를 읽었다.
그는 지도 위에 널린 기호들을 보며 적의 생각을 천천히 추리해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