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32화 (332/425)

제332화. 용의 부활 (1)

동영은 승도가 칼을 준비하기도 전에 사절을 보냈다. 신이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한 이상 그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눈치 빠른’ 행동이었다.

승도는 그 사절을 바로 맞이하지 않고 영빈관에 묵게 했다. 심지어 황제를 알현하러 오는 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정부 부처의 하급 관료 한 사람도 가서 이야기를 나누게 하지 않으니, 동영 관료들은 갑갑한 마음으로 시간을 죽여야 했다.

“이토 공, 오늘도 신 조정에서 연락이 없습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이토의 대답에 아카는 반들거리는 이마를 두툼한 손으로 쓸어 넘겼다.

“이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지역 패자로 재부상했다고 하지만, 인사를 온 이웃 국가의 사절을 이리 박대하다니요. 신이 천하만국의 조공을 받던 백 년 전에도 이러진 않았습니다.”

아카의 말에 이토는 찻잔을 매만지며 대꾸했다.

“아마 길들이기겠지요.”

“길들이기라니요?”

“공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신이 인정한 막부를 전복하고 새 정부를 세운 입장입니다. 신으로서는 우리가 아니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니 ‘버릇없는’ 우리 정부에게 교훈도 내려주고 앞으로 자신들에게 머리를 확실히 숙이도록 누가 위인지 알려주려는 것일 테지요.”

“그것 참,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군요.”

아카는 혀를 차며 신의 전통주를 잔에 가득 따랐다. 그들이 막 한 순배를 나누려던 차에 붉은 관복을 입은 관료 하나가 그들의 방에 들어왔다.

관료는 그들에게 ‘강주 왕’ 전하의 부름이 있다고 말했다. 총리아문에서 ‘이제야’ 예방을 허락하자 그들은 이 불편한 숙소에서의 시간이 끝났다고 안도하며 냉큼 관료의 뒤를 따랐다.

동영 사절단에게 접견이 허락된 시간은 야심한 밤이었다.

동영 관료들은 자못 긴장하면서 이화원에 들어섰다. 이화원의 정원은 밤에도 곳곳에 등을 달아 화려하기가 별천지 같았다.

이토와 아카는 그 조명에 비친 ‘화려한 밤 풍경’에 적잖이 압도당한 채로 승도의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그들이 들어선 방은 사람 수백 명이 들어가도 넉넉하게 보이는 공간을 자랑했다. 비록 가구가 거의 놓여 있지 않아 살풍경한 맛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있는 인물 때문에 꽉 차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바로 검은 관복을 입은 대륙의 영웅. 당대 천하의 주인이라고 이야기되는 사내, 오승도 때문이었다.

“늦은 밤에 보자고 해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정무가 워낙 밀려 있어서.”

승도의 인사에 둘은 얼른 예를 차리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승도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카와 이토는 총리대신의 태도가 꽤나 부드러운 데에 안도하며 이야기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처럼 처음 분위기는 괜찮았다. 간단한 신변잡기부터 이화원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분 후, 오승도가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가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종막을 알렸다.

“그건 그렇고, 대인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문하시지요.”

“우리 신은 공식적으로 막부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본인이 강주 관리사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유지한 관계이니 어지간한 동맹보다 훨씬 유대감이 깊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같은 관계를 막부와 맺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막부가 전복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도 전쟁 통에 말입니다. 본인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낀 것은 ‘분노’였습니다. 막부의 우방을 자처하는 우리 체면을 깔아뭉갠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국은 귀국의 내정 문제에 간섭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개입을 자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돌아온 처사는 우리의 ‘선택’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행상의 무역 특권에 대한 귀측의 조처를 우리가 어떤 시각에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승도가 막부를 운운하며 슬슬 본론을 꺼내자 이토는 침을 삼켰다.

신이 지역 강국의 입지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동영에 개입하려는 뜻을 보이는 이상 문제를 서둘러 봉합할 필요가 있었다.

“전하, 그 문제는 오해이십니다. 행상의 무역 특권이 일시 정지된 것은 ‘내전’의 여파로 아국의 치안이 불안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정은 행상의 안전을 염려해 그 같은 임시 조처를 취했을 뿐, 다른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러한 뜻을 담은 국서도 가지고 왔습니다. 부디 의심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동영 사절들이 몸을 낮추자 승도는 그들이 건넨 국서를 받으며 중얼거렸다.

“그거 정말 곤란한 이야기입니다. 이쪽에서는 사실 귀측의 사절이 올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귀국에 대해 조처를 취할 준비도 다 되어 있었는데, 이를 어찌해야 할지.”

승도는 혀를 차며 자신 앞에 놓여 있던 서찰의 일부가 보이도록 손으로 슬쩍 밀었다.

이토는 아카를 보며 눈빛으로 서찰을 가리켰다.

‘공, 서찰을 보시오. 아주 심각한 내용이오.’

이토의 눈짓에 아카가 서찰을 보았다. 서찰에는 동영에 대한 무제한 통상 파괴전을 벌인다는 내용이 섬뜩하게 담겨 있었다.

이 내용대로 돌아간다면 동영은 그야말로 숨통이 조여진 채로 제국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최악의 가능성이었다.

두 사절이 눈빛을 교환하며 긴장한 얼굴을 하는 사이, 승도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가 나올 거란 생각을 했다.

‘통상 파괴전을 실제로 수행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바다는 변수가 많은 곳이야. 운이 나쁘게 우리 작전 구역에서 서역 상선이라도 잡았다간 문제가 커지기 십상이지. 싸우는 것보단 이렇게 협박으로 얻을 걸 얻는 것이 나을지도.’

승도가 차를 한 모금 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눈빛을 교환한 두 사절이 생각을 정리했다.

입을 연 것은 이토였다.

“전하, 고래로 이웃 국가 간의 친교는 천하의 질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였습니다. 밖으로 양이들이 넘보고, 안으로는 내환이 끊이지 않는 이때에 양국이 대립각을 세우면 누가 득을 보겠습니까? 그 같은 이치를 생각하시어 위험한 계는 거두시고 저희 조정이 내민 친교의 손을 잡아 주시옵소서. 그리해 주신다면 저희는 과거 막부가 전하께 해드렸던 약속을 다시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약속이라면.”

“행상의 특권 말입니다.”

“그런 약속이라면 귀국이 썩 성의가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십니까?”

“귀국 정부는 막부를 무너트려 우리의 면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미 귀측에 대한 나름의 제재를 준비한 상황. 이런 판국에 과거와 같은 약속을 해준다는 정도에 우리가 물러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승도의 대꾸에 이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본 아카가 대신 나섰다.

“전하께서는 저희가 어떻게 해야 친교의 진정성을 믿어 주시겠습니까?”

“땅입니다.”

“땅이라니요?”

동영 사절들이 조금 당황하여 묻자 승도가 수염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귀국이 변덕이 심해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모르니 통상 항인 향항을 우리에게 조차해 달라는 말입니다. 항구를 넘겨주면 ‘무역’을 안정적으로 우리에게 맡길 거라 믿을 수 있으니 친교의 진정성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 영토는.”

“그 정도 약속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초 생각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도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동영 사절들에게 통고했다. 대륙의 왕조가 섬나라 동영에 이처럼 고압적인 태도로 압박을 가한 적은 역사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영 사절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제안을 고하겠다고 말하며 시간을 달라고 했다.

승도는 그들에게 한 달의 말미를 주기로 했다. 그 기한은 동영에 돌아갔다가 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매우 빠듯한 시한이었다.

동영 사절들은 더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승도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들은 초췌해진 얼굴로 이화원에서 물러났다.

승도는 물러가는 동영 사절들의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판의 승리’를 자축했다.

***

신을 중심으로 구축된 새로운 질서는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제국은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통해 주변국들에 대한 간섭과 개입의 수위를 높였다.

신으로부터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받은 동영은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할지 고심했다.

천황이 옥좌에 앉은 채 몇 분 동안 회의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어전에서 입을 여는 관료는 아무도 없었다. 신의 최후통첩에 어떻게 대응할지부터 막막한 탓이었다.

항구를 내어주자니 새 정부의 위신이 걱정되었고, 그렇다고 이를 묵살하자니 제국의 공격이 두려웠다. 그들에게 협박을 보낸 신은 더 이상 종이호랑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경고를 실천에 옮길 실력이 충분히 있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조마의 영주이자 신설된 총리대신의 자리에 있는 모리가 입을 열었다. 장내에서 가장 힘이 있는 실력자의 발언인 만큼 관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아졌다.

“내 생각에는 신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각하, 요구를 거절하면 신이 우리 배들을 부수고 목을 조일 것입니다. 간단히 거절할 사안은 아닙니다.”

관료 중 하나가 조심스레 진언했다.

모리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 반박했다.

“목을 진정 졸리는 것은 배가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향항이 넘어간 다음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승도가 괜히 향항을 요구한 줄 아시오? 향항이 넘어가면 우리의 대외 창구를 그들이 쥔다는 것을 의미하오. 그렇게 되면 우리와 교역을 하는 서역 상인들은 누구의 눈치를 볼까?”

관료들은 그제야 등골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신의 지배자는 아주 간단한 한 수로 동영을 제 아가리에 집어넣으려 했다!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닫고 침을 꿀꺽 삼켰다.

모리는 그런 이들을 보고 딱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간단하지. 바로 오승도의 눈치를 보게 되는 거요. 그러면 우리에게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은 그 입맛에 따라 걸러지게 되는 거지. 서역의 무기를 사고 싶어도 그의 허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는 셈인데, 이게 목줄이 잡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일까. 잘들 생각해 보시오.”

“모리 각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우리 목을 스스로 내줄 이유는 없습니다.”

조마 번 출신의 관료들이 차례로 자신들의 영주가 낸 의견을 지지했다.

그러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회진의 영주가 한마디를 꺼냈다.

“모리 공의 말씀은 백 번 지당하십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제안을 거절하면 ‘강제로’ 목줄이 조여질 판입니다. 알아서 숙이는 것보다 대가도 비쌀 텐데, 그에 대한 대책이 있으십니까?”

“그야 전통적인 방법으로 대응해야 하오.”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하시면.”

“이이제이.”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다룬다?”

천황이 그 대화에 흥미를 느낀 듯 끼었다. 모리는 그에 황송하다는 듯 설명을 붙였다.

“그렇습니다, 폐하. 중원의 오랑캐들 외에도 바다에 도적들이 있지 않습니까? 중원 오랑캐를 물리치기 어렵다면 양적의 힘을 빌면 됩니다.”

“양적의 힘을 빌린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요.”

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리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다시 관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연히 목소리도 아까보다 커졌다.

“세상이 돌아가는 정세를 보자면 양적들도 신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터,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은 무리가 없을 거요. 충분히 가능한 생각이라 보는데 공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총리대신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양적의 힘만 빌릴 수 있다면야.”

그들의 말에 모리가 씩 웃으며 풍성한 소매에서 서신 하나를 꺼냈다. 그가 서신을 내관에게 건넸다.

내관은 서신을 받아들고 대전 가운데로 나서며 천천히 읽었다.

“친애하는 동영의 총리대신 각하께 연합왕국 공사 하워드가 글월을 올립니다. 작금 천하의 정세가 요동을 치는 형국임은 각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신이 흥기하고 북적이 꺾이는 이 풍운 속에 동방의 정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도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습니다. 새롭게 패권을 쥔 지역 강국 신이 지금처럼 조용히 머물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 어떤 태도를 보이겠습니까? 바로 전통적인 질서, 중원 중심의 천하관을 부활시키려 들 것입니다. 지역 패권의 부활. 그것은 새로운 제국을 이끄는 야심가들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목표입니다. 과거 역사가 보여주듯 힘을 가지게 된 자들은 그 역량을 주변으로 투사하였고, 그 과정에서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것은 그 이웃 국가들입니다. 우리는 그 점에서 깊은 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 동영은 우리의 중요한 무역 상대국인 동시에 지역의 균형을 위해 존립해야 할 중요한 축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서가 훼손된다면 이는 동방, 더 나아가 우리 왕국의 이해에도 상당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적극적인 대응을 결심하고 각하께 중요한 제안을 드리기로 의견을 정리하였습니다. 바로 우리 연합왕국과 동영 양국의 동맹입니다. 서로 간의 동맹을 통해 ‘상호의 안전’을 확인하고 그 입지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동맹은 전적으로 동영에 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연합왕국의 이름으로 신의 개입을 막아 그 입지를 보호해드리는 것이 이 제안의 진실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총리대신 각하께서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시길 희망하며 글월을 보냅니다. 이에 대한 답신을 회신해 주시는 즉시, 우리는 신의 조정에 귀국과의 동맹에 대해 분명히 언질토록 하겠습니다. 각하와 동영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겠습니다.”

내관이 편지의 낭독을 마쳤을 때 장내의 관료들은 다소 놀랍다는 시각을 보였다. 한때 전쟁까지 치렀던 조마에 편지를 보낸 연합왕국 공사의 놀라운 움직임 때문이었다.

정확히 오승도가 최후통첩을 보낼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했다.

물론 공사가 승도의 움직임을 예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영빈관에 동영의 사절이 머문다는 첩보를 입수하기가 무섭게 동영과 신의 접촉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프리깃 편으로 동영에 서신을 보내 대응의 수를 두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긴 해도 그 짧은 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제대로 된 제안’을 가장 ‘발언권’이 강한 자에게 보냈다는 것만 보아도 공사의 수완은 보통이 아니었다. 이 한 수는 분명 신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다.

편지의 내용을 들은 관료들은 잠시 생각을 해보다 하나둘 입을 열었다.

“세계 최강의 양적이 뒤를 봐준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오승도의 제안은 거절하심이 옳습니다.”

“맞습니다. 구태여 신에 머리를 숙여 굴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연합왕국이 우리와 맹방이 되어준다면 그깟 대륙의 오랑캐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리 각하의 말씀대로 거절해야 합니다. 즉시, 연합왕국 측에 동맹 수락을 청해야 합니다.”

관료들이 모두 찬성으로 기울었다. 모리가 편지 하나로 바뀐 분위기를 보며 수염을 쓰다듬는데, 회진 번의 영주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문제는 양적이 정말 순수한 호의에서 제안을 했느냐는 겁니다. 모리 각하께서도 생각은 하고 계시겠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연합왕국의 장기짝이 되고 맙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오?”

“생각해 보십시오. 양적의 동맹이 되면 우리는 그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우산을 벗어나는 즉시 신의 보복을 받게 될 테니 말입니다. 이 역시 우리 목에 올가미를 걸려는 한 수임은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외교에서 순수한 호의는 없다. 회진 번의 영주는 이 같은 점을 설파했다.

하지만 모리는 고개를 저었다.

“공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지만 연합왕국은 땅을 요구하진 않고 있소. 이것만 보아도 당장 우리가 어느 패를 잡아야 할지는 자명한 이치요.”

“그 부분은 분명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결정을 성급하게 내려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왕국의 제안을 지렛대 삼아 신의 요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 다시 협상을 걸자?”

장내의 분위기는 모리를 지지하는 쪽에서 다시 관망세로 돌아섰다. 사실 국익이 달린 문제인 만큼 쉽게 결정하기도 어려웠다.

동영 조정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꼬박 이틀을 쉬지 않고 회의를 이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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