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3화. 용의 부활 (2)
동영으로부터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승도는 육군을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 전쟁에서 입은 손실도 손실이었지만, 향후 열강들의 견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전력을 새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그는 강주 무관학교에서 갓 쏟아져 나온 새로운 사관생도들을 대거 임관시키는 한편,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들도 승진시켜 하급 지휘관 층을 기존의 몇 배로 늘렸다.
이렇게 팽창한 하급 간부들은 모두 새롭게 증편할 부대들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이 엄청난 비용은 모두 전쟁 배상금에서 충당하기로 했다.
물론 승도가 배상금을 군비에 대거 쏟아붓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행상과 관료들은 조금 당황스럽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전하, 전쟁 배상금은 피폐한 내정을 되살릴 요긴한 자금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귀한 재원을 회수할 길이 없는 군비에 집중시키는 것은 재고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군비 투자의 당위성을 모르진 않지만 투자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군비는 지금부터 천천히 투자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우려에 대해 승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 대꾸했다.
“여러분의 염려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기란 것이 있습니다. 군비는 지금 투자해야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람의 판단입니다. 밖으로 양적들이 제국의 높아진 위상에 우려의 빛을 보이는 이때에 ‘힘’을 길러놓지 않으면 애써 얻은 과실을 남에게 빼앗기기 쉽습니다.”
승도도 경제 투자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경제에 재원을 돌린다면 신의 성장이 탄력을 받을 거란 점도 충분히 예상했다.
그럼에도 그가 군비에 비용을 돌린 것은 열강이 견제할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확실한 안전장치를 강구하기 위함이었다.
과거 전쟁에서 수없이 이기고도 ‘경제력’을 중시하다 한 방에 몰락하고 만 로우랜드 공화국의 해군 정책을 생각하면 근거가 없는 생각도 아니었다.
‘필요한 때에 투자하지 않으면 훗날 몇 배의 후회를 할 수밖에 없어. 지금은 군비에 투자해 열강이 견제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겁을 주는 것이 최선이다.’
승도는 반대를 일축하며 기존에 열 개 여단에 그쳤던 상승군 보병 전력을 삼십 개 여단으로 증강하는 국방 계획을 통과시켰다.
근대식 보병 전력을 일시에 세 배로 증강, 열강의 대규모 원정군을 압도할 만한 규모까지 팽창을 시도한 것이다.
이어 선진을 비롯한 국가의 요로에 요새를 구축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전쟁’에 큰 소용이 없던 기존의 기병 편제도 새롭게 개편했다.
기병은 기존의 팔기도 그랬지만 태반이 왕공 귀족(부족장 포함)들의 통솔을 받고 있어 부대의 소집부터 지휘까지 신의 다른 부대들과 다소 이질적인 상태에서 운용이 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지휘관이 전장을 통솔함에 있어 적지 않은 약점이 되었다.
승도는 이 부분도 손질하여 기병을 근대적인 여단 편제로 개편하고 그 지휘체계를 군기처로 통합시켰다. 이 조처로 팔기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황실의 군사적 기반을 날려버리는 수였기에 정치적으로도 필요한 조처였다.
이러한 신의 대대적인 군비 증강에 대해 열강은 우려 섞인 눈빛을 보냈다.
“신은 동방에 주둔한 모든 열강의 군대를 합친 것보다 큰 규모의 근대 군사력을 건설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미친 듯이 팔아치우는 무기를 사들인 이 공룡이 우리 눈치를 보지 않게 될 날은 멀지 않았다.”
특히 연합왕국 공사의 걱정이 컸다.
오랜만에 총세무사와 기루에서 저녁 식사를 갖게 된 공사는 신의 군비 증강을 염려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경도 아시겠지만 최근 신의 행보는 폭주 기관차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군비를 너무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 왕국에 정면으로 도전이라도 할 모양새입니다.”
그의 우려(?)에 총세무사는 새우튀김을 반쯤 씹어 넘긴 다음 반응을 보였다.
“그야 지역 패권국으로 올라서면서 갖게 된 입지를 확실히 하려는 움직임이 아니겠습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롭게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국가는 군사력을 강화해 주변을 두렵게 함으로써 제 입지를 확인하고 독자적인 패권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신도 그런 경우로 해석한다면 아주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입수된 자료를 보니 단시간에 군비 지출로 수백만 냥을 쏟을 생각이더군요.”
“그건 우리 왕국의 견제를 의식한 움직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견제를 의식한다.”
총세무사는 젓가락으로 새우를 쪼개며 말을 이었다.
“저들도 학습이라는 걸 하는 인간이라면 주변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진 우리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생각을 해볼 겁니다. 당연히 우리 견제를 의식하고 그에 맞추어 포석을 둘 수밖에요.”
“경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군비 증강은 우리 견제 수위가 높아질수록 더해질 거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런 경쟁이 된다면 상당히 곤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타 열강들이 끼어들기 좋은 갈등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출혈도 커질 테니 말입니다.”
“나도 그런 점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신을 제어하지 않으면 우리 국익이 지나치게 침해받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총세무사가 젓가락을 놓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곤란합니다. 각하께서 정확히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이곳 신의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세관의 수입이 해마다 1.5배 이상 성장하고 있지요. 경제가 그만큼 성장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활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미 승천하고 있는 용이니 그 꼬리를 잡으려 애쓰지 말란 말씀이군요.”
“적어도 본국의 조력이 생기기 전까진 견제에 대한 부분은 신중하게 검토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공연히 저들을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동영이란 패가 들어온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사가 던진 한마디에 총세무사는 고개를 저었다.
“동영이 장기짝이 된다고 해도 신을 견제하긴 버거울 겁니다. 아마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뒤를 봐줘야 할 것인데, 그 부담은 어떻게 감당하실 생각이십니까?”
“그 정도야 여력이 있습니다.”
“차라리 지금은 견제를 하지 말고 내버려 두었다가 본국의 관심이 이곳으로 돌아올 때 동영을 패로 쓰도록 준비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기다렸다가 패로 활용하라?”
“동방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드러난 칼은 두렵지 않으나 숨겨진 바늘은 두렵다고.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비수로 쓸 수 있도록 끈만 살려놓는 것도 향후를 위한 좋은 포석이 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공사는 총세무사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하는 것도 왕국의 입장에선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견제가 제대로 되지 않을 바에야 경각심을 누그러트렸다 적절한 시점에 거센 한 방으로 몰아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공사는 총세무사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견제에 대한 생각을 신중하게 고민해 보았다.
확실히 지금 신을 견제하기 위해 포석을 두는 것은 왕국의 입장에서 꽤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국익을 위한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손해가 날 수도 있는 선택이란 계산이 들자 행보를 무겁게 가져가는 공사로서도 고민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총세무사의 말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다. 신을 지금 어설프게 견제하려 했다간 그 팽창을 도리어 자극할 가능성도 있지. 동영과의 동맹이란 수가 그들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비친다면 로망스와 신이 손을 잡는 경우의 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물론 교활한 오승도가 우리 왕국과 완전히 척을 질 가능성을 선택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공사가 마차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자 에버튼이 조심스레 물었다.
“신에 대한 견제 문제로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런 셈이요.”
“그 부분이라면 오승도와 한 번 회동을 가지고 다시 고려해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오승도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습니다. 각하께서 우리 왕국의 우려를 전하면서 그 행보에 대한 정보를 적절히 캐낸 연후에 우리의 방침을 정해도 늦진 않을 거라 여겨집니다.”
“백작이 총리아문을 방문해 접견 날짜를 한 번 받아보시오.”
공사는 고민을 끝내고 결정을 내렸다. 마차는 흐릿한 아편 냄새가 깔린 아편굴 앞을 지나 공사관을 향해 달려갔다.
***
동영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담은 사절이 선진항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하던 날 항구에는 신의 주력 전투함들이 대거 닻을 내리고 있었다. 한 척 한 척이 동영의 뼈와 살을 발라낼 것 같은 ‘위압감’이 드는 거함들이었다.
동영 사절들은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침을 삼켰다. 만약 오승도가 동영 정부의 답을 보고 ‘만족’하지 못한다면 저 배들이 출동하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토 일행은 신에서 준비해준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들이 마차에 타자 그 주변으로 수천 기나 되는 기병이 겹겹이 에워싼 채 호위를 준비했다.
일개 섬나라 사절에 대해 예우를 차려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었다. 이는 다분히 상대의 기를 죽이려는 승도의 술수였다.
“이토 공, 밖을 보십시오. 기병입니다.”
“나도 보았습니다.”
“이거 신에서 단단히 우릴 겁주려는 모양이 분명하오. 군함도 모자라 기병이라니.”
그들은 승도가 일부러 이런 광경을 연출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거창하게 ‘협박’을 했으니 협상이 결렬되면 동영에 진짜 군대를 보낼 거란 위기감이 절로 들었다.
기병은 승도를 만나러 가는 내내 부지런히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계속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승도가 부른 유목 기병들이 마차 앞뒤를 오가며 소리를 내는 통에 이토 일행은 이 ‘기분 나쁜’ 호위가 빨리 사라지길 바랐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기병 호위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압적인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는 이화원 앞에 멈추었는데, 그 거대한 황실 별궁의 앞과 안에는 온통 험상궂은 검은 군복들로 들어차 있었다.
심지어 별궁 안에는 대포도 있었다. 아주 대놓고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동영 사절들은 여기에 치를 떨면서도 화를 내며 돌아갈 수 없었다. 새로운 강자 앞에서 빳빳하게 고개를 들기에는 그들의 패가 너무 나빴다.
‘정말이지 무례함이 도를 넘었습니다. 외국 사절에게 어떻게 이런 행위를.’
‘자기들이 상전이란 걸 확실히 과시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사절들은 서로 눈빛을 마주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검은 군복들로 가득 찬 뜰을 지나 승도의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집무실의 정경도 바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집무실 안에는 무장한 검은 군복 장교 여럿이 칼과 권총을 찬 채 시립해 있었다.
사절들은 그 광경을 보고 흠칫하다 승도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승도는 사절들에게 차를 내주고 그 앞에 여유로운 자세로 앉았다.
“그래, 답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그에 대한 답을 드리기에 앞서 전하께 하나 여쭐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이곳 이화원에 들어오면서 느낀 것인데 ‘경비’가 무척이나 ‘삼엄’한 것 같습니다. 방문자가 위화감을 느낄 정도라면 경계수위를 조금 낮추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토의 물음에 승도가 피식 웃었다.
“아, 그 점이라면 이해하기 쉽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화원에 오실 손님들이 ‘적성국’에서 오실 분들일 가능성이 있어 경계 차원에서 경호를 강화했을 뿐입니다. 오해를 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의 능구렁이 같은 대꾸는 역시 은근한 협박을 내포하고 있었다.
‘적성국’일 수가 있어 경계를 강화했다는 말은 협상이 결렬되는 즉시 동영을 적대국으로 간주하고 전날 보인 문서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토는 앞에서 능글거리며 협박을 던지는 권력자를 보며 이를 갈았다.
‘속곳까지 벗어서 내놓지 않으면 칼을 들고 가서 뺏어 오겠다고 아주 협박을 하는군. 이런 것도 협상이라고 하는 건가.’
약육강식에 익숙한 동영 사람이라 해도 이런 날강도 같은 협상은 난생처음이었다.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도 솔직하게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전하께서도 이 점을 들어주시고 판단을 신중하게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먼저, 우리 정부는 전하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요? 그거 유감이군요. 당분간 귀국과 불편해질 것을 생각하니 이 사람의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조율만 있다면 저희도 전하의 제안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그럴 용의가 없다면요?”
“그렇다면 연합왕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동영 사절이 ‘연합왕국’을 입에 올리자 승도의 여유롭던 표정에 금이 갔다.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상대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어떻게 그가 손을 쓰고 있는 시점에 정확히 끼어 고춧가루를 뿌린단 말인가?
‘확실히 정보력에선 세계 제일이란 강대국답군. 반응 하나는 기가 막힐 정도로 빨라. 하긴 그런 정보력이 있으니 로망스 제정을 무너트리는 판을 설계할 수 있었겠지.’
승도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재빨리 태연함을 가장했다.
“왕국의 제안이라니, 그건 무슨 소립니까?”
“연합왕국에서 우리 정부에 제안하길, 서로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맹을 맺자고 하였습니다.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겠노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승도는 그 수에 탄복했다.
‘동맹이라고 하면서 이름을 빌려주고 우리가 동영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단기적으로 이쪽을 견제하기에 아주 좋은 수야. 우리와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점만 감수한다면 최상의 계책이라 할 수 있지. 짧은 시간에 내린 판단치곤 정말 절묘한 방법이군. 하지만 그들이 동영을 견제 말로 쓰려면 몇 년은 꾸준히 뒤를 봐주어야 한다는 건데, 왕국에 그럴 만한 여력이 된다는 건가?’
승도는 그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연합왕국이라는 강대국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발전을 거듭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 초강대국의 역량을 예전의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큰 오산이었다.
“동맹이라. 왕국에서 훌륭한 제안을 꺼냈군요. 그렇다면 그 제안을 받고 본국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만일 것인데, 왜 여길 온 겁니까?”
승도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이토가 어조를 정제하여 말했다.
“그야 우리는 누구의 장기짝이 되기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전하의 제안을 거절하고 왕국과 손을 잡는다면 자연히 그들의 이익에 맞추어 춤을 추는 꼴이 되겠지요. 우리 정부는 그런 허수아비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귀측이 생각한 최상의 답은 이 사람과의 절충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전하.”
승도는 그 대답에 손에 깍지를 꼈다.
동영인들이 국제 정세에 밝지 못하다고 약간 가볍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저들이 보인 행동을 보면 결코 우스운 자들이 아니었다.
양쪽에서 친 올가미를 피해 나름대로 그 입지를 지켜보려고 ‘절충’을 생각한 것만 보아도 동영의 새 정부는 충분히 영리한 자들이었다. 이전의 막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교활하다고 해야 할지.
“제법 훌륭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런 식견이 있다면 이 사람도 한 발 물러설 용의는 있습니다. 그래, 절충이란 것을 어디까지 생각하고 왔습니까?”
“요구하신 조차는 불가능합니다. 대신 향항에 행상의 독자적인 지분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전하께서 생각하신 것에 미치지는 못해도 안정적인 이익을 드리는 동시에, 저희 정부도 목줄이 잡히지 않는 타협점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차는 안 되지만 지분을 나누어준다.”
승도는 그 대답에 약간 구미가 당겼다.
지나치게 저들을 몰아 연합왕국의 울타리에 밀어 넣는 것보다는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안정된 이익을 창출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승도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난 문제는 없던 것으로 하지요. 조만간 아국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귀국 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하겠습니다.”
승도가 호의적인 대답을 내놓자 동영 사절들의 얼굴이 펴졌다.
“감사합니다, 전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