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7화. 유구 (1)
두 해 동안, 제국은 안정된 시대를 구가했다. 외부의 개입은 줄어들고 내정은 안정되었다. 공업은 성장하고 경제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유민은 감소하고, 아편 역시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되고 있었다.
제국의 국력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동안 군비도 증가했다. 육군은 신대륙으로부터 넘어온 원주민들까지 흡수해 기병 세력을 배가시켰고, 해군은 로망스로부터 발주한 장갑함을 받아들여 그 전력의 수준을 곱절로 늘렸다.
이날, 로망스로부터 들어온 장갑함들을 정식으로 취역시키는 ‘행사장’에 승도와 그 가족들이 자리를 잡았다.
상석에 강주 왕 일가가 자리 잡고 그 좌우로 대신들이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검게 칠한 대형 전투함을 보며 귓속말을 나누었다.
“전하, 저기 저 배들이 한 척에 은자로 백만 냥에 달한다 하셨지요?”
“맞습니다.”
“들인 돈은 많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제는 우리 제국도 서역 열강들과 맞먹는 군함을 가진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합니다.”
“하하하. 이 사람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승도는 호부대신과 한마디를 주고받으며 장갑함을 흡족한 눈으로 보았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은비가 끼었다.
“전하.”
“말씀하세요.”
승도가 고개를 돌리며 말을 받았다.
“저기 서역 양선 한 척은 일전에 강주로 온 양선들보다 큰 것인가요?”
은비는 오래전 강주로 침공해온 연합왕국 함대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었던 터라 승도가 사온 배가 얼마나 큰지 알고 싶었다.
“비슷한 크기일 겁니다.”
승도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장갑함은 기본적으로 전열함에 장갑을 씌운 개념에 가까운 배였다.
그러다 보니 기본 배수량에서 전열함을 초월적으로 압도하는 장갑함은 아직 몇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언제나 타국보다 크고 강력한 군함을 건조하기 원하는 연합왕국이나 그런 대형 장갑함을 만들지, 대부분은 기존 전열함과 비슷한 크기의 장갑함을 건조하였다.
“그럼 저 배는 이전에 쳐들어온 양선과 비슷한 능력을 가졌겠군요.”
“그건 아닙니다. 아마 저 배 하나면 일전에 쳐들어온 양선들 전체를 상대하고도 남을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묻자 승도는 옆에 있던 클레망소에게 설명을 대신해 달라고 눈짓했다. 그가 설명을 해도 좋지만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군사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가 꽤 부담스러웠다.
클레망소는 그 눈빛을 받고 대신 입을 열었다.
“제가 대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마마. 저 배는 장갑함이라고 하는 군함으로 배 전체를 쇠로 둘러 공격을 쉽게 막아내는 철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존 군함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견딜 수 있습니다. 이쪽이 공격을 맞아도 끄떡하지 않는 반면에 이쪽의 공격이 먹힌다면 싸움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그런 뜻으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 철선은 정말 대단한 배로군요.”
“그렇습니다.”
클레망소는 기왕 입을 연 김에 말을 더 이어갔다.
“이번에 들여온 장갑함 세 척이면 아마 동방에 있는 모든 양선을 상대해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다른 열강들이 장갑함을 가져오지 않는 이상은 문제될 것이 없단 거지요.”
“그처럼 대단한 배라면 왜 양이들이 이곳에 장갑함이란 것을 더 가져오지 않았을까요?”
그녀가 순수하게 의문을 드러내자 클레망소는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겠다 싶은 생각을 품었다.
“그것이 이유가 있습니다. 저 장갑함이란 배들은 군함의 무게가 무거워 기존 범선들처럼 바람만 가지고 움직이기가 곤란합니다. 해서 증기를 이용해서 배를 움직이는데, 이것이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증기 기관이라면 뭍을 달리는 그 기차 같은 것 말인가요?”
“맞습니다. 그 증기 기관을 돌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십니까?”
“석탄이겠지요.”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장갑함을 움직이려면 막대한 석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곳곳에 석탄을 저장한 저탄소를 설치해야 합니다. 연합왕국과 같은 열강이 사전에 그런 준비를 하긴 했지만, 균일한 간격으로 저탄소를 다 배치하지 않는 이상은 장갑함을 동방에 배치해봐야 제대로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열강이 장갑함을 동방에 아직 배치하지 않은 것입니다.”
“의문이 풀린 것 같아요. 이야기 잘 들었어요.”
“아닙니다, 마마.”
클레망소는 로망스 사내답게 정중하게 예를 차리고 다시 시선을 장갑함 쪽으로 가져갔다.
상석에서 대화가 오가는 동안 항구로 구경을 나온 사람들도 탄성을 쏟아내고 있었다.
“저 산더미 같은 이양선이 우리 제국의 배가 된다는 건가?”
“그렇다고 들었네.”
“대단하군.”
그들은 배를 둘러보며 감탄을 거듭 쏟아냈다. 그때 장갑함에 달려 있던 대포가 포성을 울렸다.
꽝 하고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터짐과 동시에 바다 쪽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취역에서 의례적으로 행하는 예포 발사였다.
사람들은 그 포성을 들으며 제국 해군이 지난날의 무력한 수준과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33번의 예포 사격이 끝나자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소리가 터졌다.
백성들이 모두 즐거운 얼굴로 취역식을 즐기는 듯하자 승도도 마음이 좋아졌다.
그는 군중들을 보다 상석 저편에 있던 외국 사절들에게 다가갔다.
제국 최고 권력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 자리에 있던 연합왕국과 로망스 공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도 장갑함을 보고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들은 모자를 벗어 예를 차렸다.
“강주 왕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를 뵙습니다.”
“각국을 대표한 여러 공사께서 우리 해군의 취역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리와 제국의 사이가 이처럼 돈독한데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로망스 공사가 웃으며 말했다.
공사는 한 해 전에 정식으로 로망스와 수교를 맺으며 부임한 자로, 과거 필립의 휘하에서 원수 자리를 맡았던 자였다.
특별한 공이 없는 데다 주목할 거리도 없어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아 외국 공사 자리로 나오는 것을 보면 나름 관운은 있는 듯했다.
승도는 로망스 공사와 악수를 나누고 연합왕국 공사를 보았다. 하워드는 로망스와 승도가 친밀한 사이를 보인 데 대해 약간은 불편한 듯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신의 해군에 날개를 다는 일을 제가 와서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딴은 그렇군요.”
승도는 왕국 공사의 대꾸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며 로망스 공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 그리고 공사 각하. 이 말을 전하지 못했군요. 이번에 장갑함을 조기에 인도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신 귀국의 국왕 폐하와 해군성에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기꺼이 전해드리겠습니다. 저희 폐하께서도 전하의 이 같은 사의의 뜻을 들으신다면 무척 흡족하게 여기실 겁니다.”
“그거 기분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둘의 대화 중에 연합왕국 공사가 슬쩍 끼었다.
“신도 장갑함을 보유하게 되었으니 조금 더 적극적인 대외 정책을 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하께서는 향후로 바다에서 공세적인 정책을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공세적인 정책이라.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현재 가진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단지.”
“단지?”
“백 년 동안 잃어버린 위신을 되찾고 싶을 따름입니다.”
승도의 대답에 연합왕국 공사는 약간의 위험 신호를 느꼈다. 잃어버린 위신을 찾겠다는 것은 신이 누렸던 지위의 회복을 원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자신만의 천하관을 구축하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동방을 완전히 신의 영역으로 굳히겠다는 선언이란 말이군. 이 장갑함 구입은.’
하워드는 승도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신과 ‘일시적’으로 타협을 생각하며 그 행보를 관철해오고 있었지만 조금씩 그 끝이 다가오는 것도 싶었다.
진정으로 신이 자신의 위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왕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요, 강주 왕. 우리 연합왕국은 지금까지 당신이 다룬 상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장애물일 테니.’
공사는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산더미처럼 거대한 신의 신형 장갑함들을 응시했다.
***
신의 주변에는 수십 개의 전통적인 속국들이 있었다. 신의 국력이 정점에 이르렀던 18세기에 그 속국의 수는 무려 100개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서역 열강이 동방으로 세를 펼치고, 제국의 국력이 쇠퇴하면서 속방의 수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영광의 시대가 끝난 19세기에 이르러 제국의 속국은 공식적으로 셋으로 감소하였다. 명목상 조공을 바치는 려와 동영, 그리고 남방의 유구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유구는 국가라고 보기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나라였다. 지금으로부터 삼백 년 전, 살마의 침공을 받아 그 지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살마는 ‘조공 무역’으로 얻는 이익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유구라는 국가의 국체만 살려두고, 이 나라의 이익을 철저히 수탈하며 빨아먹었다. 중계 무역의 이익은 물론이고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얻은 설탕의 이익까지 거의 다 가져갔다.
왕국이 형식적으로 겨우 유지될 돈만 남기고 골수까지 빨아먹다 보니 나라꼴이 유지되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유구 왕국에서는 그 실태를 대륙에 알려 원조를 청하자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유구는 그들의 뜻을 이루는데 실패했다.
최초의 시도가 있었을 적에는 대륙의 왕조가 교체기를 맞고 있었고, 두 번째 시도가 있을 때는 신의 관심이 대륙 중앙부의 정복 전쟁으로 옮아가 반향을 얻을 수 없었다.
세 번째로 원조를 청했을 때는 신도 도울 뜻이 있는 듯싶었지만, 황제가 바뀌면서 무산되었다.
그 이후 유구 정부는 신에 도움을 청하기를 사실상 포기하고 지냈다.
하지만 유구에 대한 관할권이 살마에서 동영 중앙 정부로 넘어가 ‘간섭’이 이전보다 배로 심해지면서 그들은 다시 한 번 대륙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력으로는 동영을 물리칠 능력도 없었고 독립을 얻을 가망도 없었다.
시기도 마침 좋았다. 신이 열강을 물리치며 외부에 국력을 투사할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전이라면 가능성을 일 푼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이라면 일 할은 기대해볼 법했다.
이에 유구 조정은 재번봉행(살마의 유구 주재 감독역)의 눈을 피해 은밀히 회의를 갖고 북경으로 관료 몇을 변복해 보내기로 했다.
이 중대한 임무를 맡은 자는 오랜 세월 왕가에 봉사해온 일곱 가신 가문에서 가려 뽑았다.
쏴아아.
흰 포말이 뱃전을 때리며 부서졌다.
사내는 점점 가까워지는 육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품 안에 들어 있는 밀지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번 일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그는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유구가 조만간 외무성에서 내무성 관할로 바뀔 것이란 말이 돌았다. 그 말은 유구를 동영과 별개의 국가로 간주하던 ‘형식’마저 버리고 병합을 향한 수를 밟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다.
“항구다! 선진이 코앞이다.”
망루에 있던 선원이 외쳤다.
그 외침에 선원들이 날렵하게 돛을 당기며 배의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유구에서 사탕을 사다 선진에 내다 파는 중계 무역에 종사하는 자들이라 이 물길에 익숙한 듯했다.
정확한 시점에 줄을 당기고 조이며 돛을 다루는 것이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선원들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다 멀리 잡힐 듯 가까워진 항구를 보았다.
항구에는 수십 척이 넘는 양선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그 좌우로는 새로 지은 듯 말끔한 요새가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에 방문했을 적에는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신이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대단하다. 여기가 정말 신인가?’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구경했다. 이윽고 배가 육지에 닿자 여기까지 실어다 주기로 한 뱃놈이 그만 내리라고 눈짓을 주었다.
사내는 짐을 챙겨 대륙에 발을 디뎠다.
주변은 멀리서 본 것처럼 별세상이었다. 항구에는 뱃사람들을 위한 숙소와 각종 편의시설도 구비되어 있었다.
혹시나 모를 소란에 대비해 각이 잡힌 군인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잘 정련된 느낌’이 들었다.
사내는 주변에서 탈것을 찾아 휙휙 둘러보았다. 외교관의 자격으로 이 나라를 방문했다면 미리 기별을 넣어 신의 관부로부터 ‘마중’을 받았겠지만, 그는 비밀리에 이 나라를 온 처지였다.
북경까지 가자면 그 발로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변에 내린 외국인들이 팻말을 보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다른 탈것이라도 있는 것인가.’
혹 역참이라도 있다면 삯을 지불하고 이용할 용의가 있었다. 편안함보다는 신속함이 중요해서다.
그는 외국인들을 따라 정비된 관도를 따라 걸었다. 관도 위로는 문자로 ‘철도역’으로 가는 길이라는 팻말이 놓여 있었다.
그렇게 걷기를 한참, 그 앞으로 끝도 없이 거대하고 기괴한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구조물은 유구의 왕궁과 비교해도 수십 배는 족히 더 컸다. 완전한 돔 구조로 만들어진 지붕은 동방에서 볼 수 없는 이질적인 형태라 그는 한참이나 그것을 구경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곳이 역참이겠거니 생각하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점은 역참 특유의 말똥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역으로 들어서자 푸른 관복을 입은 관원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북경까지 갑니다.”
“북경이라면 은전 두 문입니다.”
“두 문?”
말을 빌리는 비용으로 생각한 것보다 훨씬 쌌다. 그는 혹시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런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하지만 아까 몇 명의 외국인이 삯을 치르고 들어간 것을 보았기에 아주 거짓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사내는 망설이다 은화 두 닢을 내밀었다. 관원들은 그 돈을 받고 얇게 저민 전표 같은 것을 내밀었다. 일종의 증표인 듯싶어 사내는 그것을 받아들고 철도역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 안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곳에서 관원들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이리저리 인도하고 있었다.
사내는 관원 근처에서 북경이라고 외치며 말을 달라고 외쳤다. 그가 전표를 흔들자 관원은 힐끔 보더니 ‘저쪽’이라고 응대했다.
사내는 그 말을 믿고 복도를 따라 걸어갔지만 어디에도 마구간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삭막한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사내는 일단 거기서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관원이 이곳으로 가라고 했으니 기다리면 말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다.
그가 가만히 앉아 관원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어 자갈 튀는 소리가 들리더니 칙칙 소리와 함께 기이한 괴물이 불쑥 그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헉, 저건 무엇인가.’
그는 깜짝 놀라 괴물을 보았다. 그것은 기이하게도 흰 증기를 쉬지 않고 내뿜고 있었는데, 몸은 전부 철로 되어 있었다.
그는 괴물이 다가오는 동안 너무 놀라 흠칫 굳어 있다 그것이 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괴물의 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얼핏 비쳤기 때문이다.
괴물은 자갈을 튀기며 다가오더니 사내의 앞을 지나 천천히 멈추어 섰다.
괴물이 멈추자 주변에 있던 외국인들이 짐을 챙겨 하나씩 그것의 옆구리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내는 이 괴물이 ‘대륙의 탈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쇠로 된 말이라니. 우리가 사탕수수나 재배하는 동안에 세상이 이렇게나 달라졌단 말인가?’
사내는 이국의 풍물에 크게 놀라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품었다. 이런 놀라운 기물을 다룰 만큼 신의 국력은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 그렇다면 그 힘만 얻는다면 분명 조국을 구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낯선 괴물의 어두운 아가리 속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