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8화. 유구 (2)
승도는 매일 아침 6시부터 정무를 챙겼다. 본인이 부지런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이 많기도 했다.
아침을 일찍 먹고 산적한 현안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을 보내기에 바빴다.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자신의 방에 앉아 서류나 만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뭔가 달랐다.
“총리아문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전하.”
자신의 여비서가 쟁반을 들고 와서 고하자 승도는 그제야 서류더미에서 고개를 들고 의아한 눈을 했다.
총리아문에서 특별히 재가를 요하지 않는 일들은 일단 건문의 손을 거치게 되어 있어 오전 중에는 그에게 연락이 올 일이 거의 없어서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일단 들라 전하세요.”
승도는 펜을 놓았다. 곧 총판장경 건문이 그 앞에 나와 예를 갖추었다.
“서기가 이 시간에 직접 어쩐 일입니까? 사람을 보내서 알려도 될 것을.”
“기밀이 요구되는 중요한 사안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요? 일단 들어나 보지요.”
승도가 자리를 권하자 건문이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였다.
따뜻한 찻물이 잔에 채워지는 소리가 울렸다. 시녀가 차를 따르고 물러가기를 기다리던 건문은 방 안에 자신과 승도만 남자 입을 열었다.
“실은 유구에서 사람이 하나 왔습니다.”
“사람이 하나 왔다. 교역을 하는 뱃사람 정도라면 이 사람에게 보고될 사안은 아닐 것이고, 재번봉행 따위라면 총판장경의 선에서 처리했을 테니 유구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왔겠군요.”
승도의 추측에 건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유구 왕의 사절이란 말인데, 유구에서 우리에게 사람을 보낼 이유가 있긴 합니까?”
유구와 신이 ‘전통적인 관계’에서는 상국과 번국의 관계에 놓여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양국은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였다.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수백 년이었다.
승도가 묻자 건문이 품에서 문서 하나를 꺼냈다.
“사자가 가져온 것인데 이것이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승도는 ‘한 번 봅시다.’ 하고 짧게 말하고는 건문이 건넨 문서를 훑었다. 문서를 천천히 읽던 승도의 표정이 어느 순간 묘하게 변했다. 그는 그것을 내려놓고 혀를 찼다.
“그러니까 동영에서 유구를 자국 영토로 병합하려고 술책을 부리고 있다. 그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실상 유구가 동영에 복속된 지는 수백 년이 지나가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동영에서 우리 눈치를 보아 ‘편의상’ 살려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래 우리가 국력을 점점 증강하면서 저들도 마음이 좀 급해진 듯합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전통질서를 회복하면서 유구를 이쪽 세력권으로 되찾아올 것이 두렵다. 그러니 그 전에 자기 영토로 확실히 못을 박아 선을 긋겠다는 얘기로군요.”
“그리 해석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 상태라면 유구가 우리에게 사절을 보낸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형식상 껍데기만 유지된 나라라곤 하지만 국체가 사라지는 문제이니 발버둥이라도 쳐볼 수밖에요.”
승도는 턱을 매만졌다.
“전하, 이 건에 아주 침묵하셔서는 안 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정치적으로 이 부분은 우리의 패권 추구와도 연결이 됩니다. 동영이 우리 앞에서 번국을 삼키는 전례를 남기게 되면 우리 대외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많은 국가들이 의문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 점은 이 사람도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구에 손을 대면 문제가 몇 가지 생기게 됩니다. 하나는 동방 무역의 중요한 중계 거점에 이쪽이 손을 뻗음으로써 연합왕국이 눈을 번뜩일 거란 점입니다. 가뜩이나 우리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그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단 부분이 걸립니다. 아직 우리 국력으로는 그들과 마찰을 빚어 좋을 것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동영과의 관계 악화겠지요. 통상 항의 지분을 양보하면서 우리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한 자들에게 강수를 둔다면 저들이 우리와의 공존이 어렵다는 신호를 보낼 우려가 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유구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큽니다. 단기적으로 판단해 본다면.”
승도의 이야기에 건문도 공감했다. 그는 그 말을 듣다 뒤에 붙인 단서에 한마디 물었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개입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맞습니다. 말씀하신 명분상의 이유도 있거니와 유구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곳을 동영의 손에 넘겨주게 되면 장차 우리가 대양으로 뻗어나갈 때 매우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긴 호흡으로 볼 때는 역시 우리 세력권으로 잡아두는 것이 좋겠지요. 단기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면 개입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단기간의 불편함이 만만하지 않다는 점이 걸립니다.”
“그러시다면 가볍게 간을 보시는 것은 어떠시겠습니까?”
“……?”
“동영 정부에 왜 유구를 관할하는 정부 부처가 외무성에서 내무성으로 바뀌는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를 보내는 겁니다. 일단 명목상 우리의 번국이기도 하니, 이 정도 항의에 대해 동영이나 연합왕국이 뭐라고 할 거리는 없을 겁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언을 해두면 ‘최악의 경우’에도 유구에서 우리 지분을 챙겨둘 수 있을 겁니다.”
“지분을 챙긴다?”
“예, 전하. 명목상 우리 번국임을 주장하며 불쾌감을 지속적으로 보이면 동영도 불편함을 느낄 겁니다. 그래도 병합을 강행하려 한다면 유구의 섬 일부 정도는 우리에게 쪼개서 넘겨줄 겁니다. 그게 제가 발언을 해두자는 이유입니다.”
“말만 해도 땅이 생긴다는 말이군요. 손해 볼 장사는 아니지요.”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유구에 대해 조금의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강대국에 도움을 청하려고 ‘자국의 위태로운 사정’까지 다 이야기하며 바짓가랑이를 잡았지만, 결국 그 입장을 생각하며 움직여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과거 명분만 따지던 고리타분한 신이었다면 그 요구를 따라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신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근대적인 외교에 적응한 나라였다. ‘명분’과 ‘의리’는 더 이상 신의 외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 이 건은 제가 동영으로 서신을 보내는 것으로 해결해도 되겠습니까?”
“그리 처결하세요.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더 하도록 하세요.”
“뭐 좋은 생각이라도 난 것인지요.”
“다른 건 아니고 우리 함대를 동영으로 보내도록 하세요. 서신을 보내면서.”
건문은 그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상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서다.
“기꺼이 준비하겠습니다.”
승도가 함대를 보내라고 한 이유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불쾌감’을 표시하는 것과 동시에 적절한 수준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동영이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없도록 ‘약간의 경고’를 곁들이는 의미가 있었다.
아울러 유구 쪽에도 적당히 면을 세우는 조처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의 서신에 부응하여 함대를 출동시키는 일이니까.
건문은 두 마리 토끼(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는 교묘한 수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소매를 모았다.
총판장경이 물러나자 승도는 지도를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유구. 그 땅은 과거 동에우로페의 흰 백합 일란드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일란드도 프리지아와 루시, 오스티아의 압제로부터 구해달라며 승도의 바지를 잡았었다. 그러면서 아리따운 미녀를 바치고 재물도 바쳤다. 하지만 그는 미녀와 재물만 받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그들을 도와서 득이 되지 않아서다.
강력한 열강 셋과 모두 원한을 쌓으며 일란드를 재건시키는 일은 로망스에게 절대적인 손해였다.
훗날 프리지아의 영토를 분할해 일란드에게 형식적인 공국 하나를 세워주긴 했지만, 일란드 사람들이 요구한 ‘민족 국가’의 건설은 끝까지 이루어주지 않았다.
그것이 냉혹한 정치가로서 내릴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쟁취할 수 없다면 결국 남의 손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다. 그 얼마나 비참한 처지인가. 그렇기에 나는 결코 이 자리에 안주할 생각이 없다. 내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신을 열강으로 만들고 동방을 나의 천하로 만들겠다.’
승도는 지도에서 눈을 돌린 다음 서류더미로 손을 가져갔다.
***
신의 해군은 크게 세 개의 함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한 개 함대로는 제국 전체를 방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해군력 건설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대사업이었다. 이 역사는 몇 해의 시간과 자금 투자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신의 해군은 ‘편제상’으로 세 개의 함대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실상 그 전력을 제대로 갖춘 것은 수도와 산동에 주둔한 북양 함대 하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아직 함대 꼴도 갖추지 못해 그 전력이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제국 해군’이라고 말하면 구 강주 해군을 계승한 북양 함대로 통칭되곤 했다.
이 함대는 전력상으로 보면 상당히 막강했다. 대형 프리깃함 9척에 장갑함 3척, 그 외에 기타 함정이 100여 척(태반이 건 보트 급의 초소형 함정으로, 의미는 없음)으로 동방에 주둔한 열강들의 해군력 전체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이처럼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함대를 지휘하는 사관들도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다. 서역 계통의 장교들이야 ‘용병’처럼 일하는 사람들이니 자부심을 느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지만, 군관학교를 나와 갓 사관으로 임관한 강주 사람들은 사정이 달랐다.
“함대에 동영으로 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로망스인 함장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게는 이번 임무에서 ‘전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통상적인 방문 항해 정도로 받아들여졌기에 흥분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사관들은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우리도 제국을 위해 일을 하게 되는 건가.’
‘동영 놈들에게 신의 위대함을 보여주자.’
‘섬나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다.’
그들은 흥분에 찬 눈으로 함장의 말을 경청했다.
“기본적으로 우리 함대는 신형 함정들을 다수 인수하면서 운용 요원도 모자랐고, 훈련도 부족하다. 그런 만큼 이번 항해는 ‘함’을 점검하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험 항해라고 생각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동영에 도착해서 하선을 할지는 결정이 되지 않았다. 제독 각하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기본적으로 하선이 없다고 생각하고 수병들을 단속해주기 바란다. 외교상 불미스런 일을 피하기 위한 조처이니, 이 점 각별히 유의해 주었으면 한다. 이상.”
“차렷. 각하께 경례.”
부장의 외침에 사관들은 마치 잘 훈련받은 병사들처럼 경례를 붙였다. 상당히 자유로운 방식을 가진 로망스 해군의 전통을 빌렸다고 보기에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훈련이 잘 되지 않은 사관과 선원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강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본 로망스 장교들은 ‘엄격한 상명하복’의 전통을 함대에 도입했다.
그 이유 때문에 함 내에서 계급에 대한 질서는 엄격하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였다.
함장과 부장이 사관 회의실(식당 겸용)에서 나가자 사관들은 그제야 긴장을 늦추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동영으로 간다니, 정말 희소식이군그래.”
“전쟁하기 전에 무력시위라도 하려는 걸까?”
누군가의 말에 사관들이 열기 어린 반응을 보였다.
“정말 그렇다면 동영 오랑캐 놈들을 박살내 줘야지. 나는 세상에서 동영 놈들이 제일 싫어.”
“그 해적 놈들을 혼내줄 수 있다면 전쟁이 대순가.”
“하지만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진 않아. 동영 놈들이 멍청하지도 않고 우리도 그럴 돈이 없잖아.”
사관 하나가 우스갯소리로 말하자, 몇몇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신의 해군은 명목상 ‘상당한 전력’을 갖추기는 했지만 당장 함대에 실을 포탄도 제대로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급하게 배부터 인도를 받은 탓에 포탄이 제때 인도되지 못해서였다.
물론 신의 군부가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포탄이 없는 것을 보면 사관들이 오해할 만도 했다.
“뭐 포탄을 쏠 일도 없겠지. 그렇지 않나. 우리 함만 해도 동영 것들 군함 전부를 모아서 덤벼도 흠집 하나 내기 어려울 텐데.”
한 사관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의 자신감은 그들이 탄 신예 장갑함 ‘정운’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었다.
정운과 그 자매함 두 척은 모두 5천 톤의 배수량을 자랑하는 중형 장갑함들로 통상적인 전열함에 버금가는 크기를 자랑하는 배들이었다(배수량은 전열함들의 2배에 육박).
이 군함들의 내부는 압축 목재이고, 바깥은 두꺼운 철판으로 둘러져 웬만한 대포에는 흠집도 나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로망스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4.5인치 이하의 대포는 간단히 무시한다고 했으니, 동영 정도는 겁낼 이유가 없었다. 동영에는 4.5인치 이상의 구경을 자랑하는 속사포가 없기 때문이다.
“딴은 그렇군. 우리 함의 그림자만 비쳐도 동영 것들은 기겁을 할 테지.”
사관들은 포탄 걱정이 괜한 것이라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함대는 출동 명령을 받고 여섯 시간이 지난 오후에 검은 연기를 토하며 선진에서 출항했다.
신의 함대가 선진을 떠났다는 사실은 곧 각국의 공관에도 알려졌다. 로망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의 공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은 신형 함정의 성능을 시험하고 승무원들을 훈련시키는 통상적인 시험 항해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연합왕국 공사 하워드는 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았다.
“오승도가 함대를 보낸 것이 과연 시험 항해일지 의문이오.”
공사의 말에 무관 에버튼도 공감의 뜻을 보였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훈련을 할 것이라면 포술 사격도 겸하기 위해 포탄이 도착한 이후를 골라 진행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요.”
“그렇다면 그자가 시험 항해 말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함대를 보냈다는 말인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움직이는 거라 보오?”
“쉽게 단정하긴 어렵습니다만, 무력시위의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무력시위? 누구에게 말이요?”
이곳 동방에서 신이 무력시위를 할 상대는 많지 않았다. 나라라고 해봐야 몇 없기 때문이다.
려와 동영, 유구, 그 외 몇 나라 없다. 이중 려는 신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니 정신이 나가지 않고는 여기다 무력시위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영은 통상 항의 지분을 나누면서 사이를 개선하고 무역도 다시 회복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었다. 딱히 무력시위를 할 거리는 보이지 않았다.
공사의 의문에 에버튼이 한 나라를 지목했다.
“유구 아니겠습니까?”
“유구라면 신과 동영의 이중 번국인 나라일 텐데, 거기다 무력시위를 해서 신이 뭘 얻는지가 애매하잖소.”
“아마 동영과 비슷한 방식을 취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유구를 협박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동영으로부터 얻은 것과 같은 통상 항의 지분을 취하려 할지.”
“일리 있는 말이요.”
신의 국력이 증대하면서 그 대외 무역의 규모도 증가했다. 자연히 중계무역에 들어가는 신의 물량도 증가했는데, 그 지분에서 나오는 이익을 좀 더 쪼개먹자면 유구에도 거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신의 움직임은 납득이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신의 행보는 확실히 지난 몇 해 사이의 것보다 더 과감해진 팽창주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완연한 제국 행세라. 썩 내키는 이야기는 아닌데.”
“호랑이 없는 산에서 여우가 왕 행세를 하는 셈이지요.”
에버튼이 시니컬하게 비꼬았다.
연합왕국이 에우로페에 신경을 쏟는 동안 신이 제 챙길 걸 다 챙겨가는 꼴을 보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도 적당한 조처를 취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여력이 없어 견제도 포기한 상태인데, 손쓸 방법이 있긴 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공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번에 본국에서 온 전문을 보니 본국에서 장갑함을 보내온다는 말이 있었지. 전문이 내 손에 들어온 시간을 생각하면 조만간 이곳에 도착할 거요.”
“그러면.”
“그것을 신의 목줄에 배치해둘 생각이요. 그 정도만 해두어도 일단 그 움직임은 적당한 수준으로 내려갈 테고.”
공사의 반문에 에버튼의 표정이 펴졌다. 왕국이 자랑하는 대형 장갑함들이라면 한 척만 배치되어도 신의 해군력을 위압하기에 충분했다. 자그마치 9천 톤이 넘어가는 압도적인 괴물. 그 장갑의 외판은 신의 장갑함들이 동시에 두드려도 끄떡도 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 괴물이 목줄에 배치되면 신이 해군력을 외부로 투사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들은 창가 너머를 응시하며 신이 ‘잠깐’ 만끽하는 ‘즐거움’에 코웃음을 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