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0화. 복마전 (1)
‘우리는 에우로페의 평화를 위해 불안 요소를 줄여야 합니다.’
이 말은 일란드의 운명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한 프리지아 대사가 남긴 한마디였다. 강대국이 약소국의 운명을 어떻게 여기는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발언이기도 했다.
유구의 사절로 방문했던 수리는 국제 외교의 그런 잔혹함에 밝지 못했다. 그는 그저 좋은 말로 타이른 신의 고관으로부터 ‘일’이 잘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총리아문 명의의 ‘문서’ 한 장을 받아왔다.
유구가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데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문서였는데, 국제 사회에서 이런 애매한 약속은 사실 별 구속력을 가지지 못했다.
공식적인 국가 간의 조약도 ‘적당한 꼬투리’를 잡아 파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세상에 종이 쪼가리의 가치는 크지 않았다. 진정 그 문서가 힘을 가지려면 유구 스스로가 강해져야 했다.
수리가 문서를 가지고 돌아오자 부친이 반색하며 그를 맞았다.
“이야기는 잘된 것이냐?”
“신에서 우리를 도와준다고 이야기는 했습니다. 그쪽에서도 조공국 하나가 사라지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으니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수고했다.”
수리는 그의 이야기에 흡족해하는 부친의 얼굴을 보며 자신이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저녁이 다 되자 수리는 부친과 함께 왕궁에서 여는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교자에 올랐다. 한 해에 한 번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로 여기에는 관리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동반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만찬은 신하들의 얼굴을 보려는 목적보다 ‘은밀하게’ 신과의 접촉에서 거둔 성과를 보고 받으려는 의도가 컸다.
교자가 교외에 위치한 왕궁에 이르자 작달막한 키의 동영 병사 몇이 총검으로 길을 막으며 고압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만찬 행사로 오는 길이요.”
그들은 잠시 명단을 확인하고 이름과 관직을 물어본 다음에 ‘통과’를 허락했다. 재번봉행의 관리 아래 놓인 유구 조정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수리 부자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궁으로 들어섰다. 궁은 오랜 세월 동안 제대로 보수가 되지 않아 군데군데 금이 가고 단청이 벗겨져 보기 흉한 부분이 여기저기 보였다. 재번봉행에서 왕실 예산을 대폭 삭감한 여파였다.
그나마 동영 정부 내무성 관할로 들어가면 품위 유지비를 올려준다는 말이 있긴 했지만, 그래봐야 궁을 유지할 비용도 되지 않았다. 이 어려운 처지에 만찬이라도 열 수 있는 것은 신하들이 비용을 각출해서 참석한 덕이지 왕실의 사정이 넉넉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늙은 내관을 따라 궁의 회랑을 걷는 동안, 수리 부자는 곳곳에 있는 동영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번 행사’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있지 않을까 철저히 감시하려는 듯 정원에도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일국의 왕궁에 외국 병사들이 들어와 군홧발로 정원을 밟고 서 있다는 것은.
수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덧 그들 부자가 내전에 이르렀다. 내전 안에는 수십 명의 관리와 그 장자, 그리고 몇 명의 외국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석에는 왕이 앉아 있었는데 몹시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만찬’에서 ‘신과의 협상’에 대한 은밀히 언질을 올리는 날인데, 왕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수리의 부친은 내전으로 들어서며 앉아 있던 외국인들을 얼른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외국인들의 신분이 심상치 않았다.
재번봉행 다카하시와 그 휘하에서 유구 조정을 휘어잡고 있는 유구 군 사령관(유구 주재 동영 육군 사령관) 곤도, 그리고 이곳 유구의 경제를 장악한 동영 출신 상인 기도. 하나하나의 면면이 이 유구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만찬에 참석했으니 왕의 심사가 편할 턱이 없었다.
수리 부자가 자리에 앉자 왕이 잔을 들며 말했다.
“올해도 우리 왕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애써주신 여러 신료들과 재번봉행 각하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새해에도 모두 왕국의 밝은 내일을 위해 힘써 주셨으면 합니다. 자, 한 잔씩 듭시다.”
왕이 잔을 먼저 입에 가져가자 장내의 모두가 잔을 비웠다. 술이 한 순배 돌자 덕담이 오가고 이야기가 슬슬 오가기 시작했다.
관리들이 옆에 앉은 자들과 몇 마디씩 나누자 왕도 눈치껏 상석에서 일어나 아래에 있는 신하들에게 다가가 술을 부어주며 한두 마디씩 끼었다.
물론 수리 부자와 자연스럽게 접촉해 예의 ‘신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기 위함이었다. 왕이 관료 몇 사람의 상을 돌며 술을 따라주던 것을 보던 재번봉행이 입을 열었다.
“전하.”
그의 부름에 왕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유구의 신료 분들과 친교를 나누시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저희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다카하시의 말에 곤도가 피식 미소를 흘렸다. 약소국의 군주에 대한 경멸 어린 웃음이었다.
왕은 소맷자락 아래로 손가락을 가볍게 떨다 애써 인상을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리하지요.”
왕은 수리 부자의 상 앞에서 돌아서서 재번봉행의 상 쪽으로 걸어갔다.
‘전하.’
국가의 국체를 보존하기 위해 재번봉행 따위에게도 고개를 숙이는 왕의 모습을 보는 수리 부자의 표정은 참담했다.
그들은 분기를 감추기 위해 술잔을 비웠다.
왕이 비참한 표정으로 재번봉행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입을 여는데, 내전 안으로 장교 하나가 들어왔다. 유구 군(유구 주둔 동영군) 장교였다.
그는 곤도 앞에 부복하며 외쳤다.
“각하, 큰일이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이, 이양선이 나타났습니다.”
“이양선이?”
곤도는 의아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양선이란 말을 들은 수리 부자는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설마? 신의 함대가 나타난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자 왕도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양선. 외부의 존재가 이 유구에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멸망으로 치닫는 이 왕국의 운명에 뭔가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 왕은 기대 어린 눈으로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곤도는 급히 상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외투와 장검을 챙겨 내전을 빠져나갔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내전 안에 잠시 술렁임이 번졌다.
그것을 느낀 다카하시가 한마디 했다.
“그리 놀랄 일은 없소이다. 우리 동영이 유구에 주차시킨 군대가 얼마인데 위험한 일이 생기겠소이까? 염려하지 말고 찬찬히 만찬을 즐기시오.”
그는 평정을 가장하며 술잔을 들었다.
하지만 항구에서 일어난 사태는 그의 생각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말을 타고 항구로 달려온 곤도는 자신의 앞에 보이는 이양선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믿기지 않는 괴물’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저 괴물은 뭔가?”
“바, 방금 다짜고짜 항구에 기항한 배입니다. 감히 경고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항구의 방어를 책임진 유구 장교가 변명하듯 말했다.
곤도는 그를 책망하려다 자신도 대포를 쏘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추정 배수량 9천 톤. 괴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하는 풍모와 위엄이 있었다. 온통 새카맣게 칠해진 철갑선의 마스트에는 포효하는 사자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여, 연합왕국 군함이었나.’
곤도는 차라리 대포를 쏠 엄두도 내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배의 근처에 대포를 쐈다간 동영이 절단이 났을지 모른다. 물론 저 괴물이 대포를 맞는다고 끄떡할 것 같지도 않았지만.
위풍당당한 거함의 정체는 연합왕국이 새로 취역시킨 최신예 장갑함 중 하나인 ‘흑 태자’였다. 중세 시대 왕국 전쟁 영웅의 별명을 따서 붙인 이 거함은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전투함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바다에 군림하는 해양 제국의 상징이요, 위상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였다.
곤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
“닻을 내렸습니다, 각하.”
“수고했네.”
유명한 작가, 드레이번의 ‘붉은 까마귀’를 읽고 있던 장교가 책을 덮었다. 그는 두툼한 손으로 책상을 짚고 일어섰다.
그의 이름은 라함. 이미 제독 승진이 예정된 자로 해군에서도 촉망받는 유능한 대령이었다.
“하선은 어찌할까요.”
“그건 이곳 현지 관료들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도록 단출한 규모로 하도록 하지. 부장은 배에 남고 해병 위관과 해병 스물만 나와 같이 하선하도록 조처하게.”
“예, 각하.”
부장(선임 위관)이 경례를 하고 물러가자 라함은 함장실의 창 너머로 보이는 항구의 정경을 훑었다. 어촌 특유의 생선 비린내보다는 퀴퀴한 냄새가 가까이서 느껴졌다.
그는 바깥을 슬쩍 보다 함장실을 나섰다.
대령이 복도로 나오자 이미 그 방 앞에 와 있던 해병 위관이 경례를 하고 그 뒤에 섰다.
갑판으로 올라서자 탁 트인 시계가 그를 맞았다. 주변의 항구에는 온통 인파로 넘치고 있었다. 이 놀라운 ‘장갑함’의 출현에 놀라 구경을 나온 자들인 듯싶었다.
대령이 눈짓을 하자 수병 몇이 보트를 준비했다. 그들은 보트가 수면 아래에 떨어지자, 줄사다리를 내렸다. 준비가 끝나자 대령이 부장에게 말했다.
“만에 하나 불상사가 있을 경우에 대비해서 차석인 자네가 지휘권을 행사하도록 하게. 그에 대한 문제는 내가 책임지지.”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지.”
대령 일행이 보트에 탑승했다. 인원이 제법 많다 보니 그들은 두 척의 보트에 나누어 탔다.
두 보트가 천천히 노를 저어 뭍에 다가오자 인파 사이에 있던 동영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정지! 정지!”
그들이 백기를 흔들며 외쳤다.
그 외침에 응하여 대령이 손을 들어 노를 멈추게 했다.
“무슨 말인지 통역해보게.”
그 말에 통역이 대령을 보고 말했다.
“우리보고 정선을 하랍니다.”
“겁을 먹었나 보군. 그 생각대로 해주지.”
라함은 이곳이 동영의 관할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켜 좋을 것이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아문에 기항하여 석탄을 보충 받고 항해를 하면서 이 ‘유구’의 가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그래서 선진으로 가는 길에 구태여 유구를 거쳐 가도록 침로를 잡았다. 해군성에서 선진까지의 항해 일정만 잡아두었을 뿐, 언제까지 도착하라고 명령을 내려 두지는 않았던 터라 문제될 것은 없었다.
라함은 느긋하게 보트 위에서 ‘대화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뭍에 닿기 전에 멈추라고 말한 것은 오르기 전에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촌스러운 군복을 입은 동영인 하나가 병사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왕국의 아름다운 ‘양모’를 가져다가 저리 형편없는 의복을 만들어낸 솜씨는 한숨이 나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일단 대화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연합왕국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상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대령은 통역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연합왕국 해군입니다.”
“왕국과 우리 동영은 수교를 맺은 사이인데 군함이 통보도 없이 들어온 경우는 무슨 무례입니까?”
“사정이 조금 있습니다. 항해 도중에 식수와 야채가 떨어져서 그것을 얻고자 방문한 겁니다.”
대령은 적당한 핑계를 댔다. 상대가 장갑함에 올라 실정을 살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구실로는 괜찮았다. 과연 상대는 그 변명에 납득한 듯했다.
“사정이 그렇다면 이해해드려야지요. 하선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령은 짧게 예를 표하고 수병들에게 노를 저으라고 말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가 먹힌 것은 본질적으로 왕국과 동영의 국력 차이와 장갑함이 주는 현실적인 위협 때문일 것이다.
대령이 뭍에 내려서기가 무섭게 동영의 지휘관은 그에게 야채와 물을 제공할 테니 빨리 유구를 떠나달라고 말했다.
대령은 그 요구에 흔쾌히 동의하면서 ‘식수와 야채’를 보충할 동안 잠깐의 관광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서로가 감정이 아주 불편한 적대국이 아닌 이상 그런 요구는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었다.
동영 지휘관은 몹시 고민하는 얼굴을 하다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동영 쪽의 동의를 얻어 유구를 돌아볼 기회를 얻은 대령은 해병 위관을 끼고 시내를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
서역인들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도시를 둘러보는 동안, 만찬을 마친 유구 관리들도 항구로 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앞에 떠 있는 상식을 초월한 거함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수리도 그 괴물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신에서 보고 온 군함들도 대단했지만 저 압도적인 풍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저토록 거대한 철선을 만들 수 있다니. 세상에는 신보다 대단한 대국이 있구나.’
유구는 중계 무역의 거점으로 비교적 정보가 많이 도는 곳이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서역의 군함들이 오는 일이 적어 그 힘과 능력에 대해 또렷하게 아는 자들이 드물었다.
수리는 이날 처음으로 세계 최강대국이 가진 힘의 편린을 보고 전율했다.
“정말이지 양이들의 문물은 놀랍고도 놀랍다. 우리에게도 저만한 힘이 있었다면 전하께서 그런 굴욕을 겪지 않으셨을 것인데.”
부친의 말에 수리도 공감했다. 그는 이 전율적인 힘의 실체를 보고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아버님.”
“왜 그러느냐.”
“양이들이 이렇게 대단하다면 신보다 차라리 저들의 힘을 빌려 독립을 지켜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들이 불현듯 양이들의 힘을 빌리자고 말하자 수리의 부친은 조금 당황한 얼굴을 했다.
“양이들의 힘을 말이냐? 하나.”
“보다 확실한 패가 있다면 그쪽을 미는 게 상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이들은 무도하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수리의 부친은 양이들의 무도함을 입에 올렸다.
사실 유구에서 양이들은 ‘포악함’의 대명사로 통했다. 동영이 얼레빗이라면 양이들은 참빗에 비유될 만큼 악랄한 족속들이었다.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파는 ‘국가’인 유구에서 그 이익의 태반은 서역 상인들이 챙겨갔다. 그들은 압도적인 정보와 자본을 바탕으로 동영 상인들을 후려쳐 싼값에 설탕을 매수해갔고, 동영 상인들은 다시 유구 농민들을 쥐어짰다.
그 먹이사슬의 아래에 놓여 신음해온 유구 사람들로서는 양이들을 신뢰한다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힘만큼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마당에 무도함을 따져 무얼 하겠습니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지요.”
“네가 신의 도움을 얻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좀 더 확실한 힘을 얻고 싶습니다. 신이 동영보다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 양이들만큼 강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수리의 말에 부친이 수염을 매만졌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신은 대국이지만 본질적으로 육상 국가다. 해양에는 옛날부터 관심이 적었다. 도움을 준다고 해도 ‘그 미미한 관심’의 범위 안에서 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 한다면 아들의 말처럼 확실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무도함을 따지기에 앞서 유구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부친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야기를 해보는 정도라면 나쁘진 않을 성싶다. 하면 네가 은밀하게 양이들에게 선을 대어 보거라. 이야기가 괜찮다면 내 전하께 한 번 아뢰어보마.”
“예.”
수리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앞에 보이는 ‘서역의 위대한 힘의 상징’을 보았다. 저 힘만 등에 업을 수 있다면 동영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반드시.
그는 주먹을 쥔 다음 서역인들이 향했다고 들은 도시 쪽을 응시했다.
그곳에 유구를 구할 희망이 남아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