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화. 기습 (1)
승도의 뜻에 따라 각 지역의 총독들과 지휘관들은 은밀하게 단련 소집에 대한 준비를 진행했다. 대놓고 준비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왕국의 경계심을 높일 수 있었다.
승도는 왕국 공사에게 의례적인 항의 서한을 보내고, 동시에 상승군 지휘관들에게 일련의 지시를 내려 보냈다.
정확히 지정된 일시에 아문과 선진의 연합왕국 군대를 타격하라는 것이 그 명령의 요체였다.
비단 공격 명령은 군에만 내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문에 남은 방들에도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그 명령이란.
“저탄소를 파괴하고 항구와 도시에 불을 지르라는 명이 내려왔다.”
방주는 조정에서 내려온 명령을 수하들 앞에서 입에 담았다. 이건 왕국과 전면전을 치르기로 결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지시다.
“이 명령을 따르면 형제들 여럿이 죽을 겁니다.”
방주의 소집을 받고 온 유협 몇이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지난번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양적들은 수틀리면 우리를 개돼지처럼 죽이고도 남습니다.”
“방주님, 모른 척하시지요.”
“방주님.”
“하나 명을 거부하면 우린 죽은 목숨이지. 그걸 모르나?”
“염병할.”
“관에서 대가 없이 시킨 일은 아니야.”
“대가가 크단 말씀입니까?”
“그래.”
방주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얼마나 약속되는 겁니까?”
“은자 오만 냥.”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평범하게 일한다면 평생을 모아도 그 이자조차 만져볼 수 없을 돈이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
방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정에서 보내온 약속된 증서를 보여주었다.
“어떤 것 같은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해야겠지요. 조정의 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좋아. 그 전에 이것부터 하나씩 받도록 하게.”
방주는 품에서 시계 여러 개를 꺼냈다. 그것은 모두 이번 작전을 위해 관에서 특별히 하사한 것이었다.
은으로 백 냥을 호가는 물건들이었지만, 단순한 상급으로 준 것은 아니었다. 정확한 시간에 동시에 목표를 타격하여 ‘연합왕국’에 손실을 제대로 입히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건 시계가 아닙니까?”
“맞아. 관에서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쓴 걸세. 자네들이 ‘정확한 시간’에 동시에 목표를 타격해야 이번 지시도 제대로 수행될 테니까.”
방주의 말에 유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명은 언제 수행하게 되는 겁니까.”
방주는 자신이 받은 명령문을 슬쩍 훑고는 입을 살짝 열었다.
“오늘 저녁 6시. 양이 놈들이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에 행동을 개시하면 될 것이네.”
꿀꺽.
명령을 받은 당일에 바로 수행하라니. 뭔가 엄청나게 빠듯한 지시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승도도 깊게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지나치게 신중하게 일을 준비할 경우, 말이 새어나갈 위험이 높았다. 연합왕국의 눈과 귀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정보라도 새어 나갔다간 일이 실패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에게 역공의 여지를 줄 수도 있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조정의 명이야. 시킨 대로 해보긴 해야 하지 않겠나.”
“으음.”
“자, 전할 말은 모두 전했네. 모두의 무운을 빌도록 하지. 살아서 다시 보도록 하세.”
“예, 방주님. 방주님께서도 부디 보중하십시오.”
“그러지. 모두 살아서 보세.”
방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형제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범죄자 집단이라 욕을 먹긴 했지만 그들은 모두 동향 출신에 끈끈한 의리로 뭉친 형제와 같은 사이였다.
그들은 거대한 국가라는 집단의 이름에 내몰려 죽음의 위기를 불사해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에 쓴웃음을 지으며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곧, 어두운 창고에 모여 있던 유협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저녁놀이 내려앉은 도시가 보였다. 총독은 파이프를 입에 문 채 닻을 내린 상선들을 지켜보다 자신의 책상 앞으로 돌아섰다.
책상 앞에는 여러 개의 의자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아문의 육해군 장교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총독은 파이프를 손가락으로 잡은 다음 회백색 연기를 훅 불어내고는 장교들을 보았다.
“아문이 마비된 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소이다. 바로 여러분의 호언장담 덕분이요. 신에 적당히 위협을 가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주장한 어느 분들의 말씀을 믿은 결과는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요.”
“면목이 없습니다, 각하.”
“면목이 없다는 소리로 끝날 문제가 아니잖소. 지금 아문은 완전히 빈사 상태요. 그걸 알기는 하는 거요?”
총독은 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바닥을 ‘땅’ 하고 구두로 굴렸다.
그 소리에 장교들이 움찔했다.
“지금 우리 상인들은 항구에 일할 사람이 없어 손만 빨고 있소이다. 여송에서 사람을 들여와도 인부가 턱없이 부족하단 말이요. 어디 그뿐인가? 내일이라도 저탄소와 도시의 고용인들로 일하는 신의 노동자들이 빠져나간다면 아문은 ‘마비’ 수준을 넘어 숨이 막히고 말 거요. 그런 판에 한가하게 여러분은 엉덩이나 붙이고 있으니.”
총독은 질책을 쏟아내고는 파이프를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각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신에 적절한 타협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공사에게 전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지난번에 동영의 편을 들어준 것 때문에 이 난리를 겪었고, 그것도 모자라 신의 노동자들을 떼로 죽였소이다. 신이 머저리도 아니고 여기서 우리 타협안을 받아들이겠소?”
“하지만 신이 우리와 진정 대결을 바라지 않을 것 아닙니까? 신의 국력으로 우리와 대결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대결보다는 타협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신의 새 지도자인 강주 왕은 그리 무모한 자가 아닙니다. 적절한 양보를 한다면 저들도 협상에 응할 생각이 있을 겁니다.”
“경들의 말이 옳다 해도 우리는 타협을 할 처지가 못 되오. 본국에서 결정한 정책을 우리가 어떻게 멋대로 바꾼단 말이요.”
총독은 제 속 편한 소리만 하는 장교들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연합왕국 본국은 이미 국가 정책으로 동방 문제에 대한 방안을 결정한 상태였다. 신에 대한 적절한 압력을 통해 로망스의 눈을 동방에 붙들기로.
기본 골자 하에서 공사와 해군은 기왕 하는 것 ‘유구’까지 먹자고 욕심을 부렸고 사달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서면 정부의 기본 방침이 무너질 판이다.
타협하고 싶어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딜레마였다.
총독의 한마디에 장교들이 입을 다물었다. 총독은 일을 벌인 군부에서 정작 이 문제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며 바람이나 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엄청난 굉음과 동시에 대지를 울리는 진동이 들렸다. 당황한 장교들이 벌떡 일어섰다. 총독은 급히 창가로 다가갔다.
그런 그의 눈에 멀리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이 보였다. 새까만 연기를 동반한 구름은 ‘저탄소’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그의 입에 물려 있던 파이프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느님, 맙소사.”
총독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도시 곳곳에서 새카만 연기가 연달아 치솟았다.
“방화다! 방화다!”
도시는 폭발을 신호로 혼란에 휩싸였다. 장교 중 몇몇은 그 광경을 보더니 얼른 밖으로 달려 나갔다. 헌병과 육군, 기마경찰을 지휘해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남은 장교들은 총독의 곁에 서서 그 어마어마한 파괴의 현장을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각하, 이건 결코 우연히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그건 나도 눈이 있어서 알고 있소이다. 신의 보복이겠지.”
지금까지 연합왕국을 상대로 이런 무모한 도발을 걸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잘난 로망스 제정조차도 연합왕국을 상대로 ‘선공’을 가한 적은 전무했다.
한데, 이 미개한 동방에서 왕국이 선공을 맞았다. 그들이 몇 번을 두드려도 그저 맞고만 있을 거라 생각했던 하찮은 상대에게.
“각하, 당장 본국에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이건 전쟁입니다.”
“그리하시오. 아울러 아문 내에 주둔한 육해군에 경계령을 내리고 시민의 소개를 준비하시오.”
“예, 각하.”
총독은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신의 공격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
아문에서 첫 공격이 가해지던 시각, 선진에 주둔한 연합왕국 해군 주변에서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다.
“밟아!”
조장의 명령에 승무원들은 답답하고 좁은 강철통 속에서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해도 속도는 거의 나오지 않아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통 안은 금세 열 명의 사내가 구슬땀을 흘리는 탓에 비릿한 냄새로 가득 찼다.
“냄새가 심하군. 이봐, 양형. 요즘 씻고 다니기는 하는가?”
페달을 밟던 사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 앞에서 페달을 돌리던 양씨라는 자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씻는다는 게 무슨 소린가?”
그 말에 사내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렇게 땀을 흘리는 일에 종사하면 최소한 보름에 한 번은 씻어줘야 할 판인데, 씻는다는 개념조차 모르는 자라니. 어쩐지 묵은 된장을 연상시키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했다.
사내는 치를 떨며 가급적 숨을 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며 숨을 쉬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결국 냄새를 맡지 않는 방법은 하나, 입을 벌리고 숨을 쉬는 수밖에 없었다.
조장은 그런 승무원들을 보고 혀를 차면서 잠수함에 연결된 잠망경에 눈을 가져갔다. 잠망경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보이겠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조장의 자리에서 수면 위로 올라가 있는 망원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의 좁은 시계로 표적의 위치를 확인하며 식은땀을 닦았다.
“아직 멀었습니까?”
“아직.”
조장이 짧게 대꾸하고는 코를 문질렀다. 그나마 조장은 자리가 좋은 편이라 다른 조원들보다 버티기가 좋았다. 그의 자리가 환기용으로 마련된 공기 흡입구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원들은 ‘고약한 땀’ 냄새를 참으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그들은 거의 다리에 쥐가 나도록 페달을 밟으며 조장의 입에서 ‘도착’이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조장은 다시 한 번 망원경을 본 후, 시계를 보았다. 예정한 시간보다 약간 늦은 듯도 싶어 조금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속도를 조금 더 높여라. 이대론 너무 늦어.”
“염병. 다리가 터질 것 같단 말이요.”
“그래도 밟아. 일만 끝나면 뭍에 가서 쉬지 않나.”
조장의 대꾸에 조원들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페달에 힘을 주었다. 팽팽하게 줄이 돌아가며 잠수함 후미의 추진기를 돌렸다. 회전력으로부터 동력을 얻어 잠수함은 다시 물살을 헤치며 제 속도를 냈다.
몇 분의 ‘전력 질주’가 있은 다음에야 조장의 시계에 큼직한 함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항구 안에는 마침 신의 군함들이 한 척도 없었다. 대형 프리깃들은 통상 파괴에 전념하느라, 원양으로의 작전에 유리한 위해를 기항지로 삼고 있었고, 장갑함들은 려로 모두 출격(처음엔 한 척이었지만 긴장이 높아지면서 세 척 모두 출동)한 상태였다.
덕분에 선진에 남은 군함은 모두 연합왕국 분 함대의 것이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크고 강력한 거함들이었다. 시계에 들어온 것 중 가장 작은 군함만 해도 천 톤을 간단히 넘기는 중형 프리깃이었고, 제일 큰 것은 당대 동방 최강의 전투함이라 불리는 흑 태자였다.
함정의 수는 모두 여덟. 신의 해군과 겨룬다면 간단히 그 팔을 비틀 수 있는 위험한 상대였다. 그러니 이곳에서 모두 수장시켜야 했다.
조장은 표적을 확인한 다음 작업 위치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자, 잠시 페달은 쉬도록 하고 기뢰를 장전하도록 하지.”
“이제 일할 시간입니까?”
“그래.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거야.”
조장의 대꾸에 조원들은 기쁜 얼굴을 지었다. 곧, 그들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묵직한 통을 닮은 기뢰를 앞자리로 옮기기 시작했다.
바다는 어느새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라함 대령은 배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잘 훈제된 햄과 치즈, 그리고 바삭하게 구워낸 빵에 잘 숙성된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였다.
그는 햄의 한쪽을 포크로 누른 다음, 함대 제독이 보낸 ‘주의 사항’을 읽었다. 얼마 전 아문에서 있었던 ‘사고’로 인해 신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경계를 단단히 하라는 지시였다.
그 명령 때문에 수병들은 모두 하선도 하지 못하고 배에 갇혀 지내고 있었다. 꽤나 딱한 일이었다. 하지만 제독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불만을 가진 신의 주민들이 수병들을 습격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혹은 신의 정부가.
대령은 그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렴, 그럴 리야 없을 것이다. 당장 선진에 주둔한 그의 장갑함만 생각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최강의 군함을 상대할 수단 따위는 동방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괜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하며 포크로 집은 햄을 입에 넣었다. 바로 그때 굉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폭음이 울렸다. 소리는 분명 대포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대령은 입에 넣으려던 햄을 접시 위에 놓고 급히 모자를 챙겨 함장실을 나섰다.
그가 함장실에서 나왔을 때 주변은 온통 혼란에 빠져 있었다. 선진의 양안에 배치된 포대에서 쉬지 않고 이쪽을 향해 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포탄은 정확히 함정을 노리고 떨어졌다.
콰앙!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프리깃 하나의 마스트가 모로 쓰러졌다.
“이건 도대체.”
함장은 잠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그가 멍청하게 이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있는데 부장이 그 옆에서 크게 소리쳤다.
“각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즉시 대응 명령을!”
“대응 사격부터.”
“예.”
부장이 경례를 하고 급히 움직였다.
함장은 당혹감에 찬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뒤늦게 왕립 해군도 반격을 개시했다.
백 문에 육박하는 함포를 주렁주렁 매단 전열함과 문 수는 작아도 화력은 그를 상회하는 기범선과 장갑함이 박자를 맞추어 포성을 냈다.
포격이 이어질 때마다 포대 쪽에서 화산 같은 폭발이 일었다. 하지만 전과는 기대 이하였다. 포대는 그들이 포격하기에 곤란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육상 부대가 올라가 공략하지 않고는 쉽게 무너트리기 어려웠다.
물론 이대로 포격을 해도 승산이 없진 않았다. 문제는 그렇게 교전을 지속했다간 방어력이 떨어지는 목재 군함들 태반이 굉장한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제독도 그렇게 판단을 했는지 신호기를 올렸다. 기범선에 올린 신호는 함대의 탈출을 명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후까지 남아 후미를 엄호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장갑함 흑 태자였다.
함장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지켜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각하고 지휘를 위해 함교로 향했다.
그가 함교에 올랐을 때 아군은 한창 포격을 맞고 있었다.
함장은 입술을 깨문 다음 포탄을 두드려 맞는 아군 프리깃을 보았다. 포격의 강도만 보아도 저 배에서 최소 백 이상의 사상자가 났을 거란 점은 불 보듯 훤했다.
‘빌어먹을.’
“함장님, 헌병과 거류민 쪽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포기한다. 당장 우리 코가 석 자야.”
함장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제독도 그렇게 판단했기에 철수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지금 포격을 맞으며 해안으로 다가가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더구나 이곳 선진에는 신의 대규모 육상 전력이 있었다. 철수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야만인 놈들아. 네놈들이 뽑은 건 고양이가 아니라 사자의 수염이니까.’
대령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펄럭이는 국기, 그 안에 그려진 사자가 진정으로 분노했을 때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대지는 불타고 하늘은 절망에 잠긴다. 연합왕국이 전력을 다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상대는 없었다. 로망스 제국조차도.
그러니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이 건방진 야만인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고 말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포격을 계속하도록 명령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