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2화. 기습 (2)
쏟아지는 포격 속에서도 왕립 해군은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약한 프리깃은 바깥쪽으로 빠지고 상대적으로 강한 군함들이 포격을 대신 받아주었다.
기습을 당하긴 했지만 유연하게 함대의 진형을 재편하며 공격에 대응하는 모습은 ‘세계 제일’이라 불리는 왕립 해군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공격을 당한 지 몇 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확한 대응 사격을 개시하여 전과도 올렸다. 포대에 배치된 대포 중 한 문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상대적으로 엄폐가 덜된 대포라고 하지만 그 정확도는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대세를 바꾸기엔 그들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포탄이 피셔에 명중했습니다.”
“빌어먹을!”
제독은 이를 갈았다.
현재 함대는 탈출을 위해 뱀처럼 S자 기동을 하며 순서대로 외해로 움직이고 있었다. 엄격한 훈련에 따른 고전적인 기동이긴 했지만 그렇게 해도 피해를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허를 찔린 상태에서 공격을 두드려 맞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천하의 왕립 해군이 언제 이런 수모를 겪었을까.
제독은 반드시 그 되갚음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후속하는 알프레드에 신호를 보내 잠시 행동을 멈추고 피셔를 예인하게 하게.”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함대 전체의 움직임이 멈추게 됩니다.”
“그건 나도 알아.”
제독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전장에서 내 부하를 버리고 가지 않는다. 그런 염병할 소리를 할 거라면 당장 보트를 타고 혼자 가버려. 알겠나?”
제독은 함장을 질책하고는 해군 제독의 삼각모를 눌러쓰고 함교 위에 섰다.
비처럼 쏟아지는 적의 포탄은 곳곳에서 명중탄을 내고 있었다. 몇몇 함정은 너무 많은 포탄을 맞아 움직임마저 둔해지고 있었다. 피해 상황은 심각했다.
제독은 급히 신호사관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당장 흑 태자에 전문을 보내 포대의 공격을 유도하라고 전하게. 필요하다면 항구로 되돌아가 놈들 상선을 공격해도 좋아.”
“하지만 항구에 있는 배는 대부분 우리 상선입니다.”
“그럼, 지상이라도 포격하게 시켜. 무조건 놈들 대포를 흑 태자로 돌리게 하라고 해.”
“예, 각하.”
통신사관이 신호기를 올리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제독은 망원경을 들었다. 적은 매우 정확하게 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적의 포술 능력에 감탄을 보냈을지 몰랐다.
동방의 포병 따위가 이 정도의 숙련도라니. 놀랍다 못해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포대에서 포탄을 쏘고 있는 포병들은 상승군에서 가려 뽑은 포병 요원들이었다. 그 역량은 상승군에서 제일가는 자들이었다.
제독이 망원경을 들고 장갑함이 반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군 포함 하나가 굉음을 내며 어마어마한 병기를 쏘아 보내는 광경이 보였다.
포함이 장비한 왕립 해군의 최종 병기, 콩그리브였다. 로켓이 쇳소리를 내며 지상을 향해 날아갔다. 그 포탄은 비교적 정확하게 포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제독은 그것이 포대에 닿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로켓은 이내 포대에 미치지 못한 곳에 떨어지며 폭음을 냈다.
‘무기만 낭비했군.’
제독은 입맛을 다시며 장갑함에 기대를 걸려 했다. 사실 그 외에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부관이 큰 소리로 말했다.
“각하, 적의 포격 정확도가 떨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저길 보십시오.”
부관이 손을 들어 미사일이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제독의 눈이 살짝 커졌다.
“백린을 쏘았군!”
“맞습니다.”
제독은 그 임기응변에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포함이 쏜 콩그리브에는 백린이 장비되어 있었다. 백린은 포대 앞에 떨어지자마자 무서운 연소반응을 보이며 새까만 연기로 시계를 흐렸고, 그 바람에 포격의 정밀성을 크게 해쳤다.
최소한 몇 분의 안전은 기대해 봄직했다.
제독은 그 생각을 해낸 포함 함장을 칭찬하려 했다. 하지만 이 발상은 그의 것이 아니라 오승도의 것이었다. 포함 함장은 그저 친하게 지내는 상승군 장교들의 입을 통해 ‘콩그리브’에 백린을 실어 연막으로 쓰는 수법을 배워 응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왕립 해군은 포함의 임기응변으로 잠시간의 시간을 벌었다. 덕분에 만신창이가 된 프리깃 피셔가 탈출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피셔와 알프레드가 비교적 넓은 외해로 빠져나가자 제독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만약 피셔가 격침당했다면 가뜩이나 움직이기 불편한 함대의 기동에 제약이 생겨 탈출이 더 어려워질 뻔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부하 수백을 적지에 남기고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류민과 헌병도 보호하지 못하는 판에 아군 수병까지 지키지 못하는 것은 굴욕 중의 굴욕이었다.
두 함정이 항구 밖으로 무사히 나간 것을 확인한 제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함정들에게 그 뒤를 따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가 신호를 확인하고 함대의 기동을 지휘하려던 순간이었다.
별안간 항구 밖에서 굉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엄청난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거의 걸레가 되어 겨우겨우 생명을 부지해서 기어나갔던 아군 프리깃 피셔가 급속히 수면을 향해 기우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제독은 뒤늦게 이 광경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대포인가?”
“기뢰 아니겠습니까.”
뒤늦게 부관이 그 가능성이 있는 무기를 입에 올렸다. 제독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놈들이 기뢰를 설치하는 모습이 보였을 것 아닌가. 항구 밖을 수시로 초계를 했지만, 놈들이 기뢰를 부설하는 기미는 보이지도 않았어!”
제독이 격노했지만 ‘무언가’가 그들의 함정을 침몰시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뢰 외에는 달리 생각할 무기가 없습니다.”
“헛소리. 놈들이 구매한 기뢰가 계류식(고정된 기뢰)이라면 배에서 설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야. 필시 멍청한 놈들이 화약고에서 폭발을 일으킨 거다.”
제독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계류식이라면 관리가 까다로워 신무기에 익숙하지 않은 신이 쉽사리 사용하기 어려웠다.
부관도 그 말을 타당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제독도 이내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콰앙!
피셔를 예인했던 알프레드마저 굉음을 일으키더니 급속히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한 척이라면 몰라도 두 척이 같은 이유로 침몰할 수는 없었다.
제독은 자신의 상식이 틀렸는지 의심해 보기까지 했다.
‘믿을 수가 없군. 신의 머저리들이 계류식 기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우리 눈을 피해서?’
그는 아연실색하면서 위기를 느꼈다. 정말 그렇다면 항구에서의 탈출은 위험했다. 탈출을 할 침로 상에 적이 기뢰를 촘촘하게 매설했다는 반증이니까.
“당장 보트를 내리게 해.”
“보트를 말입니까? 하지만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하게. 보트를 앞에 보내서 기뢰가 있다면 걷어내게 해야지.”
제독의 부연 설명에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곧 함대는 움직임을 멈춘 채 보트를 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포격이 쏟아지는 와중에 함대의 움직임을 내리고 방어력이 빈약한 보트를 내린다는 건 손해를 각오한 행동이었다.
보트들은 느린 속도로 항구 바깥으로 향한 다음 선원들이 하나씩 내렸다. 그들은 다른 보트로 옮겨 탄 다음 빈 보트를 노로 슬슬 밀며 자신들의 앞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긴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멍청한 짓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것이 최선이었다.
기뢰라는 병기에 대해 대응할 방법으로 이것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보트들이 부지런히 기뢰를 찾아 움직이는 동안에도 함대는 무수한 포탄을 두드려 맞았다. 급기야 전열함 하나가 엄청난 포탄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좌초하고 말았다.
피해는 상상한 것 이상으로 커지고 있었다. 모두가 생각지도 못할 염병할 기뢰 탓이었다.
제독은 이를 갈다 보트 쪽에서 백기를 흔드는 걸 보고 재빨리 말했다.
“보트가 있는 침로 상에는 기뢰가 없는 것이 확인되었다. 모두 돛을 올리고 다시 탈출하라고 전하게.”
“예, 각하.”
제독은 망원경을 들고 머나먼 육지 쪽을 보았다. 아마 이 판을 만든 빌어먹을 놈은 즐거운 얼굴로 이 참극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놈의 면상에 대고 침을 뱉어주고 말리라. 제독은 다짐하며 통신사관이 신호를 올리기를 기다렸다.
***
승도는 망원경을 들고 탈출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연합왕국 해군을 보았다. 적이긴 하지만 언제나 탄복이 절로 나오는 상대였다. 바다에서 정면으로 싸운다면 저들의 적수가 될 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해군을 모은다고 해도. 그것이 왕립 해군이란 이름에 실린 무게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저들은 왕자가 아니라 살고자 달아나는 가련한 도망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승도는 보트를 항구 밖으로 보내며 ‘기뢰’를 찾는 적을 바라보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육상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왕국 거류민들의 거주지에 헌병이 단단히 방어선을 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한 개 중대 규모도 되지 않는 상대입니다. 포병을 동원해 으깨고 들어간다면 쉽게 제압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저들은 해군만 잡으면 저절로 우리 손에 들어올 포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질을 해치면 그만큼 우리의 협상력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상승군에 명을 내리겠습니다.”
“예, 전하.”
“양이들을 포위한 채로 다가서지 말라 전하세요. 도전해오는 자들은 죽여도 무방하지만 그 외의 불필요한 희생은 금지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명하신 대로 전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승도는 거류지 쪽을 둘러싼 상승군의 검은 군복들에 시선을 주는 대신 다시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그사이 왕립 해군은 기뢰를 제거했다 확신을 했는지 군함들이 일렬로 서서 바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준비한 기뢰는 저들이 생각한 기뢰와 상당히 다른 종류였다.
‘우리가 준비한 기뢰는 장대 기뢰다.’
승도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부분이 저들의 패인이라고 생각했다. 장대 기뢰는 장대에 기뢰를 달아 군함에 접촉시켜 폭발시키는 종류의 무기로 사거리가 매우 짧은 근거리 병기에 속했다.
그래서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꽤나 부적합한 무기였다.
하지만 이것을 사용하는 주체가 잠수함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잠수함은 들키지 않고 군함에 접근하기 수월했다.
그 상태에서 장대 기뢰를 배의 측면에 접촉시킨다면?
그걸로 끝이다. 기뢰는 한 방으로 군함을 잡도록 만들어진 최강의 병기니까. 설령, 잡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선체에서 가장 약한 하부에서 일어난 폭발만으로도 군함은 치명타를 면하기 어려웠다. 반신불수가 되면 2차 공격으로 잡아먹으면 그만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장대 기뢰를 장전한 채 도사리고 있는 잠수함들이 있었다. 왕국 함정들은 그 방향으로 정확히 움직이고 있었다.
몇 분 후, 최초의 전열함 하나가 잠수함들이 매복한 곳에 다다랐다. 승도는 망원경을 들고 서서히 어둠이 짙어지는 저녁 바다에서 일어날 ‘참극’을 기다렸다.
“보내!”
조장의 명령과 동시에 기뢰를 날리는 역할을 맡은 조원이 페달을 밟는 자세로 엉덩이를 길게 뒤로 빼며 장대를 힘껏 밀었다.
기뢰를 미는 조원이 불편한 자세로 기뢰를 발출하자 그 뒷자리에 있던 자들이 그 뒤로 막대를 건넸다. 장대 기뢰의 사거리를 늘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들은 장대 기뢰 뒤에 막대를 덧댄 다음 앞으로 더 밀어냈다. 이것으로 거의 이십 미터가 넘는 사거리를 낼 수 있었다. 잠수함이 안전한 상태에서 적함을 타격할 수 있는 ‘최상의 거리’였다.
기뢰가 적함의 동선 앞에 보내지자 조장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조원들이 그 신호를 보지 못하고 페달을 계속 밟았다.
조장이 급히 입을 열었다.
“그만. 기다려.”
그의 명령에 조원들은 심호흡을 했다. 잠망경 너머로 적함이 다가오는 것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조장이 시기를 가늠했다. 그는 심호흡을 하다 크게 외쳤다. 그 어조는 짧고 단호했다.
“쑤셔!”
명령과 동시에 기뢰를 쥔 조원이 마지막 힘을 다해 기뢰를 잠수함 밖으로 밀었다. 기뢰가 떠남과 동시에 승무원 전원이 양손으로 양 벽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자세였다. 몇몇은 이를 악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은 조금 전에 적의 전투함 하나를 잡으며 기뢰의 폭발에 휘말리며 한차례 쓴맛을 보았다. 한 번 호된 맛을 보고도 대비하지 않는다면 동물과 다를 것이 없었다.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충격파가 밀려왔다. 폭발 에너지는 공기보다 물에서 전달력이 좋아 잠수함을 뒤흔들 만큼의 충격량을 전해왔다.
잠수함은 폭풍에 휩쓸린 조각배처럼 미친 듯이 진동했다. 어찌나 그 충격이 컸는지 조원 하나는 앉은 자리에서 수십 센티를 튕겨 올랐다가 소중한 부분이 철제 페달과 부딪쳐 끔찍한 비명을 토하기도 했다.
“이런 자라 같은!”
욕설과 함께 모두가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그 절규에도 미친 바다는 그들의 조각배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위아래로 흔들리고 좌우로 흔들렸다. 그 통에 모두가 이리저리 밀리고 움찔거리며 달싹거렸다.
충격은 십여 초간 잠수함을 흔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를 한 덕에 머리가 깨지진 않았다. 처음 기뢰를 쓸 때는 그 충격에 휩쓸리면서 조장의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흘렀었다.
조장은 충격이 가라앉자 잠망경으로 눈을 가져갔다. 그러곤 잠시 어둑해진 시야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서역 대선을 또 하나 잡았다.”
그의 말에 조원들이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와’ 소리를 냈다.
다른 적도 아니고 동방을 덜덜 떨게 한 서역 무력의 상징인 양선을 잡았다. 이건 대대손손의 자랑거리였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양선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것도 한 척도 아니고 벌써 두 척이나.
평범한 군함으로 잡으려 시도했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그저 그런 정크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지난 전쟁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몸으로 보여준 바 있었다. 그렇기에 잠수함은 진정 위대한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새삼 자신들이 얼마나 뛰어난 군함에 타고 있는지 절감했다. 이 배는 신의 선물이었다. 하늘이 신을 지키라고 내려준.
“서역 대선을 둘이나 잡았다니. 이러면 전하께 크게 상찬을 받겠군요. 하하.”
“물론. 당연한 말이야. 상급이 아니라 벼슬이 내려질지도 모르지. 자네도 앞으로 나리나 대인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를 일이야. 혹시 아는가?”
“하하. 거 기분 좋은 말씀인데요.”
“자, 두 놈 잡은 기분은 그만 내고 한 발 더 장전하자고. 자잘한 놈들을 잡는 것도 좋지만 큰 놈을 잡아야 하지 않겠나? 마무리는 크게 하자고.”
조장의 말에 조원들이 키득거렸다.
“큰 놈 좋지요. 그거 잡으면 상급이 세 배로 나오려나요.”
“잡기만 하면 세 배가 아니라 열 배도 나오겠지.”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장갑함조차 먹이로 보았다. 연달아 승리를 거두며 자신감을 얻은 덕이었다.
적은 자신들을 보지 못했고, 반면 그들은 적을 연달아 잡아냈다. 이렇게 쉬운 싸움도 없었다.
잠수함 승무원들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조원들이 웃고 있는데 별안간 충격음이 잠수함을 흔들었다.
“반대편의 친구들이 한 척 잡은 모양이군.”
“그런 것 같군요. 우리도 분발해야겠습니다.”
그들은 폭발음을 잠수함의 기뢰가 낸 전과로 간주했다.
조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망경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아마 방금 잡은 놈의 뒤를 따르던 양선이 침몰한 것이리라.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뭐야?’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침몰했다고 생각한 양선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양선은 다시 보트를 내리고 있었다.
“옆 친구들이 한 놈 잡은 게 맞습니까?”
조원 하나가 눈치도 없이 묻자 조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빗나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양이들이 종선을 띄웠어. 아까처럼 기뢰를 다시 찾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운수 더럽게 되어버렸어. 염병할, 자라 새끼들.”
저 양이들은 기습을 당하고도 일사불란하게 반응을 보인 괴물 같은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기뢰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공격 기회를 잡기는 더 어려울지 몰랐다. 자칫하면 그 반격에 당할 수도 있었다.
불길한 공기가 잠수함 안을 맴돌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