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53화 (353/425)

제353화. 기습 (3)

왕립 해군은 지금까지 어려운 싸움을 수도 없이 치렀다.

로망스, 우스만 등 수많은 적대국을 상대로 불리한 전장도 가리지 않고 들어가 교전을 벌였고, 그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를 따냈다. 패배한 전투도 물론 없진 않았다.

그 패배에서 잃은 함정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 척 혹은 두 척을 잃는 것이 고작이었다. 선원 손실 역시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벌써 세 척의 함정이 격침당했고 피해는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기습이라곤 해도 왕립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 짜증과 분노의 무게만큼 대령은 화풀이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의 함정을 위협할 병기는 없었다. 기뢰? 그건 있는 곳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령은 부장에게 큰 소리로 명령했다.

“표적은 전방에 있는 부두다. 놈들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한 방 날리도록!”

그의 명령이 내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포가 부두를 겨냥했다. 거창하게 부두라고 했지만 배를 묶는 나루 수준에 지나지 않는 시설이다.

함장은 짜증을 담아 외쳤다.

“발사!”

“발사!”

부장이 명령을 복창함과 동시에 거함이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주포가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무게의 포탄을 토해냈다. 무서운 속도로 가속된 포탄은 이내 나무로 만들어진 나루를 일격에 관통하더니 그대로 분질러 버렸다.

물기둥과 함께 나루가 소멸해 버리자 함장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다음 표적을 지시했다. 좀 더 많은 포격을 자신의 함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물기둥이 함의 좌현에서 거세게 솟구치는 통에 물 몇 방울이 튀어 들어왔다.

대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음은 창고다. 창고도 날려버려.”

“하지만 창고에는 우리 쪽 시설물이.”

“상관없어. 날려버려.”

대령은 그런 사소한 문제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지금은 일일이 그런 것을 생각하며 포격할 때가 아니었다.

연합왕국의 것이건 신의 것이건 포탄이 떨어져 부수기만 하면 적은 그에 두려움을 느끼고 더더욱 이쪽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잠시 후, 장갑함이 다시 한 번 포문을 열었다. 묵직한 포격과 함께 돌로 지은 건물이 단박에 으깨졌다. 장갑함의 두터운 목재와 강철판도 단숨에 뚫도록 설계된 최강의 주포 앞에 돌벽 정도는 우스웠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허물어졌다. 그 안에 들어 있을 엄청난 양의 상품도 동시에 파괴되었다. 최소한 수만 냥은 넘을 물품들이 쓰레기가 되어 돌무더기에 깔렸다.

콰앙!

포격이 이어지는 와중에 장갑함 옆으로 물기둥 셋이 동시에 솟아올랐다. 그것을 본 대령은 피식 웃었다.

그의 의도가 통한 것이다. 장갑함이 육상에 대해 무자비한 포격을 가하자 포대는 장갑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포격이 아까보다 훨씬 집중된 이상 나머지 함정들의 탈출은 아까보다 수월할 수밖에 없으리라.

함장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해도를 물끄러미 본 다음 포문 너머로 살짝 보인 아군 함정들의 이동 상황을 떠올리며 항로를 대충 생각했다. 지금은 만인적의 기세로 버티고 있다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계속해서 포탄을 두드려 맞다가 굴뚝이라도 망가지거나 리벳이 손상되면 여기서 발이 묶일 수도 있었다.

“함장님, 기함에서 신호입니다. 슬슬 우리도 뒤를 따라 움직이랍니다.”

“그런가.”

대령은 해도를 한 번 더 확인한 후 함의 침로를 곡선으로 잡게 했다. 아군 함정들의 뒤를 밟으며 마지막까지 방패 역할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거대한 장갑함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추진력을 내기 시작했다. 예열은 진즉에 해두고 있어 배가 움직이는 단계까지 필요한 운동 에너지는 금방 모였다.

캉!

함이 움직이는 사이에도 포탄이 배 위로 떨어졌다. 이따금 강철 포탄이 쇳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나쁜 쇠 긁는 소리에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나저나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석탄이 간당간당하겠어. 이 분량이면 아문까지 갈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

함장은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아문으로 가는 동안 석탄이 바닥나면 그대로 미아가 되고 만다. 더구나.

‘아문이 함락되기라도 하면 석탄을 보충할 희망도 갖기 어렵지.’

그 동쪽에 기항지로 여송이 있긴 하지만 그곳은 석탄이 없었다. 저탄소도 탄광도 없는 곳에 갔다간 그대로 정박한 포대 신세가 되고 만다. 그건 생각하기도 싫은 경우였다.

‘하지만 아문이 함락될 일은 없을 거다. 거긴 신의 미개인들이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함장은 아문의 방어력을 믿었다.

연합왕국은 아문을 확보한 이래 엄청난 투자를 거듭했다. 육상 통로를 관제할 수 있는 위치에 세 개의 포대가 구축되어 있었고, 그나마 드나들 수 있는 통로 자체도 아문과 강주를 잇는 ‘철도’ 때문에 훨씬 협소해져 있었다.

거기다 아문에는 왕립 육군이 자랑하는 정예 보병연대가 1개를 포함하여 해병대 1개 대대, 왕립 포병 1개 여단, 해군 분 함대 1개, 헌병 및 기마경찰 3개 대대 등 상당한 규모의 전력이 집결해 있었다.

신의 미개인들이 작심하고 공격하더라도 쉽게 함락시킬 정도로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는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함장이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포격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장갑함이란 위명에 걸맞게 흑 태자는 그 모든 공격을 간단히 퉁겨내며 묵묵히 제 갈 길을 나아갔다.

이윽고 함이 항구 밖으로 나가는 침로에 이르자 함장은 포격의 걱정을 덜고 갑판으로 올라왔다. 그는 망원경을 든 채로 먼저 나아간 아군 함정들을 살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광경은 그 기대와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신이시여.”

함장이 신을 입에 담자 부장도 급히 그 옆에서 망원경을 들었다. 이내 그도 똑같이 신을 입에 담고는 성호를 그었다.

그들의 앞에는 옆으로 기울어져 가는 아군 함정들이 여럿 있었다. 건재한 배는 몇 척 없었다. 그들은 보트를 띄워 혹시 모를 기뢰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상상한 이상의 참상이었다.

왕립 해군의 전사에 군함 네 척을 한 번에 잃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때 물 위에서 나무토막을 잡고 있던 아군 병사들이 뭔가 발견했는지 고함을 질렀다.

함장은 그들이 고함을 지르는 방향을 따라 망원경을 돌렸다. 어두운 바다였지만 아직 태양의 붉은빛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희미한 빛 사이로 뭔가가 보였다.

처음에 그것은 침몰한 배에서 나온 부유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함장은 이내 그런 부유물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파도에도 쓸려가지 않을뿐더러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수상한 놈이었다.

라함은 그것이 기뢰가 아닌지 의심이 갔다. 정말 계류 기뢰라면 제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함포 준비.”

흑 태자는 함장이 지시한 방위로 포를 겨누었다. 보트를 내려 기뢰를 제거하는 시도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보트가 아까웠다. 당장 기뢰를 치우고 아군 수병들을 구조해야 했다.

주포가 정확히 ‘수상한 기뢰’를 겨냥하자 함장은 망설임 없이 명령했다.

“발사.”

콰앙!

굉음과 동시에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 물보라 속에 기뢰의 폭발은 없었다. 함장은 재차 사격을 명령했다.

“발사!”

두 번째 포격은 비교적 정밀하게 가해졌다.

곧 굉음이 터졌다.

콰앙!

이번 포격에 따른 소리는 묵직했다. 물보라가 이는가 싶더니 쇳조각이 하늘로 비산했다. 둔탁한 폭음에 함장이 망원경을 다시 들었다.

문제의 기뢰가 있던 자리는 부유물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 부유물 파편들을 본 함장은 자신들이 노린 것이 기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물속에 배라도 있었단 말인가?

그는 그 생각을 하니 조금 소름이 끼쳤다.

그는 급히 보트를 내려 주변을 샅샅이 살피게 하는 한편, 아군 수병들의 구조를 서둘렀다.

***

사실상 전투는 끝났다.

선진 앞바다는 패퇴한 왕립 해군이 남긴 각종 부유물과 시체로 가득 차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거대한 서역 대선이 네 척이나 침몰했으니 그만한 부유물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승도는 망원경을 거두고 로망스 장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모두 이 사람의 기대대로 잘 싸워 주었습니다. 포대도 제 역할을 잘 해주었고, 잠수함도 제 몫을 다했습니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순간만은 승리를 자축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흑 태자가 탈출한 것은 그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놈이 달아날 아문에는 모종의 조처가 취해져 있었다. 운이 좋다면 탈출한 놈을 그곳에서 다시 잡을 기회가 있을지 몰랐다.

“모두 전하의 치밀한 계획과 지휘가 있으신 덕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이는 피땀을 흘려 싸운 여러분과 병사들이 세운 공입니다.”

승도는 장교들의 공을 치하하고 말에 올랐다. 그가 말에 오르자 장교들도 뒤따라 말에 올랐다. 왕립 해군은 격멸했지만 아직 적이 일소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육상에 버티고 있는 왕국 거류민들과 헌병들이 있었다.

승도는 말을 몰아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상승군 여단 앞에 도착했다. 최고사령관이 몸소 행차하자 여단장이 달려 나와 경례를 붙였다.

“전하, 지시하신 대로 포위만 한 채로 공격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잘 했습니다. 저들도 사세가 어렵다는 것을 아는 이상 피를 흘릴 필요는 없겠지요.”

승도는 뒷짐을 지고 여단장 앞을 걷다 그 뒤에 보이는 장교 하나를 지목했다. 장교는 로망스 출신인 듯 눈이 파랗고 갈색의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

“가스펠 경.”

“예, 전하.”

“경에게 한 가지 역할을 맡기고 싶습니다. 저들에게 가서 내 전언을 전해 주시겠습니까.”

“명하신다면 받들겠습니다.”

“좋습니다.”

승도는 뒷짐을 진 채로 연합왕국인들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항복한다면 ‘명예로운 항복’의 관례에 의거하여 권총과 칼의 휴대를 허락하고 안전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우스만의 술탄이 행하였듯 그대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 양탄자로 쓸 것이다. 선택은 그대들의 몫. 자비냐 분노냐. 어느 얼굴을 볼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겠다.”

승도의 전언이 끝나자 로망스 장교는 머리를 가볍게 굽혔다.

“지금 그 말씀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로망스 장교 가스펠은 승도가 꽤나 고전적인 협박을 한다고 생각하며 백기를 들고 연합왕국인들의 진영으로 향했다.

가스펠이 백기를 들고 다가오자 왕국 헌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정지. 용건이 뭐냐?”

“보는 대로 항복을 권하는 사자요. 귀측 지휘관을 만나고 싶소.”

“좋다.”

헌병은 일단 통행을 허락했다.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거니와 다수의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부분도 의식하고 있어서다.

가스펠은 자신의 주변에 늘어선 왕국 민간인들의 불안에 찬 시선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민간인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듯 몇 마디씩 떠들었다.

“백인이에요. 백인이 야만인의 앞잡이로.”

“그래도 백인이니 다행이지. 야만인이 협상을 하러 왔으면 말도 안 통했을 거야. 오히려 잘된 일이지.”

“이렇게 야만인들에게 목숨을 맡겨야 하나. 말도 안 되는 일이.”

가스펠은 그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지휘관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그 건물은 윈스턴 상회의 것이었다. 특별히 무역을 하려고 개설한 상점은 아니고, 왕국 거류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조달해줄 목적으로 연 곳이었다.

상점 안은 제법 깔끔했다.

평소라면 상점 주인이 앉았을 자리에 은빛 머리카락의 군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내는 단단한 산을 연상시키는 자였다. 군복에 달린 몇 개의 훈장만 봐도 그 인생이 대충 짐작이 갔다.

장년의 군인은 자신의 앞에 온 가스펠을 보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항복 교섭을 위해 온 사자인가?”

“맞습니다. 실례지만 지위를 알 수 있겠습니까?”

“왕립 해군 선진 파견 헌병대 중령 리처드다.”

상대의 신분은 교섭을 할 정확한 대상에 속했다. 헌병의 규모로 보건데 최고 계급은 기껏해야 대위 정도로 예상되었으니, 중령이면 오히려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고위직이라 할 수 있었다.

“이곳 최고 지휘관이십니까.”

“해군 제독을 제외하면 육상에서는 내가 선임이니 나와 이야기하면 된다.”

“좋습니다. 리처드 중령 각하. 각하와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가스펠이 예를 차려 계급을 호칭해주자 리처드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좋아. 말해보게.”

가스펠은 승도로부터 들은 전언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전했다. 리처드는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다 피식 웃었다.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군. 전언을 보낸 작자는.”

자비를 거절하면 우스만의 술탄이 되겠다. 그 말은 항복을 거절할 시에 이곳 민간인을 다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서역의 ‘전례(?)’를 가지고 협박을 하다니. 들을수록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하의 자비를 원하신다면 지금 항복에 동의하시면 됩니다. 그렇지만 거절하신다면 전하는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기실 겁니다.”

“그렇게 하리란 것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간인을 죽이는 것을 겁낼 정도였다면 애초 전쟁을 하지도 않았겠지. 그렇지 않은가?”

“잘 보셨습니다.”

“좋아. 그 항복 제안을 받도록 하지. 단 대상을 한정하겠다.”

“그건 무슨 이야기입니까?”

“투항은 우리 민간인과 ‘항복’을 희망하는 헌병들에 한하겠다. 우리는 자존심이 강해서 남에게 쉽게 머리를 구부릴 수 없지.”

리처드의 대꾸에 가스펠은 알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 앞에 있는 자는 연합왕국의 대검 귀족이었다. 족보를 돈을 주고 산 벼락치기나 법복 귀족 따위가 아닌 순수한 정통 귀족 말이다.

이런 자들은 자국의 명예를 더없이 높게 여겼기에 ‘격’이 없는 상대에게는 결코 항복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수준이 맞는다고 여겨지는 로망스나 기타 열강 정도라면 머리를 숙여도 동방 미개국 따위에게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생각이 여실이 읽혔다.

“그럼 중령 각하께서는 제한된 항복을 답으로 내신 겁니까.”

“맞아.”

리처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 제안을 전하께 올리겠습니다. 수용을 하실지는 전적으로 전하께서 결정하실 겁니다.”

“좋아. 그만 물러가보게.”

중령은 허리에서 권총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고 총알을 하나하나 세어 장전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아 가스펠은 경례를 하고 승도에게 돌아왔다.

승도가 물었다.

“왕국 쪽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전하의 제의에 조건을 달았습니다.”

“조건이라니요?”

“민간인과 항복을 결심한 헌병들은 모두 이쪽으로 투항시키겠답니다. 대신 남은 자들은 싸울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래요?”

승도는 잠깐 생각을 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여 전부 죽여서 향후 협상을 어렵게 할 이유는 없겠지요. 투항은 받아주도록 하세요.”

“그럼 남은 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가스펠이 묻자 승도는 냉소를 머금었다.

“이 사람의 자비를 거절한 이상 호의를 베풀 필요는 없지요. 쓸어버리세요. 무차별 포격으로.”

“예, 전하.”

자기들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체면치레를 하는 일에 병사들을 보내 명예욕을 충족시켜줄 이유는 없다.

‘나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다. 명예를 찾고 싶다면 결투를 하라지.’

잠시 후, 투항자들이 쏟아져 나오기가 무섭게 거류지를 포위하고 있던 상승군의 포대가 불을 뿜었다.

포성과 동시에 잔존한 헌병들이 버티고 있던 건물들이 연달아 무너져 내렸다.

비명소리도 남기지 못하고 쓸려나가는 적을 보는 승도는 전과를 확인하고 민간인들을 적절한 장소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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