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4화. 기습 (4)
선진에서 한바탕 교전이 벌어지는 시각, 남방의 상승군도 아문에 대한 공격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탄소에서 일어난 대폭발을 신호 삼아 부대를 전진시켰다.
공격에 동원된 부대는 상승군 여단 셋이 주축이었다. 초기 공격은 그들이 주도하고, 이후의 후속 공격은 총독 등이 동원하여 보내줄 대규모 단련과 기타 의용군 전력이 채워줄 참이었다.
전체 공격군 전력은 도합 오만 이상. 수는 대단해 보이지만 실상 근대적인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상승군은 다 합쳐야 만 남짓에 불과했다.
그나마 급하게 확대 증편하느라 훈련이 잘 되지 않은 신병 위주의 병력들이라 전력상 문제가 꽤 있었다. 고참 여단들이 북경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시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대응할 여지를 주지 않고 아문 근처로 대규모 병력을 끌고 왔다. 이 점에서 왕국 측은 완전히 허를 찔렸다.
방어자 입장에서 적절한 방어 준비를 갖출 기회도 주지 않고 적을 목전에 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상승군 지휘관들은 망원경을 들고 아문 입구의 방어 태세를 점검했다.
요새는 모두 셋. 근대적인 형식으로 지어진 세 요새에는 막강한 포대가 구축되어 있었고, 그 화력은 정확히 육상 교통로를 겨냥한 상태였다. 이곳을 돌파하려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상승군이 대책 없이 아문으로 병력만 들이부어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입안한 것은 아니었다.
양국이 전쟁 위기로 치닫기 한참 전인 ‘국가 방위 계획’ 수립 당시, 승도는 방위에 가장 큰 위협의 존재인 아문의 함락 작전을 검토해 두었다.
그는 이 작전의 핵심을 아문 입구의 돌파에 두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단을 부지런히 고민했다.
고민 끝에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것이었다.
‘증기 기관차에 화차를 달아 아문으로 들여보낸 다음, 요새 앞에서 불을 지르도록 하세요. 대규모 연막을 일으키면 요새의 공격력을 반감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는 상승군의 피해를 줄일지언정 요새의 공격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긴 어려웠다. 요새들은 이미 화력 지향점을 아문 입구에 맞추어둔 상태라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상승군에 대 타격을 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것 외에 손을 쓸 필요가 더 있었다.
“집결이 모두 끝났습니다, 대인.”
작전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에 함께한 총독은 상승군 지휘관들의 보고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춧빛 얼굴을 한 총독은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고 입술을 움직였다.
“지금 이 시간까지 조정에서 중지 명령이 내려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강행의 뜻이 분명한 듯하오. 이 일전에 제국의 운명이 걸렸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겠소.”
“예, 대인.”
상승군 지휘관들은 총독에게 예를 갖춘 후 대기 중인 부대들에 출발 명령을 내렸다. 그들이 명령을 내리기가 무섭게 검은 군복들은 옆에 들고 왔던 작은 거룻배를 번쩍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승군이 보완 수단으로 마련한 것은 육상 루트 바로 옆에서 보트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정확히 육상 통로를 겨냥한 채로 포격 태세를 갖춘 연합왕국 육군으로서 이에 대응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임경문은 제국군의 이동을 지켜보다 옆에 있던 상승군 장교에게 슬쩍 물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할 거라 생각하는지 알고 싶소.”
“충분히 가능합니다. 작전 개시부터 현재까지 적은 우리 의도를 전혀 간파하고 있지 못합니다.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아마 아군의 제1파인 상승군은 큰 손실 없이 아문 내로 진입이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양이들의 해군이 걱정이요.”
“염려 놓으십시오. 자국의 시민들이 있는 시가지에 대포를 쏠 정도로 저들이 무모하지는 않습니다. 아문 내에 우리 육군이 들어간 시점에서 승부는 판가름이 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승부는 상승군이 낸다는 말로 봐도 되겠소?”
“예, 대인.”
“하면 처음부터 더 많은 상승군 전력을 동원해도 될 것을 구태여 단련과 의용군을 예비로 확보하는 건 잘못된 방침이 아닌가 싶소.”
“그건 아닙니다, 대인. 우리가 처음부터 다수의 상승군 여단을 아문으로 출격 가능한 위치에 전개시켰다면, 저들은 경계 태세를 크게 높이고 있었을 겁니다. 지금의 전략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흐음.”
임경문은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주사위가 던져졌으니 만사가 잘 풀리기만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은 극동 근무가 올해로 삼 년 차인 장교였다. 언제나 본국 근무를 희망했지만 인맥에 밀려 자리를 얻지 못하다 보니 습기 차고 덥고 짜증나는 미개한 땅에 박혀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이 땅에서 좋은 기억이라고는 싼값에 어린 여자를 품을 수 있다는 것과 물가가 더럽게 싸다는 정도였다. 일이라도 뭔가 재미가 있으면 좋겠는데, 오지도 않을 적을 기다리며 포가만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뇌물이라도 써서 본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지랄 같은 곳이다. 내가 왜 여기 근무를 받아들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마이클은 투덜거리며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고 포대의 화약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화기 옆에서 파이프를 물었지만 병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 주변을 지나갔다.
원칙상 화약 주변에서 불을 다루는 행위는 군사 재판에 넘겨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이곳은 엄격한 본국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기율이 느슨한 ‘머나먼’ 극동이었다. 이 정도는 모두가 눈감아 주는 일이었다.
그가 파이프를 물고 한 모금 빨아들이고 있는데 느닷없이 굉음이 연거푸 울렸다.
마이클은 황급히 바깥으로 달려 나왔다. 그곳에는 굉음에 놀라 나온 병사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폭발음이 들린 아문 방향을 보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는 검은 연기가 새카맣게 치솟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의 가장 중요한 시설 중 하나인 저탄소 위로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맙소사.”
“신이시여.”
마이클은 손에 들고 있던 파이프를 툭 떨어트렸다.
“설마, 이건 야만인들의 공격인가?”
마이클은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뱉었다. 얼마 전 야만인 노동자를 기마경찰들이 대량 학살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지나가긴 했지만, 정상적인 정부라면 그런 학살을 그냥 용납하고 넘어갈 턱이 없었다.
충분한 전쟁의 사유가 될 만했다.
진정 그들이 전쟁을 결심했다면 이곳 아문은 전쟁터가 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나. 아무리 야만인들이 겁이 없다고 해도 여긴 아문이야. 사고일 걸세.”
마이클의 동료인 클레이가 애써 전쟁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단순한 사고일 가능성은 낮았다. 저탄소 폭발이야 그렇다 쳐도 도시 곳곳에서 일어난 방화는?
간단히 볼 일이 아니었다.
도시는 이미 기마경찰은 물론이고 헌병, 육군이 출동했는지 온통 소란스러웠다. 시끌벅적한 소란이 있은 탓인지 요새 사령관도 망원경을 들고 도시 쪽을 보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 사고라면 다행이겠지만.”
마이클은 클레이의 말에 수긍하려 애쓰며 아문 쪽을 바라보았다. 도시는 좀처럼 혼란이 수습되지 않는 양상이었다.
그때 클레이가 손가락을 들어 아문 경계를 가리켰다.
“저길 보게.”
그가 가리킨 방향에서 육중한 열차가 화차를 잔뜩 끌고 기적 소리를 내며 아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야만인들이 우릴 공격했다면 석탄을 들여올 이유가 없지 않겠나?”
“그 말은 맞지만 혹시 아는가. 화차에 병사들이라도 숨겨 들여오려는지.”
그가 꺼낸 말에 클레이가 움찔했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었다. 혼란을 유발하고 기차에 병력을 실어 아문으로 들여온다면 아주 간단히 이 도시를 접수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사령관님께 말씀을 올리지. 열차를 당장 세우고 점검할 수 있도록.”
“그러게.”
마이클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이가 사령관을 향해 달려가려던 순간 기차가 큰 기적 소리를 내며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것을 본 둘의 눈이 의아하다는 빛을 보였다.
병사를 싣고 아문으로 들어오려는 기차라면 여기서 세울 이유가 없었다.
기차는 천천히 멈추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 정지했다. 그것을 본 클레이가 다행이라는 얼굴을 했다.
“자네 걱정은 기우인 듯싶네. 야만인들이 공격할 작정이었다면 열차를 세우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다행이지.”
마이클은 아직 경계를 풀어선 안 된다는 눈으로 열차를 보았다. 그의 직감은 저 야만인들이 뭔가를 하려 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
짙은 회백색 연기를 토해내던 기관차의 안에 앉아 있던 세 사내는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이 정확히 되자 열차의 우측으로 차례로 내렸다.
삐익!
그들이 호루라기를 불자 화차에 타고 있던 병사 여럿이 뒤따라 내렸다. 이 병사들은 화차 내부에 가득 채워진 물 먹은 풀들 아래로 불을 지피는 임무를 부여받은 상태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5분.
5분 안에 불을 지피고 화차에 끼워둔 보트를 타고 바다로 피하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었다.
“시작하지.”
장교 창씨가 장갑 낀 손을 들었다.
그 신호를 본 병사들 중 몇몇은 내리면서 끌어내려둔 보트를 바다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나머지는 짚단 아래에 쌓인 숯과 장작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피는 일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 수백 번의 예행연습을 했던 터라, 매우 정확하게 일을 해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병사들은 제 몫으로 할당된 구역에 모두 불을 지폈다.
곧 장작과 숯이 타들어가며 불길을 내자 그 위의 짚더미가 짙은 연기를 솔솔 내뱉기 시작했다. 지금은 연기가 그리 심하지 않았지만 이만한 양의 짚이면 조만간 아문 육상 통로 전체를 메우고도 남을 거대한 ‘연막’을 만들고도 남았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창씨는 병사들의 작업을 지켜본 후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불이 잘 유지되도록 장작과 숯에 손질을 가하던 병사들이 막대를 놓고 화차에서 물러서더니, 바다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시간이 5분인 이유는 연합왕국이 포격을 가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저들도 눈과 귀가 막히지 않은 다음에야 아문 경계로 모습을 보일 아군 육군의 모습을 곧 확인할 것이고, 그러면 고의로 ‘불’을 낸 것도 알 터였다.
그럼 불을 지른 자들을 잡고 상승군 육군의 아문 진입을 막기 위해 포격을 시작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그들이 배에 올랐을 때 둔탁한 포성이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창씨가 망원경을 들고 멀리 보이는 아문 경계 너머를 보았다. 그곳에는 수도 없이 많은 검은 물결이 몰려와 있었다.
이제 전쟁이 시작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창씨는 마른침을 삼켰다.
콰앙!
첫 포탄이 화차 주변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신호로 우박 같은 포탄 세례가 무차별적으로 화차 주변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어마어마한 포격을 보자니 제때 탈출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갔다.
“놈들의 화력은 무지막지합니다.”
창씨와 함께 배에 탄 연씨가 말했다.
“당금 천하제일의 강국이니 저만한 능력은 당연한 거겠지. 우리 병사들이 저 포격 안에 그대로 들어갔다면 몰살당해도 이상할 건 없었을 것이네.”
“과거의 멍청한 조정이었다면 그대로 들여보냈겠지요.”
연씨의 대답에 창씨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 아니라 과거의 조정은 정말 그렇게 하고도 남았다. 실제 아문을 점령한 왕국 육군을 상대로 군대를 들여보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멍청한 자들이라면 십만 대군이 있어도 아문을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동방에서 가장 뛰어난 불세출의 영웅이 그들의 지도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의 영웅은 그런 무모한 개죽음을 전략에 포함시키는 자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강주 왕 전하는 과거의 조정과는 다른 분이니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지. 우리 할 일은 다했으니 남은 동료들이 제 몫을 다하는 걸 지켜보도록 하세.”
창씨는 병사들에게 노를 젓도록 명령했다. 목숨을 내놓고 어려운 임무를 다한 이상 더는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일은 이 전투를 지켜보며 자신들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검은 장막이 자욱하게 깔리자 수백 척의 나룻배를 든 검은 군복들이 해안으로 다가섰다. 어둠이 깔리고 있는 바다였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화차가 타오르며 약간의 시계를 제공해주고 있는 데다, 검은 장막이 마지막 빛마저 확실히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탑승하라!”
지휘관들은 보트 하나에 열 명의 병사를 실었다. 그보다 더 실을 수도 있지만 기동성을 생각하면 열이 최선이었다. 병사들을 태운 보트가 물에 들어가자 지휘관들은 다음 보트를 든 병사들의 조를 앞으로 내보냈다.
기계적으로 진행된 작업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의 병사들이 바다로 올라섰다. 그들은 구령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노를 저었다. 장교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부지런히 깃발을 흔들어 방향을 지시했다.
“각하, 한데 양이 해군이 우리를 중도에 방해할 가능성이 없겠습니까? 여긴 분 함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여단장과 보트에 동승한 채 아군 병사들의 행렬을 쫓던 참모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여단장이 피식 웃었다.
“우리가 보트를 타고 가는 거리가 얼마나 되나?”
“기껏해야 1마일 남짓일 겁니다.”
“그 정도면 노를 저어도 눈 깜짝할 사이에 건널 거리지. 그나마 우리는 시간상 썰물이 있는 시간을 타고 움직이고 있어 그보다 절반의 시간만 들이고도 반대편 해안에 도착할 수 있네. 그 시간 사이에 왕립 해군이 반응할 수 있겠나?”
참모는 잠시 계산을 해보았다.
“그렇다 해도 긴급 반응용으로 준비한 프리깃 정도라면 대응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배가 돛 줄을 펴고 닻을 펼치고, 바람을 탄 다음, 썰물을 거슬러와 보트들을 잡으러 오려면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 대응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초계용으로 항상 돌아다니는 프리깃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여단장도 그 점을 모르진 않았다.
“프리깃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우리 군이 그렇게 멍청한 건 아니라네. 프리깃이 올 수 있다 해도 대응 수단은 이미 마련되어 있지 않나.”
“잠수함 말씀이군요. 하지만 저는 그 조그만 깡통 하나로는 만전의 대응이 되긴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아직 잠수함이 선진에서 거둔 놀라운 성과에 대해 몰랐다. 하지만 여단장은 잠수함의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것은 그가 기뢰를 사용한 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어서였다.
“세상에 만전은 없는 법이네.”
여단장은 참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망원경을 들었다.
잠깐 동안 상승군이 육상 회랑을 통해 아문으로 진공한다 생각하고 화차 너머로 포격을 퍼붓고 있던 왕국 요새들은 그 사이에 포격 점을 조금씩 옮겨오고 있었다.
정확히 아군의 위치를 모르다 보니 여기저기 쏘고 보는 모양이었다.
콰앙!
포탄이 떨어지며 거친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 포화에 보트 하나가 가랑잎처럼 흔들리며 밖으로 크게 밀려났다.
하지만 포화의 정확도는 형편없었다. 육상이 아니라 바다로 움직인다는 것을 계산하고 포격한다고 하긴 했지만, 육안 관측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포격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화차의 연막만 없었다면 아쉬운 대로 해안가에 초병들을 보내 불을 지펴 시계를 확보하고 좀 더 정확한 포격을 가했겠지만, 지금은 불을 지펴봐야 소용이 없었다. 연막을 치우기 전에는.
왕립 육군도 그걸 아는 눈치였다.
그들은 주어진 악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듯 ‘감’에 의지한 포격을 가했다.
그래도 왕립 육군은 왕립 육군인지 포격 능력 하나는 대단했다. 대부분의 포탄은 일정한 탄착군을 형성하며 떨어졌다. 명중률이 낮다 해도 탄착군을 형성한다는 것만 보아도 그 역량은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여단장이 그 모습을 보며 중얼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번에 연막을 준비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군. 그렇지 않았다면 왕국 육군 친구들에게 쓴맛을 보았을 걸세.”
참모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탄착군만 보더라도 제대로 포격을 가했다면 우리 보트의 사 할 이상은 잡았을 겁니다.”
“정말 그랬다면 이번 작전은 꽤 암담했겠지.”
여단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들의 부대는 별 피해 없이 아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최후의 변수인 왕립 해군의 방해만 없다면 아문 함락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직 아문의 시가지 중심에 펄럭이는 왕국의 사자기는 건재했다. 그 깃발이 내려지기까지 치러야 할 피의 대가는 아직 지불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