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59화 (359/425)

제359화. 나포 (2)

흑 태자를 먼저 보내고 후속하던 왕립 해군의 전투함 세 척은 중도에 북상해온 동방 함대의 프리깃 한 척과 합류했다. 프리깃은 놀라운 소식 하나를 가지고 왔다.

“아문이 함락되었다고?”

제독은 치즈를 얹은 염장 돼지고기를 나이프로 썰다 눈을 크게 떴다.

“예, 아문이 함락되고 전 시민이 포로가 되었다고 아군 프리깃 쪽에서 알려왔습니다.”

“그럼 아문은.”

“포기해야 합니다. 항로를 남서 방향으로 수정해서 동방 함대의 모항까지 가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거야 원. 식수와 식료품이 모자라지 않겠나?”

“그 부분은 아군 프리깃이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그쪽에서 작전 기간 동안 쓸 양의 대부분을 넘겨주면 아쉬운 대로 항해를 지속할 양은 나올 겁니다.”

제독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지. 그리하세.”

참모가 경례를 하고 나가려는데 제독의 한마디가 그를 불러 세웠다.

“참, 그런데 먼저 간 흑 태자는 아문으로 가지 않았나?”

“예, 먼저 갔었습니다.”

“그럼 흑 태자가 위험한 것 아닌가?”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흑 태자의 방어력이라면 놈들의 군함으로 흠집 하나 내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흑 태자는 석탄이 없잖나.”

참모도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간과했습니다.”

“운이 나쁘다면 흑 태자가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을지도 모르네. 급한 대로 아문 앞바다까지 가서 흑 태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우리함의 석탄이라도 좀 넘겨서 안전 수역으로 조금 옮겨두는 편이 좋을 듯싶은데. 어떤가?”

“제 생각도 같습니다.”

“좋아.”

제독은 식사를 위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접시와 집기를 밀치고 바닥에 있던 해도를 꺼내 올렸다.

“우리함의 침로는, 서쪽으로 잡도록 하지. 함장에게 알리게. 나머지 함들은 새로 합류한 프리깃과 협력해서 남쪽으로 보내도록 하지.”

제독은 아군 함정 중 한 척의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점을 고려하여 두 척의 우군 함정과 함께 남쪽으로 가게 했다. 결과적으로 기범선 혼자 서쪽으로 가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장갑함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

왕립 해군의 기범선은 흑 태자의 상황을 확인하고 그를 아문에서 끌어낼 목적으로 항로를 잡았다.

기범선은 남서쪽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아군 함정들에 작별을 고하고 서쪽으로 침로를 잡았다.

함대가 서쪽으로 방향을 잡자 육상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던 상승군 기마 보병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어깨에 견장이 붙은 남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서역 대선 한 척이 아문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하루 전에 서쪽에서 온 서신을 보지 않았나.”

지휘관은 망원경을 든 채 대꾸했다.

하루 전에 온 서신에는 왕립 해군 최강의 전투함, 흑 태자의 나포 소식이 들어 있었다. 산더미 같은 장갑함을 나포한 이상 아문에 있는 신의 해상 전력은 기범선을 간단히 압도하고도 남았다.

아무리 배를 다룰 줄 모르는 자들이 장갑함에 타고 있다고 해도 피해를 줄 방법이 없는 데야 승산이 있을 턱이 없었다.

거기다 아문 근해에는 아군의 잠수함도 있었다. 그 정도의 전력이면 저 서역 대선이야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산더미 같은 철선을 나포한 판이니 저들이라고 별수 있을 리가 없겠지요.”

“대충 저들의 방향을 확인했으니 아문 쪽으로 빨리 상황을 알려야겠지. 누가 가겠나?”

지휘관이 묻자 기마 보병들이 난색을 표했다. 서쪽을 향해 움직이는 군함들을 앞질러 가자면 촘촘하게 깔린 역참에서 쉬지도 않고 말을 갈아타며 달려가야 했다.

그렇게 했다간 밤잠도 설치고 말 위에서 시달려야 했는데, ‘치질’과 같은 끔찍한 직업병이 찾아올 가능성이 농후했다.

모두가 눈을 피하는데 지휘관이 한 사람을 지목했다.

“이번엔 자네가 다녀오게.”

“하필 접니까.”

그는 투덜거렸다.

“어차피 며칠 전에 출발한 친구보다는 갈 거리도 짧지 않나. 잔말 말고 다녀오게.”

장교의 지시에 사내는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사내에게 전달할 내용을 확인해준 다음 출발하게 했다.

사내가 말을 달려 서쪽으로 사라지자 기마 보병 지휘관은 망원경을 품에 넣고 수염을 매만졌다.

‘이걸로 동방에 남은 연합왕국의 그림자는 모두 걷어지는 셈이로군.’

아문으로 먼저 달려갔을 왕국의 위상함을 구하기 위해 왕립 해군의 기범선은 위험을 무릅쓴 단함 작전을 강행했다.

제독은 ‘최악의 경우’ 기범선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흑 태자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함정의 가치도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왕립 해군에 몇 없는 최강의 전투함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제독이 조바심에 손가락을 물어뜯다 당직 사관이 교대 조를 깨우는 소리를 들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6시였다. 시간을 보고 창을 여니 먼 바다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제독이 갑판으로 올라오자 함장 이하 장교 몇이 망원경을 들고 육지를 보고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흑 태자가 걱정되어서 잠이 오질 않아서 말이요. 아문은 도착하려면 먼 거요?”

“거의 다 왔을 겁니다. 밤새 달린 거리가 있으니 앞으로 서너 시간 안에 반도가 수평선 위로 드러날 겁니다.”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견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전방에 거함 출현!”

“거함?”

견시의 보고에 함장과 제독이 얼른 수평선 쪽으로 망원경을 가져갔다.

이윽고 그들의 시야에 온통 새카맣게 칠해진 거대한 장갑함이 들어왔다. 함의 마스트에는 왕립 해군의 사자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흑 태자군.”

“건재했습니다.”

그들은 밝아진 목소리를 냈다. 왕립 해군의 위상함인 흑 태자가 무사하다는 사실 만큼 기쁜 소식도 없었다.

“신호를 보내게. 흑 태자에게 이쪽으로 합류하라고.”

제독이 신호기를 걸도록 지시했다. 신호사관이 코드 집에 기초하여 몇 가지 단어를 연달아 신호로 표시했다. 저쪽에서 신호를 보았다면 마땅히 답이 와야 했다.

해독이 느려도 몇 분이면 그래야 한다.

제독은 상대의 신호기가 달리기를 기다렸다.

그때 흑 태자의 우현에서 오렌지 빛 섬광이 번뜩였다.

“응?”

제독은 자신이 헛것을 보았나 했다. 다음 순간 포성과 함께 바다에서 수십 미터는 됨직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뭐, 뭐야.”

“포격이다.”

수병과 장교들이 깜짝 놀랐다.

흑 태자가 자신들에게 포를 쏘았다!

그 충격적인 사실에 모두가 당황하여 대응을 하지 못했다.

“우리. 우리 국기를 흑 태자가 보지 못한 것인가?”

제독이 당황하여 묻자 함장이 손가락으로 마스트를 가리켰다.

“국기는 걸려 있습니다. 더구나 신은 기범선을 운용하지 않습니다, 각하.”

“그래. 신은 기범선을 운용하지 않지. 그럼 오인 사격이 아니란 건가?”

그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데 흑 태자로부터 재차 포격이 날아왔다.

콰앙!

물기둥이 크게 솟구쳤다. 이번에는 기범선에 보다 가까운 위치였다. 함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우현 전타! 흑 태자로부터 회피한다.”

함장은 이유는 모르지만 흑 태자가 함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지시에 따라 함이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기범선이 방향을 선회하는 동안에도 흑 태자는 거듭해서 이쪽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그 포격을 지켜보던 제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포격의 정밀성이나 연사 속도로 보건데 흑 태자에 탄 자들은 왕립 해군이 아니었다. 배에 탄 자들은 얼치기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근거리에서 흑 태자가 명중탄 한 발을 내지 못할 턱이 없었다.

배는 나포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참담한 감정을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포말을 일으키며 급속히 우현으로 꺾은 함정은 흑 태자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고자 큰 반원을 그렸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조함에 능하지 않은 흑 태자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때 굉음과 동시에 천지가 흔들리는 충격이 들렸다.

물기둥이 솟구치더니 둔탁한 충격에 배 위에 있던 장교와 수병들이 사방으로 튕겼다. 지근탄이라도 떨어진 것인가?

제독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함장이 크게 외쳤다.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피해 상황을.”

하지만 굳이 보고할 것도 없었다. 배의 우현은 크게 찢어져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점차 기울어가는 배의 상태로 보건데 이 강력한 전투함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싶었다.

이것으로 선진과 아문에 근거를 두고 대륙을 압박하던 왕립 해군의 막강한 제대는 완전히 소멸하였다.

***

“왕립 해군의 분 함대들을 걷어낸 시점에서 당분간 저들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기 어려울 겁니다.”

북양 함대의 작전 회의에 나온 승도는 해군 지휘관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오만하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 말은 한 점의 과장도 없는 사실이었다. 왕립 해군이 당장 동방에 투사 가능한 전력은 머나먼 남방에 남아 있는 동방 함대의 주력이 전부였는데, 그 정도로는 신을 위협하기는커녕 제 수역을 지키기도 버거웠다.

“전하의 말씀대로 현재 확보한 전략적 우위를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승도는 광대한 지도를 펼친 다음 그 가운데 지점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해군 지휘관들은 그가 가리킨 지점을 보고 눈을 빛냈다.

“유구, 이곳을 점령하여 동영의 목을 죄고 그들을 압박해야 합니다. 이들이 연합왕국과 연수하여 공세에 가담하기 전에.”

승도는 전략적으로 적들이 전열을 정비하여 힘을 합칠 시간을 줄 경우 얼마나 불리한지 잘 알고 있었다.

우세를 점했을 때 확실히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유구를 친다면 공세에 동원하실 전력은 어느 정도로 고려하십니까.”

“이곳 선진에 있는 상선에 상승군 1개 여단을 태울 작정입니다. 그 정도면 유구 정도는 간단히 접수하겠지요.”

“육군은 그만하면 충분하겠지만 해군은 그럴 만한 여력이 없지 않습니까.”

클레망소가 조심스레 물었다.

현재 해군은 려에 장갑함을 모두 출동시킨 상태였다. 남은 대형 프리깃들을 가지고 유구를 확보하러 나섰다가 전열함이라도 만나면 상당히 곤란해지게 마련이었다.

“그 점이라면 우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차대신을 추방하면서 동영에 역정보를 흘렸습니다.”

“역정보라고 하시면.”

“우리 요구대로 배상을 하지 않으면 동영에 상륙할 거라고 위협해 두었습니다. 거기에 장갑함을 려에 배치했지요. 우방인 려 역시 지금쯤 동원령을 내리고 동영의 눈을 끌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동영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자기 바다를 다 지킬 군함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옳으신 지적입니다.”

아무리 강한 해군도 모든 바다를 지킬 수는 없었다. 이 세상 해군을 다 합친 것보다 강하다는 연합왕국 해군조차도 그런 오만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상륙’ 가능성만 언급되어도 동영은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동영 쪽의 해군은 거의 려와의 경계 수역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 전하의 생각이십니까.”

“이 사람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들로서는 우리가 기존의 통상 파괴전과 비교하면 전면전이나 다름없을 유구 상륙을 계획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할 테니까요.”

해군 지휘관들은 그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에 눈길을 돌렸다. 유구를 전진 기지로 사용한다면 대형 프리깃들의 통상 파괴 효율은 지금의 배 이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동영은 거의 죽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전하, 하지만 문제점도 하나 생각하셔야 합니다. 유구를 확보하게 되면 연합왕국도 그냥 구경하진 않을 겁니다. 그들의 동방 함대가 유구로 반격을 올 가능성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확실히 가능한 지적이었다.

동방 함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구를 끊기는 것은 동영과의 연결이 차단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되면 전략적으로 가뜩이나 수세에 있는 연합왕국이 더 불리한 처지에서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건 당연히 용납 안 되는 부분일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장갑함 이동으로 대응할 생각입니다. 유구를 확보한 연후에 장갑함을 배치하고 육상의 포대도 다수 옮겨두면 방위상의 문제는 다소 덜 수 있을 겁니다.”

“그 같은 대응이 이루어진다면 걱정은 다소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유구는 식량이 자급되지 않는 섬이라 외부의 식량 공급이 절실합니다. 즉, 정기적으로 보급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이를 노리고 적이 공격을 해온다면 주도권을 역으로 넘겨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클레망소는 해군 지휘관답게 냉철하게 문제점 하나를 짚었다.

승도도 그 점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듯 턱을 매만졌다.

“과연, 그런 문제도 있을 수 있겠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보급 선단에 호위를 붙이는 쪽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승도는 해군 지휘관들과 회의를 마치고 침공 준비를 서두르게 했다.

***

동영과 마주한 남포에 수천의 군대가 모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갑주에 총기를 갖춘 정예 보병들이었다. 상당수는 멀리 북방에서 동원되었고, 일부는 강도에서 차출되었다.

이 강력한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징발된 대포만 200문에 달했고, 이들을 먹일 목적으로 쌓은 군량미만 3만 석에 달했다. 그 준비만 보아도 절로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 거창한 군대의 이름은 ‘정동군(征東軍: 동쪽을 정벌하는 군대)’이었다.

그들은 려의 역사에 보기 드문 원정군이었다.

이 군대의 수장은 려 조정의 실세인 김씨 문중에서 맡았다. 최고 권력자 가문에서 군의 수장을 맡고 정예 전력을 대거 동원했다는 점에서 이번 원정에 대한 려의 결의는 알 만했다.

“부대 정렬하라!”

려의 군관이 외쳤다.

병사들이 열과 오를 맞추어 서자 군관이 뒤로 돌아서 군례를 붙였다. 상석에 있던 조정의 선전관이 장수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연단에 올라섰다.

펄럭이는 깃발이 그의 등장과 맞물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뚜벅뚜벅.

연단 위로 올라선 려의 선전관은 좌중을 가볍게 훑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상 전하의 어명을 전하겠다. 삼가 예를 갖추어라.”

“천명을 받듭니다.”

병사와 장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김씨 문중의 지휘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이 예를 차리자 선전관이 교서를 읽었다.

“과인이 부덕하여 섬나라 오랑캐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이 땅의 백성이 상하였다. 이는 열성조의 과업을 잇지 못한 이 사람의 죄요, 이 나라 왕실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과인은 이 굴욕을 그냥 참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하늘의 뜻도 과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밖으로는 신이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여 오랑캐를 치는 일에 앞장을 서고, 안으로는 만백성이 일치단결하여 오랑캐에 대한 응징을 부르짖었다. 내외가 이처럼 호응하여 한 목소리로 천운이 도래하였음을 알리는데, 어찌 과인이 무도한 오랑캐들에 대한 징치를 미루어야 하겠는가. 이에 과인은 북방군의 정예 갑사 이천, 강도의 정예장졸 일천, 경군(수도 방위군) 일천, 그 외 지방의 포수 이천을 추렸다. 수는 적으나 모두가 일당백의 용사요, 동영을 징치할 이 나라의 창으로 부족함이 없음을 과인은 믿는다. 이 같은 과인의 기대에 부응하여 무도한 오랑캐들을 치고 국치를 씻고 돌아오라. 과인은 그대들이 동영을 물리치는 그날, 경성 밖으로 나아가 그대들을 버선발로 맞이할 것이다.”

국왕의 교서가 낭독되자 장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상 전하 천세’를 외쳤다.

려의 장졸들이 보인 기개에 남포의 백성들도 ‘주상 전하 천세’를 외치며 화답했다.

선전관은 그에 만족하며 교서를 동영 정벌군 원수에게 내리고 자신은 옆에 준비된 자리로 물러났다.

이 떠들썩한 일대 행사에 백성들은 자긍심을 느꼈다. 모두가 동영 오랑캐의 정벌을 부르짖던 그 순간, 인파 사이에 끼어 있던 눈동자 하나가 예리한 빛을 보였다. 곧, 그 눈빛은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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