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7화. 천망회회 (4)
왕립 해병의 공격은 거셌다. 단련들은 처절한 희생을 감수하며 금포의 성내 깊숙이 적이 진입하는 것을 막았다. 왕국으로서는 민간인이라는 방패가 있다 보니 시가지 안으로 포격을 가하기 어려웠다.
적이 민간인을 옮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도 했지만 성벽에서 확보한 적의 부상병을 심문한 결과, 창고에는 여전히 민간인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성벽과 접한 창고에서 실제로 민간인 일부를 구해내기도 했다. 그들의 증언도 다르지 않아 왕국 해병과 해군은 도시 안으로 포격을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이 제약이 바로 화력의 열세에 처한 신이 노린 한 수이기도 했다.
승도는 이 전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민간인은 기본적으로 금포에서 이송시켜선 안 됩니다. 이는 전술적으로 적의 역량을 억제하는 중요한 패가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전쟁에서 이 같은 수법이 사용된 전례가 없지도 않았다. 우스만의 술탄은 대 오스티아 전에서 육만이 넘는 오스티아 민간인들을 잡아다 인간 방패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 인간 방패 때문에 하마터면 오스티아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성벽으로 다가오는 민간인들을 포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위기는 ‘비정한 결단’에 의해 겨우 극복된 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달랐다. 근대적인 왕국의 군대가 자국 시민의 희생을 그렇게 간단히 결심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물러선다면 모를까.
승도는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지게 했다. 이 패야말로 금포로 왕국을 끌어들여 몰살시키는 가장 중요한 고리였다.
쾅!
포격이 성벽 주변으로 떨어졌다. 포격을 가한 쪽은 단련이었다. 왕립 해병으로서는 짜증스런 일이지만 도시의 창고 근처로 접근하면 화력의 우세를 점하는 쪽은 도리어 적이었다. 단련들은 그 포격에 의지해 잘 훈련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왕립 해병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염병할 야만인들.”
페티 소령은 자신의 부하들을 가로막는 적의 포격에 이를 갈았다. 왕립 해군의 지원이 있다면 저 정도의 포격은 간단히 무시할 수 있었지만, 아군 해군이 쉽게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현장 지휘관의 재량으로 ‘민간인 피해’를 불가피한 수준에서 고려해가며 포격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피아의 손실을 무시하고 포격을 가하는 적과 대적하기가 어려웠다.
또다시 포탄이 아군 병사들 근처에서 터졌다. 포탄이 자꾸 날아오다 보니 틈을 봐서 돌격하려던 병사들의 호흡이 계속해서 끊어졌다.
후장식 소총의 이점을 살려 끊임없는 사격을 퍼부으며 진격을 해야 하는 해병 특유의 돌격이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대대장님, 포격은 언제 만족스럽게 되는 겁니까?”
“빌어먹을. 민간인들이 있잖나. 난들 적게 쏘라고 요청하고 싶겠나.”
페티이 짜증을 내고는 신호사관에게 끈질기게 버티는 적의 창고 하나를 표적으로 삼아 포탄을 쏘아달라고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생기면 엄청난 욕을 들어먹어야 할 것이다.
그는 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곧, 포탄이 창고에 떨어졌다. 포탄이 떨어짐과 동시에 창고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끈질긴 적 저항의 한 축이 일시에 마비되자 페티가 손짓을 했다.
이어 수십 명의 붉은 코트들과 소위 하나가 아군의 엄호를 받으며 무너진 창고로 뛰어갔다. 그 과정에서 적의 사격과 포격을 받아 서넛이 죽어 나자빠졌지만, 돌격 자체는 효과적이었다.
공격자들은 겨우 창고를 접수했다. 그들은 그 창고를 축으로 주변에 제압 사격을 퍼부어 단련들의 사격 횟수를 반 이하로 낮추었다. 이 보루의 지원을 바탕으로 붉은 코트들은 의미 있는 전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결코 싸지 않았다. 창고에는 조금 전까지 멀쩡했을 백인 열댓 명과 적병 여럿이 죽거나 다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적을 몇 날리자고 민간인을 날려버린 셈이니 참으로 고약한 전투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해병들은 창고에서 사격을 퍼붓고 있는데 둔중한 포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아군이 확보한 창고로 적의 포탄이 떨어졌다.
포격은 그대로 낡은 창고의 외벽을 강타했다. 그 일격에 해병 여럿이 죽거나 다쳤다.
정말이지 짜증스런 전투가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창고를 하나하나 점령하다간 끝이 없겠군. 적 방어선의 중심을 축으로 돌파구를 만들어 적의 지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겠어. 접촉하고 있는 모든 창고를 공격하는 대신, 일직선상의 창고들만 공격하라고 전하게.”
페티는 나름대로 위험을 감수한 결단을 내렸다. 적의 역량으로 보건데 잘 훈련된 정규군이라 보긴 어려웠다. 그러니 그 지휘가 어렵도록 중앙을 쪼개고 들어가 지휘체계를 헝클어 놓는다면 그 역량이 반감되리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단련들을 지휘하는 자들의 실력이 형편없는 탓에 모든 병력의 조율은 몇몇 지휘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페티는 나름대로 상대의 약점을 찌른 승부수를 던졌다.
그의 명령에 따라 해병대의 선두 공격 제대는 몇 개의 조로 나뉘었다. 하나는 엄호를 하면서 돌격을 지원하고, 하나는 창고로 돌격을 해서 점령을 하고, 나머지는 그 뒤를 따라가 창고를 굳히고 후속 제대가 나아갈 디딤돌을 만드는 역할이었다.
해병대는 명령을 받기가 무섭게 준사관과 초급 사관들의 지휘 하에 역할을 분담하여 공세에 나섰다.
포격은 해군 대신 해병대의 박격포가 맡았다. 무지막지한 왕립 해군의 포격으로 손실을 내는 대신에 핀 포인트 타격으로 접적하는 적만 일시에 마비시키며 나아가는 전술로 선회한 것이다.
쾅!
해병의 포탄이 떨어짐과 동시에 해병 엄호조들이 고개를 들고 총격을 가했다. 압도적인 후장식 소총의 순차 사격에 단련들이 잠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들이 마비된 틈을 이용해 돌격조가 소총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적진으로 달려갔다. 뒤늦게 단련 몇이 사격을 가했을 때는 해병 돌격조가 창고에 달라붙은 다음이었다.
그들은 능숙하게 창고 안의 적들을 사살하고 민간인들을 확보한 다음, 그 뒤를 따라온 확보 조에 창고를 인계했다.
해병이 접적한 모든 창고를 공격하는 방식 대신 자신들의 진격 도상에 위치한 창고들만 타격하며 나가는 쪽으로 선회하면서 그 진격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해군의 지원 없이는 공격이 어려웠던 전자와 달리, 후자의 경우에는 적은 화력과 병력으로도 빠르게 치고 나가는 장점이 있었다.
해병이 무섭게 맹진해오자 풍겸도 위기를 느꼈다.
그는 급히 성벽에 있던 병력 일부와 예비대를 적 해병의 돌격 선상으로 돌렸다.
이것은 지금까지 해병대가 바라고 있던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성벽에 붙어 있던 수비대가 줄어들자 해병 소장 윙과 왕립 해군은 타격 지점을 성벽으로 돌렸다.
전열함이 재차 육상의 성벽을 타격하자 성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해병들도 교전에 참가했다.
붉은 코트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오자 성벽에 남아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총격을 가했다. 하지만 강력한 포격을 등에 업고 밀려오는 그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왕립 해병은 성벽을 점령하고 그 위에 사자기를 꽂았다. 그 깃발은 시가지 안에서 처절한 전투를 벌이던 페티의 해병들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시가지 안에서는 페티의 해병들에게, 성벽에서는 왕립 해병의 나머지 제대에 무참하게 박살나면서 단련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처음에는 ‘대등한’ 것처럼 보였던 전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방적인 흐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세의 영향을 많이 받는 단련들은 이 위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열의와 투지를 가진 병사들이긴 했지만 장비와 조직력에서 너무 열세였다.
거기다 사기마저 떨어졌다. 이길 수 없었다. 그나마 학살을 면하고 있는 것은 승도가 왕국의 포격을 상쇄한 덕분이었다.
“교전은 거의 끝나가는 형국이군요. 최초 교전에서는 조금 불안한 맛도 있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듯합니다.”
하우 제독이 망원경을 내리며 말했다.
윙 소장 역시 만족했다. 민간인들이 모두 금포에 남아 있다고 전해진 이상 최초의 목적은 곧 달성될 것이라 보였다.
민간인 구출. 그것만 해도 엄청난 전과였다.
정부에서 안다면 그들에게 줄 포상은 적지 않을 터였다. 거기다 금포의 대규모 적까지 섬멸한다?
여왕 폐하가 작위를 내리고 훈장을 내려줄 것이 자명했다.
그들은 그 명예욕이 충족될 거란 기대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해병의 실력이 있는데 저깟 신의 야만인들이 감당할 턱이나 있겠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멍청한 야만인들이 우리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아보려고 얕은 수를 부리긴 했지만 결국 실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던 거지요.”
하우는 윙의 자신만만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듯합니다. 한데 적의 수가 2만에 달한다고 했는데 수가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혹, 적에게 여력이 더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접근하는 족족 쓸어버리겠습니다.”
윙은 망원경을 든 채로 자신들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보였다.
***
금포에서 왕립 해병이 승리를 굳혀가고 있을 무렵, 그곳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구릉 위에 신의 고위 지휘관들이 머물러 있었다.
“이제 적세들에게 반격을 가할 시간이 된 듯하오.”
임경문은 지도를 보며 말했다.
로망스 장교들 역시 그의 견해를 부정하지 않았다. 왕국 지상군의 주력이 금포에 모두 들어가는 시점이 작전을 시작할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행상과 지역 유지들의 민병들을 금포의 북쪽으로 투입하겠습니다. 이들로 성내 해병들을 위협하는 단계를 이행하겠습니다.”
“그러시오.”
로망스 장교 하나가 지휘하기 위해 구릉에서 내려갔다.
이 움직임은 적 해병에게 불안을 심어줌과 동시에 북쪽에서부터 대규모 반격이 시작될 거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조처였다. 실제 이 병력은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포의 북쪽에서 깃발을 든 대규모 군대가 나타났다. 군세의 규모는 자그마치 오천 이상. 그들은 대포까지 동반한 대규모 군대였다.
물론 실상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그 대포란 것들은 대부분 눈속임으로 끌고 나온 구식이었다.
어쨌든 모양새는 대단했다.
“양이 놈들, 겁 꽤나 먹겠지.”
지역 유지로서 전투에 참가한 이씨가 득의만면한 얼굴을 했다. 그로서는 이렇게 군대를 이끌고 양적과 맞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었다.
돈을 받고 나온 자들은 겁을 먹어 다리를 오들거렸지만, 별로 위험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안 이씨는 겁을 먹지도 않았다.
“이 대인, 양적들이 반응을 보입니다.”
“오, 그래요?”
이씨가 망원경을 들었다.
강상에 밀집해 있던 왕립 해군의 전투함들이 다시 넓게 전개하는 모습이 보였다. 북쪽에서 아군이 나타나니 그 도전에 응하기 위해 배들이 기동할 공간을 확보하려는 모양새였다.
일단 포격에 강한 전열함과 기범선들 위주로 위쪽에 남고, 프리깃과 포함들은 남쪽으로 자리를 비켜주는 모양새였다.
적이 겁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전력도 되지 않는 민병을 상대로 호들갑을 떠는 것은 분명했다.
이씨는 그 모습에 실소를 짓다 적에게 한 번 더 위협을 줄 행동을 실천에 옮겼다.
“자. 그 물건들을 옮기도록 하게.”
이씨의 지시에 따라 일꾼들이 통나무를 강변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움직임을 보이자 왕국 쪽 해군이 다시 반응을 보였다. 뭔가 크게 놀란 듯 함정들이 더욱 넓게 간격을 벌리는 듯했다.
이씨는 그것이 우스웠다.
“석년에 오승도 각하께 두 번이나 물을 먹고 이번에도 속아 넘어가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양이들이야.”
그는 부산을 떠나는 양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왕립 해군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 가짜라고 해서 두 번 가짜란 법도 없었다. 준비한 통나무가 진짜 함대에 위협을 가할 물건이라면 호들갑이 아니라 더한 조처를 취해야 마땅했다.
그들로서는 해병대를 버리고 달아날 수도 없었던 까닭에 분산이란 조처를 취했지, 해군 단독의 입장이었다면 하류로 일단 물러나든지, 아니면 보트로 군함을 보호하는 벽을 둘러쳤을지 몰랐다.
양이들이 부산을 떠는 동안, 하늘에 괴물체 하나가 나타났다. 이번 전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신의 새로운 병기, 글라이더였다.
글라이더에는 신의 척후 하나가 타고 있었는데, 이 척후는 하늘에 뜬 상태로 왕립 해군의 전개 상황을 지상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글라이더가 자신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자 이씨는 시선을 그것으로 돌렸다. 양이들의 반응도 재밌었지만, 역시 새로운 문명의 이기만큼 눈길을 끌 수는 없었다.
“각하, 북쪽에서 적이 나타났습니다. 즉시, 함대를 분산 배치해야 합니다.”
“알겠네. 전투에 대비해서 기동 공간을 확보하지.”
하우는 윙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적에 대해 그리 큰 경각심을 갖지 않았다. 적절한 대처 정도로도 충분히 적을 분쇄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확신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각하, 놈들이 호르스트의 통나무를 준비한 모양입니다. 함대를 더 넓게 분산시켜야 합니다.”
“뭐?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동방 놈들이 그걸 쓰다니?”
“하지만 각하,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놈들은 기뢰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하우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호르스트의 통나무는 엄밀히 말해 원시 부유 기뢰에 가까웠다. 접촉하는 즉시 폭발하는 고성능 폭발물이라는 점만 봐도 그랬다.
그렇다고 하면 놈들이 정말 그 병기를 대량으로 양산했을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하기 어려웠다.
“함대를 넓게 분산시켜. 놈들의 공격이 피해를 줄 수 없도록 대비한다.”
“예, 각하.”
하우가 다급하게 명령하자 윙이 물었다.
“지금 상황이 그리 다급한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놈의 기뢰 다발로 두드려 맞으면 우리 함대가 몽땅 수장당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허어.”
윙도 크게 놀랐다.
둘의 놀람 속에 함대가 급하게 분산하기 시작했다. 왕립 해군이 급하게 분산을 하자 해병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몰라 일단 공격을 늦추었다. 최악의 경우 철수 명령이 내려오자마자 바로 물러서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적이 노린 것은 ‘통나무 기뢰’도 북쪽에서 포격을 가해 해군을 밀어내는 것도 아니었다.
진정 숨겨진 수는 바로 다음에 드러났다.
콰앙!
콰쾅!
별안간 넓게 남쪽으로 내려 보낸 프리깃과 포함의 측면에서 물기둥이 솟구쳤다. 포격은 강의 양안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그 공격에 하우는 어이가 없어 윙을 보았다.
“장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해병이 강 양안을 다 청소하고 올라간 것이 아니었습니까.”
“우리 해병은 분명 청소를 했습니다.”
“그럼 저건 도대체 뭡니까. 귀신이 우리 함정들을 쏘고 있단 겁니까.”
하우의 질책에 윙은 억울함을 느꼈다.
분명 해병들은 강의 양안을 청소하고 올라갔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청소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대포란 물건이 그리 단시간에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기둥이 연신 솟구치는 와중에 프리깃 하나가 굉음을 내며 기울기 시작했다. 비명과 폭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우가 이를 뿌득 갈았다.
“베이컨!”
“예, 각하.”
“전열함을 당장 아래로 돌려. 철수할 길을 확보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금포는 어찌합니까.”
윙이 분위기를 모르고 끼자 하우가 짜증을 냈다.
“지금 상황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지금 우리 퇴로인 금포강 양안이 적에게 접수된 판입니다. 이 상태에서 기뢰 공격을 당하면 우리 군함들이 움직일 곳은 빤한데, 그렇게 되면 적의 포격을 맞아 전멸 당한단 말입니다. 당장 철수해야 합니다.”
하우가 철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자 윙도 입을 다물었다. 해병이 제 할 일을 다 하였다면 해군이 이렇게 비참하게 도주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하우는 그 꼴을 보다 해군 전투함들의 무사 철수를 위해 ‘제압조(강 양안의 적 포병을 물리칠 함대)’와 ‘엄호조(후미를 맡을 함대)’, 철수조(교전을 무조건 피해야 하는 프리깃 등)로 함대를 나누어 움직이게 했다.
왕립 해군이 갑자기 넓게 분산 당하는가 싶더니 철수 수순에 들어가자 왕립 해병은 당황했다. 그들은 이제 처절한 전투를 거의 끝내고 금포를 손에 넣은 참이었다.
시민들을 대거 구출하고, 본격적으로 적에 대한 추격을 시작하려던 차에 해군이 철퇴를 하자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시민도 구해냈고 적에게 상당한 피해도 주었다. 이런 상태에서 패전을 예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운도 여기까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