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1화. 신화의 끝 (2)
동방 함대의 모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나포된 함정과 상선만 40척이 넘었고, 포로가 된 수병이 1만 6천 명이 넘었다.
장성 계급의 포로도 넷(함대 사령관 및 분 함대 지휘관 둘, 해병 소장)이나 되었으며, 영관 계급의 고급 장교도 서른 명 이상 잡혔다. 왕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포로’들이었다.
하지만 피해는 막대한 포로에 그치지 않았다. 왕립 해군과 해병대를 합쳐 도합 삼천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기 때문이다. 이 피해 역시 왕국이 동방에서 치른 전쟁에서 최다의 것에 가까웠다.
이 무시무시한 손익 계산의 결과로서 왕립 해군 4대 제대 중 하나인 동방 함대가 군사 전략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당분간 이 거대한 전력의 공백을 연합왕국이 메울 가능성은 없었다. 무한한 자원을 가졌다고 하는 왕국조차도 함대 하나를 보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이곳에 있는 모든 왕국 수병들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걸어라. 양이 놈들아.”
검은 군복들이 총구로 수병들을 쿡쿡 쑤셨다. 왕립 해군 수병들은 그 야만적인 처사에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상승군 병사들은 길게 늘어진 포로들을 이끌고 강 상류로 움직였다. 철도가 멀쩡했다면 화차에 실어 옮겼겠지만, 교전 와중에 궤간 일부가 손상되어 그러기도 어려웠다.
포로들은 오직 제 발로 옮겨가야 했다. 물론 상세가 심한 자들과 고급 포로들은 상선에 태워서 옮겼다. 상승군의 지휘를 맡은 로망스 장교들은 민병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포로를 처우했다.
상선에 실린 채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왕국 장성들은 강의 양안을 따라 길게 늘어진 아군 포로들의 행렬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 긴 줄 만큼이나 그들의 ‘지휘’가 초래한 참담한 패배가 절로 느껴졌다.
“조국에 면목이 없소.”
하우의 말에 나머지 장성들도 침울한 얼굴을 했다.
“가족들도 걱정입니다. 이 불명예가 전해지면 조리돌림을 당할 것인데, 죄 없는 아이들이 어찌 견뎌낼지.”
“누굴 탓하겠습니까. 다 우리 잘못인 것을.”
그들은 한숨을 내쉬며 아군 포로들의 행렬을 응시했다.
기나긴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종대는 금포강을 따라 장장 백 리에 걸쳐 늘어져 있었다. 포로가 너무 많은 탓이었다. 이전에 항복한 해병대와 민간인 포로의 종대까지 더하면 전체 포로의 수는 삼만이 넘었다.
장성과 영관, 부상자들을 태운 상선들은 그 긴 행렬을 지나쳐 금포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상선들은 일단의 관료들을 태웠다. 신의 관복을 입은 자들의 상당수는 푸른 눈의 에우로페 인들이었다.
왕국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들을 패배시킨 것은 오랜 숙적, 로망스 인들이었다.
임경문은 뱃전에 올라 왕국 장성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장군들은 흠차대신의 관복을 알아보고 예를 차렸다.
하우는 상대가 고관이란 사실을 알고 한 가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바로 부하들의 처우에 대한 부분이었다.
“왕립 해군 동방 함대 사령관 하우 중장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 처우에 대해 한 말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물론 실례가 되진 않소이다. 기꺼이 답해 드리리다.”
하우의 질문을 통역 받은 임경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장군들은 그 대답을 통역 받고 긴장한 얼굴을 했다.
“우리 신은 포로들의 생명을 가능한 한 존중할 생각이오. 그 점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소.”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귀국의 원정군이 구출을 목적으로 공격을 감행할 우려가 있기에 포로는 내륙에 둘 예정이요. 그 점은 그대들도 이해하리라 생각하오.”
동방 함대가 포로를 구출할 목적으로 실증해보인 일이라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동감합니다.”
“문제라면 내륙은 식량 조달이 어렵다는 점이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들이 직접 밭을 갈고 식량을 조달해야 할 거요.”
임경문이 한마디를 덧붙이자 장군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건 앞서 하신 말씀과 상반된 것입니다. 우리 포로들의 생명을 존중하신다면 식량 공급은 응당 포로로 잡은 쪽에서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그야 그렇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잖소. 우리 제국조차 식량 자급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형편이라, 포로를 모두 넉넉하게 먹일 실정이 아니요.”
임경문은 담담하게 제국의 치부(?)를 내비쳤다. 과거 체면을 중요하게 여겼던 제국이라면 명분을 위해 식량을 다 주겠다고 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새로운 신은 허울보다는 실리를 우선하는 면이 강했다.
자기들도 먹을 것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나오자 왕국 장성들도 할 말이 없었다.
실제 연합왕국도 그렇게 한 전력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반혁명 전쟁 당시 세이비아에 종군하고 있던 왕국 원정군은 식량이 모자라자 로망스 포로들에 대한 식량 지급을 냉혹하게 삭감했다. 그러면서 원정군의 보급이 정상화될 때까지 포로들 스스로 식량을 구할 것을 명령했다.
그 통보의 결과로 로망스 포로 2천 명이 굶어 죽었다. 왕국도 그렇게 한 전력이 있는데, 신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임경문과 왕국 장성들의 대화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곧, 상선이 강주에 다다랐다.
황룡의 기를 펄럭이는 상선이 포구에 다다르자 이 도시에 남아 있던 행상 몇을 필두로 무수한 인파가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황룡기를 펄럭이며 관리들이 차례로 내려섰다.
검은 군복들이 그 뒤를 따라 포로들을 데리고 내려섰다. 상승군의 감시를 받으며 내려서는 붉은 코트 장교단을 본 강주 시민들은 잠시 머뭇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오승도가 강주에 머물 적에도 왕국에 대한 화려한 승리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그들은 양이 장교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검은 군복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에 ‘승리’를 깨달았다.
“대신제국 만세! 오승도 전하 천세!”
무수한 군중의 사이에서 만세와 천세 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는 화음이 되어 나지막이 번져갔다.
“천세! 제국 만세!”
“오랑캐들은 지옥으로 꺼져라!”
백성들이 승리에 취해 격한 반응을 보였고, 관료들은 그 반응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얼마간 백성들에게 양이 포로들을 구경시켜준 임경문은 상승군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만 이들을 이송할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그들은 포로들을 군중 사이로 끌고 나갔다. 장시간 전시해도 나쁠 것은 없었지만, 어차피 그 일이야 뒤따라 들어올 수만의 포로들로 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고급 포로들을 그런 일에 쓰기엔 아까웠다. 왕국의 군사력과 역량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세세하게 뽑아내기 위해 사용할 유용한 존재들이었다.
신이 ‘승리’를 자축하는 동안, 이 자리에 참석해 있던 외국인들은 다소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먼저, 로망스 영사와 상인들은 그 승리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신의 승리는 투자의 ‘성공’을 의미했다. 당연히 그들은 기뻐하는 신의 민간인들과 함께 승리를 자축했다.
로우랜드 공화국의 영사와 상인들은 입장이 로망스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이 압도적인 승리가 동방에서 서역이 가져온 우위의 ‘완전한 상실’로 연결될 것을 걱정했다.
그 결과 압도적 힘의 우세를 가진 신의 ‘불공정 무역’으로 이어질 공산이 있는 만큼, 그들로서는 달가운 시선으로 승리를 바라볼 수 없었다.
로우랜드 영사가 다소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다면, 오스티아 영사는 그와는 생각이 달랐다.
오스티아는 전통적으로 연합왕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최근 왕국이 프리지아와 가까워지면서 그 동맹 관계는 파국을 맞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오스티아는 상대적으로 로망스와 입장이 가까워진 상태였다. 그들로서는 왕국의 패배를 다소 즐기는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프리지아 영사는 오스티아와 입장이 달랐다. 그들은 막 연합왕국과 가까워지는 입장이었기에 그 패배를 반기기 어려웠다.
각국 영사와 상인들의 상반된 시선 속에 신은 자신들이 거둔 이 빛나는 승리를 만방에 과시했다.
오랜 세월 천하의 주권국이라 칭해온 신이 처음으로 그 광오한 수식어에 어울리는 위업을 보인 만큼 자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쨌거나 이 떠들썩한 행사를 기점으로 왕국과 신의 제1라운드는 막을 내렸다.
그 결과는 연합왕국의 참담한 패배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신이 승리를 확신하는 것은 오산이었다.
왕국은 이 동방 함대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함대를 네 개(황색 함대가 추가)나 보유하고 있었고, 작전에 동원된 해병대의 열 배가 넘는 병력을 투사할 능력도 있었다.
아직 승부는 일합을 겨룬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건문은 전쟁이 발발하기 한참 전에 북경을 출발했다. 그는 역참에서 부지런히 말을 갈아타며 서쪽으로 달렸다. 말도 사람도 지치는 강행군이었지만, 그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에 휴식은 청할 수 없었다. 국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건문은 겨우 2주도 되지 않아 제국의 서쪽 국경 끝에 다다랐다. 그는 그곳에서 루시의 협조를 받아 통행증을 발급받고 시비르로 들어섰다.
건문은 훗날 이 여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시비르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와 같다. 그곳은 인간이 살 수 없는 버려진 땅, 야만인들조차 살기를 꺼려할 지옥이었다. 북적이 쓴맛을 보면서도 우리 영토를 넘본 이유를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시비르를 넘어서자 교통편이 잘 갖추어져 고통스런 여행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에우로페에 들어선 지 일주일 만에 제국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당도할 수 있었다.
페테르부르크.
동방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루시 제국의 수도이자, 한 권력자의 의지로 건설된 권력의 산물. 건문은 그 도시에 들어선 순간 화려함에 압도당하는 것을 느꼈다.
황금으로 채색된 교회와 아름답게 단장된 저택들, 그리고 잘 정비된 거리와 운하가 그런 인상을 강화시켰다. 화려함으로는 동방 제일이라 불리는 강주도 이 도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양이들의 땅이라고 하지만 정말 대단한 곳이군. 우리 제국도 발전한다면 이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건문은 그에 감탄하며 마차의 창 너머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에 도착했다.
시비르 총독이 발급해준 통행 증명과 승도의 특사로서 가진 ‘전권 특명장’이 없었다면 이곳 궁전에는 들어와 볼 수도 없었으리라.
동방인으로서는 최초로 겨울 궁전에 도착한 건문은 근위병들의 경례를 받으며 궁의 뜰에 내려섰다.
그와 통역이 뜰에 내려서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근위대 장교가 앞으로 나섰다.
“신에서 오신 강주 왕의 특사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근위대 장교는 정중하게 말했다. 황제가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건문을 기다린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건문은 동에우로페에 접어들면서 마차를 탔는데, 그에 앞서 루시의 연락병이 페테르부르크에 특사 도착을 알렸기 때문이다.
건문은 장교의 안내를 받아 궁전 안을 구경하며 알현실로 향했다. 궁전 안은 겨울 궁전이란 별명에 걸맞게 온통 유리로 만들어진 듯했다.
얼음을 연상시키는 궁의 내부를 걷다 보니 절로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졌다.
복도 끝에는 알현실이 있었는데 근위대 장교는 그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건문과 통역이 문 안으로 들어서자 장교는 문을 닫았다.
방 안에는 화려한 옥좌가 세 개 놓여 있었다. 그중 가장 크고 화려한 의자에 중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 좌우로 금발의 어린 소년 소녀가 앉아 흥미로운 눈으로 방문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건문은 그 앞으로 나아가 예를 차렸다.
“신의 총판장경 건문이 강주 왕 전하의 특사 자격으로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통역이 그 말을 통역하자 황제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기분 좋은 음색이 곧 방 안을 채웠다.
“잘 왔소. 총판장경 건문.”
“황공합니다.”
“신과 우리가 싸운 것이 어제 같은데, 이렇게 신의 특사를 만나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소. 썩 반가운 사이는 아니지만 말이요.”
황제의 말에 건문은 쓴웃음을 지었다.
“폐하의 말씀대로입니다.”
“신의 특사가 여긴 어쩐 일이요. 배상금 문제를 논의하려고 했다면 우리 총독과 이야기해도 충분할 것을.”
황제는 느긋하게 물었지만 정말 궁금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 황제는 대륙 반대편을 먼저 돌아 전신으로 들어온 신과 연합왕국의 전쟁 소식을 접한 상태였다.
그는 이 전쟁으로 루시가 유리한 패를 잡았다는 것을 알고 여유로운 면모를 보였다.
“아마 폐하께서도 알고 계실 이야기인 줄로 압니다. 우리 신과 연합왕국의 전쟁 말입니다.”
“계속해 보시오.”
“이 전쟁은 필시 중립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제국에 이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이익을 취하고 싶다면 다른 길을 고려해 보시는 것이 좋을 거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곳에 온 이유입니다, 폐하.”
“다른 길?”
“지금처럼 연합왕국이 주도하는 세계에 안주하며 그 부스러기에 만족하신다면 중립이 좋은 방편입니다. 하지만 그 외의 길, 연합왕국의 질서를 부순다면 어떠십니까?”
“왕국의 질서를 부순다?”
“예, 폐하.”
“그 질서를 부순다는 말이 흥미롭게 들리는구려. 하지만 그 질서를 부수어서 우리가 무얼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에우로페의 부동항. 그걸 원하지 않으십니까? 그걸 원하신다면 이 기회에 왕국이 철저하게 패하도록 힘을 실어 주십시오. 큰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회사령 이북에 사단 서너 개 규모의 군대만 진주시켜 주시면 충분합니다.”
건문이 부동항을 입에 담은 순간 옥좌에 앉아 있던 황제의 눈에 묘한 빛이 흘렀다.
“부동항. 그건 참으로 탐이 나는 것이지.”
황제는 부동항이라는 말에 옥좌의 팔걸이를 으스러지게 잡았다. 루시의 역대 황제들에게 부동항은 한 번은 손에 쥐고 싶은 이상향이나 다름없었다.
그 항구 하나를 얻기 위해 치른 전쟁만 수십 번이 넘었다. 그때마다 수만, 수십만의 피를 대가로 지불하며 한 발 한 발 목표에 다가섰지만, 그 뜻을 이룬 적은 없었다.
그들이 부동항을 손에 넣기를 꺼려하는 뭇 열강들의 견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부동항이란 것은 귀국이 약해져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폐하. 우리가 패망한다면 그 강역에 세를 뻗칠 상대는 연합왕국이 될진대, 폐하께 부동항을 허락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소. 농으로 한 말이니까.”
황제는 농담이라고 했지만 이익이 있다면 정말 신을 물어뜯고도 남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눈빛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합왕국이 약해지면 확실히 얻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건 어찌 보장할 수 있는 거요?”
“왕국의 역량이 기운다면 그들이 오스티아를 지원할 수 있겠습니까?”
뜻밖에도 동방인이 에우로페의 국제정세를 입에 담자 황제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리는 있는 이야기요. 그러니 왕국이 약해지게 만들어서 오스티아로부터 항구를 가져가라?”
“원하신다면 우스만의 영토도 탈취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그게 왕국을 약화시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이익이라 그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구태여 우리가 왕국과 마찰을 감수하며 얻을 이익치곤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점이라면 저희가 몇 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제안?”
“남은 배상금을 탕감해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 조건이야 예상했소. 다른 것은 없소?”
“물론 하나 더 있습니다.”
“말해보시오.”
“이번 전쟁에서 노획할 연합왕국의 무기 몇 점을 연구용으로 넘겨드리겠습니다. 근대 무기에 목이 마른 폐하께 상당히 유용한 제안이 되지 않겠습니까?”
황제는 그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좋소. 그대, 아니 그대의 주인이 내민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명심해두길 바라오. 짐이 손을 잡은 것은 그대가 보여준 미래이지, 왕국에 패할 미래가 아니란 것을. 대세가 기운다고 판단하면 짐은 승냥이가 될 거요.”
황제는 한마디를 덧붙인 다음 조건을 수락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