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73화 (373/425)

제373화. 제국의 질서 (2)

수평선 위로 배가 나타났다. 검은 석탄 연기를 길게 뿜으며 나타난 배는 처음에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그 압도적인 위용과 존재감이 바다를 가득 채웠다. 거함은 그 존재 자체로 바다를 위압하는, 바다의 왕자였다.

그 군함의 이름은 흑 태자.

인상적인 느낌을 주는 긴 선체에 온통 새카맣게 칠해진 군함이 발하는 아우라가 세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때 신을 위협하는 병기로써 존재했던 괴물은 그 마스트에 황룡의 기를 펄럭이고 있었다. 그 배가 차츰 가까워오자 신의 관료들은 가슴 뿌듯한 얼굴을 했다.

행상들도, 심지어 이번 ‘쇼’를 위해 불려나온 황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모두가 저토록 강대한 괴물이 신의 깃발을 달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괴물이 천천히 항구로 다가오자 상승군 병사들이 절도 있게 한 줄로 선 다음 하늘을 향해 예포를 쏘았다. 그 환대에 응대하듯 장갑함에서도 가볍게 예포를 쏘았다. 천둥 같은 포성으로.

장갑함의 압도적인 포성에 관료들이 잠시 움찔하긴 했지만, 이내 그들의 얼굴빛은 회복되었다.

승도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앞으로 나섰다. 제국 최고 권력자인 강주 왕이 몸소 장갑함을 맞이하러 나오자 멀리서 이 광경을 본 해군 장병들이 갑판에 도열했다.

그들은 항구에 닿기 직전 멋들어진 선상 경례로 승도에게 경의를 표시했다. 승도는 이마 위로 가볍게 손을 들어 답례를 했다.

곧, 장갑함 나포의 주역들이 차례로 보트를 타고 나루로 올라왔다.

“임시로 함장을 맡고 있는 르망입니다, 전하.”

“그대의 공에 대해 이미 보고를 받았습니다. 우리 제국을 위해 진정 큰 공적을 세워 주었습니다. 원한다면 제국의 작위도 내려 주겠습니다.”

“주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승도가 말을 골랐다.

“백작의 작위를 천거하겠습니다. 폐하, 공을 세운 이방인에게 백작의 작위를 가납해 주시겠습니까?”

승도가 묻자 황제는 불편한 빛도 내비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 싸움도 여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어린 황제는 작금에 이르러서야 그와 승도의 차이가 얼마나 거대한지 깨달았다. 그나마도 이번 전쟁을 통해 ‘넘을 수 없는 위업’을 이룬 이상 신경전을 벌여봐야 그만 다칠 뿐이었다.

황제가 선선히 허락하자 승도는 르망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나머지 장병들도 차례로 격려하며 몸소 상을 내렸다.

“모두 신의 이름으로 잘 싸워 주었습니다. 부족하나마 이 사람의 마음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승도는 병사들에게 은자 백 냥씩을 상급으로 내렸다. 배에 탄 수병들이 모두 육백이 넘으니 이 돈만 해도 육만 냥이 넘었다. 여기에 나포 포상금이 별도로 지급될 예정이니 수병들로서는 돈벼락을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승도의 눈짓을 받은 몇몇 상인들이 액수가 기입된 어음을 하나씩 나누어주는 동안, 해군 장교 하나가 조심스레 그에게 조언했다.

“그보다 전하, 기왕 최강의 장갑함을 얻으셨으니, 함 명을 내리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함에 이름을?”

“예, 에우로페에서는 전통적으로 함을 나포하면 새로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처럼 상징적인 전투함은 이야기가 달랐다.

승도도 생각해보니 그럴 법하다고 여겼다. 그는 잠깐 생각해보다 한 가지 이름을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 해군의 연승을 염원하는 뜻에서 ‘천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천무(天武). 하늘에 닿은 무.

승도가 꺼낸 이름에 대신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례상 황제가 이름을 붙여야 할 일이었지만, 그가 ‘욕심(?)’을 내어 이름을 직접 붙인 이상 그리할 이유는 없었다.

“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전하.”

“과연 제국 해군의 영광스런 미래가 보이는 듯합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왕국의 위상함 흑 태자는 ‘천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천무는 이제 제국 해군의 대들보로서 싸울 운명을 부여받았다.

포상과 이름 부여가 끝나자 승도는 선원들에게 그만 휴식을 주게 했다. 긴 전투와 항해로 지친 이들에게 ‘약간의 휴식’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들이 경례를 하고 물러가는 모습을 지켜본 후, 승도가 입을 열었다.

“이틀 정도 휴식을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사이에 배에 석탄과 생필품을 충분히 싣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전하.”

승도는 다음의 항해를 위한 지시를 전하고 뒷짐을 진 채 만족스런 얼굴로 자신의 수중에 떨어진 장갑함을 보았다. 이 배는 그가 ‘왕립 해군’과 싸운 이래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를 상징하고 있었다.

그 승리는 어두웠던 과거의 패배에서 비롯된 불안을 말끔히 날려 보내기에 충분했다.

며칠 후, 승도는 휴식을 취한 선원들과 함께 직접 항해에 나섰다. 정치적으로 지고한 신분인 그가 위험한 해상에 나서는 일은 상당히 꺼림칙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바다에 그 적이 완전히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안전한 최강의 장갑함이 그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승도는 천무를 타고 유구까지 나아갔다. 그러곤 이곳에서 동영의 목을 조르고 있던 클레망소 사령관 이하 북양 함대의 전투함들과 합류했다. 그는 이 함정들 중 통상 파괴를 지속할 대형 프리깃들만 남기고 장갑함 3척과 함께 동영 행을 계속했다.

불과 6척(석탄을 실은 보급용 상선 2척 포함)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함대였지만 동방에서 그 적을 찾을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이니 만큼 그 위용은 무지막지했다.

함대는 보란 듯이 동영의 해안선을 따라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동영의 해안 포대 및 연안 방어용 함정들과 짧은 교전이 있었지만 피해는 전무했다. 동영의 역량으로 가공할 장갑함 전대를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함대가 동쪽으로 나아오는 동안, 동영 정부는 폭격이라도 맞은 듯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들은 이 가공할 침략자를 저지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마침내 함대가 동경만에 이르렀다.

승도는 강주 관리사로 재직하던 시절 한차례 찾아왔던 동경을 바라보며 옛 소회에 잠겼다.

‘돌이켜보면 동경을 찾아온 것도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닐진대, 휘하에 거느린 전력이 천양지차로 달라졌어.’

그의 감상처럼 그 전력은 과거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강주에 국한되었던 지배 영역은 대륙 전역을 넘어 동방 전체에 퍼져 있었고, 그 군사력은 일개 군벌에서 열강과 겨룰 수준까지 성장해 있었다.

그 해군력만 보아도 성장의 정도를 알 수 있었다.

한때는 열강이 퇴역시키려는 대형 프리깃 몇 척을 가지고 왔던 그가 지금은 새로운 시대의 필수 병기라 이야기되는 장갑함을 네 척이나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그 중 하나는 당대 최강이라 불리는 괴물 급의 함정이었다.

그가 망원경을 들고 동경을 보고 있는데, 클레망소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전하, 동경까지 찾아오셨는데 함포는 쏘지 않으십니까?”

로망스 사내는 구태여 ‘몸소’ 이 머나먼 변방까지 행차한 승도가 강력한 함포를 쓰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기왕이면 멋들어지게 대포를 쏘며 상대를 겁주는 모양새가 강주 왕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승도의 생각은 달랐다.

“쏠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쏘아본들 얻을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목적은 여기에 온 순간 달성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보여줄 것은 ‘공포’입니다.”

“대포를 쏘지 않는 것과 공포는 조금 상반된 의미가 아닙니까?”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클레망소 경도 공부를 해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 동방에서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드러난 칼보다 드러나지 않는 칼이 무섭다는.”

“드러난 칼보다 드러나지 않은 칼이 무섭다?”

서역 사내가 의아스럽다는 듯 턱을 매만지자 승도는 웃으며 설명을 붙였다.

“그 속담은 일종의 심리전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강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저들은 그만큼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게 마련입니다. 여기까지 수고롭게 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럼 뭔가 더 큰 것을 노릴 것이다. 스스로의 불안에 사로잡혀 더 큰 공포를 맛보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이성이란 때로는 그 주인을 곤란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게 마련입니다. 이 사람은 그걸 말하는 겁니다.”

“이해하였습니다. 일전에 동경만을 찾아오셨을 때도 비슷한 수를 쓰지 않으셨습니까.”

“기억하고 계시다니, 이 사람의 기분이 좋습니다.”

승도는 망원경을 내린 채 뒷짐을 졌다.

“그렇다 해도 망망대해에서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문제야 있지요. 국정의 수반인 이 사람이 장시간 북경을 비우는 것은. 하지만 답은 오래지 않아 올 겁니다. 이미 동영은 궁지에 몰려 있으니까요.”

승도는 어렵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의 눈에는 상대가 내릴 결론이 훤히 보였다.

***

백기가 걸렸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보트를 타고 온 동영의 관료들은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현 동영 정권의 최고 권력자들이었다. 마에다 공작을 위시한 영주들은 거대한 철선의 옆에 내려진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그들은 병풍처럼 늘어선 신의 병사들을 보며 ‘자신들의 처지’를 절감했다. 한때 동방의 패권을 꿈꾸었던 화려한 시절은 이제 없었다. 동영은 그저 신의 관대한 처분을 구걸하는 패전국에 지나지 않았다.

승도는 관복자락을 펄럭이며 앞으로 나섰다.

“멀리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영 정부의 관료 여러분.”

승도가 인사를 건네자 옆에 있던 클레망소가 딱딱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강주 왕 전하이십니다. 예를 갖추어 주십시오.”

그 말에 동영 관료들은 당황하며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승리자. 그것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상대국의 실질적인 최고 수반이 몸소 군함을 타고 왔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그들은 그 파격에 당황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승도는 그 반응에 만족했다. 상대가 당황한다면 그만큼 협상에서 허를 보이기 쉬웠다. 그가 몸소 행차한 것은 정치적 실리를 얻기 위함도 있지만, ‘파격’을 통해 더한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최고위 직급인 그가 나선다면 그만큼 동영 쪽이 받는 부담도 클 수밖에 없었다.

“강주 왕 전하께서 몸소 행차하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놀라실 것까지야 없습니다. 이 사람도 연합왕국을 물리치고 여유가 생겨 걸음을 한 것뿐입니다. 여유가 없었다면 먼 동경까지 올 여유도 없었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승도는 구태여 질문을 던져 자신의 우위를 확인시켰다. 너희가 손을 잡은 왕국은 내 손에 박살이 났다. 그러니 너희는 주제를 파악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좋을 거라는 말을 질문으로 돌려 말했던 것이다.

그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승도는 손짓을 해 의자를 가져오게 한 다음 그에 엉덩이를 붙였다. 물론 협상을 할 동영 관리들에게는 의자를 내주지 않았다. 누가 상전이고 누가 아래인지 주지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협상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그 우세를 확인시킨다. 과거 그가 에우로페에서 몇 차례 써먹은 수법이기도 했다.

그는 동영 관리들에게 가져온 ‘협상 조건’을 제시하게 했다. 일전에 항복 조건을 제안한 만큼, 동영 정부에서도 신의 항복 요구 사항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가 자신들의 답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안 동영 관리 하나가 조심스레 조정의 ‘공문’을 내밀었다.

승도는 동영인들이 신의 문자로 정성스레 작성한 협상문을 건성으로 읽었다. 그는 몇 글자 대충 읽더니 그것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곤 말했다.

“문자의 격이 맞지 않군요. 이 사람을 칭하는 칭호가 전하인데, 왜 귀국의 왕은 폐하입니까? 왕이라고 수정해서 표현한 것은 잘한 일이나,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새로 수정하세요.”

승도는 사소한 것부터 트집을 잡았다. 이런 것부터 상대의 혼을 빼놓아야 나중에 큰 것을 양보받기 쉽다는 것을 그는 장사를 통해 배웠다.

줄다리기란 신경전을 통해 상대의 인내를 바닥내는 쪽이 쉽게 이기게 마련이었다. 협상의 줄을 놓는 순간 상대는 모든 것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승도는 팔짱을 낀 채 수정을 기다렸다. 동영 관료들은 땀을 흘리며 문장을 새로 수정한 다음 내밀었다. 승도는 그것을 읽다 몇 줄 읽지도 않고 다시 내던졌다.

“그 아래, 우리 신에 대한 명칭을 정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대 신제국입니다. 아울러 동영국의 명칭 앞에 대를 넣는 행위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 제국의 지위에 대한 도전처럼 보입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이후로도 승도는 몇 번 트집을 잡았다.

‘명칭’과 ‘용어’, ‘격’, ‘문장의 형식’, 하다못해 문장의 길이까지 트집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다 잡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동영 관료들은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승도는 문서 초안의 ‘형식’만 가지고 자그마치 하루를 괴롭혔다. 피곤할 법도 했지만 그는 체력에 자신이 있는 젊은 사내였다. 늙은 동영 관리들과 체력 싸움을, 그것도 앉아서 벌이면 누가 이길지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조건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제시한 조건은 대마의 할양과 려에 대한 배상, 유구의 독립, 상선의 인도 등입니다. 이 조건이 수용되지 않는 한은 동영과의 협상이 없다는 점을 명시해 두었습니다. 한데, 귀 측의 협상안을 보니 내용은 대부분 들어주면서도 묘하게 조건을 붙이는 것이 걸립니다. 먼저 대마에 대한 할양에는 동의하되, 30년 이후 섬의 주민들의 여론을 조사하여 귀속 여부를 재결정하자는 것이 좀 묘하군요. 이건 30년 후에는 찾아가겠다는 말 아닙니까?”

동영에서 나름 머리를 굴려 신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지를 만회할 장치로 넣은 것인데, 승도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영토를 간단히 할양하는 부분은 국민들의 반감이 있어 문제가 큽니다. 이런 단서 조항이 있지 않으면 저희들로서도 어렵습니다, 전하.”

“그건 귀국이 알아서 할 문제요. 조건은 철회할 겁니까, 말 겁니까?”

승도는 그 요구를 거절하면 협상은 없다는 태도로 말했다.

동영 관리들은 거의 한 시진에 걸쳐 설득을 시도했다. 하지만 승도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그가 엉덩이를 들려는 모습을 보이자 관리들이 눈빛을 교환하고 재빨리 말했다.

“수락하겠습니다.”

그들로서는 하루를 꼬박(?) 생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협상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꼴을 볼 수 없었다. 전쟁이 길어져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현실론도 한몫했다.

승도는 그제야 엉덩이를 붙였다.

동영 관리들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겨우 안도했다.

“두 번째, 유구에 붙인 조건도 좀 마음에 안 드는군요. 이 사람은 독립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재번봉행’ 체제로 회귀시키고 이를 영원히 유지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이 사람을 우롱하는 행위 아닙니까?”

“하오나, 전하. 원래 그것이 순리입니다.”

“이 사람의 순리는 다릅니다. 생각이 다르다면 여기 동경만에서 무력으로 누구의 생각이 옳은지 결정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

승도의 협박(?)에 동영 관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은 피곤하고 어렵고 상대는 조건만 보면 싸우겠다는 태도를 불사한다. 입씨름을 해봐야 통할 상대도 아니었다.

직급이라도 낮으면 어떻게 ‘고위직’으로 나와서 협상을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어필하며 동정이라도 좀 얻어 볼 텐데, 하필 상대의 지위가 너무 높았다.

통할 수 있는 패 자체가 전혀 없었다. 결국 동영 정부 관리들은 준비한 협상안을 모두 승도의 입맛대로 수정하고 그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훗날 역사에 동경 조약으로 기록된 ‘동영’의 굴욕적인 강화 조약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1조. 동영은 동방의 질서를 깨트린 국가로서 그 책임을 지고 평화의 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규정한다.

제2조. 제1조에 따라 동영 정부는 유구의 독립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것을 천명한다. 이를 위해 유구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은 50만 냥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보유한 상선의 1할에 해당하는 20척을 저리에 양도한다.

제3조. 제1조에 따라 동영 정부는 려의 지위를 존중하고, 이를 보장할 것을 천명한다. 과거 무례에 대한 보상으로 대마를 할양하며 은 100만 냥을 지불한다.

또한, 원양 항해 능력이 부족한 려를 위해 보유한 상선의 4할에 해당하는 80척을 저리에 양도한다.

제4조. 제1조에 따라 동영 정부는 신의 패권을 존중하며, 이에 승복할 것을 천명한다. 이 질서에 순종하는 의미로 동영의 육군과 해군은 신의 총리아문이 정한 숫자 이상을 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제5조. 제1조에 따라 동영은 동방의 질서를 해칠 수 있는 서역 국가와의 접촉을 엄금한다. 서역과의 외교는 총리아문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명시한다.

제6조. 제1조에서 제5조에 이르는 사항을 감시 감독하기 위해 신은 동영의 바다와 육지에 군대를 파견할 권리를 갖는다. 군 파병 시 총리아문은 동영 정부에 7일 전에 통보할 의무를 갖는다.

이상의 내용은 동영에 완전히 족쇄를 채운, 신에 도전할 여지를 없애 버렸다고 평가할 만했다.

승도는 이 조약으로 동방에서 신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연합왕국과의 마지막 진검 승부에 주력할 준비를 마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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