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7화. 왕국의 반격 (2)
승도는 피할 수 없는 대결에 앞서 싸움을 위한 포석을 두었다. 적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 수집, 유리한 주변 정세의 조성, 상대의 전략을 제약하기 위한 병력 배치,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의 확보.
그 모든 수는 왕국과의 대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연합왕국도 그 시간 동안 놀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신을 향한 전력의 집중을 위한 첫수를 두었다. 그 포석은 바로 프리지아였다. 프리지아와 연합왕국은 ‘실랑이’ 끝에 ‘로망스’에 대항하는 동맹에 합의하고 같은 배를 탔다.
그리고 왕국의 전략에 따라 프리지아는 강력한 육군을 준비했다. 왕국은 이러한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도록 수시로 역정보를 흘리는 한편, 그 주변국(세이비아, 루시)이 대결에 개입할 수 없도록 손도 썼다.
적절하게 돈으로 정치가들을 매수하기도 하고, 해당 국가들에 투자한 자산을 일시에 회수하여 군대를 움직이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왕국의 능수능란한 물밑 작업으로 로망스는 완전히 고립된 처지에서 손발이 묶였다.
이어 로망스와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자국의 여론을 조율하고, 프리지아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기 어렵게 했다.
이런 측면 지원을 등에 업고 프리지아는 오스티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단 7주 만에 오스티아를 패배시켰다.
이 승리로 프리지아는 중부 에우로페의 중소 국가들 다수를 자국의 영향력 하에 포함시켜 ‘로망스’와 단독으로 대결을 해도 충분한 국력을 확보했다.
이 단기적인 정세 변화는 에우로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승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건문과 함께 에우로페의 정략에 대한 보고를 받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간단한 사안이 아니군요. 프리지아가 중부 에우로페의 패권을 장악했다니.”
“프리지아가 강성해지는 것이 우리에게도 영향이 있겠습니까.”
루시까지 다녀왔지만 건문은 아직 에우로페의 정세에 썩 밝지 않았다. 세부적인 외교의 틀과 국가 간의 관계까지 파악하기에는 아는 것이 적었다.
승도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매우 큰 영향이 있을 겁니다. 프리지아는 기본적으로 로망스와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입니다. 지금까지는 로망스의 국력에 눌리기도 했고, 중부 에우로페에서 주도권을 잡는 문제로 오스티아와 대결해야 했기에 로망스의 편에 서긴 했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로망스와 한판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중부 에우로페에서 자신들이 현재 확보한 지위를 확고히 하자면 루시가 개입하기 전에 자신들을 포위한 주변 열강들의 힘을 확실히 꺾어두어야 할 테니까요.”
“로망스와 프리지아가 충돌한다면 확실히 영향이 크겠군요.”
“그럴 겁니다. 전쟁에서 로망스가 이긴다고 해도 그 국력 손실은 적지 않을 것이고, 진다고 하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프리지아가 이긴다면 연합왕국은 마음 놓고 전력을 동방에 보낼 겁니다.”
“그리 예상하시는 연유가 있으십니까.”
“프리지아는 기본적으로 육군 대국입니다. 그들은 바다를 천시하여 해상 전력을 거의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중부 에우로페의 패권국이 되어 주변 열강을 위협해 준다면, 모든 국가들이 보일 태도는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다 같이 육군에 투자하겠지요. 프리지아 역시 자신들의 입지를 완전히 다질 때까지는 육군에서 손을 떼지 못할 테고 말입니다. 로망스가 패한다면 적어도 이십 년 이상은 왕국의 해상 패권에 도전할 나라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왕국 해군이 본토 방위에 걱정할 부분이 있겠습니까?”
“섬나라인 왕국으로서는 부담이 확실히 줄어들겠지요. 하면?”
“프리지아가 로망스를 꺾거나 무승부만 내더라도 연합왕국 해군은 본토에 상주한 왕립 해군을 동원할 수 있을 겁니다.”
승도는 무거운 한마디를 냈다.
건문도 그 말의 의미를 알기에 침을 삼켰다.
그들은 이미 왕립 해군이 보유한 현재 전력의 규모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전투에서 확보한 고급 포로들을 심문하여 그들의 전력에 대한 상세한 최신 정보를 얻은 덕이었다.
거기에는 신규 편성된 ‘황색 함대’에 대한 약간의 ‘추측성’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왕국이 동방을 공격해 온다면 승도가 전쟁 직전 예상했던 2개 함대 규모(서방 함대+동방 함대)가 아니라 그보다 압도적인 규모(본국 함대+서방 함대+황색 함대)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 전력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왕국이 전력을 다해 공격해올 수 있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어째 두렵습니다.”
“이 사람이 보기에 가망이 없는 일은 아닙니다. 아마 실현 가능한 미래일 겁니다.”
승도는 찻잔을 들었다.
“하면 좀 더 면밀하게 정보를 수집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손을 쓸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손을 쓴다고 하시면.”
승도는 뜨거운 찻물을 넘기며 말했다.
“양이들이 만전을 기하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양이들의 남방 식민지에서 선을 댈 수 있는 친구들을 알아보세요.”
“그들의 안마당을 흔드실 생각이시군요.”
“휴전 기간 중에는 손을 쓸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우리에게도 손해니까요. 양이들이 도착하고 우리 영토를 공격하는 순간부터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상인들을 통해 접촉할 선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신중을 기해 추진하셔야 합니다. 적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군을 몰고 온다면, 약자인 우리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적의 ‘신중함’을 빼앗는 것이 유일한 길이니까요.”
승도는 병법의 이치 하나를 입에 올렸다. 적이 강하고 신중하다면, 그 신중함을 빼앗아 경솔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최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동방 함대처럼 덫에 끌어들여 파멸시키는 것. 그것이 그가 바라는 그림이었다.
“물론 말이 새지 않도록 추진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만 나가보세요.”
“예, 전하.”
건문이 방 밖으로 물러나자 승도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몸을 묻었다.
공격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남방 식민지를 흔든다면 왕국 원정군은 병력을 쪼개든지, 아니면 시간을 촉박하게 가지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만 해도 누리는 전략적 이익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지상 병력에 제약을 가한다고 해도 왕립 해군의 막강한 전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승도는 좀 더 적을 제약할 수를 강구해야 한다고 여겼다.
‘적을 조금 더 궁지에 몰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 수로는 확실하다는 느낌이 오지 않아.’
그는 차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책상에 놓인 수익 보고서 하나를 보자 뭔가가 살며시 떠올랐다.
수익, 투자, 메리.
연결 고리 하나가 금방 머리를 스쳤다.
승도는 그녀라는 장기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 메리가 있었어.’
신대륙의 메리는 어마어마한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연합왕국의 생리에 밝은 승도는 그 자산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의 정권에서 일하던 자들 중에도 몇몇이 왕국 계좌에 그들의 재산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아직 잠잠한 기간 동안 신대륙 쪽에도 손을 써두면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승도는 왕국의 이목이 신에 쏠려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합왕국이란 최강의 적을 굴복시키려면 내외의 여건을 전부 최악으로 만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신대륙에도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았다.
‘일단 그곳은 왕국 본국과 감정도 좋지 않고 한차례의 전쟁도 치른 사이다. 적당히 여론을 움직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승도는 한 가지 구상을 했다. 현재 그의 수중에 있는 왕국 포로들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하여 그것들을 신대륙에 있는 메리를 통해 그곳에 퍼트리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전쟁으로 왕국이 입은 피해, 그리고 포로로 잡힌 왕국 국민들의 고난을 강조하면서 ‘왕국의 위신’까지 은근히 깎는다. 그렇게 하면 연합왕국 본국이 받는 압력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다.
거기다 운이 좋으면 이 전쟁의 ‘정확한 진상’을 파악한 신대륙 주민들이 왕국이 ‘의외로’ 허술하다고 생각하고 불온한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되어도 왕국의 가용 역량을 훨씬 떨어트릴 수 있었다.
‘좋아. 일단 이 방법도 써보는 것이 좋겠어.’
승도는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상을 마치는 즉시 바로 행동에 들어가는 것이 그의 강점이었다.
***
과거 최초의 신대륙 독립 전쟁은 식민지 총독 제롬의 혹독한 ‘과세 정책’에서 비롯했다고 이야기되었다. 하지만 과세가 모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전쟁이 벌어진 진정한 이유는 과세가 아니라 ‘화폐 조례’ 때문이었다.
세계 유일의 금융허브를 표방하고 있던 연합왕국 본국은 모든 자본은 본토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믿음에 거슬리는 존재가 있다면 반드시 응징을 해서 그렇게 만들곤 했다.
그 믿음에 거슬렸던 것이 바로 신대륙이었다.
신대륙의 식민지인들은 최초 대륙 개척 단계에서 극빈한 상태를 면치 못했다. 화폐를 가지고 들어온 자는 없었고, 모든 경제 활동은 물물 교환에 기초를 두었다.
그러다 보니 식민지 경제가 안착이 된 상태에서도 경제를 순환하는 화폐의 유동량 자체가 극히 미미했다. 이런 불안한 상황은 경제 발전에 큰 지장을 주었다.
이 점에 착안한 신대륙의 정치가 세인은 ‘신대륙’ 내에서만 통용이 되는 신용화폐를 고안해 내기에 이르렀다. 이 신용화폐는 론디니움에서 거래에 사용하던 백지어음을 본뜬 것이기도 했다.
이 백지어음이 유통되면서 신대륙의 경제는 빠르게 발전을 거듭했고, 독자적으로 산업의 기초를 놓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신대륙이 왕국 본국과 별개의 경제권역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왕국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식민지 정부에 ‘화폐 조례’의 반포를 명령했다.
화폐 조례란 신대륙 신용 화폐의 유통을 금지하고, 왕국 본국에서 발권한 ‘정식 화폐’만 사용할 것을 명령한 화폐 금지령이었다.
이 명령으로 신대륙 경제는 일시에 냉각되었다. 불황이 대륙을 강타했고 실업자가 속출했으며, 기업들이 도산했다. 화폐가 돌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식민지인들은 왕국 정부에 요구를 내놓았다. 신대륙 식민지인들의 활동경계를 넓혀 ‘금광’과 ‘은광’을 보다 많이 개발할 기회를 줄 것, 세율을 인하해줄 것 등이 그 요구였다.
화폐가 돌지 않는 신대륙 주민들로서는 이렇게라도 해야 숨통이 트이니 당연한 요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왕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도리어 전쟁에서 진 막대한 채무를 신대륙에 세금으로 전가했다. 이로써 불만은 극에 달했고 독립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장기간 신대륙을 전화에 몰아넣었다. 수만 명이 학살당하고 막대한 인프라가 파괴되었다.
전쟁 이전의 ‘화폐 조례’와 ‘과세 정책’, 그리고 전쟁 중의 가혹한 처우로 신대륙 주민들의 본국에 대한 반감은 매우 높았다.
그 같은 민심을 보여주듯 신과 왕국의 전쟁에 관한 기사를 보는 자들의 표정에는 고소하다는 빛이 깔려 있었다.
전쟁에서 왕국의 편을 드는 이들은 전통적인 왕당파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적극적인 자들 중 일부는 왕국이 호된 맛을 보는 이 좋은 기회에 돈도 벌고 엿도 먹여 주겠다는 심산으로 동방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항구에서 뱃사람으로 일하던 클리니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왕국에 사감이 매우 많은 사람이었다. 신대륙에서 뱃일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왕국에 원한이 적은 이가 얼마나 있겠냐만, 클리니는 유별날 정도였다.
그는 과거 반혁명 전쟁 당시 에우로페와 신대륙을 오가는 무역에 종사했다. 그 시절 그는 선주의 총애를 받으며 상당한 급여도 받을 만큼 성공한 인생을 달리고 있었고, 탄탄한 직장과 급여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약혼녀도 얻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를 파멸시킨 장본인은 바로 왕국이었다.
왕립 해군은 공해 상에서 경고도 없이 그의 배를 임검했다. 그리고 배에 탄 선원들의 신분을 조사한 다음, 불분명한 자들은 ‘탈주병’으로 분류한 후 자신들의 배로 끌고 갔다. 클리니도 그렇게 왕국 해군에 끌려갔다.
탈주병은 왕립 해군의 혹독한 처우를 견디다 못해 해군에서 이탈한 자들을 말했다. 항구와 바다에서 달아난 그들은 배운 일이 하나밖에 없어 같은 상선업계 등에 취업을 했는데, 탈주로 인력이 부족해진 해군은 수시로 이들을 임검하여 도로 검거해가곤 했다.
문제는 이 검거 과정이 순전 주먹구구식이란 것이 문제였다.
해군 소속이 아니었던 자들조차 신분 증명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끌고 가서 해군 명부에 등록을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신분 증명이 편한 본국 출신들과 달리 신대륙 출신들은 그게 어려웠다. 신대륙에서는 ‘해운업’ 자체가 총독부의 통제를 받아 정식으로 명부에 오른 선원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클리니는 억울하게 해군에 끌려가 반혁명 전쟁 기간 동안 7년을 복무해야 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클리니는 모든 것을 잃었다. 아무리 사람 좋은 선주라 해도 빈자리를 7년이나 남겨둘 턱이 없었다.
직장은 사라졌고 급여도 없었다. 약혼녀 역시 소식이 두절된 그 대신 다른 남자를 골랐다. 완전한 파멸이었다.
인생의 끝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대가로 왕립 해군이 그에게 쥐여 준 것은 손톱만 한 월급. 그나마 부정부패로 이리저리 자르고 잘라내어 상선 시절에 두 달이면 벌 수 있었을 푼돈이었다.
클리니로서는 왕국에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염병할 놈들에게 엿을 먹여주지 않고는 관에 들어가도 눈을 감을 수가 없다.’
클리니는 뱃전에 몸을 실은 채로 눈을 감았다.
그 옆에 타고 있는 자도 왕국에 원한이 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름은 브라운으로, 그 역시 왕국에 뿌리 깊은 원한이 있었다.
브라운의 부친은 신대륙 해운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그는 신대륙과 에우로페를 오가며 중계무역을 해서 수익을 버는 거상이었다.
그 장사만 계속했다면 아마 신대륙에서 손꼽히는 거부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장사는 왕국이 망쳤다.
중도에 반혁명 전쟁이 발발하자 왕국 해군은 상선 징발 명령을 내렸다. 전쟁에 따른 징발은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브라운의 부친은 승복했다.
문제는 그 징발령이 신대륙에만 내려졌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십 년 동안.
그 시간 동안 신대륙의 무역은 완전히 파괴당했다. 그 이익은 고스란히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본국 상인들에게 점유되었다.
그 사실을 안 브라운의 부친은 분통을 터트렸다.
식민지 총독부를 찾아가 항의도 해보고, 식민지 대표자 회의를 통해 공식 발언도 냈다. 그러자 왕국 정부는 그를 ‘정신 나간 불평분자, 로망스의 간첩’이라고 몰아붙인 다음, 해운업 면허를 취소해 버렸다.
그로써 브라운의 가문은 완전히 몰락했다. 생계를 위해 그의 여동생은 몸을 팔아야 했고, 남동생들은 방직 공장에 가 18시간씩 일을 해야 했다.
누가 가문을 그렇게 망하게 했는가.
브라운은 그 생각만 하면 절로 치가 떨렸다.
신대륙 출신들 중에는 이렇게 왕국에 대한 악감정이 행동의 차원에 이를 만큼 강한 자들이 꽤 있었다.
이런 이들은 ‘일시 휴전’ 소식을 접하기가 무섭게 동방으로 향하는 배편에 올랐다.
그 대부분은 해운 업계에 종사하는 자들이었다.
승도가 해상 전력의 운용에 고심하던 때에 예상치도 못한 도움의 손길이 대양을 건너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대양 무역의 경험이 있어 해군으로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자들이었다.
실제 연합왕국이 상선 선원들을 징집해서 바로 해군 선원으로 전용시킨 것만 보아도 그 효용은 알 만했다.
거기다 이들은 왕국에 대해 이를 가는 자들이었다. 애국심 따위를 걱정하지 않고 써도 되는 ‘전문적인 양이’들인 것이다.
이 양이들은 전문 인력의 부족에 시달리는 신에게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최고의 인력이었다.
이런 이들이 한 달 평균 500~1,000여 명가량 신대륙에서 신을 향해 출발했다.
실로 엄청난 숫자였고 그만큼 ‘왕국의 업보’가 크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연합왕국의 철저한 패배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