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81화 (381/425)

제381화. 징벌 원정 (1)

역사적인 아침이 밝았다.

연합왕국 하원은 만장일치로 신에 대한 원정군 파병을 결의했다. 신과의 전쟁을 결의한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예상치 못한(?) 로망스와의 전쟁으로 시작이 조금 늦어졌을 뿐이었다.

하원에서 파병 결의안이 통과되자 수상 관저에서 마차들이 출발했다. 이 마차들은 왕국 남부의 각 항구에서 출발 대기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육군과 해군 장성들에게 ‘출동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었다.

전신을 이용해도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었기에 왕국은 ‘격식’을 차려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날 오후, 왕국 남부의 항구들로 마차들이 도착했다. 각 지휘관들은 그 명령을 받자마자 배들의 닻을 올리게 하고 돛을 펴게 했다. 증기선들은 증기기관에 석탄을 한껏 채워 넣었다.

왕국의 동방 원정군은 모두 세 개의 사령부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이 가공할 해군력을 지휘할 동방 원정군 해군 사령부와 지상 작전을 총괄할 동방 원정군 지상군 사령부, 그리고 장대한 원정을 지원할 동방 원정군 군수 사령부가 그들이었다.

참가한 장성들의 면면도 쟁쟁했다.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 왕국 육군과 해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모두 나섰다.

군대의 규모가 워낙 컸기에 해군성과 육군성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던 원수 계급의 장성들도 나섰다. 모두 실전 경험이 풍부한 자들이었다.

참가한 군대도 왕국 군사력의 첨병에 해당하는 전력들이었다.

해군에서는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본국 함대가 참가했고, 여기에 서방 함대(신대륙 수역 담당)와 황색 함대(예비역 함대로 4대 제대에 포함되지 않음)가 가세했다.

해병대 역시 자신들의 잔여 가용 전력 대부분에 해당하는 3개 연대를 동원했다.

육군 역시 전통과 역사를 가진 부대들을 대거 동원했다. 로망스 전에도 종군했던 본국의 정예 연대 6개가 연대기를 들고 참전했으며, 신대륙에서도 6개 연대가 추가로 동원되기로 했다.

여기에 프리지아 측에서 12개의 정예 보병 연대를 제공하기로 했기에 전체 지상군 규모만 따져도 27개 연대, 55,000명을 상회했다.

해군과 병참 관련 인원을 합치면 그 동원 인력의 수만 10만 명을 넘었다.

과거 대(對) 신 원정에서 동원한 전력의 3배가 넘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군사력이 동원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정치적으로 왕국 본국을 위협할 적수가 사라져 ‘본국의 안보’를 걱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왕국은 이 이유로 말미암아 거의 본국을 비우다시피 하고 전쟁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왕국 사회의 진보를 들 수 있었다. 기술과 금융 면에서 놀라운 성취를 거듭한 왕국은 이전 전쟁에서는 불가능했을 규모의 군사력을 머나먼 세계로 보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었다. 왕국 금융계는 이전 전쟁의 세 배가 넘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이는 자연히 왕국 전쟁 수행 능력의 증가로 이어졌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영향력은 컸다. 주류를 이루던 느린 범선들 다수가 퇴역하고 쾌속 범선이 보급 전력의 태반을 채우면서 병참 부문의 부담도 크게 줄었다. 이것 역시 왕국의 원정에 크나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세 번째는 왕국의 여론이었다. 지금까지 왕국 여론은 ‘언제나’ 선공을 가해온 자국의 전쟁에 대해 그렇게까지 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자국이 ‘선공’을 당한 이 최초의 전쟁에는 관심이 엄청났다. 그들은 그 수모에 ‘철저한 보복’을 요구했다.

그 요구를 ‘철저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해내기 위해 왕국 정부는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이것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동방 원정군이 편성된 배경이었다.

지휘관들은 선상에서 왕국 의회에서 내려 보낸 ‘파병 결의안’을 낭독했다. 병사들은 그 내용을 들으며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열강을 상대로 한 전쟁도 간단히 이긴 그들에게 ‘신’은 그다지 두려운 적수가 되기 어려웠다.

정부는 이 전쟁에 적절한 ‘파병 수당’을 약속했기에 병사들은 높은 사기를 보였다.

이윽고 출항 준비가 끝나자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제 위치로 돌려보냈다. 이제 동방을 향한 원정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왕국의 원정군이 막 닻을 올리던 시각, 연합왕국의 남방 식민지 중 하나인 힌디아의 갈라타에 한 사내가 가방을 들고 내렸다. 그는 흡사 이곳에 놀기 위해 방문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내는 값비싼 왕국의 정장 차림에 수행원도 여럿 데리고 있었다. 그는 걸어 다닐 거리도 코끼리를 불러 타고 다녔다. 이곳의 백인들은 그런 그를 보고 ‘세계 여행’을 온 거물로 여겼다.

그 한량의 정체는 바로 루이였다.

루이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듯 돌아다녔다. 돈을 그야말로 물 쓰듯 하고 다녔는데, 그가 얼마나 돈을 잘 썼던지 이곳 현지 주민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씀씀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돈이 썩어 넘치는 인간’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자석처럼 끌려들게 마련이었다. 이 씀씀이 좋은 백인은 현지 백인 사회 여성들의 이목을 금방 사로잡았다.

본국에서 하층민 혹은 중산층의 삶을 살다가 식민지로 와서 ‘대접’을 받고 살던 그녀들은 에우로페 출신(?)의 화려한 실업가의 존재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에게 나이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 돈 많은 사내만 사로잡으면 이 불쾌하고 미개한 땅을 벗어나 즐거운 사교계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하나둘 루이의 주변에 꼬여들자 자연히 몇 안 되는(?) 미혼 여성들을 따라 상류층 남자들도 딸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개가 식민지 관료 사회의 상층부에 위치한 나이 있는 신사들이었다.

루이는 여성들에게 적당히 목걸이와 드레스 같은 것을 사주며 그들을 적절히 자신의 가시권에 넣어두었다. 하지만 그가 노린 것은 그 꽃을 노리고 몰려온 나비들이었다.

그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끌려온 나비들과 여성들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샀다. 자리를 주선할 때마다 그는 여성들에게 선물을 주고 ‘식사비’도 모두 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신사들은 돈도 있고 매너도 좋은 그를 벗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루이는 이들을 통해 식민지 군대에 몇 가지 물자를 ‘납품하는 권리’를 얻고 싶다고 청탁을 넣었다. 보통 그런 권리는 현지에서 관료와 결탁한 자들이 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루이는 보다 확실한 수를 던졌다.

인간적으로 접근해 ‘친밀감’을 높이고 호의도 베풂으로써 그들이 자진해서 ‘권리’를 넘길 조건을 만들었다.

당연히 루이에게 신세를 많이 지고 있던 신사들은 그 청을 딱 잘라 거절하지 못했다.

군수 물자 일체에 대한 권리도 아니고 소소한 것 몇 가지를 요구한 것이라 그들로서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루이에게 청을 받았던 신사 제롬은 이렇게 말했다.

‘경에게 그간 받은 신세가 얼마인데 그 정도 부탁을 어렵게 여기겠습니까?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경의 출신이 신대륙(루이는 일을 시작하면서 국적을 세탁했다)이긴 하지만 안 될 일은 없습니다. 이곳 식민지에서는 출신보다 친교가 우선입니다.’

제롬과 같은 신사들 몇몇이 나서서 당국에 압력을 넣자 일은 금방 성사되었다.

식민지 고위 관리들의 입김을 무시하기에 식민지 군 당국은 힘이 없었다. 예산 자체를 식민지 관리들로부터 받는 입장에서 그 요구를 거절한다는 자체가 무리였다.

루이는 이렇게 별 어려움 없이 사업권을 따냈다.

그가 사업을 따내자 제롬은 다음과 같은 당부 사항을 알렸다.

‘경도 사업에 대해서는 잘 아시겠지만 여긴 문화적으로 조심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람교도들에게는 돼지기름을 총의 윤활유로 주어선 안 된다는 것이고, 인두교인들에게는 쇠기름을 주어선 안 됩니다. 부대에 보급이 잘못 갔다가는 큰일이 나니 그 부분만 조심해 주십시오. 그 부분만 주의한다면 경의 납품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이 있다면 연락을 주십시오.’

루이는 그 충고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주의하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그 충고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는 그 충고를 어기기 위해 이 사업권을 따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으로 전하께서 내리신 명은 잘 수행할 수 있겠군. 적당한 시기에 기름을 잘못(?) 배달하고 부대에 소문을 흘리면 남방 식민지는 아주 화약고가 되고 말 거다.’

루이는 주먹을 꽉 쥔 채 일을 반드시 저지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그의 조국이 당한 굴욕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다.

***

승도는 침공 일정을 통보받은 후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둘 수 있는 포석을 다 두었지만 승리를 확신하기에 판이 썩 좋지 않아서다.

그가 피로로 충혈된 눈을 문지르고 있는데, 건문이 집무실에 나타났다.

“전하, 총판장경 건문입니다.”

“들어오세요.”

그는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전문 하나를 책상에 올렸다. 승도가 그것을 받아드는 동안 그가 입을 열었다.

“루시에서 넘어온 정보입니다. 연합왕국 침공군의 전체 규모가 드러났습니다.”

“어디 봅시다.”

승도는 전문을 쓱쓱 훑었다. 몇 번 전문을 훑던 그의 입이 일순간 크게 벌어졌다.

“전체 규모가 십만이 넘는다?”

“예, 전하. 상상 이상의 침공군입니다.”

“이거 야단났군요. 이렇게 규모가 늘어난 건 프리지아 육군 탓이군요.”

승도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전생에 전쟁의 판을 불리하게 만들고 무릎을 꿇게 만든 것이 왕국이었다면, 프리지아는 그 배역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로망스의 희망을 짓밟은 장본인이었다.

“적세가 이토록 거대하다면 어찌해야 좋습니까?”

승도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군세가 크다고 하면 장점이 더 많긴 하지만 단점도 있다. 하나는 다국적군 특유의 문제점이다. 단일 국가의 군대와 달리 다국적군은 그 움직임이 둔하다. 사전에 의사를 조율하고 작전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승도는 과거 자신의 경험을 반추했다.

대 루시 원정 당시 로망스 군대는 10개국 이상의 동맹국들로부터 차출한 군대로 전력을 보강해 전쟁에 나섰다. 그랬기에 로망스 군대는 신속성과 정확성이라는 본래의 강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명령을 내려도 군사와 조직 문화가 다르다 보니 전혀 다른 뉘앙스로 알아듣고 움직이거나 혹은 그 정치적 의도에 따라 행동해 버리니 작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결과 로망스는 서전에 루시 군대를 괴멸시킨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 파멸하고 말았다.

그 당시의 패배처럼 상대에게도 그런 약점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프리지아와 연합왕국이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정치적 입장과 시선을 잘 정리한다면 그 사이를 찌를 균열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또 하나. 연합왕국은 지나치게 막대한 군사력을 몰고 왔다. 그들은 절대 장기전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전쟁을 길게 끌수록 그 천문학적인 전비를 감당할 수 없다.’

이른바 시간제한이다. 왕국의 국부가 아무리 넘친다고 해도 지구 반대편에 십만 대군을 유지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재정 여력이 소진되기 전에 승부를 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그러니 저들의 전략은 단시간에 신으로부터 항복을 받는데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대군을 몰고 옴으로써 스스로 ‘제한’을 걸게 된 셈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왕국의 최전방 보급 기지는 우리 신에서 수천 리 밖에 있다. 그들은 대군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자를 싣고 올라와야 하기에 그만큼 행동이 더 굼떠지게 될 것이다. 초기 타격에 대응하기가 좀 더 수월해지게 된다고 할 수 있지.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하면 적이 대군이라고 해서 아주 불리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승도는 셈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 대항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적이 정확히 어디를 최초 공격 지점으로 고를 것인가만 파악한다면 그다음부터는 할 만한 승부가 될 겁니다.”

“정말이십니까.”

“구태여 농을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충분히.”

그제야 건문이 얼굴빛을 폈다.

“그리 말씀하시니 부족한 신의 마음이 놓입니다.”

“그리하자면 그대가 해줄 일이 있습니다.”

“명만 내리십시오.”

“앞으로 이 사람이 직접 남방으로 내려가 일전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하니 그사이 비는 북경을 지키면서 루시와의 접촉을 관장해 주세요.”

“전하께서 몸소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전쟁에 안전하고 평온한 곳이 어디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승리자로 확실히 서는 것이 스스로를 가장 안전하게 하는 길입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믿기에 전장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 신에서 이 사람을 대신해 군마를 이끌 지휘관이 있습니까?”

그는 쌓은 업적으로나 명성으로나 전국을 조율함에 있어 신의 제일가는 장수라 할 수 있었다. 그의 모습만 보아도 병사들의 사기가 오르는 판이니, 전장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오나 전하, 경사를 비웠다가 또 황족들이 분란을 일으키면 어찌합니까.”

건문이 조심스레 말했다.

지난번 하워드와 손을 잡고 제국 내에서 분란의 씨앗을 뿌린 황족들의 존재는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일개 신료인 건문으로서는 그들을 다루기에 부담을 느꼈다.

“그 문제라면 이 사람이 책임지겠습니다. 황족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거든 증좌를 찾아 두었다가 모두 목을 쳐버리세요. 한 번은 명분으로 삼기에 걸려도 두 번이면 발뺌할 수 없겠지요.”

“진정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신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시면 됩니다. 모두 이 사람이 책임지겠습니다.”

승도는 힘을 주어 말했다.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 책임까지 함께 넘기는 군주들은 제대로 된 결과를 받지 못했다. 신하들이 그 일의 실패를 두려워하여 제대로 된 일처리를 망설이기 때문이다.

승도 역시 과거에는 그랬다.

제정 시절 자신의 부하들에게 독립 작전권을 줄 때면 막중한 책임도 맡겼다. 작전에 실패하면 훈장은 물론이고 계급도 박탈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진취적이고 능력 있는 부하 원수 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소심해져 자기 보신을 챙길 만큼만 움직이려 했다.

황제의 명령 없이는 병사 하나 움직이지 않는 수동적인 위치를 고집했고, 그 결과 나중에 가서는 승도가 믿고 쓸 수 있는 부하 원수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비극이었다.

한 번 그 쓰디쓴 교훈을 맛본 승도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책임은 명령을 내린 자신이 지고 부하에게 일을 수행할 힘을 준다. 이것이 그가 새로운 제국을 이끌며 정립한 원칙이었다.

“알겠습니다.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는데 제가 일을 맡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맡겨 주신다면 북경에서 잡음이 일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경군의 동원도 허락하겠습니다. 전권을 줄 테니 잘 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승도는 건문에게 그만 가보라고 말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아내를 만나러 갔다. 건문에게는 자신감을 보였지만 십만이라는 충격적인 적의 수는 그의 마음에 약간의 동요를 주었다.

승도가 침실로 찾아오자 은비는 조금 놀라면서도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승도가 자리에 앉자 은비가 차를 주며 안색을 살폈다.

“걱정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그래 보입니까?”

“네. 며칠째 통 잠도 못 주무시고 계시잖아요.”

“다 전쟁 때문입니다.”

“양이들이 걱정이신가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는 차를 마시며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이걸 하나 드세요.”

은비는 품에서 당과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승도가 언제나 즐겨 먹던 것이었다. 그는 얼결에 그것을 받아들고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 고민이 있으실 때는 이걸 드시면서 생각을 정리하셨잖아요. 지금도 다르시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서방님은 이 제국의 영웅이자 제게 불패를 약속하신 분이잖아요.”

승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불패. 패하지 않기로 약속을 드렸지요.”

승도는 아내가 건넨 당과를 입에 넣었다. 그 달콤한 맛이 입 안에 번지자 조금은 무겁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제 조금 괜찮아지셨나요?”

“확인해 보도록 하세요.”

승도는 아내를 가볍게 당겨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남편의 심장 소리가 고요하게 들렸다. 은비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남편은 어느새 여느 때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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