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82화 (382/425)

제382화. 징벌 원정 (2)

“온다!”

자말로 들어오는 수로의 등대에 근무하던 반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가 별안간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침대에 누워 한숨 잠을 청하고 있던 자칼의 눈이 번뜩 떠졌다.

“뭔데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함대 말이야.”

동방 함대의 전멸로 방어에 문제가 생겼다. 그 이유 때문에 안보 공백을 메우고자 남방 함대에서 일부 함정들이 주기적으로 자말을 오가며 순찰 항해를 하고 있었다.

자칼은 아마 남방 함대에서 온 순찰 함정들이라고 생각했다. 별 대단한 일도 아닌데 반이 소란을 부렸다고 생각하며 담요를 당겼다.

“뭐, 그래 봐야 남방 함대에서 보낸 순찰 함대겠지. 근무한 지 몇 년 되었으면 함정 몇 척에 일일이 소란 떨지 말라고.”

“그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잠이나 좀 자자고.”

“본국에서 온 함대라고.”

반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제야 담요를 당기던 자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국에서 함대가?”

자칼도 본국이 신을 그냥 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함대가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오늘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황급히 반의 자리로 가 망원경을 낚아챘다.

수평선에는 수도 없는 배들이 서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배가 7, 물이 3이었다. 그 압도적인 규모를 보니 반이 호들갑을 떤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칼은 급히 전신에 손을 가져갔다. 자말 쪽에 함대의 도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자칼이 전문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독 보좌관 조셉에게도 연락이 왔다. 조셉은 마리안느가 차려준 아침을 먹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오늘이 그날이야. 함대가 도착하는 날. 몇 시간 안에 항구에 봉쇄령이 내려질 거야. 휴전은 이걸로 끝이지.”

마리안느는 그 말에 얼른 코트를 가지고 왔다.

“그럼, 빨리 일을 보러 가셔야죠.”

“그래야지. 그럼 저녁때 보자고.”

조셉이 코트를 입고 저택을 나섰다. 조셉을 태운 등자가 출발한 것을 본 마리안느도 얼른 외출복을 입었다. 신에 비교적 정확한 원정군의 출발 일시를 알리긴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휴전이 끝나는지에 대한 정보는 아직 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경호를 맡은 하인 하나만 데리고 시장으로 나섰다. 조셉이 느긋하게 항구로 향하는 동안, 마리안느는 분초를 다투어 신과 접선이 약속된 가게로 움직였다.

그녀가 숨을 고르며 가게에 들어서자 루이를 대신해 이곳에 남은 사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마담께서 오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 지금 당장 여길 떠나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사내는 마리안느의 이야기에서 뭔가 느낀 듯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요. 전쟁이 재개될 거예요. 몇 시간 안에. 그렇게 되면 항구는 봉쇄되고 당신들은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가려면 지금 가야 해요.”

“몇 시간 안에 전쟁이 재개된다면 왕국 원정군이.”

“도착했어요. 서둘러요.”

마리안느의 재촉에 사내는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급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품은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어차피 위장용으로 차려둔 것이라 그런 것을 처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챙길 서류와 약간의 현금만 챙겨 가게를 나설 준비를 마쳤다.

“마담, 짐은 모두 마담께 양도하겠습니다. 이 중에는 마담께 약속드렸던 독과 전후에 쓰실 신분 증명패도 들어 있습니다. 귀한 정보를 주신 데 대해 당장 이 정도 보답밖에 해드릴 수 없는 것이 실로 유감입니다.”

“아니에요. 약속한 대가만 준다면 당신들은 신뢰를 지켰어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전쟁 후에 정말 약속한 보장들이 다 지켜지겠지요?”

“저희 전하께서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은 상인이십니다. 상인이 얼마나 신용을 중하게 여기는지는 마담께서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그렇죠. 상인이라면 신용이 가장 귀한 재산이란 걸 알고 있죠. 믿도록 하지요.”

마리안느가 손을 내밀자 사내는 그 까무잡잡한 손을 쥐었다. 둘은 악수를 나누고는 손을 놓았다.

“그럼, 전후에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기대할게요.”

마리안느는 급히 항구를 향해 달려가는 신의 사내를 보았다. 그녀는 조금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 사내가 남긴 물건을 살피기 시작했다.

연합왕국 해군 프리깃 칸은 해상 봉쇄 명령이 내려지는 즉시, 항구에서 나오는 배들을 잡아두기 위해 함대에 앞서 자말 앞바다로 나아왔다. 항구로 들어가 식수와 물자를 보충하며 휴식을 취할 나머지 함정들과 달리 과중한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칸의 함장인 빅은 자신이 함대 사령관에게 잘못 보인 탓에 안 좋은 임무가 내려온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도 일리가 없지 않은 것이 왕립 해군에서는 줄이 강조되고 있었다.

상부에 뇌물을 잘 바치고 배경을 잘 만든 자들은 출세를 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60대의 나이에도 위관에 머무는 끔찍한 처우를 맛보아야 했다. 위에 밉보인다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일이었다.

빅도 상황을 알고는 있었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그의 백부가 배경이 된 덕에 고속 출세를 했는데, 그 출세 와중에 현 함대 사령관의 아들이 함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한차례 가로막고 말았다.

제독 입장에서는 빅이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빅으로서는 백부의 도움으로 불유쾌한 상전의 부당한 압력을 견뎌왔지만, 백부가 작고하면서 그의 배경은 사라지고 말았다. 보호자가 사라진 이상, 제독으로부터 시달리는 운명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염병할.”

빅은 짤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망원경을 들었다. 마침 항구 앞으로 쾌속 범선 하나가 돛을 활짝 펴고 나오고 있었다. 그는 시간을 슬쩍 보고는 사관에게 물었다.

“명령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는가?”

“예, 함대 주력이 항구에 들어간 다음에 따로 신호를 주기로 했습니다. 아직 봉쇄 명령이 내려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운 좋은 친구들이군. 아주 절묘한 시간에 빠져나가는군그래.”

빅은 돛을 펴고 속도를 내기 시작한 쾌속 범선을 슬쩍 보았다. 그 범선은 왕국의 고속 범선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마스트에는 왕국 국기가 흩날리지 않았다.

빅은 잠시 턱을 매만지다 잠깐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잠깐. 저 배, 우리 왕국의 조선소에서 만든 군용 수송 범선 아닌가?”

“맞습니다.”

사관이 확인을 해주자 빅이 코를 문질렀다.

“듣기로 동방 함대에서 상선이 꽤나 나포 당했단 이야기가 있던데. 그 배가 저 배일까?”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절묘한 시간’에 나포가 의심되는 배가 출발했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나?”

“해군의 기밀이 새어 나갔단 말씀입니까?”

“그야 잡아보면 알지 않겠나?”

빅이 희죽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참에 공을 세워 빌어먹을 함대 사령관의 수중에서 벗어나 ‘좋은 육상 보직’을 얻을 희망을 꿈꾸었다. 공만 세우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다소 무리한 일이긴 했지만 일만 잘 처리되면 잡음은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왕립 해군은 전통적으로 바다의 무법자로 군림했다. 최강자로 오대양을 지배하다 보니 그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규칙을 타국에 강요했다.

그 전통에 따라 수상한 배를 잠시 잡아놓고 검문해보는 것 정도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휴전이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깨질 이야기였다.

사관이 빅의 명령을 받아 큰 소리로 외쳤다.

“돛을 펼친다. 목표는 북북동으로 향하고 있는 범선이다.”

선임 사관의 명령에 준사관들이 이리저리 뛰며 수병들을 독려했다.

프리깃은 금세 속도를 높이며 움직이는 범선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해상에서 가장 빠른 상선도 어지간해서는 프리깃을 따돌리기 어려웠다. 짐을 싣고 있는 정상적인 배라면 그랬다.

빅의 프리깃이 속도를 높여오자 상선 쪽도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왕립 해군이 추격해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싣고 있던 물품을 바다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상대가 갑자기 물건을 던지며 배를 가볍게 만들자 빅은 자신의 예감이 적중했다는 생각을 가졌다.

역시 상대 범선은 수상한 놈이 틀림없었다. 프리깃은 모든 돛을 편 채 전력으로 그 뒤를 쫓았다. 그것은 신과 연합왕국, 두 나라의 대결이 재개되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

자말에 도착한 동방 원정군의 수뇌들은 이곳에서 그간 신에 대해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 검토’에 들어갔다.

본국에서 전략을 세워봐야 현실에 맞는 전략을 입안하기 어려웠기에 원정군은 이곳에서 전쟁을 끝낼 마지막 그림을 그려야 했다.

자리에 참석한 자들은 모두 육군과 해군의 최고위직들이었다. 평소라면 육군성과 해군성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할 거물들이었다.

왕국 육군 원수 네이선이 말했다.

“정리하면 신은 남부 지방에 대부분의 군사력을 집중한 상태입니다. 반면 그 해군력은 우리 쪽 전력이 북상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방어력을 할애하고 있는 형세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지연전 전략으로 정치적으로 부담이 적은 강남을 결전장으로 만들어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대책은 있겠습니까?”

왕국 해군 원수 크리그가 물었다.

“상대가 지연전을 의도한다면 그 수를 피해가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절대 장기전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 수에 말려들었다간 이길 전쟁도 돈 때문에 손을 털어야 하니까요. 대책은 적이 정치적으로 가장 아프게 여길 곳으로 얼마나 빠르게 도달하느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적이 가장 아프게 여길 곳에 얼마나 빨리 도달하느냐.”

“그렇게만 한다면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필요한 배상금과 포로의 석방까지도 모두 이룰 수 있겠지요.”

“네이선 백작 각하께서는 어디가 가장 취약한 곳이라고 여기십니까.”

원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프리지아 육군 대장 프리츠가 물었다. 그는 이번에 참가한 프리지아 육군의 지휘를 맡은 인물이었다.

대 오스티아 전에서 7주 전쟁의 승리를 주도한 공으로 공작의 작위를 받을 만큼 그 실력은 대단했다.

“북경입니다.”

네이선이 짤막하게 말했다. 네이선 역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이었다. 그는 반혁명 전쟁 당시에도 종군한 자로 왕립 육군과 영욕을 함께한 거물이었다.

“하지만 북경은 직공이 어려운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범선만으로 간다면 가능하지만 신은 장갑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전력을 고려하면 섣불리 생각하기 어려운 옵션이 아닌가 합니다. 차라리 강주를 도모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프리츠가 신중한 입장을 입에 담았다.

강주는 원정군이 병참을 길게 늘어트리지 않고 일격에 취할 수 있는 목표였다.

이곳에서 신의 군대에 타격을 가하고 강주를 취한 다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그 군사력을 마모시킨다면 적이 저절로 굴복하리란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전쟁에서 ‘영토’보다 ‘병력’을 격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결전론자’답게 적 병력에 주안점을 맞추었다.

“공작의 말씀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강주를 함락시키고 적 병력을 차례로 격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겁니다. 남방에 진주한 적의 전체 병력 규모가 너무 큽니다. 이들을 차례로 격파하는 시간 동안 전비가 바닥나면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백작은 전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크리그는 이야기를 듣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프리츠 공작 각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범선만 북상을 하는 것은 피해가 너무 큽니다. 감수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그래서 보완책을 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근간 수집된 정보들을 보니 이 전략을 수행할 기초는 놓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우선 아문은 거의 공백이나 다름없는 지역입니다. 신은 이곳에 약간의 병력을 할애하고 있지만, 그 방어력은 형편없습니다.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공격한다면 간단히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그야 무리가 없겠지요. 하면?”

“아문을 차지하여 중간 기착지로 확보하는 겁니다. 이곳을 전진 기지로 삼아 보급품을 비축하고 강남을 위협할 태세를 견지합니다. 그렇게만 해도 신은 강주를 비롯한 강남 핵심부의 방어에 주력하게 될 겁니다. 그 틈을 이용해 우리는 전열을 정비한 다음, 동부 해안선을 따라 치고 올라가 위해를 점령합니다. 디딤돌 뛰기 공격인 셈입니다.”

“말하자면 아군 해군을 위한 전진 기지를 2개 확보하여 북경의 진공로를 해상에서 열겠다는 개념이군요.”

“맞습니다. 이 방식을 취하면 강남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요 거점인 아문과 위해를 지키는 것으로 적 핵심 전력 태반을 안전하게 견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차후 우리 군은 북경에서 우세한 전력으로 신의 경군을 상대하고 그 도시를 수중에 넣을 수 있게 되겠지요.”

“정치적으로 신이 북경 공격을 견딜 수 있다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프리츠가 중요한 부분을 물었다.

보통 국가는 수도가 함락되는 즉시 전의를 잃게 마련이지만, 거대한 대국은 그렇게 간단히 굴복하지 않았다. 과거의 신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오승도 정권이 그리 나약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들이라면 수도를 덫으로 내주고 싸울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네이선은 그 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그야 좋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 수도를 불태우면 됩니다. 제도가 불살라진다면 신의 지도자로서 그 제도를 불사른 공격자를 그냥 보내면 위신에 맞지 않겠지요. 상대를 자극해서 결정적인 전장으로 끌어들이면 그만입니다.”

“적을 전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패로써 북경이 유용하다고 보시는 거군요.”

“그런 셈입니다.”

“그렇다면 강주가 더 효과적일 거란 생각도 듭니다.”

프리츠가 한마디를 덧붙이자 네이선이 물었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알기로 동방 사람들은 국가보다 고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방을 오가는 우리 쪽 상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그 이야기대로라면 오승도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인 강주를 태우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북경보단 강주가 효과적이다. 그 말씀도 일리가 없진 않군요. 그럼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해군 원수 크리그가 한마디를 꺼냈다.

“병행을 하자는 말입니까?”

“어렵지도 않지요. 백작과 공작 각하의 이야기가 상치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문을 전진 기지로 확보하고 필요한 석탄과 기타 보급품을 비축하는 동안, 육군은 아문에 틀어박혀 시간을 죽이게 될 겁니다. 그 시간에 강주를 한 번 쳐보는 것 정도는 가능한 옵션입니다.”

“북경 진공에 타격이 가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은 듯합니다. 어차피 적에게 강남에 집중할 거란 확신을 줄 필요도 있으니.”

지휘관들은 논의 끝에 아문을 확보하고 강주를 타격, 이를 통해 신의 주의를 강남에 붙들고 신속하게 위해로 북상한다는 기본 전략을 확정했다.

그에 따라 이번 전쟁에서 연합왕국이 택한 최종 결전장은 승도가 정한 강남이 아니라 북경이 되었다.

그들은 이 점에서 승도의 허를 한 번 찌르고 들어갔다.

연합왕국이 이처럼 그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동원한 가공할 만한 수의 상선 덕분이었다. 왕립 해군은 군수 사령부 예하에 자그마치 250척의 상선을 할당하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나마도 대단한 수는 아니었다. 현재 왕국이 보유한 상선의 3퍼센트 남짓한 수에 불과한 척 수이기 때문이다.

이 어마어마한 상선들은 병참선이 어지간히 길어지더라도 원정군을 지탱해줄 수 있는 최강의 보루였다. 또한 왕립 해군이 신에 대해 누릴 수 있는 결정적 우위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 이점에 대해 왕립 해군의 명장 리브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바다가 닿은 곳이라면 우리는 원하는 물자와 병력을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

그 가공할 보급 역량은 전진 기지를 연달아 설치하며 북상한다는, 상식 밖의 전략조차 가능하게 만들었다.

실로 연합왕국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계획이었다.

여타 열강이었다면 강남으로 천 단위의 공격군을 보내기도 버거웠겠지만 왕국은 달랐다.

그들은 이 계획 하나만으로도 이 지구상의 진정한 패권국이자 왕자임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왕국도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전쟁에 너무나 많은 물자와 힘을 쏟아부은 만큼, 그 역량에 비례하여 막대한 전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단기전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고, 그 약점은 분명 승도에게 읽히고 있었으며, 작전 개시 시점에 대해서도 파악당하고 있었다. 이 점은 왕국이 미처 알고 있지 못한 중대한 변수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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