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3화. 징벌 원정 (3)
침공에 관한 정보가 속속 바다를 건너 신으로 입수되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확한 침공일과 적의 규모를 파악한 승도는 방어 계획을 발동했다.
적의 초기 타격이 예상되는 곳은 금포강 하구의 주요 요충지인 아문과 주산 군도 등이었다. 왕국이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한 것을 일종의 속임수로 쓴다면 크기가 작은 ‘연합왕국 섬’을 전초기지로 쓰면서 대하 하류를 공격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었다.
군대의 규모가 작고 가볍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승도는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각 방면에 진을 친 지휘관들에게 경계 태세를 높일 것, 초기 타격을 피해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는 위치에 주력을 둘 것을 강조했다.
금포강 전역을 책임진 임경문은 그 명령에 따라 주력 방어 부대를 금포에 집중시켰다.
그 후방을 받쳐주는 풍겸은 상경에 예비 병력을 모았으며, 양국번은 대하 하구에서 100리 떨어진 내륙에 전력을 집결시켰다. 각 사령관들은 가능한 한 방어에 유리한 위치에 계획대로 병력을 배치했으며, 유사시 이들 병력이 움직일 도로의 상태도 확인했다.
전쟁 준비는 부족함이 없었다.
승도는 방어 태세에 주의를 당부하는 동시에 자신의 수행 관료들로 하여금 병참을 확인하게 했다.
병참은 각 부대에 보충할 탄약과 식료품 및 예비 장비의 수송과 관련된 업무였다. 이들 물자를 제때 지원할 수 없다면 전투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승도의 지시에 따라 관료들은 병참 부서를 면밀히 확인했다. 수송에 필요한 우마와 수레, 배, 그리고 철도가 잘 준비되었는지, 보급창에서 물자를 옮길 인부의 수는 부족함이 없는지 그들은 재차 확인을 했다.
침공 전부터 꼼꼼하게 확인을 해왔던 터라,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승도는 그 보고를 받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이제 전쟁에 앞서 준비한 마지막 조처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아문의 모든 항만 시설을 파괴하세요. 적은 강남을 치기 위한 기반으로 아문을 확보하려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겁니다. 창고, 부두, 필요하다면 시가지의 건물까지 전부 때려 부수세요. 도크에는 말뚝을 박고 그것이 어렵다면 쓸모없는 배들을 집어넣고 자침시켜 적이 이들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항구 내에 지뢰를 매설하고 항만 안에는 기뢰를 설치하세요. 적이 편하게 우리 국토에 발을 딛게 해선 안 됩니다.”
승도는 철저한 파괴를 명령했다.
그는 이러한 파괴가 얼마나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루시가 로망스 원정군을 상대로 구사한 초토 전술이 바로 이런 식이었다. 공격자가 사용 가능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나마도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다면 그들의 전략은 처음부터 꼬일 수밖에 없었다.
승도의 명령에 따라 아문에 주둔한 단련들은 무자비한 파괴 행위에 돌입했다.
“자자, 나르자고.”
“어휴. 이 무거운 걸 어느 세월에?”
단련 몇이 무거운 기뢰를 들고 옮겼다. 그들이 짊어진 기뢰는 잠수함에 탑재하는 장대 기뢰를 고친 계류식이었다. 이것들은 항구 내에서 왕국이 마음 놓고 배를 접안하기 어렵도록 시간을 버는 용도로 준비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두 근처까지 기뢰를 끌고 온 다음 진땀을 흘렸다. 계류식은 충격이 있는 즉시 작동하는 것이라 안전장치로 태엽을 이용했다. 태엽이 돌아간 상태에서만 접촉 시 폭발하도록 설계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몰랐다. 무기는 종종 사고를 일으켰기에 옮기는 내내 긴장을 늦출 새가 없었다.
“휴우.”
단련 현씨가 기뢰를 놓고 땀을 닦았다. 복씨는 그런 동료를 보며 혀를 찼다.
“이렇게 늦게 움직여서는 이틀을 일해도 모자라. 이 사람아.”
“그건 나도 알지.”
“이거 다 옮기고 지뢰도 매설해야 한다는 거 모르나?”
“안다네. 염병할.”
현씨가 투덜거리자 복씨가 주머니를 건넸다. 현씨는 시큼한 맛이 나는 주머니에서 아쉬운 만큼 목을 축였다.
그가 물을 마시는 동안, 복씨가 뒤쪽에서 일하는 단련들을 보며 혀를 찼다.
“저 친구들도 고생이군.”
“어디 말인가?”
“저기 도크 말일세.”
복씨가 가리킨 곳에는 수백 명의 단련들이 온갖 도구를 가지고 배와 도크를 파손시키고 있었다. 배에 구멍을 내어 도크에 물이 들어오는 즉시 침수 상태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작은 크기의 배가 아니다 보니 일은 쉽지 않았다.
거기다 도크 안으로 건물 잔해 따위를 가져와 쏟아붓는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완전히 도크를 쓰지 못하게 하려고 작심하고 벌이는 일이었다.
“쏟아!”
수레에 건물 잔해를 싣고 온 자들이 도크 안으로 폐목재와 벽돌, 돌들을 쏟아부었다.
배를 부수던 자들은 그때마다 적당히 자리를 피하면서 제 할 일에 전념했다.
현씨는 그 광경을 보다 코를 문질렀다.
“염병, 쉬운 일은 하나도 없나 보군.”
“그래도 삯은 나오잖나. 조금만 힘내자고.”
복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손을 내밀자, 현씨는 입맛을 다시다 그 손을 잡았다.
단련들은 본래 급여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오승도가 특별히 인심을 냈다. 그는 같이 목숨을 내놓은 단련들도 상승군처럼 봉록을 받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징병된 자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겠지만, 신은 기본적으로 모병제 국가였다. 그런 나라에서 자원(실은 지주들에게 끌려 나옴)해서 나온 자들을 무급으로 처우할 이유는 없었다.
승도는 그런 관행을 조금씩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같은 작은 한 걸음이 신이란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그리고 국가의 체제를 굳건히 하는 중요한 초석이 된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두 단련은 기뢰를 내려놓고 다시 짐을 가지러 갔다. 단련들이 기뢰를 부두 앞에 옮겨두자 전문적으로 이 장비를 다루는 해군 소속 병사들과 로망스 기술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기뢰를 보트에 싣고 물 위로 나갔다.
항구 안은 이미 주둔해 있던 선박들이 빠져나가 텅텅 비어 있었다. 남은 것은 수리가 끝나지 않아 ‘도크 봉쇄용’으로 쓰인 중파 이상의 선박들뿐이었다.
보트에 타고 있는 자들은 느긋하게 항구를 둘러보며 적당한 위치를 골랐다.
로망스 기술자 기에르는 항구로 들어오는 주요 침로를 확인하고 그 한 지점을 골라 지도에 펜으로 X표시를 했다.
“이 위치가 좋겠군.”
기에르의 손짓에 해군 병사들이 조심스레 기뢰를 물에 담갔다. 그들은 그것을 넣기 직전에 조심스레 태엽을 돌렸다. 그것은 이제 자신과 접촉하는 선박의 연약한 아랫배를 물어뜯을 준비를 마쳤다.
기뢰 하나를 넣은 기에르는 보트를 천천히 돌리게 했다. 기뢰는 그 수량이 많은 무기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기뢰에 첫 피해를 보았을 왕국의 반응을 예상하면서 적절한 위치를 다시 골라보았다.
“여기가 좋겠어.”
그는 첫 기뢰부터 한참 떨어진 지점에 기뢰를 넣게 했다. 그가 기뢰의 위치를 넓게 잡은 것은 왕국 쪽의 ‘신무기’에 대한 반응 능력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기에르는 왕립 해군의 역량이라면 최초 기뢰에 당한 시점에서 즉시 함대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추가적인 피해를 연달아 주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다면 기뢰들은 가능한 한 띄엄띄엄 설치하여 상대의 소해 작업을 어렵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부두 밑에 설치하는 거지.’
기에르는 나름대로 왕국을 엿 먹일 ‘기뢰 배치’를 그렸다. 상대가 안심한 순간에 마지막으로 대 타격을 입히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설치 완료했습니다.”
기에르가 기뢰 지도에 X자를 표기하고 기뢰의 배치를 생각할 때 병사가 말했다.
“저기로 가지.”
기에르의 손짓에 병사들은 천천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기뢰 매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동안, 파괴 작업도 궤도에 올랐다. 상승군은 막대한 폭약을 동원하여 아문 내에서 보급품 보관에 쓸 수 있었을 창고의 9할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이는 단시간에 수행한 파괴 작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이러한 파괴는 전적으로 ‘체계적인 파괴 계획’을 입안하여 단계별로 추진한 로망스 교수 베베르의 공이었다.
베베르는 파괴에 필요한 시간과 우선순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주먹구구식으로 파괴를 수행하려 한 신의 군대에 큰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신은 만 나흘에 걸쳐 애초 목표로 했던 아문의 초토에 거의 성공했다. 이는 연합왕국이 전쟁 계획을 수립하며 감안하지 못한 변수였다.
***
붉은 서광과 함께 수평선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찬란한 태양이 그 얼굴을 불쑥 떠올림과 동시에 세상은 훤하게 밝아졌다. 상승군에서 아문에 보낸 초병 막씨는 망원경을 든 채 일출을 지켜보았다.
연합왕국이 공격을 해올 것이란 정보가 옳다고 하면,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가 공격 예상 시간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공격군이 나타날 장소는 이 아문일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상승군 지휘부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아문에 초병을 남겼다.
“오늘은 오지 않을 모양인가.”
막씨는 일출로 인해 훤해진 바다를 응시하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말린 육포를 뜯고 있는데, 동료 정씨가 다가왔다.
“뭐 좀 보이나?”
“아직. 양이들은 올 기미가 없어.”
“혹 아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것은 아닐까?”
“그럼 다행이지.”
막씨는 정씨의 말에 대꾸하고는 육포를 찢어 입에 넣었다.
병사들 입장에서 일상적으로 바라는 일이 있다면 자기가 있는 지역이 전쟁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었다. 전쟁을 통해 공적을 평가받고 출세를 할 수 있는 장교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일개 사병으로서는 이것이 솔직한 속내였다.
“그건 그런데 이야기 들었나?”
“무슨 이야기?”
“우리 옆 동네에 살던 육씨 알지?”
“알고말고. 언제나 품앗이나 하면서 살던 친구였지. 그 친구가 왜?”
“이번에 이야기를 들으니 그 친구가 출세를 했다고 하더라고.”
“출세?”
“알잖나. 육씨 그 친구도 상승군이라는 걸.”
“알지.”
정씨는 잘 들어보란 듯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였다.
“그 친구가 글쎄 양이들을 금포강에서 둘이나 죽였다는 것 아닌가? 그 공으로 그 친구에게 계급장과 훈장이 내려졌다네.”
“그게 정말인가?”
“암. 그렇고말고.”
정씨의 말에 막씨가 입술을 쓱쓱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신의 병사들에게 애국심은 사실 그렇게 구체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은 불패의 지휘관으로 군림하는 승도의 휘하에서 얻을 수 있는 ‘승리의 부스러기’에 대한 기대였다.
그들은 그 부스러기를 얻어 같은 처지에서 한 발 나아간 육씨의 이야기에 부러움과 전투에 대한 의욕을 동시에 느꼈다.
“그 말이 참이라면 여기도 양이가 오길 바라야겠어.”
“그럼, 자네가 머리라도 잘라낼 텐가?”
“못 할 것도 없지.”
그들은 농담 삼아 피식 웃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무기력한’ 상태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양이가 온다면 손을 봐야겠다는 각오 정도는 또렷하게 자리 잡았다.
그들이 몇 마디 농을 더 나누고 있는데 수평선 위로 흐릿한 실루엣이 여럿 드러났다. 그 검은 그림자들은 처음에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물 위에 비친 허상처럼 보였지만, 곧 그 실체가 분명해져 갔다.
이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정씨가 그것을 발견했다.
“자네 말이 농이 아니게 되었군. 정말 양이들이야.”
“참인가?”
막씨가 급히 눈에 망원경을 가져갔다. 곧, 막씨의 두툼한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정씨를 보았다.
“진짜 양이들이 오는군.”
“그래.”
정씨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느새 수평선은 무수한 배들의 실루엣으로 가득 찼다. ‘시계의 너머’로부터 나타난 적은 이내 바다를 메우고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그들은 한참 수평선을 바라보다 자신들의 옆에 매여 있던 말을 데려왔다. 농으로 양이의 목을 치겠다고 했지만 저 가공할 대군을 몇 명이서 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그런 미친 자살 행위가 아니라 적의 침공을 보고하는 데 있었다.
둘은 그대로 아문을 출발하여 내륙으로 향했다.
육군 원수 네이선은 뱃전에 선 채 망원경을 들고 있었다. 그는 왕국이 잃어버렸던 동방의 보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콧수염을 당겼다.
‘저기가 아문인가.’
그는 아문을 바라보다 장교들을 불렀다.
“상륙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해군 쪽에서 함포 지원을 제공한 다음 시작할 예정입니다. 포격에 소요될 시간이 약 두 시간입니다.”
“두 시간 후부터 상륙이란 말인가?”
“예, 각하.”
“좋아. 보급품 양륙은 어떻게 되었나?”
네이선이 묻자 키가 큰 참모 장교가 대답했다.
“왕국 섬에 석탄을 임시로 하선하는 작업이 조금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부터 2주일에 걸쳐 4만 톤의 석탄을 비축할 예정입니다. 우리 육군이 필요로 하는 보급품은 석탄보다 우선순위가 밀려 있어 아문에 비축해야 합니다.”
네이선은 그 대답에 짜증을 냈다. 해군이 물자를 비축하지 못하면 징검다리 작전을 할 수 없으니 양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육군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전부 아문에 내리게 하면 유사시 필수 보급품 하역이 지연되었을 때, 육군 전체의 작전이 꼬일 수 있었다.
문제가 심각해지면 강주를 공격한다는 계획도 실천에 옮길 수 없었다. 네이선 본인의 입장에서야 강주를 공격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왕국 육군의 체면이 문제였다.
프리지아의 프리츠에게 강주를 치겠다고 확언해놓고 그 약속을 물린다면 향후 동맹군과 보조를 맞춤에 있어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 자명했다.
그러니 작전의 순조로운 성공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굼벵이처럼 일처리를 하면 육군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잖나. 최소한 우리 쪽 보급품도 동시에 섬에 양륙해둘 수 있도록 해군에 잘 말해두게.”
“하지만, 각하. 해군에서 석탄 양륙이 우선이란 입장을 통보해 와서 쉽지 않습니다.”
“그건 자네가 할 나름 아닌가?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참모라는 감투가 필요 없지. 자네 옷 벗고 싶은가?”
네이선의 협박(?) 아닌 협박에 참모가 침을 삼켰다. 대령 계급에 있는 자라곤 하지만 원수 계급의 최고위 장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가 방귀만 뀌어도 태풍을 맞은 듯 날아가는 것이 참모의 처지였다.
대령은 원수의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각하.”
네이선은 그 대답을 듣고서야 인상을 폈다.
“좋아, 명심하게. 그 일에 차질이 생겨선 안 돼. 알았나?”
“예.”
원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상륙 쪽을 책임진 해병 중장 오스틴과 눈을 맞추었다.
“아문을 확보하고 방어 태세를 굳히는 것에 시간이 걸려선 안 돼. 야만인들이 위협만 가해도 상륙 병력 규모가 작은 우리 쪽에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그리되면 작전이 꼬이게 될 걸세. 그건 용납할 수 없어. 일을 철저하게 해줄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각하의 계획에 맞춰서 정확하게 아문을 바치겠습니다. 야만인들의 방해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네이선은 망원경을 다시 눈가로 가져갔다. 그는 아문을 향해 슬슬 전진하는 아군 함정들을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약속은 마음에 드는군. 그 말 지켜 주리라 믿겠네.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 육군과 왕국은 프리지아 촌것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게 되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 거라고 믿네.”
“알고 있습니다.”
오스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은 전통적으로 대륙의 오랜 라이벌 로망스와 루시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을 이류로 취급했다. 그들은 이 이류 국가들과 자국의 군대는 차원이 다르다는 자부심을 가졌기에, 언제나 그 앞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반혁명 전쟁에서 연합왕국 보병 연대 하나가 로망스 주력의 전면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전멸한 사례도 있을 정도였다.
왕국인들은 그만큼 자존심이 강했다. 그렇기에 프리지아 인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은 네이선의 당부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연합왕국 지휘부는 해군 함정들이 아문 앞에 다가가 포격을 가하는 것을 지켜보며 ‘신속한 작전’의 성공을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